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안드바리예요.

 

일주일 전, 신기한 일이 일어났어요.


자고 일어나서 여느 때와 다를 바 없이 물자를 점검하러 가는 길이었어요. 그런데 무언가 느낌이 이상했어요. 평소보다 숨이 차고, 힘들었죠. 물건이 평소보다 더 무겁게 느껴졌어요. 병에 걸린 건가 싶었어요. 그래서 닥터를 찾아갔는데 제가 인간이 됐다는 거에요.


무슨 소리인가 싶었어요. 이해가 안 갔어요. 갑자기 인간이 됐다는 게 말이 되는 건가요? 바이오로이드가 그런 일이 생길 수가 있나요? 이게 무슨 마법 같은 일인가요?


하지만 닥터는 이렇게 말했어요


“휩노스병도, 철충도, 별의 아이도 나오는데 바이오로이드가 인간이 되는 거야 뭐 이상하지 않지.”


세상은 과학으로 모두 설명되는 게 아니라며 말이에요. 


“성장판이 열려있는 인간 아동의 신체야. 아마 성장하면 오빠처럼 어른이 될 걸?”


이곳저곳, 신체검사 결과지를 보여줬어요. 확실하게 결과지에 인간이라 쓰여있고, 성장판 상태, 성장 예정치 등. 인간이 된 증거를 보여주었어요. 부정하고 싶었지만 모든 과학적인 결과가 저를 인간이라고 말해주고 있었어요. 저는 이제 어떻게 되는 걸까요? 


사령관님은 ‘신기하다.’라는 반응일 뿐, 언제나 다를 바 없이 저를 대해줬어요. 이 점은 안심이 됐죠.


하지만...


제가 인간이 된 뒤로부터 언니들이 저에게 거리를 두는 듯한 느낌이 들었어요. 발할라 언니들도, 배틀메이드 언니들도, 컴패니언 언니들도, 덴세츠 언니들도 모두… 


보이지 않는 장벽을 치고 저에게 전처럼 가까이 다가오려고 하지 않았어요. 그러니까, 저를 귀엽게 대해주는 건 여전한데 무언가… 거리가 있었어요. 선을 넘지 않으려는 듯한, 그런 모습… 


가령, 레오나 언니는 전처럼 엄마같지 않았어요. 그러니까, 말이 이상한데요… 엄마들은 혼내기도 하고, 꾸지람을 하기도 하고, 울 때는 달래주고 그러잖아요? 이제는 달래주기만 해요. 이상해요. 


제가 일을 뭔가 잘못해도, 다음에는 그러지 말라는 말만 하고 넘어가요. 마치… 멸망 전 기록에서 본, 메이드 바이오로이드들이 인간에 대하는 것처럼… 옛날하고 달라요.


배틀메이드 언니들, 컴패니언 언니들은 교대로 돌아가면서 매일 제 곁을 지켜주려고 해요. 이제 인간이 됐으니까 보호대상이 됐다고… 그냥 예전처럼 대해주면 안 되나요? 


그냥, 그냥… 사이 좋은 옆집 언니처럼 인사해주는 그런 언니는 안 되나요? 


덴세츠의 백토 언니는 자꾸 저에게 매지컬 레이디 칭호를 줄 테니까 의식을 하자고 해서 부담스러워요. 


그 의식을 하면 어떻게 되냐고 물었더니, 매지컬 젠틀맨. 즉, 사령관님과 대등한 위치로 마법소녀의 최고봉으로 떠받들어 줄 테니까 당장 하자고 해요. 무서워서 도망쳤어요. 


이상해요. 정말로. 갑자기 지휘관급이 된 것 같아요. 아니면 더 큰, 그 이상의 계급이 된 기분이에요. 그러니까 마치 사령관처럼…


제가 인간이 되어서 그런 건가요? 하지만, 저는 전처럼, 동생처럼 귀여움 받고 싶은데…


인간이 됐다고 제가 맡은 일은 안 할 수 없었어요. 물자 관리는 계속 해야죠. 


언니들은 걱정했지만 제가 한다고 밀어붙이니까 더 이상 저를 막지 못했어요. 사실 조금 기대했어요. 무리한 일을 하려고 하면 막으려고 했던 언니들의 행동을요. 하지만… 이제는 안 그랬어요.


일을 하면서도 이상했어요. 예전처럼 실랑이 없이 모두 제 말을 잘 들어요. 물자 관련 문제로 갖은 실랑이를 하면서 살갑게 저주 충돌했었죠. 


웃긴 농담을 하면서, 혹은 저를 먹을 것으로 꼬시면서 어떻게든 물자를 더 가져가려고 하는 언니, 친구들이 많았잖아요. 


그 때는 화나면서도 슬프면서도 때로는 재밌었는데…. 이제는 모두 그러지 않아요. 


네. 응. 알겠습니다. 하고 그냥 수긍해요. 이상해요… 왜, 왜 이렇게 계속 이상함을 느끼는 거죠? 위화감을 느끼죠? 모르겠어요. 복잡해요. 


일이 잘 되니까 좋으면서도 그리워요. 그 살갑던, 서로 친하다는 듯이 장난을 주고받던 언니, 친구들의 모습이 그리워요. 


분명 기분 좋아야 하는 거 아닌가요? 왜…. 왜 어색할까요? 왜 허전할까요? 왜 그리울까요? 알비스가 초콜릿 가지고 도망치면, 그걸 제가 쫓는 틈을 타서 참치캔을 LRL이 훔쳐가던 그 상황이 이제 사라졌잖아요. 


그럼 관리가 모두 완벽해지니까 행복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런데 어째서… 마음 한 켠이 아플까요? 왜 서글픈가요? 모르겠어요. 어째서죠? 어째서 이렇게 힘들어하죠? 이상해요. 힘들어요. 


달라진 모두의 대응에, 모습에 무서워요. 


결국 계속되는 어색한 상황을 버티지 못했던 걸까요…


이전보다 더 많은 군수품, 유출 없이 정량으로 보급되는 상황표를 보고 결국 현실을 확실하게 깨달아버렸어요.


‘아, 나는 언니들과 같은 존재가 아니구나.’


울었어요.


그냥… 창고 앞에서 쓸쓸히. 숨죽이면서. 훌쩍이고. 끅끅대고. 화를 내보기도 하고.


하지만 창고에는 저 혼자 뿐이었죠.


인간 여성도 저 혼자였죠.


그렇게 울다가, 발키리 언니가 찾아왔어요. 울고 있는 저를 보자마자 깜짝 놀라서 다가왔죠. 바로 언니에게 안겼어요.


“무슨 일이십니까?”


“언니, 저는 이해가 안 가요. 제가 인간이 됐다고 해도 저는 언니들하고 예전과 같이 친하게 지내고 싶은데...”


발키리 언니의 표정이 갑자기 어두워졌어요. 시선을 피하는 것이 보였죠. 머리를 쓰다듬으려고 올라왔던 손이 내려가는 것도 보였어요. 발키리 언니마저도 거부하는 걸까요?


“언니, 왜 오르카호 언니들의 반응이 이상한 거예요? 발키리 언니마저도 이러면, 저는 도대체…”


“…이유를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왜 허락을…”


“일단 인간이잖습니까. 어쩔 수 없습니다.”


이런 부분까지 이래야 하는 걸까요. 저는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어요. 발키리 언니는 쓸쓸히 제 머리를 쓰다듬어주면서 말했어요. 


“안드바리. 당신은 지금 지구의 유일한 ‘인간 여성’입니다. 그리고 사령관님께서는 유일한 ‘인간 남성’이죠. 이게 무슨 뜻인지 아십니까? 안드바리, 우리는 바이오로이드라는 실질적인 한계 때문에 인간님들 앞에서는 무릎을 굽혀야 합니다.”


기분탓일까요? 언니가 말하면서 중간중간 울먹이는 것 같았어요. 한숨도 몇 번 쉬었어요. 


”그렇기에 아무리 사령관님과 허물없이 지낸다 한들, 반드시 명령을 듣고 수행해야 한다는 근본적인 상하관계라는 한계는 사라지지 않죠. 하지만 안드바리 당신은 유일하게 사령관님과 대등한 관계에서 지낼 수 있습니다. 한계가 없죠. 바이오로이드가 영유할 수 없는 부분까지 사령관님을 영유할 수 있습니다.”


“언니, 너무 어려워요…”


“…쉽게 말하겠습니다. 이전에는 오르카호의 바이오로이드 모두가 대등한 위치에서 사령관님의 신부였다면, 이제는 아닙니다. 인간 여성 안드바리는 성인이 된다면 본처가 될 것이고, 나머지 바이오로이드는 모두 첩이 될 겁니다. 당신이 아니라고 해도, 바이오로이드들이 우리 모두 같다고 말을 하더라도… 태생은 거스를 수가 없습니다.”


발키리 언니가 결국 눈물을 흘렸어요. 아무 소리 없이 그저 눈에서 눈물이 주룩 나왔어요. 


“이러한 이유 때문에 우리 바이오로이드가 데면데면해진 겁니다… 그런 때가 올 때 분노를 표출하는 것보다... 지금 이렇게 정을 떼는 게 더 마음이 덜 아프니까요. 저희도… 저희도 이런 마음을 가지기도, 언행을 하기도 싫습니다. 하지만… 하지만… 바이오로이드라는 태생적 한계가 우리를 강제로 조종합니다. 인간님 앞에서는 낮아지라고. 한없이 저 밑바닥으로 낮아지고 모든 것을 양보하라고. 이… 이 심정은… 끔찍합니다. 가족한테까지 이러는 법이 어디 있냐는 말입니까….”


그러면서 저를 꽉 안아줬어요. 사랑하지만, 보고 싶지만, 전처럼 살고 싶지만 이제는 헤어지고 버려야 하는 모녀처럼. 


발키리 언니의 눈물은 계속 흘러 머리에 닿았고, 제 얼굴로 흘러서 같이 눈물을 흘렸어요.


“죄송합니다, 안드바리. 차차 익숙해주십시오. 하지만 우리 발할라는, 오르카호 모두는 언제나 당신을 사랑한다는 것만은 잊지 말아주십시오.”


그렇게 언니는 제 등을 토닥여주고 떠났어요.


한동안 앉아서 언니가 말해준 것들을 멍때리며 머릿속에서 정리해봤어요. 그리고 저는… 한 가지 물음을 답으로 냈어요.


‘난 이제 어쩌지?’

계속 이렇게 살아가야 하는 걸까요? 

저는…

모르겠어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사령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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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엔딩 내려고 했는데 대회 주제랑 달라서 그냥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