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시어, 부탁이 있습니다."


쇠로 된 침대 옆 의자에 앉아 나는 기도를 올렸다.

신을 믿어본 적이 없었지만 누군가의 발목이라도 붙잡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저 하늘에 간절히 바래보면 어딘가의 신이 내 기도를 보지 않을까.


"부디, 그녀가, 그녀가 눈을 뜨게 해주세요."


이 기도가 얼마나 반복되었는지는 모른다. 

종종 수술대로 가는 그녀를 멀리서 지켜보기만 했을 뿐, 수술이 마치고 다시 돌아온 침대를 보며 나는 기도를 드릴 수 밖에 없었다.


"그녀와 한평생 단둘이서 살아왔습니다. 저에게 있어서 하나뿐인 가족을 제발 앗아가지 말아주세요.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하지만 기나긴 묵념이 끝나고도 깨어나지 않는 그녀를 보며 나는 한숨을 쉴 수 밖에 없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밖을 바라보았다.

뒷골목의 위치한 건물이라 그런지 창문 밖은 그저 칙칙하고 어두운 거리일 뿐이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는 점은 이곳은 햇볕이 드는 곳이라는 것일까, 이곳의 원장이 특별히 배려해준 덕에 이 곳에서 그녀가 있을 수 있게 되었다.


"...."



지금도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면 정신이 아찔했다.

어느날 병원에서 연락이 왔을 때, 그녀는 이미 교통사고로 온몸이 완전히 부서진 채 목숨만 유지하는 중이라는 것이었다.

 이 정도의 중상이라면 치료하기가 어려울 것이라는 판단.

그녀와의 결혼이 얼마 남지 않던 그때, 내 마음은 완전히 무너지고 말았다.

남은 시간 안에 그녀를 살릴 방법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도중, 한 연구자가 나에게 연락이 왔다.

바이오로이드에 사람의 인격을 넣는 실험을 하는데 피험자가 없기에 그녀를 대상으로 해도 되겠냐는 것이었다.

그 방법이라면 그녀의 몸을 소생시킬 수는 없지만 그녀의 정신은 유지할 수 있을 거라는 제안에 나는 곧바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지금에 이르른 것이다.

여전히 그녀가 깨어날 기미가 보이질 않아 그 연구자를 비롯하여 나 또한 계속해서 한숨만 내쉴 뿐이었다.

숨소리가 들리는 것으로 그는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기에 그녀의 정신이 깨기만을 기다려야할 뿐.

우리는 그저 그녀가 깨어나는 것을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




"으, 으음..."


그때였다. 갑자기 등 뒤에서 누군가가 앓는 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천천히 뒤를 돌아보자 침대에 누워있던 그것이 인상을 찡그리기 시작했다.

그저 숨소리만 들려오던 몸에서 처음으로 들려온 다른 목소리였다.

나는 그녀의 손을 잡으며 제발 그녀가 눈을 뜨길 간절히 빌었다.


드디어 나의 기도가 하늘에 닿은 것일까, 그녀는 천천히 눈을 뜨기 시작했다.


"정신이 들어?"


아무 말 없이 눈을 깜빡이는 그녀, 천천히 몸을 일으키려 하기에 그녀의 손을 천천히 당겼다..

이어, 그녀는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다 자신의 옆에 있던 창문을 가만히 보기 시작했다.

고개를 숙여 내 손을 바라보고는 다시 창문을 보더니 이내 그녀는 눈을 크게 뜨면서 비명을 질렀다.


"뭐야, 이건..."


그야 그럴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녀의 몸은 이미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의 몸은 굴러다니는 바이오로이드, 그렘린이라는 개체와 흡사하기 떄문이었다.

하지만 아무렴 어떠냐, 나는 그녀를 세게 끌어안았다.


"다행이야, 정말 다행이야..."


그동안 참아왔던 눈물이 갑자기 쏟아지면서 나는 그녀의 옆에서 쉼없이 울었다.





"그래서, 내가 한번 목숨을 잃었다고?"


나는 그녀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그녀가 청충이라는 괴물에 의해 한번 목숨을 잃었던 것. 병원에서 그녀를 치료할 수가 없다는 것. 그리고 어떤 연구자가 자신의 실험에 협조해준다면 그녀를 살려주는데 협력하겠다는 것.

믿기 어려워하는 눈치였지만 그녀는 자신의 몸을 보고는 수긍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연구자분께서 C구역이라는 것과 커넥션이 있다고 하더라고. 비록 값비싼 개체는 아니지만 온전한 몸을 싼 값에 몸을 구할 수 있었어. 몸은 혹시 괜찮아?"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몸을 가볍게 움직였다.

중고라고 하여도 바이오로이드의 몸이기 떄문일까, 이전에 병약했던 것과는 달리 그녀는 이전보다 더 생기가 있는 듯하였다.


"아무래도 실험이 성공적으로 된 것 같구만."


그 목소리에 나는 고개를 돌렸다.


"여기까지 왔으면 이제 슬슬 이곳을 나가도 되겠지. 하지만 아직 완전한 방법이 아니기에 다소 부작용이 있을지도 몰라.만약 부작용이 생긴다면 이 번호로 전화해다오."


나는 그의 호의에 감사하며 연신 고개를 숙였다.







그로부터 며칠이 지났다.

그녀가 약간의 두통을 호소하는 일이 자주 있었지만 아직 몸이 익숙하지 않아 그런 것이라 여기며 평소와 다름없는 삶을 보내었다.

주위에서는 새로운 바이오로이드를 구했냐는 이야기를 듣기도 하였지만 그녀 또한 그들에게 혼란을 주고 싶지 않았기에 바이오로이드처럼 행동하곤 하였다.

원래 하려고 했던 결혼계획은 뒤로 미룰 수 밖에 없었지만 아무렴 어떨까, 그것 또한 시간문제이기에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오히려 그녀는 이전보다 더욱 몸이 튼튼해졌다면서 기뻐하기도 하였지만 자신의 원래 모습을 그리워할때마다 나 또한 그 일을 슬퍼하였다.

그렇게 우리의 새로운 삶은 이제 막 안정기에 잦아들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내 희망과도 달리, 비극은 갑작스럽게 찾아왔다.




애써 부정하려 하였지만 사실 그녀가 점점 몸이 악화되는 것은 짐작할 수 밖에 없었다.

두통이 잦아들고 언제부턴가 몸을 다시금 가누기 어려워지고 연구자에게서 받은 약도 그녀에게 점점 들질 않았다.

그러던 중에 그것은 갑자기 찾아왔다.

갑자기 그녀가 고통을 호소하면서 바닥에 쓰러진 것이었다.

갑자기 비명을 지르던 그녀의 주위에는 증기가 생기면서 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그녀의 타액일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것이 아니었다.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나는 지금 상황이 심상치 않는다는 것을 확연히 알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얼굴은 녹아있었다.마치 플라스틱 피부가 녹아들듯이.


나는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라면, 어쩌면 이 상황에 대해서 알 수 있지 않을까.


"과연, 시간이 다 되었나 보군."


하지만 동앗줄을 붙잡아 희망을 바라보던 나에게 온 답변은 너무나 무미건조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시간이 더 짧을 줄이야. 시약이 잘못된 것인가, 스페어 바디가 너무 저급했던 것일까, 아니면...이미 그녀의 정신마저... 그저 말로만 듣기에는 전혀 짐작이 가질 않는군. 혹시 조금 더 자세히 알려줄 수 있겠는가? 아니, 위치를 알려주게나. 지금 바로 사람을 불러 그 실험체를 뜯어봐야 알 것..."


구역질이 날 것 같아 나는 그에게 욕지거리를 내뱉고는 전화를 끊었다.

희망이 박살난 나에게는 할 수 있는 거라고는 꺼진 휴대폰에 대고 욕을 내뱉을 뿐이었다.


"괜...찮아."


그녀는 피가 섞인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어차피... 이미 한 번 죽은 목숨이야... 처음, 이렇게 살아났을 때는 믿을 수가 없었지만..."


간신히 숨을 쉬는 그녀, 그녀가 어떤 고통을 받고 있는지 헤아릴 수조차 없었지만 그녀는 끝끝내 미소를 지으며 나의 불안을 달래주려고 애를 썼다.


"그래서 힘내보려 했어. 그야, 네가 살린 거잖아. 비록 머리가 계속 어지럽고 몸이 계속 아파와도 그것을 참아내려 했어. 아직 내가 그 몸을 받아들이지 못했다고... 생각해서..."


"아냐! 내가 조금 더 노력했다면!"


나는 그녀를 껴안아 흐느껴 울었다.


"충분히 노력했어. 부모 없이 우리 둘만으로 여기까지 살아온 것만으로... 우리는 정말 열심히 살아온 거야. 그렇지?"


나는 그에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더 그녀와 거리를 거닐고 싶었다.

조금 더 그녀와 함께 식사를 하고 싶었다.

조금 더 그녀와 함께 있고 싶었다.


"하지만,싫어, 역시 싫어. 죽고 싶지 않아."


어느덧 새빨게진 눈동자로 그녀는 내 목덜미를 끌어안았다.

그 눈에 내 모습이 과연 비치고 있을까.

나는 그녀가 더욱 나를 알아볼 수 있도록 강하게 끌어안고 그녀의 귓가에 외쳤다.


"걱정마, 너의 모습이 어떻게 되든, 나는 너를 사랑할 수 있어. 너의 얼굴이 무뎌지고, 손발이 녹아내리고, 쇠로 된 육신이 드러나더라도 언제나 네 곁에 있을게."


그러니 신님.

다시 한번 부탁드립니다.

그녀가 내 곁에서 떠나지 말게 해주세요.

어떤 모습이라도 좋습니다.

부디, 나에게서 그녀를 떠나가게 해주지 말아주세요.


"언제나, 우리는 함께야. 영원히."











며칠 뒤, 누군가가 문을 열었다.

몇번이고 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무시했기 떄문인가, 갑자기 거세게 열리는 문 너머에는 두세명의 경찰과 이웃집 아저씨가 서 있었다.

우리를 보더니 창백한 표정을 짓기 시작하는 그들.


"그건..."


그것이라니, 말이 너무 심하다.

그녀 또한 그 말에 화가 나기라도 한 것인가, 나는 꿈틀대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고는 양손으로 그녀를 들어올렸다.

질척이는 몸을 이끌고 앞으로 걸어가니까 한발짝 물러서는 그들

나는 그들에게 가볍게 인사를 하곤 그녀를 그들의 눈높이에 맞게 들어올렸다.


"인사해, 손님이 찾아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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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로부치 콜라보한다는 말에 다들 기겁한다는 사야의 노래 보고 삘받아서 빠르게 써보았습니다.

오랜만에 아무 생각없이 달려서 쓰고나니까 속이 후련하네요.

그렘린은 지인한테 바이오로이드 중 아무거나 하나 추천해달라고 해서 그렘린으로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