원작 : https://arca.live/b/supernerimk2?category=%EC%86%8C%EC%84%A4&target=title&keyword=%EC%A1%B0%EA%B8%88+%EC%9D%B4%EC%83%81%ED%95%9C


모음 : https://arca.live/b/lastorigin/2071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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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끝낸 건가?”

 

“뭐, 그렇게 됐네.”

 

“하... 참... 지금 내 눈 앞에 있는 사람이 내 친구인지 아니면 괴물인지 갑자기 궁금해지는구만.”

 

“... ...”

 

 

 

봉고차를 타고 사무실로 돌아가는 길.

셜록이 사온 햄버거를 입에 쑤셔 넣으며 탈탈거리는 싸구려 엔진의 배웅을 온 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레이스와 팬텀이 찍은 영상을 키무라에게 건네고 나는 팔자 좋게 다리를 쭉 펼쳤다.

뒷자석에선 무릎을 가슴께로 모아 조용하게, 세상을 달관하는 토모가 묵빛의 눈길로 나를 조심이 쳐다보았다.

 

 

 

“햄버거는 좀 입에 맞으십니까? 왓슨 님?

제가 모자라서 치즈 버거 세트로 밖에 사드리지 못했사옵니다.”

 

“으으... 갑자기 왠 존댓말?”

 

“그야 당연한 거 아니겠나? 지금 내 눈 앞에 전설이 있지 않은가.

취재와 잠입의 전설! 하아, 이거 기사가 아니라 소설을 썼어야 했는데.”

 

 

 

악덕 기업 간부들과 정계의 거물이 모여있는 자리를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들어가 찍고 나온다.

확실히, 어디 영화 시나리오가 아닐까 싶은 정도의 기적이었다. 이런 일개 기자 나부랭이들이 할 법한 짓은 더더욱 아니었고.

 

 

 

“자네가 보내준 자료만 조합하면 기사도 금방 써질 걸세.

사실 이미 거의 다 써났지. 일이 어떻게 진행될 지 아주 뻔해서 말이야.”

 

“그거... 그러면 안 되는 거 아니야?

그러다가 괜히 생사람 잡았으면...”

 

“에이, 증거만 없었지, 심증은 이미 다 있었던 거 아니겠나?

특정 인물을 지목하는 건 자네가 준 증거 자료를 바탕으로 했으니 엄한 사람 잡을까 걱정하지 않아도 되네.”

 

“후우... 다행이네.

그럼 기사는 다 써서 올린 거야? 그냥 인터넷에 뿌리면 되나?”

 

“예끼, 그러면 큰일 나지. 우리도 엄연히 기사를 올리는 체계가 있다고?

일단 기사랑 자료들은 다 정리해서 편집장에게 올려놨네. 자네 덕분에 일이 한결 쉬워졌지. 컴퓨터 키보드 두들길 필요도 없을 정도로 확실한 증거였으니까.

이제 사무실 가서 컨펌 나는 것만 기다리면 된다. 간만에 발 쭉 뻣고 자겠군.”

 

“평소에는 안 그랬던 것처럼 말하네.”

 

“하하, 말이 그렇단 거다. 말이.”

 

 

 

기사를 올렸다면... 이제 끝이다.

저 기사가 세상에 풀리면서 키리시마 스캔들이 터지고, 키무라는 이 망해버릴 세계의 역사 속에서 한 줄을 당당히 차지하게 되는 것이다.

 

끝이다. 끝.

 

그 때문이었을까, 토모는 이제 날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저 말없이 웅크려 앉은 채 자신의 손가락만 멍하니 보고 있을 뿐. 낡은 봉고차의 전경조차 담지 못했던 거다.

 

밖은 말없이 조용했다.

시끄러운 새벽의 사람들은 한없이 활발했으나 결국 또 말이 없는 자들이었다.

차창을 내리면 쉬익, 쉬익 흘러가는 바람 소리만 들린다. 대로에 놓인 차들도, 네온사인 반짝이는 건물도 묵묵히 그 자리에 있었을 뿐이다.

 

가짜 세계. 가짜 세상.

그것이 가짜 친구를 내 옆에 둔 채, 이제 끝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 그립구만.”

 

“뭐가 또 그런가, 왓슨?”

 

“그냥... 이런 풍경을 본 지 너무 오래됐거든.”

 

 

 

속전속결로 끝내버린 게임.

그래도 엔딩을 볼 수 있을 테니 베드 엔딩까지는 아니었으리라.

 

리앤이 나에게 실망했다고 한들, 난 그보다 더한 것들을 몇 번이나 봤었다.

적어도 사지는 멀쩡하지 않겠나. 다리 잘린 애들하고도 친해졌었는데 못할 게 뭐 있겠어?

 

대신 백 년짜리 원한을 감당해내려면 고생하긴 해야겠지만... 

... 아냐, 그래도 거기서 빨간 문을 선택하는 것보단 나았을 거다.

 

 

 

그런 저런 생각을 하는 중, 봉고차는 어느새 우리의 사무실로 돌아왔다.

몇 번이나 봤다고 벌써 정이 들어버린 사무실. 먼지가 가득 쌓인 창문이 눈에 들어왔다.

 

셜록을 따라 나도 차에서 내렸다. 밤공기가 싸늘한 게 제법 마음에 들었다.

 

 

 

“흠흠, 아무튼 난 올라가서 정리 좀 하고 있겠다.”

 

“나도 도와줄까?”

 

“아니, 이제 일도 다 끝났으니 자네는 좀 쉬도록 해.

정리 다 되면 부를 테니까 차 안에서 눈이라도 붙이고 있던가. 피곤했을 텐데.”

 

“하하... 딱히 피곤한 건 아니었는데...”

 

 

 

그보다도 눈치 보이는 게 있단 말이지.

 

 

 

“왜, 토모 때문에 그런가?

안 그래도 자네한테 맡길 생각이었다.

대체 뭔 싸움을 했으면 저렇게 꿍해있는지... 제 딴엔 숨기려고 하는 게 눈에 보여서 더 안쓰럽단 말이다.”

 

“... 원래 연기를 잘하는 애는 아니었지.”

 

“아무래도 제 3자는 처리 못할 뭔가 있는 모양이야.

자네가 아니면 계속 저렇게 있을 것 같은데 가서 위로라도 좀 해주라고.

가장 좋아하던 햄버거를 줘도 묵묵부답인데 내가 뭐 더 해줄 수 있는 게 있어야 말이지.”

 

 

 

코팅이 벗겨진 차창 속에는 토모가 있었다.

그 오랜 시간 동안 버텨온 세계가 끝이라는 걸 직감했던 탓일까, 그 모습엔 슬픔도 기쁨도, 즐거움도 느껴지지 않았다.

 

체념.

어쩌면 가장 최악의 감정일 그것을 담아냈다.

 

 

 

“쩝... 알았어. 내가 해볼게. 그럼 셜록은...”

 

 

 

고개를 돌려 사무실의 벽 한 곳을 바라보았다.

화살이 박혀 있는 낡은 문. 시라유리가 들고 다녔던 화살통에 담겨 있던 그 화살이었다.

 

무언의 메시지였다.

이곳이 분기점이라고. 여기서부터 넘어가면 되돌릴 수 없는 선이라는 걸 말해주는 메시지.

 

 

 

“... 셜록.”

 

“뭔데 또 그렇게 잔뜩 분위기를 잡고 말하나?”

 

“수고했다. 

... 나 잠깐 쉬고 있을 테니까 청소 다 하면 말해줘.”

 

“하하, 청소 싫어하는 건 알아줘야 한다니까.

오늘은 자네가 소파에서 자도록 해. 오늘만큼은 주인공에게 가장 좋은 침대를 넘겨줘야지.”

 

 

 

터벅 터벅. 셜록이 사무실 계단을 타고 건물 속으로 사라진다.

그림자 속에 모습을 숨기고 있던 화살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한 채, 늘 그랬듯이 사무실로 들어간다.

 

그 모습을 확인한 뒤, 나는 몸을 돌려 차를 향해 걸어갔다.

봉고차 뒷자석에서 웅크리고 있던 토모. 포장도 뜯지 않은 햄버거 냄새가 자욱했다.

 

 

 

똑똑.

 

“...”

 

“토모? 내 말 좀 들어줄래?”

 

“...”

 

“왜에, 나 이번엔 진짜 무서웠다니까?

뒤에서 누가 내 등에 총까지 겨눴는데 내 친구들 생각하면서 이 악물고 빠져 나왔는데, 계속 그렇게 있을 거야?”

 

“... 시끄러워.”

 

“... ... 하하, 무서운 건 진짜였는데...”

 

“왜 안 나간 거야... 왜 안 나가서 사람 마음 뒤숭숭하게 만드는 거야...

그러다가 당신 대원들이 죽으면 그 때 가서 내 탓 하려고...?”

 

“거기서 싸우는 애가 실력 하나는 끝내주는 애거든.

엄청 잘 싸우는 로봇도 있고. 죽을 사람은 아무도 없어.”

 

“... 지금이라도 나가.

나가서 도망가라고. 왜 가망도 없는 싸움을 계속 하려는 건데. 

지킬 게 있는 사람일 수록 싸우기 힘들다는 거 당신도 알잖아...”

 

 

 

등 뒤로 문이 생겨났다.

 

빨간 문이, 하나, 둘, 그리고 셋.

 

 

 

“마음 접었는데... 이번엔 진짜 포기하려고 했는데...”

 

 

 

수십.

수백.

혹은 수천.

 

리앤은 더 이상 숨길 것이 없었다.

백 년 동안 유지해온 이 세계도, 토모가 준 기억도, 거기서 자신이 이루려 했던 모든 것도.

빨간 문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드러낸 것이다.

 

 

 

“... 미워. 죽을 때까지 당신을 미워하면서 죽을 거야.

뭐가 됐든 당신 마음대로 해...! 난 그냥 여기서 죽어버릴 테니까...”

 

“난 게임을 끝내러 온 거야. 너랑 같이.

천하의 토모가 이런 봉고차에서 죽을 순 없잖아, 안 그래?”

 

“하... 하하... 그럼 나보고 당신이 당신 대원 수백 명 대신 나를 선택한 거란 걸 믿으라고?

만약 그러다가 누구 하나가 죽으면?

죽었다는 얘기가 들려오면 그래도 당신 여기 계속 있을 거야?”

 

“...”

 

“마지막. 이 기억의 가장 마지막에 가서 당신이 나가버리면.

셜록과 토모의 이야기가 완성되기 가장 직전에 당신이 나가버리면.

그렇게 가버려서 완성되지 못한 이야기에서 철충들의 발에 짓밟혀 죽어버리면.

... 그럼 나는 어떻게 해?”

 

 

 

빨간 문의 세계. 내가 한 발자국만 움직여도 문은 나를 향해 열릴 것이었다.

나가라는 거다. 더 이상의 희망을 가져버리기 전에 나가서 이 고통스런 희망 고문을 끝내달란 얘기였다.

 

하지만 나는 안다.

희망 고문이 고문이 되려면 결국 이뤄지지 않는 희망이어야 한다는 것을.

 

 

 

“초천재 미소녀 형사님이 그것도 몰라?”

 

“... 몰라. 토모는 바보니까.”

 

“그럼 그런 토모를 위해 내가 알려줘야지.”

 

 

 

반대로 말하면, 이뤄질 수 있는 희망이라면 결코 고문이 아니란 얘기다.

 

 

 

“게임을 끝내면 돼.”

 

 

 

봉고차 문을 확 열어 재친 다음, 휘청이는 토모를 두 팔로 받아 품에 들어 안았다.

공주님 안기를 하는 듯한 자세 때문에 토모의 얼굴은 슬픔보단 부끄러움으로 터질 듯이 가득 찼다.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는 모습이 영락없는 십대 소녀였으니, 그 마음의 가녀림도 딱 그 정도로 연약했을 것이다.

 

 

 

“뭐... 뭐 하는 거야...!!

놓으라고! 놓고 그냥 가버리라고!!”

 

 

 

당황한 GM 탓에 빨간 문들이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수천이 수백으로, 수백이 수십으로.

낡은 사무실의 풍경이, 회색빛 새벽 도시의 전경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자, 바보 미소녀 형사님. 셜록이 위에서 청소하고 있는 동안 잠깐 편의점이라도 들렀다 올까요?”

 

“뭐... 뭔 말도 안 되는 소리야...!!

그러다가 셜록이 잡히면 어떻게 해! 저기 화살 박힌 것만 봐도...”

 

“구하러 갈 거잖아. ‘같이’.

아니야?”

 

“그건...”

 

“이번엔 나 혼자 안 할 테니까 걱정하지마.

게임은 아직 끝나지 않았어.”

 

 

 

미안하다. 셜록. 클리어 선행 조건 중에 네가 납치 당하는 게 있으니 어쩔 수 없구나.

레이스랑 팬텀도 로그아웃한 상태. 뭐라도 붙여줄 수 있다면 좋았을 텐데 바깥 상황이 워낙 시끄러운 터라 좀 이해해주길 바란다.

 

그렇게 나는 토모를 들고 천천히, 사무실이 보이지 않는 골목으로 들어섰다.

그럼 사무실이 폭파하고, 셜록은 납치를 당하겠지. 우리는 시라유리가 알려준 장소로 달려갈 테고.

거기서 이 추리 게임의 끝을 낼 것이다.

 

토모의 심장은 어린 고슴도치 같았다.

까끌까끌한 가시를 계속 내게 찌르고 있었으니, 눈도 뜨지 못한 새끼 고슴도치가 몸을 비벼대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걸 받아주는 것이 또한 친구의 의무.

기꺼운 마음으로 골목길을 걸었다.

 

바스락 소리가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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쾅!!

 

게임의 엔딩은 폭발음으로 시작되었다.

우리가 사무실에서 얼마나 떨어졌을까, 한밤 중에 왠 불빛이 셜록의 사무실을 습격했던 것이다.

 

하지만 당황할 시간이 없다.

셜록은 이미 납치됐을 테고 이제 우리에게 기동 타격대가 달려올 차례였으니까.

 

골목길의 그림자 속에 몸을 피한 다음 토모를 내 등 뒤에 업었다.

저 멀리서 경비용 AGS들이 돌아다니는 게 보인다. 

시라유리가 대체 뭘 어떻게 꼬드겼는지는 몰라도 도심 한복판에서 저런 게 돌아다니는 모습이 여간 흉흉한 게 아니다.

 

 

 

“후우... 여기서 코헤이 교단이 있던 장소까진 대충 10분 거리.

저것들 있는 걸 감안한다고 치면... 얼마나 걸릴까? 토모야?”

 

“... 밖에 싸우고 있는 건 여유롭나 봐? 그런 거나 고민하고 있는 거 보면.”

 

“스읍. 그런 메타적인 발언은 마이너스 1점이야. 토모.”

 

 

 

어느 순간 뒤바뀐 우리 둘의 모습에 나도, 토모도 웃음이 나왔다.

여유롭기에 나는 웃음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렇게라도 웃으니 어깨가 한결 가벼워진다.

 

 

 

“... 푸흡. 백 년 동안 온갖 시나리오를 다 생각해봤는데, 이런 사람이 올 거라곤 상상도 못했네.”

 

“원래 현실이란 게 가끔씩 상상 이상이거든.

어때, 이제 좀 진지하게 해볼 생각이 들어?”

 

 

 

PC 방에서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 하는 친구처럼,

정글이니 탑이니 미드니, 그런 시답잖은 얘기를 하는 사람들처럼 난 토모의 발이 땅에 닫도록 도와주었다.

 

등에서 내려온 토모가 팔을 하늘 높게 뻗으며 기지개를 폈다.

그리곤 곰곰이 생각하는 초록색 눈빛으로 말을 꺼냈다.

 

 

 

“인근 지형을 생각하면 5분 거리겠지만 AGS에게 들키지 않으려면 그보다 배는 더 걸릴 거야.

그러는 사이에 셜록이 죽어버릴 수도 있고. 게임이 베드 엔딩으로 끝나길 원하는 건 아니겠지?”

 

“당연하지. 한 번 시작한 게임은 SS 랭크는 찍어야 직성이 풀리거든.”

 

“그런 태도, 마음에 드네.

그럼 내가 앞장 설 테니까 따라 와. 길이 아니라 지붕을 타고 뛰면 더 빨리 갈 수 있거든.”

 

 

 

골목길에 있는 문을 솜씨 좋은 손놀림으로 여는 토모.

생각해보면 이 게임의 진정한 고인물은 내가 아니라 여기 있는 토모였다.

원래 게임에서 가장 강력한 게 GM 아니겠나. 문 따는 솜씨가 여간 뛰어난 게 아니다.

 

 

 

“근데 그렇게 말해도 괜찮아?

전에는 뭐 메타 발언이면 마이너스 1점이니 10점이니, 그랬으면서.”

 

“후우... 당신이 오죽 이상한 사람이어야 말이지.

당신 같은 사람이랑 같이 있으려니까 나도 몰입이 안 되네. 

그 오랜 시간 동안 이 기억의 주인공이 되고 싶었는데, 몰입 안 되면 말짱 꽝이지.”

 

 

 

철컥.

채 10초도 지나지 않아 문이 열렸다.

 

 

 

“그래서 그냥 새로운 기억을 쌓아보려고.

뭐, 평행 세계란 게 있다면 즐거운 토모도 한 번쯤은 이렇게 해보지 않았겠어?

대신 당신 같은 사람은 어느 세계를 가도 없겠지만.”

 

“하하... 칭찬으로 들을게.”

 

“욕이었거든, 멍청이 플레이어 씨.”

 

 

 

한결 가벼워진 어깨에 세상이 다르게 보인다.

리앤과 게임을 한다면 이런 기분이었을까, 이런 VR 게임이 아니라 진짜 게임.

나와 함께 몸을 풀고 있는 토모의 모습을 보니 왠지 모를 간질거림이 느껴졌다.

 

 

 

“그러고 보니 계속 플레이어나 당신이라고 부를 수도 없고.

뭐라고 불러야 할까? 이름 없어? 아니면 닉네임이라도.”

 

“이름? 글쎄, 내가 이름으로 불리는 건 영 익숙하지가 않아서...”

 

“누가 익숙한지 아닌지 물어봤대? 그냥 뭐라고 불러줄까 물어보는 거잖아.”

 

 

 

친구처럼 퉁명스럽게, 친구처럼 차갑게.

허나 그 말에 날이 서있지 않음은 친구라는 관계 때문이었으리라.

 

그렇게 생각해보았다. 이 아이가 날 무어라 부르는 게 좋을까.

사령관? 아니, 그건 너무 딱딱하다. 친구 사이에 그런 이름으로 불리는 것만큼 어색한 게 없을 거다.

달링? 흠... 레오나가 그렇게 불러주긴 하다만, 그건 좀 과하지 않겠어?

 

각하나 사장님이나... 뭐 하여튼 마음에 드는 게 없다.

애초에 나이트앤젤의 이름 하나도 제대로 못 지어준 사람이 뭔 센스가 있다고 작명을 하겠나.

 

 

 

“... 그냥 그렇게 불러라.”

 

“뭐 어떻게?”

 

 

 

다만 눈치는 있다.

 

백 년 동안이나 이 기억의 주인공이 되고 싶어했던 리앤에게 경의를 표하며, 나는 나의 닉네임을 정했다.

 

 

 

“왓슨. 왓슨이라 불러.

우리의 기억은 아직 끝나지 않았잖아.”

 

“... 하, 그래 좋아. 왓슨.

지붕 사이로 달려본 적은 있겠지?”

 

“해본 적은 없다만 할 자신은 있지. 우리 애들 하고 헬스장 여러 번 다녔거든. 

애들이 날 어찌나 못 살게 굴던지... 그거에 비하면 지붕 사이로 뛰는 것쯤은 일도 아니야.”

 

“내 앞에서 다른 여자 얘기 자꾸 할 거야?

누구는 게임 끝나면 죽게 생겼는데.”

 

“안 죽게 하려고 나 여기 왔잖아. 안 보여?”

 

“흥, 안 보이네요.

그럼 나 먼저 간다?”

 

 

 

신호도 주지 않고 문을 벌컥 열어 위로 달려가는 토모.

늦은 밤, 괜시래 신이 나서 나도 달리기 시작했다.

 

 

 

“야! 누가 말도 없이 달려가래!!”

 

“방심하고 있던 왓슨이 바보거든~!

내가 먼저 가면 셜록한테 왓슨이 우리 다 버리고 도망가려 했다고 이를 거다!”

 

“야아!! 내가 언제 도망갔다고 그래!”

 

“싫으면 잡아 보라고~”

 

 

 

골목길을 쏘다니는 어린 아이처럼, 우리는 달빛을 머금은 지붕 위에서 신나게 달음박질을 했다.

 

아래에서 살벌하게 눈빛을 주고 받는 AGS들이 길거리를 배회하고 있었지만 우리 역시 그렇게 눈길을 주고 받았다.

 

게임의 엔딩을 볼 수 있다는 기쁨으로, 셜록을 구하러 간다는 행복으로, 

친구를 만났다는 즐거움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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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절대 애 호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