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미의 지시에 따라 에이미 레이저는 곧바로 행동을 개시했다.


그러나 행동을 개시한지 꼬박 하루가 지났음에도 에이미는 여전히 인간님과 접촉하지 못했다. 그러나 인간님을 놓쳤기 때문이 아니다. 그렇다고 인간님의 존재를 눈치채고 몰려 든 철충 때문도 아니었다. 하물며 몇백년만에 인간 남성님을 만나서 몸이 달아올랐다거나 하는 시답잖은 이유조차 아니다. 하필 인간님이 아지트로 결정한 곳이 과거 볼티모어에 있던 펙스의 중역들이 철충들의 습격을 피해 숨던 요새였기 때문이다.


비록 철충들의 습격으로 굳건하던 외벽들은 거의 다 허물어졌지만 여전히 요새 도처에는 기폭되지 않은 지뢰들이 가득했다. 아니, 오히려 펙스의 추적을 피해다니던 난민들로 인해 전보다 더 늘었으면 늘었지 줄어들진 않았을 것이다. 평방 몇 야드에 달하는 땅에 얼마나 많은 지뢰들이 매설되어 있는지 모르는 상황. 섵불이 다가가는건 자살 행위다.


'그보다 인간님께선 도대체 어떤 마술을 부렸길래…'


도처에 지뢰가 잔뜩 매설되어 있다는 사실을 또 한번 상기한 에이미는 이틀 전 인간님이 요새 안으로 들어갈 적의 모습을 떠올렸다. 일일이 지뢰가 있는 것을 확인하면서 걸어나간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제트팩같은 장비를 쓴것도 아니다. 그냥 길따라 쭉 걸어나가서 요새 안으로 들어갔다. 


억지를 좀  보태서 평생 쓸 운을 지금 썼다 가정하자. 그래 기가 막히게 운이 따라줘서 지뢰가 매설된 곳만 귀신같이 피해갈수도 있겠지. 그러나 에이미는 두눈으로 똑똑히 봤다. 모종의 이유로 땅 밖에 나온 지뢰를 인간님이 버젓이 밟고 지나가는 모습을. 그것도 한번도 아니고 무려 10번씩이나 말이다.


이래서야 그저 운이 좋았다며 납득하고 넘어가려고 해도 납득이 될 수 있을 리 없었다. 도처에 잡초마냥 지뢰가 쫙 깔려 있는 지역을 멀쩡하게 걸어나갔고 심지어 밖에 튀어나와 있는 지뢰를 10개나 밟았는데도 아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다고? 신의 가호라도 받지 않는 이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도대체 저 인간님의 정체는 뭐란 말인가? 정말 인간님이 맞긴 한걸까? 에이미의 머릿 속은 한없이 복잡해져갔다.


'… 뭔 상관이람.' 


그러나 에이미는 곧 머릿 속을 지배하고 있는 의문들을 치워버렸다. 언 수백년만에 겪어보이는 어이없던 상황인지라 평소답지 않게 당황했다며 속으로 책망한 후 에이미는 잡념을 털어낸 후 하던 일에 집중했다.


그녀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란 바로 아직 볼티모어에 남아있는 난민들을 찾는 것. 도처에 지뢰가 한가득 매설되어 있음에도 난민들의 임시 아지트로 쓰였다는건 분명 요새로 들어갈 수 있는 다른 통로가 따로 있단 소리가 된다. 그렇기에 에이미는 요새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비밀 통로를 알아내기 위해 난민들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거쳐가는 구간에 불과한 볼모어에 난민들을 찾기란 하늘의 별따기 만큼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나마 메릴랜드가 주 활동지인지라 이곳 난민들의 습성에 꽤나 빠삭한 에이미였기에 겨우 추적이 가능했다. 그러나 그렇게 만난 난민들 중 태반이 갖 볼티모어에 입성한 자들인걸로 모자라 누구 하나 예외없이 요새에 관해선 요자도 모르는 자들 뿐이었다.


참으로 난감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분명 과거에는 볼티모어의 중역들을 보호하고 지금에 이르러서는 난민들의 쉼터로 쓰이고 있는 요새에 대해 아는 자가 전혀 없다니. 한동안 볼티모어에 들린 적이 없었는데 설마 그동안 요새에 무슨 일이 생긴걸까? 불안감을 느낀 에이미는 요새에 대해 알고 있는 다른 난민들을 찾는데 열중했다.


그렇게 장장 일주일이란 시간을 소모하어 겨우 요새에 대해 알고 있는 난민을 찾을 수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난민 생활을 청산하고 볼티모어에 정착해 살고 있는 정착민이었지만. 여하튼 그녀의 입을 통해 요새에 대해 알게 되었는데 애석하게도 에이미가 우려했던 바가 현실이 되었다.


"두달 전인가? 식량을 좀 구하려고 요새로 향했더니 비밀 통로로 향하는곳 근처에 철충들이 쫙 깔려 있더라. 아무래도 그거 때문에 소문이 뚝 끊긴거 같아."


"…. 네?"


정착민인 더치걸의 말에 에이미는 심장이 쿵하고 무너져 내리는듯한 느낌을 받았다. 설마 설마 했는데 예상했던 것보다 더 최악의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비밀 통로 위치가 어디죠?"


"요새 뒷쪽에 자라나 있는 풀숲으로 가서 덩굴들이 자라나 있는 녹슨 철조망을 지나서 직진하다보면 낡은 창고가 하나 나와. 그 속에 요새로 갈 수 있는 비밀 통로가 있어. 그런데 거긴 뭐하러 가게?"


"고마워요. 여기 약속했던 물건이요."


"잠깐, 야! 어디가!"


더치걸에게 담배 한보루를 건낸 후 에이미는 곧바로 요새의 비밀 통로로 향했다. 그 모습에 더치걸은 말리려고 했지만 그녀는 듣지 않았다.


이윽고 더치걸이 말했던 요새 뒷편 숲속에 도착한 에이미는 거칠어진 숨을 고르는 시간을 가졌다. 그렇게 호흡이 정상화되자 에이미는 자세를 낮추고 최대한 풀숲에 몸을 숨긴 채 신중하게 앞으로 나아갔다.


마음 같아선 비밀 통로까지 곧장 뛰어가고 싶겠지. 그러나 도처에 얼마나 되는 철충들이 깔려있을지 미지수. 성급하게 움직였다간 몸이 주먹만한 바람 구멍이 적어도 3개 이상을 날 것이니라. 그렇기에 에이미는 최대한 마음을 억누르며 신중하게 앞으로 나아갔다.


'... 이상해.'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면서 펼쳐진 광경들에 에이미는 문득 의문을 느꼈다. 분명 도처에 수많은 철충들이 깔려있을거라 예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법 들어왔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안으로 들어왔는데도 철충들은 보이지 않았다. 그 저 눈에 띄는건 철충이었던 고철과 징그러운 사체들 뿐이었다.


호기심에 에이미는 마침 코앞에 있는 완파되어 기능이 정지된 나이트 칙 한대가 있는 곳으로 살포시 다가갔다. 그러고선 상태를 살피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이상한 점을 발견하게 되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초록색깔 점액이 철충의 장갑에 묻어있던 것이다. 자세히 보니 장갑에 묻어있는 점액은 느리지만 조금씩 녹이고 있었다.


곧 에이미는 기능이 정지된 나이트 칙을 시작으로 초록색 점액이 묻은 철충들을 다량 발견하게 되었고 곧 도처에 깔려 있던 철충들은 어떤 알 수 없는 무기를 사용하는 집단에 의해 몰살당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리고 만악 그 집단이 펙스에 소속되어 있는거라면 매우 끔찍한 일이 벌어지게 된다. 문득 스쳐 지나간 최악의 상황에 그녀의 얼굴은 파랗게 질려갔다.


그렇게 오랜 인내의 끝에 더치걸이 말했던 낡은 창고에 도착한 에이미는 조금 열려져 있는 낡은 문틈 사이로 슬그머니 눈을 가져다댄다. 그리고 창고 안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그녀는 조심스레 문을 열고 들어가 요새 안으로 진입을 시도했다.


철컥 -


그러나 문을 열고 창고 안으로 진입하자마자 들려오는 쇠가 부딪히는 소리와 뒷통수를 통해 느껴지는 서늘한 감각에 에이미는 더 이상 움직일 수 없었다.


"넌 또 뭐야?"


'어...?'


등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에이미의 눈이 크게 떠졌다.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인간님이 살아있던 것이다.


그러나 에이미는 인간님이 살아있다는 사실보다는 의문을 느꼈다. 수백년전 그녀가 만나거나 죽여야만 했던 인간님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뭔가 이질적인 것이 다수 섞여있다. 마치 끔찍한 괴물이 등뒤에 있는것만 같은 소름 끼치는 느낌에 그녀는 공포를 느꼈다.







에이미 죽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