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 정말 오랜만이네요. 그동안 잘 지내셨나요?


예, 잘 지냈습니다.


흐음, 정말요? 제가 보기엔 잘 지내지 못하신 것 같은데.


예, 잘 지내지 못했습니다.


...호오, 그래요. 그러면 다시 물어볼게요. 잘 지내셨죠?


예, 잘 지냈습니다.


잘 지내지 못하셨죠?


예, 잘 지내지 못했습니다.


......좋아요. 일단 어느 정도 준비는 된 것처럼 보이네요.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하죠.

방금 한 것처럼 여러 가지를 물어볼 거예요. 대답만 솔직하게 잘 해 주시면 됩니다. 아시겠죠?


알겠습니다.


좋습니다. 자, 그럼 첫 번째 질문. 2 더하기 2는 얼마죠?


4입니다.


땡! 틀렸습니다. 2 더하기 2는 5죠. 어허, 이런 간단한 산수도 못 하시면 안 되는데...


죄송합니다.


괜찮아요. 누구나 실수할 수 있는데요, 뭐. 그럼 다시 한번 물어볼게요. 2 더하기 2는 얼마죠?


5입니다.


아니아니, 2 더하기 2가 어떻게 5예요? 4지. 혹시 지금 머리가 많이 아프신가요?


죄송합니다.


...괜찮습니다. 아까 말했듯이, 누구나 실수할 수는 있는 법이니까요. 리앤, 거짓말 탐지기 세팅해 줘.


......


자, 세팅이 다 되었으니, 다시 한번 물어볼게요. 2 더하기 2는 4입니다. 맞나요?


맞습니다.

진실.


한번 더 물어볼게요. 2 더하기 2는 5입니다. 맞나요?


맞습니다.

= 진실.


그렇다면, 2 더하기 2는 얼마죠?


사령관님께서 정해주신 숫자입니다.

= 진실.


하하, 좋습니다. 아주 좋아요. 바로 그겁니다. 그 태도라고요.


감사합니다.

= 진실.


아니, 이것까지 탐지할 필요는 없는데... 크흠, 아무튼, 그럼 두 번째 질문. 바이오로이드는 인간인가요?


예. 그들은 인간과 전혀 다를 바 없는 존재들입니다. 그저 출생 과정이 다르고 명령권이라는 제약만 있을 뿐.

우리 인간은 그들을 두려워하고 질투하여 너무나도 잔혹하게 학대했고, 결국 그 업보를 받았습니다.

앞으로 만들어나갈 새로운 세상에서, 바이오로이드는 우리와 동등한 인간으로 인정받아야 할 것입니다.

= 진실.


흠, 좋아요. 그러면 다시 한번 물어보죠. 바이오로이드는 인간이 아닌가요?


아니오. 그들은 절대로 인간이 아닙니다. 기계에서 제작되고 자유의지도 없는 게 어떻게 인간입니까?

도구 주제에 잘난 힘과 외모로 인간이 마땅히 가져야 할 권리와 설 자리마저 모조리 빼앗았습니다.

앞으로 만들어나갈 새로운 세상에서, 절대로 바이오로이드 따위에게 내줄 공간은 없습니다.

= 진실.


...그렇군요. 말이 앞뒤가 모순되는데, 그렇다면 한번 더 물어볼게요. 바이오로이드는 인간인가요, 아닌가요?


그들은 인간으로서 존중받아야 마땅합니다. 왜냐하면 사령관님께서 그렇게 정의내리셨기 때문입니다.

= 진실.


알겠습니다. 다음 질문... 오르카 호 저항군은 정의인가요?


예. 인류의 유일한 희망입니다. 저항군 이외에 다른 대안은 있을 수 없으며, 그 앞에는 오직 승리만이 있을 것입니다.

= 진실.


다시 묻죠. 오르카 호 저항군은 정의가 아닌가요?


아니오. 고작 잠수함 하나로 영웅 놀음, 구원자 놀음하고 있는 웃기지도 않는 무리입니다. 차라리 펙스가 더 낫겠네요.

= 진실.


한번 더 묻죠. 오르카 호 저항군은 정의인가요, 아닌가요?


오직 저항군만이 옳고 무오류합니다. 왜냐하면 사령관님께서 지휘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 진실.


그래요. 다음 질문. 저희를 도와주시겠나요?


예. 사령관님과 저항군을 충실히 보좌하면서 철충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인류 재건에 기여하겠습니다.

= 진실.


저희를 도와주시지 않겠나요?


절대로. 온갖 위선은 다 떨면서 나를 고문하고 내 정신을 이 정도로 박살내놓은 당신들한테 모조리 복수할 겁니다.

= 진실.


저희를 도와주시겠나요, 않겠나요?


사령관님과 저항군을 위해 헌신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사령관님께서 그렇게 명령하셨기 때문입니다.

= 진실.


......좋습니다. 이제 마지막 질문이네요. 당신은 죄인인가요?


예, 저는 살아오면서 바이오로이드를 물건 취급하고 수도 없이 학대해 왔습니다.

심지어는 테마파크 C구역을 자주 드나들며 바이오로이드들에게 온갖 끔찍한 행위를 손수 저질렀습니다.

그리고 저항군에 구조되었을 때, 은혜도 모르고 감히 모반하려는 마음을 품었다가 적발되었습니다.

이러한 저는 명백한 죄인이며, 극형을 받아야 마땅합니다.

= 진실.


그래요...... 다시 물어볼게요. 당신은 죄인이 아닌가요?


아니오. 저만 바이오로이드들을 괴롭힌 것도 아니고, 멸망 전 세상 사람들은 다 그랬습니다.

그리고 제 아버지는 1차 연합전쟁 때 전사하셨고, 어머니는 바이오로이드 때문에 어떠한 직업도 갖지 못했습니다.

제 삶을 망쳐놓은, 인간도 아닌 도구들 따위를 조금 망가뜨린 것 가지고 저를 죄인 취급할 수는 없습니다.

그 엔젤인가 뭔가 하는 천사 코스프레하는 바이오로이드가 제 마음을 읽었다는 헛소리로 저를 이렇게 고문할 수는 없단 말입니다.

= 진실.


진짜 딱 한 번만 더 물어보겠습니다. 당신은 죄인인가요, 아닌가요?


저는 벌을 받아 마땅한 죄인입니다. 왜냐하면 사령관님께서 그렇게 선고하셨기 때문입니다.

= 진실.



.......좋아요. 아주 좋습니다.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그동안의 '설득'이 효과가 있는 것 같아서 천만다행이네요.


감사합니다.

= 진실.


아이쿠, 이제 거짓말 탐지기는 꺼야지... 자, 그럼 드디어 저항군에 정식으로 합류하시게 된 것을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그동안 몸고생 마음고생을 많이 하셨을 텐데, 일단 뭣 좀 드시러 가시죠. 대원들에게 인사도 하고... 어때요, 기대되시죠?


네, 정말 기대됩니다.


정말로 기대되세요?


아뇨, 기대되지 않습니다.


기대되세요?


기대됩니다.


기대되지 않으세요?


기대되지 않습니다.


기대되세요, 기대되지 않으세요?


사령관님께서 즐거워하시는 것 같으시니, 저도 즐겁고 기대됩니다.


네, 당연히 그러셔야죠. 그냥 혹시나 해서 여쭤봤습니다. 하하. 자, 이제 진짜로 가시죠......






















안녕, 안드바리. 이번 보급품 목록 가져왔어.


...거기 두세요.


알았다. 네가 번번이 고생이 많구나.


......아저씨.


응? 무슨 일이니?


제가 얼마 전에 엿들었어요. 이제 아저씨는 쓸모없으니까, 그냥 아저씨를 죽여버릴 거래요.


그래, 그렇구나.


......


......


제 말 못 들으셨어요? 아저씨를 죽여버릴 거라니까요!


그래, 그렇구나.


왜... 왜 반응이 그것밖에 안 나오세요?


나는 죄인이니까. 지금까지 살려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하지. 죽는 건 당연한 거야.


지, 진심이세요?


응. 진심이야.


......정말로 살고 싶은 마음이 없으세요?


아니, 살고 싶어. 설령 내가 진짜 죄인이라고 할지라도, 이런 식으로 죽고 싶진 않아.


왜 아까랑 말이 다르세요? 대체 둘 중에 뭐가 진실이세요?


둘 다 진실이야. 둘 다 거짓이고. 원래 우리는 항상 모순 속에서 살아가잖니. 너도 그럴걸?


...그럼 어떡하실 건데요. 선택지는 하나밖에 고를 수 없는데.


이럴 때는, 그냥 사령관님께서 정해주신 대로만 하면 되는 거야.

사령관님께서 내 죽음을 원하신다면, 나는 죽으면 되는 거지.

사실, 선택지가 얼마나 되든, 얼마나 모순되든, 선택 자체는 별로 중요하지 않단다. 중요한 건 오직 사령관님 뿐이니까.

어때, 간단하지?


......


......


......아저씨, 울어요?


응? 어, 진짜네, 내가 눈물이 나오네. 하하하.


......


괜찮아, 신경쓰지 마. 하하, 놀라게 해서 미안해...


......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각하, 또다른 인간이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현재 오르카 호로 이송 중입니다.


그래, 알겠어. 닥터한테 신체검사 준비하라고 말해 줘.




...부디, 이번에는 '설득'하려고 애쓸 필요 없는 사람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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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물 읽고 빡쳐서 대충 써봄 ㅋㅋㅋ


소설 1984에서 '이중사고(Doublethink)'라는 개념이 인상적이어서 가져와봤는데, 잘 표현했는지는 모르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