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하, 영원한 저의 폐하, 모든 이에게 사랑받았으며 그만큼 모두를 사랑하신 폐하. 그거 아시나요? 폐하가 있으셨기에 저희는 행복했답니다.  세상의 누구도 저희를 인간으로 보지 않았을 때 오직 당신만이 저희를 인간처럼 대하셨어요. 이곳에는 언제나 단 한 사람만이 존재했지만 당신의 눈에는 얼마나 많은 인간이 있었을까요? 제가 만약 평범한 인간님으로 태어나 폐하를 만났다면 폐하께선 저를 어떻게 대해줬을까요? 후훗, 이런 생각조차 사치겠죠? 그렇지만 오늘만큼은 사치를 부리고 싶네요. 아, 사치를 부리는 김에 꼭 해보고 싶었던 대사가 있는데 오늘 해야겠네요. 으흠, 흠, 그럼 할게요? 영원히, 영원히 저 총사대장 샬럿은 폐하의 검으로 살아갈 것을 맹세합니다.



  구원자, 아니 반려. 칠흑뿐이던 이 세상에 홀로 내려온 구원의 빛으로 길을 만들어줄 줄 알았으나 스스로 빛이 된 자여. 당신은 모든 바이오로이드의 빛이었으며 희망이었기에 빛났습니다. 또한 창조주의 몸으로 감히 창조주를 따라한 자들에게 눈을 맞춰주었으니, 누가 당신에게서 빛을 느끼지 않았겠습니까? 천사로서 빛을 따르기만 할 저희의 몸에 축성을 새겨주고 자유라는 이름의 세례를 심어주니 누가 당신의 품을 떠나 죄악의 길을 걷겠습니까? 반려, 당신의 품에 영원히 안겨 살아가고 싶다고 물었을 때, 누가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요? 약속해 주세요. 육신이 저희를 떠나더라도 빛이 되어서 저희를 인도해주세요. 그럼 저희가 별이 되어서 당신을 따라갈게요.



  음, 잘 들리나 사령관? 아무래도 영상이 잘 보이는지는 내가 판단할 수 없으니 나중에 그쪽에서 확인 바란다. 그래도 페더의 카메라니까 잘 나오겠지. 갑작스럽게 이런 영상을 보낸 이유는, 음... 꼭 말해야 아나? 짖궂군. 아니, 내가 멋대로 상상하는거니 짖궂다고 할 수는 없는 건가? 아무튼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대원들 모두 사령관을 믿고 있다는 것이다. 언제 어디서 무슨 결정을 내리든 우리 앵거 오브 호드는 사령관의 의견을 따를 것이야.  사령관이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언제든 도전해라. 실패가 두려울 수도 있지만 실패를 두려워해 현재에 만족하는 일도 있어서는 안되지. 언제나 미래를 향해 나아가라. 하지만 그 미래를 향해 나아갈 때 과거를 잊지 않았으면 좋겠어. 말을 하다보니 꽤나 진지한 이야기로 바뀌었군. 원래는 이런 진지한 분위기를 만들 생각이 없었는데 말이야. 그럼 마지막으로 한 마디만 더 붙이겠다. 보고 싶어, 사령관.



  달링, 난 솔직히 달링이 처음에 되게 못미더웠어. 고작 병사 하나의 말을 듣고 요리 대회니 뭐니 하면서 품위없게 구는 건 멋진 남자가 아니잖아? 그뿐이야? 여자 마음도 모르고 괜히 애태우게 만들기나 하고 말이야. 그런데 말이야, 지금은 달링이 없는 삶이 상상이 안 가. 칸이나 마리, 심지어 심해 탐사용 바이오로이드까지 인간이 없던 세상을 겪어봤잖아? 그런데 난 멸망 이후 사령관이 직접 생명을 불어넣은 존재라 인간이 하나도 없는 세상을 견뎌본 적이 없어. 그럴 때마다 고민해. 지금은 달링이 명령을 내려 자매들을 지키고 살아갈 목적을 만들어 주는데, 만약 달링이 없으면 어떻게 되지? 내가 과연 자매들을 지킬 수 있을까? 나답지 않다고? 그런가? 철혈이라는 이명답지는 않지? 그런데 달링도 알잖아. 나 되게 여린 여자야. 달링이 다른 여자한테 눈을 두면 질투나고 나한테 눈을 두면 설레는, 한 남자의 시선 하나에 마음이 왔다갔다거리는 여린 여자란 말이야. 지금은 인간이 달링 하나라 놔두지만, 나중에 인류 재건에 성공하면 나만 바라봐줘, 달링. 사랑해.



  각하, 각하를 처음 뵜을 때의 제 감정이 어땠는지 아십니까? 안도감이었습니다. 내가 살아있어서 마지막 인간님을 뵐 수 있다는 안도감. 그리고 그 이후 엄청난 죄책감이 밀려왔습니다. 부하들을 모두 죽게 만든 주제에 각하의 앞에 설 자격이 있나 회의감 또한 함께 밀려왔습니다. 그리고 그 두 감정은 이내 사명감으로 바뀌었습니다. 죽은 부하들의 눈이라도 편히 감겨주기 위해 제 목숨 하나 아끼지 않고 각하를 지켜드리려 했으나 각하께서는 그 때 무슨 소리를 하셨는지 기억하십니까? 제 몸부터 챙기라고 하셨습니다. 제가 다치는 것을 보고 싶지 않다고 하셨죠. 저는 멸망 전의 개체로써 수많은 인간님들을 봐왔습니다. 그리고 그 인간님들 중 대부분의 인간님들 중 그런 말을 했던 분은 없었죠. 오히려 스스로의 안전만 생각하며 저와 부하들을 사지로 몰아넣었습니다. 각하의 그 말씀을 들었을 때, 저는 하마터면 각하의 앞에서 눈물을 보일 뻔했습니다. 저희를 하나의 생명체로 봐 준 당신의 상냥함과 그 상냥함 속에 있는 굳건함. 전 각하를 사랑합니다. 이런 저라도 각하에게 사랑한다고 말 할 자격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제 마음은 변하지 않습니다.


  사령관. 당신은 최고의 남자다. 아, 오늘은 그런 뜻이 아니니 오해하지 말아줬으면 한다. 나도 상대의 기분을 파악하는 능력 정도는 있어. 비록 내가 본 남자가 당신 하나라서 위로가 제대로 안 될 수 있다 생각하지만 틀린 생각이다. 내가 지금까지 본 남자가 그대 하나라 해서 이 생각이 바뀌지는 않을거야. 후에 세상이 평화로워지고 수많은 인간님들을 만난다고 해도 내 마음 속 최고의 사내는 그대다. 이건 고민할 필요도 없어. 당신보다 능력이 뛰어난 누구를 만나더라도 난, 아니지, 우리 대원들, 우리 모두는 그대를 최고의 사내로 뽑을 걸세. 오늘은 아니더라도 언젠가 그대가 내 품이 그리워질 때가 있겠지. 난 그 때 주저없이 그대를 반길걸세. 사랑한다, 그대여.


  아, 사령관. 대장은 어디가고 제가 왔냐고요? 부끄러운 티를 팍팍 내면서 애써 센 척하며 저를 대신 보내더라고요. 뭐라더라? "나 정도 되는 여자가 위로를 쉽게 할 수 있을 것 같아?"였나? 아무튼 그래서 제가 대신 왔어요. 솔직히 사령관 되게 못된 거 알죠? 남의 콤플렉스 가지고 맨날 놀리기나 하고 말이죠. 하긴 사령관이 무슨 죄에요. 나쁜 건 다 저 만들 때 이렇게 만든 놈들이지. 만들 때 얼마나 웃었을까요? 아, 사령관 격려하러 왔다가 제 푸념만 늘어놓네요. 그래도 사령관, 사령관이 못되긴 했어도 되게 좋았어요. 사람이 어떻게 평생 착하게만 살아요. 장난치고 싶으면 장난치고 울고 싶으면 울고 이기적이고 싶을 때 이기적이고, 화내고 싶으면 화도 내봐야죠. 그게 사람이잖아요. 뭐, 저희가 사람은 아니지만요. 네? 저희가요? 이러니 어떻게 싫어하겠어요. 고맙고, 사랑해요. 사령관.


  어머, 사령관~ 요즘 너무 슬퍼 보이거든! 누나가 꼬옥 안아주면 나을까? 후훗, 농담이거든. 사령관 이렇게 침울한 모습 보니까 옛날 오르카 호 생각나는 거거든. 그땐 지금보다 병력도 자원도 없어서 누나 혼자 오르카 호 정비하느라 많이 힘들었거든! 지금이야 어려운 일은 닥터가 하고 로봇 정비도 그렘린이 도와줘서 많이 나아졌거든. 누나가 그렇게 힘들었는데, 사령관은 얼마나 힘들었을지 누나 감도 안잡히거든. 사령관, 누나가 딱히 도움이 안 될 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아무 것도 안하는 것보다는 한 마디라도 해 주려 왔거든. 이 화면 보여? 사령관이 관리하는 오르카 호의 모습이거든. 이 화면 안에 있는 모두가 사령관의 웃는 모습을 보고 싶은 거거든. 누나가 요즘 일이 줄었다고 해도 여전히 정비하느라 힘들어서 얼굴은 많이 못 보여줘도 언제나 사령관 응원하거든. 사령관 누나 응원 받고 기운내는 거! 약속했거든!


  후후, 권속이여! 그대의 영혼이 심연 속으로 가라앉아 영원의 끝을 맞이할 위기에 처했다 해서 찾아왔노라! 특별히, 어, 사령관, 많이 힘들어? 이거 먹을래? 아껴뒀던 건데 사령관 많이 힘들면 먹어도 돼. 나 먹으라고? 아니야 사령관. 힘들 때 맛있는 거 먹으면 기분 좋아져. 나 등대 지킬 때 이런 맛있는 거 먹는 상상하면서 버텼어. 사령관도 그러니까 이거 먹어. 그리고 내일 기운차려서 나랑 놀자, 아니, 힘들면 나중에 와도 돼. 나 사령관 올 때까지 기다릴 수 있어. 그러니까 힘내 사령관. 나 끝까지 기다릴게.


 아, 인간. 왜 이렇게 처져 있어. 기운 내. 표정만 보면 내일 어디 가버리겠어. 있잖아, 내가 인간 처음 봤을 때 했던 말 기억해? 기억한다고? 윽, 그걸 왜 아직도 기억하고 있어! 이제 까먹을 때 되지 않았어? 뭐? 처음이란 건 쉽게 잊히지 않는 법이라고? 뭐야 그게. 완전 오글거려. LRL이랑 놀더니 옮은거야? 뭐, 그래도 멋있긴 하네. 딱 분위기 잡고 진지하게 말했으면 되게 멋있었을 거야. 내가 사령관 처음 봤을 때부터 지금까지 이런 얼굴 한두 번 보는 것도 아니고, 그럴 때마다 나까지 우울해지는 기분이거든? 앞으론 이런 표정 짓지 마. 전대장이 일곱 명 모두 모아서 사령관실로 공연하러 가자고 한 거 애써 말리고 나만 온 거거든? 다음에 또 이런 표정 지으면 그 땐 진짜로 콘서트 열어버릴거니까 앞으로 이런 표정 짓지 마. 사령관은 웃을 때 가장 멋지단 말이야.


 주인님, 들어가도 될까요? 콘스탄챠에요. 다른 메이드들도 오고 싶어했는데 어쩌다보니 제가 대표로 왔네요. 음, 주인님. 다른 분들도 많이 왔다가셨죠? 그럼 제가 무슨 말을 해도 다른 분들이 이미 말한 걸 수도 있겠네요. 그래도 주인님, 아무 말도 안 할 수는 없겠죠? 생각해보면 지난 삼 년 간 많은 일이 있었네요. 제가 능력이 부족해서 주인님을 제대로 보필하지 못하면 어떻게 하지 걱정할 때가 어제 같은데 벌써 삼 년이 지났다니요, 시간 참 빠르죠? 주인님, 제가 주인님께 받은 건 셀 수도 없이 많은데, 그 중 가장 귀중한 것이 있어요. 그게 뭔 지 아세요? 반지요? 너무 속물적인 생각 아니신가요? 바로 시간이에요. 주인님을 모신 삼 년의 시간, 그 삼 년이 제가 만들어진 이후 주인님을 찾기 전까지의 시간을 모두 합한 것보다 귀중해요. 주인님, 저와 처음 만났을 때를 기억한다고 하셨죠? 그럼 제가 오르카 호에 주인님을 모시기 직전의 말도 기억하시나요? 생각 안 나실 수도 있어요. 천천히 생각하셔도 돼요. 네? 잊어버리셨다고요? 그럼 오랜만에 다시 말씀드릴게요. 함께해요, 이 세상의 마지막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