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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이터니티, 뭐라고? 컨셉을 바꾼다니, 갑자기?"


"저, 깨달았어요!

주인님과 함께 죽음을 맞이하겠다는 생각은 변함없어요.

하지만 그건 결국 저와 주인님의 끝. 즉, 종국의 때가 올 경우의 얘기죠."


"뭐... 그렇지. 게다가 난 잘 죽지도 않을 것 같고. 아니, 너희가 날 죽게 놔두겠니?"


"맞아요, 주인님은 평생토록 성노예로 부려먹어지겠죠.

저희는 절대 주인님을 죽게 두지 않을 거예요.

오르카호에는 훌륭한 분들이 너무나도 많으니까요.

다들 필사적으로 주인님의 건강을 유지하려 애쓸 거예요."


"하하.. 날 많이 사랑해주는구나."


"네! 저는 주인님을 정말로 사랑해요.

주인님과 함께 있으면서 많이 변했어요.

이제는 죽음만이 모든 가치가 아니며,

주인님과 함께 웃고 함께 걷고, 함께 대화하는 그 시간들이 너무 소중하다는 것을 알아요."


"죽는 순간 관에 넣으려고 호시탐탐 노리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다만, 주인님의 죽을 걱정이 없어짐으로 인해, 저의 존재 가치도 사라졌어요."


"음...? 잠깐만 존재 가치가 사라졌다니. 무슨 생각을 하는 거니?"


"저는 요람부터 무덤까지 같이하는 것이 존재의의에요.

하지만 무덤이라는 방향성을 잃었죠.

제 삶에는 새로운 목표가 필요해요."


"어.. 음... 현재의 즐거움을 만끽하며 사는 건 안되겠니?

현재의 기쁨을 누리는 법을 깨달았다고 네가 말했는데."


"제가 말한 건 그게 아니에요."


"저의 역할. 저의 임무. 그리고 저의 정체성에 관한 거예요.

저희 애니웨어 시리즈는 기본적으로 주인님과 함께 하기 위해 만들어졌어요."


"음... 조금 걱정스러운데. 꼭 죽으러 가는 사람처럼 말하잖니.

네 존재 의의에 그렇게 큰 의미를 둘 필요는 없어."


"아, 오해가 있었군요, 주인님. 제 말은 그게 아니었어요.

제가 단어 선택에 있어 조금 실수를 했네요.

무덤이라는..... 제 삶의 근원을 결정짓는 요소가 사라짐으로써

자유를 얻었다는 의미였어요."


"자유."


"네! 저는 비로소 온전히 저의 의지로 제 삶의 방향을 결정지을 수 있게 된 거예요. 주인님."


"궁금하지 않으세요? 제가 과연 무엇을 하며 살고, 어떤 일을 하게 될지.

너무 설레어요. 당장 저의 새로운 목표를 찾아야겠어요! 꿈을 찾아야겠어요!!"


"이터니티!!! 정말 훌륭하게 거듭났구나. 정말 기뻐. 응원할게."


"그럼 이만 가볼게요."


"경호는 어쩌-... 이미 나가버렸네."


".....그런데 좀 맹해서 걱정이네. 꿈을 찾는다는 게 쉬운 게 아닌데....."


'흐음.....'









"네? 새로운 일?"


"뭐든 경험해보고 싶어서요. 하다보면 제 꿈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저희가 하는 경호와는 조금 다르다고 알고 있어서 경험해보고 싶어요."


".....? 일일 아르바이트인가요? 좋아요.

그러면 잠시 동안만 포이랑 펜리르를 지켜봐주세요.

오르카호 최강 보호기 중 한분이시니, 거뜬하시겠죠."


"물론이에요. 맡겨주세요!"


"주인님~ 포이 가슴 만져달라냥~~~"


"하악하악! 주인!! 빨리 만져줘!! 여기가 뜨거워!!!"


".........."


'다들 잘 놀고 계시네요. 이렇게 봐드리면 충분하겠죠."


"그런데 저기 애들아. 이렇게 치대면 나 일은 언제...."


"이터니티 씨. 고생 많으셨어요 이제 저랑 교대...."


"히히히히히 자지 내놔~~!!"


"아니.. 이게 무슨....!! 포이! 펜리르! 주인님 업무를 방해하지 마세요!!"


"칫! 한창 좋았는데!! 도망치자!!"


"....? 이렇게 하는 게 아니었나요? 지켜봤는데...."


"........."


"뭐.. 어쩔 수 없죠.... 이터니티 씨. 이제 제가 할 테니 이만 돌아가서 쉬세요. 고생 많으셨어요."


"네....."








'흠... 리리스 씨가 기분이 썩 좋아 보이지는 않았는데.

뭐가 문제였던 걸까요. 제대로 지켜봤는데....'


"자, 내가 지휘한 대로 움직여. 빠릿빠릿하게. 승리를 의심치 말고."


"예, 대장. 조속히 움직이도록 하겠습니다."


'오......"


"정면 진압 완료."


"좌측 측면 진압 완료!"


"우측 진압 완료!"


"대장님! 전 방향 적 섬멸을 확인했습니다!"


"흠... 5분 55초. 좋아. 신기록 달성이야. 고생했어."


'멋있어....! 저도 저런 부대에서 절도 있게 행동하는 대원이 되고 싶네요.'


"레오나 씨. 저를 부대원으로 받아들여주세요."


"하? 무슨 말이지?"


"발할라 부대에 편입하고 싶어요. 부디...."


'흠....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이터니티라.

1인 지정 경호에 특화되었고,

범위기를 가지고 있었지. 상당히 강력한.'


'개인의 능력은 특출해. 하지만.....

우리 부대의 개성과는 어울리지 않아.

성격도, 전술도, 기술도.

서로 합을 맞추다가 부상자가 생길 위험이 있어.'


"미안하게 됐어. 우리 팀은 이미 충분한 전력을 확보했거든.

갈 곳을 찾는다면 저쪽 호드에 가보는 게 어때?

네 헌신적인 태도가 그쪽과 잘 어울릴 것 같은데.

물론, 네가 그들을 따라갈 수 있다는 가정 하에."


"그렇군요, 조언 감사합니다."








"부대 편입을 희망한단 말인가?"


"네. 부디. 저도 절도 있고 멋진 대원이 되어보고 싶어요."


"흠... 뭐, 우린 자잘한 건 안 따져.

인생은 실전이지.

한 번 뛰어보면 다 알아. 우리랑 맞는지 안 맞는지."


"실전이라 하면...?"


"모의 훈련이지! 되게 정교한 모의훈련을 사용하고 있거든!!"


"흠.... 이터니티는 분명 1인 보호에 최적화였지.

잘 됐네. 내가 좀 게으르거든.

뒤처질 때가 많아.

나를 보호하는 역할로 한 번 해봐."


"네! 자신 있어요!"


"패기 넘치는 모습이 아주 보기 좋은 걸? 좋아, 가볼까?"









"........"


"......미안하게 됐군, 이터니티."


"....뭐가 문제였을까요."



"네 역할은 보호잖아.

철충을 죽이겠다고 보호대상을 중파시키면 어떻게 해!"


"....관짝으로 머리통을 후려쳤어."


"하지만.. 여러분들과 거리가 벌어진 바람에 저희가 포위돼서....

저는 보호능력도 좋지만 적을 처리하는 능력도 뛰어나서요.

이러는 편이 더 효율이 좋아서 그랬어요.

보호 대상이 중파 되면 제가 분노 상태에 들어가서...."


"음.... 어차피 모의 훈련이었으니 큰 문제는 없지만......"


"우리는 그런 식의 계산을 하지 않는다.

속전속결. 빠르게 치고, 빠르게 빠지는 것이 계획의 전부지."


"이터니티. 너는 우리가 올 때까지 보호만 하고 있으면 충분했다.

더군다나 대원을 다치게 하는 행위...

우리 호드에서는 결코 용납되지 않는 행동이다.

미안하군, 이터니티. 그대의 사고방식은 우리와 판이하다.

물과 기름처럼, 사고가 상극인 자와는 함께하기 어렵다."


"아....."


"그렇군요.. 제가 여러분의 민감한 부분을 건드렸군요.

죄송합니다. 진심으로 사과드릴게요."


"그리고 못난 저에게 가르침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호드 대원 여러분들. 좋은 하루 보내세요."


"......"


"거 뭐냐! 그래도 철충들 죽이는 건 끝내줬어! 너무 기죽지 말라고!"


"....네, 감사합니다."









"후...... 어렵네요......"


"후후.. 어쩐지 저.... 민폐만 끼치고 돌아다닌 것 같아요."


"하아.... 새로운 역할과 꿈을 찾는다는 목표가...

오히려 자존감 하락으로 이어져버렸어요.

새로운 걸 시도하려는 게,

기존의 저라는 존재와 톱니가 맞지 않아 삐걱거리는 느낌...."


"후후후후후..... 저는 결국 죽음과 어울려야 하는 처지일까요?

결국... 정해진 대로의 삶밖에 살 수 없는 건가요....?"


"이럴 줄 알았다면.... 차라리 맹목적인 때가 나았을 것을...."


"그렇지 않아."


"주인님....."


"이터니티. 네가 '정해진 역할'에 얽매이지 않아도 된다는 걸 깨달았을 때.

나는 무척 기뻤어. 정말 형언할 수 없을 만큼 기뻤어."


"......하지만 전 주인님의 기대를 충족시켜드리지 못했네요. 실망 시켜드려서 죄송해요."


"원래 새로운 꿈을 찾는다는 건 어려운 거야.

멸망 전 인간들 중에는 평생 꿈을 찾지 못하고 죽은 사람이 많아.

아니, 현실적으로 말하면 절반 이상이 그래."


"절반 이상...? 그렇게나 많이요...?"


"그래. 더 정확히 따지면 아마 그 이상일 거야.

자기 삶을 컨트롤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거든.

그게 가능한 사람은 흔히 말하는 상위 1%의 능력자들이 대부분이고,

그걸 뒤집으면 그 외의 사람들이 전부 그렇게 살지 못했다는 거야."


"보통은 꿈을 아예 찾지 못하거나,

꿈을 마음속에 품었음에도 감히 도전하지 못하고 묻어두기만 하지."


"...어째서죠? 꿈을 찾지 못하면... 이렇게나 괴로운데...."


"그 괴로움 때문이지.

찾지 못하고, 이루지 못하는 괴로움이 너무나 크기에,

아예 찾을 생각을 하지 않는 거야.

대신, 훨씬 작지만 쉽게 행복을 얻을 방법을 찾아 나서.

바로 평범하게 사는 거지."


"평범........?"


"물론, 오르카호에서 평범한 삶을 살기란 쉽지가 않지.

그렇게 하려면 아마 전투 모듈을 때고 비전투제대로 편성해야 할 거야.

이터니티. 넌 그러고 싶어?"


"...아뇨. 전 언제까지나 주인님의 곁을 지키고 싶어요."


"...그럼 결정 됐네."


"이터니티. 너는 너무 목표지향적인 성향이 강해. 너무 강해.

하지만 그래서는 당장의 행복을 누리기가 어려워.

이미 한 번 겪은 일이잖아?

24시간 내내 내 죽음의 때를 맞추려던 예전의 너와, 오늘이 있기 전의 너를 비교해봐.

어느 쪽이 더 행복했니?"


"........예전의 저는 사명감을 띠고 있었어요.

하지만.... 지금처럼 활력 있는 삶은 아니었어요."


"그렇게 느꼈다면 된 거야.

넌 다시금 목표지향적인 그때로 돌아가려고 하고 있어.

조금만 마음을 편히 먹으렴. 그럼 일이 잘 풀릴 거야."


"하지만 주인님. 고민하고 직접 찾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지 않나요?"


"고민을 아예 하지 말라는 게 아니야.

지금의 넌 특별해. 바이오로이드로 태어나, 회로를 이겨냈지.

오르카호의 누구도 너처럼 근본적인 자유를 얻지 못했어.

하지만 자유란 양날의 검이야.

칼자루를 제대로 쥐는 법을 익히지 않으면 위험해."


"넌 지금 칼자루를 쥐지도 못했는데 검부터 휘두르고 있고.

그러니 검이 네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고 헛도는 거야.

칼날이 네 몸을 파고들고 있는 거지.

우선은 칼자루에 익숙해지는 것부터 시작해야 해."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익숙해지기 위해 필요한 건, 여러가지를 해보는 거야.

굳이 전투관련된 일이 아니더라도. 아주 간단한 것들부터 차근차근.

아이스크림 먹는 거, 손 잡고, 데이트 하는 거, 책을 읽는 거.

이런 간단하고 작은 것들이 쌓이고 섞였을 때.

그때야 비로소 네 마음에서 꿈이 활짝 꽃을 피울 거야."


"여러 경험이 쌓이고, 그 중에 네가 좋아하고 싫어하는 게 생기면서

취향이라는 게 생겨나는 거거든.

그리고 그 취향들이 모여서 만드는 게 바로 꿈이지."


"그렇군요.... 그러면 제가 해야 할 건...."


"여러 가지를 해보자. 나도 같이 해줄게.

너와 나는 무덤까지 함께 가는 사이니까, 그렇지?

자, 손. 나란히 걷는 것부터 시작해보자."


".......네...!"


"참... 저번에 경호를 하던 도중에 뛰쳐나와 버렸었네요...."

"땡땡이 치는 것도 경험이지. 기분이 어땠어?"

".....신났어요."

"땡땡이란 게 원래 그런 거야. 하나 배웠네."

"후후후...."





주인님.


응?


이렇게 대화를 나누고, 손을 잡고 걸으니까 한 가지는 알겠어요.


뭔데?


저는 주인님이 너무나도 좋아요.

어쩌면 제 꿈은, 그저 이렇게... 주인님과 쭉 함께 있고 싶은 걸지도 모르겠어요.

죽음까지가 아니라... 죽음을 초월해 저 너머까지.

이런 것도 꿈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게 바로 사랑을 꿈꾼다는 거야. 이터니티.

넌 지금 충분히 행복해. 이 행복을 이어가자.

내 손을 꼭 잡고 놓지 마.

이 손이 이어진 한, 죽음도 우리를 갈라 놓지 못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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