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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분대, 상황 보고해.''


[1분대, 부상자 3명, 탄약 4박스 남았습니다.]


[2분대, 부상자 1명에 탄약 2박스 남았습니다.]


[3분대, 탄약 7박스 남았습니다. 부상자는 여섯입니다.]


''확인. 다프네, 병상 상황은?''


[총 열 분이시죠? 아슬아슬하게 될 것 같네요. 걷기 힘들 정도의 중상자는 있나요?]


''없어. 이쪽에서 알아서 보내줄테니 응급치료 해주고 휴식시켜. 치료 다 끝난 대원은 다시 이쪽으로 보내주고.''


[네.]


다프네와의 통신이 끝나자 마자, 머리가 핑 도는 느낌과 함께 관자놀이가 욱신거리기 시작했다. 커피랑 두통약으로 꾸역꾸역 버틴지도 벌써 이틀. 오르카에서라면 모를까, 틈만나면 싸우는 전장에서 이틀 동안 3시간 정도밖에 자지 못한 건 바이오로이드한테도 힘든 일이다. 그게 설령 나라고 해도.


''마리 대장은 이런 걸 어떻게 버티는 거야? 진짜 신경이 강철로 되어있기라도 한 건가? 으으으...머리 울려. 바람이라도 쐬어야겠네.''


비틀거리는 발걸음을 옮겨 지휘소를 빠져나와, 한동안 걸었다. 다리가 슬슬 아파올때 쯤, 주변에 있던 커다란 나무에 등을 기대고 쉬었다. 서늘한 밤바람을 타고 풍겨오는 화약냄새에 두통이 더 심해진 것도 같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두통약으로 버티는 수밖에.


''어디 보자, 그럼 부상자는 이걸로 됐고...초소 수리는 부품 있는 대로 끌어모아서 시작하면 아마 새벽 쯤에는 다 될 거고...정찰대가 조용한 게 좀 거슬리네. 인원을 더 늘리...기에는 탄약이 모자라구나, 탄약이.''


두통약에 힘입어 어거지로 굴러가던 머리는, 얼마 지나지 않아 탄약이라는 난관에 봉착했다.


''총 13박스 정도 남았다고 했나? 철충들이 한번 들이닥칠 때마다 못해도 7박스는 나가니...앞으로 두 번이 한계겠네. 이러다가 내일 아침에는 총검 휘두르면서 싸우는 거 아니야?''


그레고르 사령관이 출발한지도 어언 한나절. 해도 거의 다 졌건만, 아직까지 소식이 없다. 덕분에 오르카에서 출발할 때 가지고 온 탄약은 이제 슬슬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여기는 비교적 교전이 적은 지역인데도 말이다. 


''...마리 대장은 괜찮을지 모르겠네.''


여기가 이런 상황이면, 마리 대장이랑 라비아타가 지키고 있는 시설 입구 지역은 더 심할 게 불 보듯 뻔한 일. 조금은 걱정이 돼서 연락을 해보기로 했다.


[네. 전화 받았습니다.]


''엥? 라비이타? 왜 네가 받아?''


[레오나 대장님이세요? 잘 됐네요, 마침 연락드리려던 참이었는데. 아, 마리 대장님은 지금 잠시 쉬고 계세요. 조금 전의 전투로 조금 무리하신 모양이라...]


그럼 그렇지. 그 성격이 어딜 가겠어?


''나 참. 대장이라는 사람이 자꾸 그렇게 최전선으로 나가면 부하들 속만 타들어간다고 그렇게 말했건만.''


[어쩔 수 없죠. 타고난 성격이 저러니. 그래도 덕분에 큰 손실 없이 철충들을 몰아낼 수 있었으니까, 너무 뭐라고 하진 말아주세요.]


''누가 뭐래? 그냥 걱정돼서 한 말이지. 그러다가 진짜 큰일나면 죽도 밥도 안되니까. 그나저나, 부탁이란 건 뭐야?''


[아, 그러고 보니, 탄약 남으시나요, 레오나 대장님?]


''아, 역시 그거구나. 안그래도 그거 때문에 연락한건데. 총알, 필요해?''


[네. 아주 많이요. 방금 그 교전 때문에 탄 박스 두 개를 세 분대가 나눠써야 할 판이에요. 나름대로 아껴쓰고는 있지만, 철충들이 워낙 많이 몰려오는지라...]


''심각하네. 솔직히 말하자면, 우리 쪽도 그리 많지는 않아. 그쪽보다는 사정이 좀 낫긴 하지만. 잘해봐야 6박스 정도 보내줄 수 있을 거 같은데, 보내줄까?''


[네, 부탁드려요.]


''그럼 우리쪽 대원 몇명이랑 같이 보내줄게. 아껴써야 한다? 그거까지 다 쓰면 진짜 총검으로 싸워야 하니까. 적어도 그레고르 사령관이 올때까지는 그걸로 버텨.''


[그레고르 씨라...오시긴 하겠죠?]


''와야지. 안그러면 우린 다 죽은 목숨이니까. 왜, 못미더워? 그래도 실력은 확실한데 말이야.''


[그건 그렇죠. 단지...신뢰가 좀 안간다고 해야 하나? 마음속에서 뭔가가 자꾸 걸리는 것 같단 말이죠.]


''이해를 못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명색이 사령관인 사람인데 취급이 너무하네. 아직도 의심 중이야?''


[의심이라기보다는 약간 혼란스러운 느낌이얘요. 제 입장에서는 아직 미심쩍은 부분이 한 두개가 아니지만, 자매들은 하나같이 그 분을 스스럼없이 대하니까요. 인지부조화가 온 느낌이 이런 걸까 싶네요. 어떤 걸 믿어야 할까요? 만난지 일주일이 겨우 지난 제 직감일까요, 아니면 몇 달을 같이 보낸 자매들의 평가일까요?]


어이쿠, 이야기가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은데...상관 없으려나? 어차피 한동안은 잠잠할 것 같고, 이쯤에서 머릿속을 정리해주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복잡한 문제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후자가 백 번 옳지만, 육감이라는 것도 무시할 수는 없으니까. 그게 100년간 저항군을 이끈 라비아타의 육감이라면 더더욱.''


[그렇죠?]


''근데, 내 생각에는 그런 걸로 계속 고찰하는 것도 웃긴 일이야. 이성이니 육감이니 하는 것도 상대가 어느 정도 상식적인 존재일때나 먹히지, 그레고르 사령관 같은 상식 외의 존재한테는 그런 걸 생각해봤자 머리만 아프지. 생각해봐. 몸은 철충인데 정신은 사람이래. AGS를 감염시킬 수는 있지만 물은 안무섭고. 싸움은 기가 막히게 잘하는데, 정작 자기가 누군지 모르고. 이런 사람 상대로 우리가 무슨 수로 걔가 사람인지 철충인지 판단하겠어?''


[하지만, 그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어떻게 같은 공간에서 맘편히 지낼 수는 없잖아요?]


''문제될 게 있어? 그레고르 사령관이 사람이든, 철충이든, 일단 우리랑 같이 싸워주고 있잖아? 오르카에서도 할 일을 하고 있고. 그럼 된 거지. 복잡한 건 나중 가서 생각해도 늦지 않아.''


[...]


''...라비아타, 혹시 '독화살의 비유'라고 알아?''


[네?]


''복원되고 나서, 오르카에 적응하는 동안 읽었던 책에 있던 내용이야. 한 스승과 제자가 나누는 이야긴데, 하루는 제자기 질문을 하지. '세상은 영원한가, 그렇지 않은가? 정신과 육체는 하나인가, 별개인가?' 이런 질문들. 거기에 스승이 답하지. '네 질문은 독화살에 맞은 사람이 '내게 화살을 쏜 사람이 귀족인가, 평민인가? 남자인가, 여자인가?'라고 묻는 것과 같다.'라고. 이 이야기가 말하려는 게 뭔지 알겠어?''


[지금은 그런 뜬구름 잡는 질문보다는 당장에 급한 문제부터 해결하는 게 중요하다는 의미군요. 독화살을 쏜 사람이 중요한 게 아니라 치료가 급한 것 처럼.]


''정답이야. 자, 그럼 내가 하고 싶은 말도 알겠지?''


[...네. 그레고르 씨의 정체보다는 우선 우리의 목적이 중요하다 이거군요.]


''바로 이해해주니 좋네.''


[별 거 아닌걸요, 뭐. 조언해주셔서 감사해요, 레오나 대장님.]


''아니야, 나도 어차피 시간 때우는 겸해서 잠담한 거니까. 덕분에 조금 쉴 수 있었으니, 감사인사는 됐어. 으으, 머리야. 벌써 두통약 효과가 다 됐나?''


[피곤하시면 조금 주무시는 게 어떠세요? 해도 다 졌고, 어차피 아직 재건 완료까지는 30시간 정도 남았으니까 조금은 쉬어도-]


라비아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요란한 쇳소리가 밤하늘에 울려퍼졌다. 철충들이 다시 밀려들어오고 있는 것이다.


[안되겠네요.]


''그럼 그렇지...어째 쳐들어오는 주기가 짧아진 거 같은데, 기분 탓인가?''


[어쩌면 저희가 탄약이 모자라다는 걸 알고 이러는 걸 수도 있겠네요. 탄약을 다 소모시키고 한번에 밀고 들어오려는 의도로요.]


''죽여주는군. 그레고르 사령관은 언제 오는거야? 탄약을 만들어서 운반하기라도 하는 거야?''


그렇게 투덜거리며 지휘 프레임을 가동시키던 중, 누군가가 통신을 보냈다. 베라였다.


''아무래도 상황이 거칠어질 것 같네. 이만 끊어, 라비아타. 나중에 다시 연락할게.''


[네. 몸 조심하세요.]


''두말하면 잔소리지. 자, 그럼 다시 본업으로 돌아가볼까? 무슨 일이야, 베라?''


[레오나 대장님! 큰일 났어요!]


라비아타와 연결을 끊자마자 통신기에서 터져나온 베라의 목소리에는 다급함이 가득했다. 어찌나 다급했는지 말까지 더듬으며 말하는 베라에게 나는 무심한 듯 대답했다.


''철충이 쳐들어오는 건 나도 이미 아니까 허둥대지 마. 난 곧바로 지휘소로 돌아갈테니까-''


[아뇨, 그게 아니라! 하늘에서 미사일 같은 뭔가가 날라오고 있어요! 4개 정도, 남쪽에서요!]


''...뭐?''


남쪽? 그쪽은 오르카 방향인데? 설마 그레고르 사령관이 당한건가?


[대장님, 어, 어떡하죠? 우리 쪽으로 날아오는 것 같은데, 대피해야 할까요?]


''진정해, 베라! 착탄점은 어딘지 알겠어?''


[어, 어두워서 잘은 모르겠지만, 두 발은 마리 대장님의 부대 쪽이고, 하나는 2분대와 3분대에 사이 지점, 마지막 하나는...지휘소 근처 숲이에요!]


''잠깐, 지휘소 근처 숲?!''


내가 있는 곳이잖아?!


''베라! 당장 다른 분대에 통신 돌려! 전선은 유지하되, 미사일 폭발 범위에서는 떨어지라고 해!''


[네!]


베라에게 황급히 명령을 내린 후, 발걸음을 재촉했다. 철충이 사용하는 미사일의 폭발 범위가 정확히 얼만지는 모르지만, 일단 지휘소까지는 닿지 않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미친듯이 뛰었다.


길을 잃었다는 것을 깨닫기 전까지.


''...큰일인데.''


길을 기억해놓기는 했지만, 여기는 숲 속, 그것도 밤중의 숲속이다. 해가 떴을 때의 풍경하고는 영 딴판이라 길을 찾는 게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나 참, 1)빵조각이라도 뿌리면서 올 걸 그랬나?''


초조함을 덮기 위해 너스레를 떨며 가만히 서있기를 몇 초. 어디선가 무언가 날라오는 소리가 등골을 서늘하게 했다. 하다못해 방향 감각이라도 찾기 위해 밤하늘을 올려보자, 저 멀리서 거대한 무언가가 이쪽을 향해 날아오는 것이 똑똑히 보였다.


''...젠장!''


날아오는 것의 정체를 알아내는 데 1초가 흘렀다.


어떻게 해야할 지를 생각하는 데 1초가 또 흘렀다.


그리고...


                                                                                               


''으으윽...케헥! 케헥!''


흙먼지를 들이마시고는 연신 헛기침을 했다. 머리가 울리고 속이 메스꺼운 걸 보니 아직 발할라에는 오지 않은 것 같고, 사지도 멀쩡히 다 붙어있는 걸 보니 아무래도 운이 좋게 불발탄이었던 모양이다. 


''애초에 미사일 폭격을 맞은 시점에 운이고 뭐고 없긴 하지만...어?''


욱신거리는 몸을 억지로 일으키려고 하던 찰나, 발치에 무언가가 닿았다. 묵직하고, 푹신푹신하고, 네모난 무언가가.


''...에어캡?''


의아한 심정으로 주변을 둘러보니, 에어캡으로 감싼 무언가가 사방에 널브러져 있었다. 게다가 그 안에 든 것은 다름아닌...


''탄약 상자? 어, 이것도? 이건 배터리고...이건 뭐야? 기계 부품? 이게 다 뭐야?''


''아이고 삭신이야...''


''?!''


''메이 자식, 처음에는 미사일로 샤워를 시키더니, 이제는 미사일에 묶어서 날려보내? 이거 서러워서 살겠나, 진짜. 보호구 없었으면 2)카론 아저씨랑 스틱스강 크루즈 갔겠네.''


''...사령관?''


''으아, 깜짝이야! 레오나 네가 왜 여기서 나와?!''


''그건 내가 할 말이야!''


                                                                                               


패러디 목록

1) 동화 '헨젤과 그레텔'의 내용.


2)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저승의 강. 카론은 그 강을 건너게 해주는 뱃사공이다.


어제가 내 생일이었다.


근데 아무도 축하를 안해준다.


심지어 동생은 내 생일인줄도 몰랐다고 한다.


젠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