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사탕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입 안을 도는 달콤함은 잠시일 뿐.

이유 모를 찝찝함과 허전함은 그보다 길게 여운을 남긴다.

   

왜 나는 뒤따라오는 부정적인 것에 눈길이 갈까.

다른 바이오로이드처럼 밝았으면 좋았을 걸. 좋았던 일만 있었으면 좋았을 걸.

좋은 인간을 만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언젠가 나는, 눈을 떴을 때 지금의 삶이 영영 끝났으면 했다.

눈을 뜨면 다른 천장이 보이고, 거울을 보면 다른 얼굴을 한 내가 있길 바랐다.

하얀 가운을 입은 인간들도, 문을 열면 꼼짝할 수 없는 내가 떠오르는 의자뿐인 실험실도, 한 번도 기꺼운 적 없던 출격 포트도.

이번 생에서 본 것들은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깨는 꿈같은 일을 바랐다.

   

밤보다 선선한 공기가 도는 아침, 아픔 없이 눈을 떴다.


꿈같은 일이다.

온몸을 돌며 몸을 웅크러뜨리는 전기도, 몇 번을 통과해도 끝없이 이어지는 실험과 테스트도 없다.

못마땅한 눈으로 팔짱을 낀 채 나와 모니터를 번갈아가며 쳐다보는 수많은 인간도 없다.

영원히, 한 명도 남김없이 사라지길 바랐던 인간이.

   

밤.

지금에야 좋아하는 인형을 껴안고 행복하게 잠드는 시간이지만, 언젠간 어찌할 바 없이 견뎌야 했던 아픈 시간.

   

내 일상은 커다란 고통과 그것에 버금가는 혐오감.

그리고 무엇보다 큰 증오를 삭이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낮밤을 가리지 않는 혹독한 테스트와 실험.

인간이 잠드는 시간에야 몸이 찢어질 것 같은 고통에서 벗어나 숙소에 몸을 뉘이면, 탐욕스런 눈빛과 함께 어김없이 문이 열린다. 

   

욕망은 썰물처럼 급하게 몸을 훑고 달아난다.

인간의 숨과 손길, 새어나오는 소리를 막는 입맞춤에선 묵은 성욕의 향이 났다.

알 수 없는 기준으로 인간들의 심기에 거슬렸을 때면 어김없이 고통이 따라왔다.

   

아무도 몰랐으면 하는 짓을 하듯 은밀하게, 마치 모두 잠들기를 기다리기라도 한 듯 성급하게. 그리고 펜과 종이, 검과 총을 다루듯 익숙하고 무심하게.

   

내 모습이 그들과 같은 건 중요하지 않은 듯. 인간들은 물건으로서 나를 사용했다.

   

무심코 당신의 손을 쥐었다. 나를 도구로써 다루지 않았던, 받기보다는 주던 게 더 많던 당신이다. 그 얼굴을 보니 별안간 숨이 벅차고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나의 삶은 영원히 부족할 줄 알았다.

내가 모든 걸 완벽하게 해낼 수 있었다면, 나와 함께하던 바이오로이드들이 아파할 일은 없었을 것이다.

내 모습이 나를 만들어낸 저 인간들과 달랐다면 행복은커녕 불행하진 않았을 것이다.

나의 생명이 그들에게 값싸지 않았다면, 조금이라도 더 일찍 죽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귀를 도려내고 싶을 정도로 내게 부족하다 말하는 인간들이 없었다면, 인간이 없었다면.

   

인간이…….

   

덮은 이불이 들썩인다.

포개놓은 듯 올려놓았던 내 손을 감싸는 당신이 느껴진다.

안녕. 잠긴 목소리로 당신이 인사한다. 

그게 뭐가 그렇게 좋았는지, 터질 것 같은 눈물을 숨기려 당신의 가슴팍에 얼굴을 묻었다.

당황한 것도 잠시, 당신은 떨리는 내 몸을 감싸고 토닥거리며 무슨 일이냐 물었다.

   

어떻게 말해야 할까. 더 세게 당신을 안는다.

당신의 향기가 진해서 숨이 차다 말하면 말재주가 없는 걸 숨길 수 있을까.

   

나의 부족함이 아팠다.

내가 전부 해내지 못해서 실험실 속 차가운 침대와 퀘퀘한 격납고에서 죽어간 바이오로이드들이 눈에 밟혔다.

인간들이 내린 벌. 매일 밤 몸에 새겨지는 폭력과 욕망의 상처가 쓰렸다.

흐르는 물에 인간이 남긴 흔적을 몇 번이고 씻으면 드는 생각.

언젠가 혼자 속삭였던, 인간이 모두 사라졌으면 했던 바람이 섬뜩했다.

그게 마치 당신이 죽길 바라는 것처럼 들려서.

   

몇 번이고 얼굴을 가로 짓는다.

당신의 품속에서. 토닥이는 당신의 손을 느끼며.

당신이라면 어떤 뾰족한 마음도 감싸줄 것 같은 기분으로.

살금살금 드는 마음을 전한다.

   

 있잖아, 사령관. 언젠가 내가 말했던 적 있었을까.

   

사령관한테 받은 사탕을 볼 때마다 옛날 생각이 나. 사탕을 별로 좋아하지도 않고 그리 대단한 상도 아닌데. 포장지에 적힌 참 잘했어요, 그 말이 뭐라고. 밤이 되고 이불 아래 누우면, 깜깜한 방 안에서 혼자가 되면. 꿈에서 깨 다시 어제로……. 돌아가진 않을까. 걱정이 돼.

   

그게 다 없어질까 봐. 받았던 사탕도, 그 말도, 오르카 호, 동료들, 그리고 사령관도.

   

그래서 무서워서. 그렇다고 언제까지 무서운 건 또 싫어서.

   

털어내면 괜찮아질까 해서 에밀리한테 얘기해볼까- 하다 그만두고. 씻고 나면 나아질까 해서 오랫동안 물을 맞고 있어도 그저 그렇고. 바람 좀 쐴까 하고 생각하니까 마침 오르카 호는 잠수 중이고. 그래서 하릴없이 오르카 호를 걷다가 사령관 생각이 나서 숙소 앞에 가면 또 걱정되고…….

   

무슨 걱정?

   

당신의 물음에 괜히 심술이 들어 등을 손톱을 세워 누른다.

   

밤이면 무서운 생각이 들어서, 혼자 잠드는 밤이 무서워서, 눈을 떴을 때 당신이 없는 내일이 무서워서. 같이 잠 들었으면 하는 어리광을 당신이 싫어할까.

   

뜨거워진 얼굴을 조금 당신에게 떼며 말을 돌린다.

   

그것만은 아무에게도,

특히 당신에게만은 말할 수 없는 비밀.

   

아무튼, 사령관. 이런 말 하긴 뭐하지만, 있잖아. 오늘……. 아니, 어제 늦게 퇴근해서 고마워. 아니야, 다시 할게. 기왕 얘기하는 거. 다 말할 거야.

   

내가 만든 초콜릿, 엉망이었을 텐데 받아줘서. 뭐든지 혼자서 다 안 해도 된다고, 부족해도 된다고 말해줘서. 누군가의 손길이, 숨이 이어지는 게, 몸이 저리고 어딘가 아픈 게 행복할 수 있다고 알려줘서. 내 옛날 얘기, 재미없었을 텐데 다 들어줘서. 그리고…….

   

안겨 있으면서도 당신이 보고 싶다.

보고 싶으면서도 터질 것 같은 내 얼굴을 들키고 싶진 않다.

당신도 같은 마음인지, 아니면 단지 짓궂을 뿐인 건지.

빨갛게 달은 내 얼굴을 당신의 손이 감싸 식힌다.

   

고개를 들어 당신을 본다. 웃고 있는 당신의 얼굴. 더 이상 부끄러울 것도 없는데 왜 볼 수 없는지.

그냥 당신의 귓불을 한 번 깨물고, 다시 한 번 당신을 세게 안았다.

고마운 만큼, 좋아하는 만큼, 어제는 생각나지 않게 힘껏.

   

이젠 길게 남아 어제의 기억을 녹이는 달콤함이 좋다.

그것을 선물한 인간의 손.

이어진 당신의 숨과 몸을 맞대며 잠드는 밤.

덕분에 좋아하는 게 늘었다는 것도.

   

전부 다 사랑하는 당신에겐 비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