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거모음


군대.


남자가 거의 무조건 가야하고 갔다와봤자 얻는건 쥐뿔도 없는 21세기 노예제.


전방은 피해야한다, 자격증을 따고 특수 보직으로 가야한다, 가서 최대한 미친놈인척 하고 편하게 살아야한다…


뭐 말은 많지만 가장 좋은건 당연히 군대따위 안가는거겠지.


근데…그걸 못해서 다들 군대를 가는거니까.


나도 그렇다. 나, 이 사나이 강철남은 여자가 아니었기때문에 당연하게도 그지같은 군대를 끌려갔다.


물론 나도 그렇게 못난놈은 아니니 이왕 가게된거, 최대한 열심히 살았다.


열심히 농땡이부리고, 열심히 사고치고, 열심히 놀고, 열심히 휴가를 즐겼다.


그렇게 나의 '열심'이 끝을 바라보고 있을 때, 야밤에 불의의 사고를 당했다.


크으윽…누구보다 당당하게 말년 전역을 할 수 있었는데…!


-어…목에 핫팩 대고 자다가 안뜨겁다고 뜯었고…화상을 입었어? 그리고 화상입은거 식히겠다고 당직이 먹던 라면을 부었다고? 그리고 넘어져서 팔도 부러지고? 어어…어…병장인데 그냥 조기전역할래? 아니다, 그냥 조기전역 시켜줄게.


군의관이 나를 보는 눈빛이 조금 수상했을때 알아봐야했다.


젠장…일찍 전역한다고 다 좋은게 아니라고.


그렇게 나는 목과 등, 얼굴 옆의 작은 화상과 함께 약간의 부작용을 가지고 전역을 하게되었다.


-어떻게 고장난건지는 모르겠는데…땀샘이 약간 고장났어. 가만히 있어도 땀이 나거나 운동해도 땀이 안나올지도 몰라. 완전히 치료될때까지 얌전히 있어. 알겠지?


-보급관이 너 집에 보내준다니까? 월급이 문제냐? 너 나가서 편의점알바 한달하면 군인 월급 두배야 임마! 그냥 가! 너때문에 생활관이 땀냄새로 가득하다 임마!


그래…어차피 가만히 있어도 집에갈 양반, 생활관에서 땀냄새 풍기면 그냥 보내고싶겠지.


그렇게 나는 생각지도 못한 조기전역을 했고, 시기는 3월이었다. 즉, 복학은 당연히 못하는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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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4일. 집에 가는날.


"잘있어라."


위병소에서 후임과 작별인사를 했다. 내가 동기중에 제일 막내라서 먼저 집에간다고 놀려먹을 동기가 없다는게 아쉬워.



"제발 좀 끄지십쇼. 땀 정수기."


이자식…? 내가 좀 자주 놀려먹긴 했어도 이렇게 막말할 녀석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와…말이 심하다?"


"이 그지같은 군대에 있지말고 얼른 꺼지라고요. 같이 있는것도 짜증나니까. 어우 밖인데도 냄새나는것 같네."


거지같은 군부대에 있지말고 냉큼 사회로 가라니! 너…말은 험하게 하고 있지만 그 마음은 착하구나. 그래도 부드럽게 말해줄수는 없었니?


"…고맙다."


내 고맙단 인사에 녀석은 경례를 하고싶었는지 주먹을 들어올렸지만, 녀석의 경례를 받으면 여기서 쉽게 못떠날것같아 마음을 굳게 먹고 몸을 돌렸다.


"잘 있어!"


쿨하게 돌아선 나는 손을 머리위로 들고 흔들며 부대원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나누어준 뒤, 집으로 향했다.


"……새끼야!"


뒤에서 뭔가 소리지르는 것같았지만, 마지막 인사를 해주는거겠지? 감동이야.


후후, 사나이 강철남. 군생활 나름 잘했던것같다. 후임들이 만들어준 전역모가 없는게 아쉽지만…그건 너무 급하게 결정된 조기전역이라서 그렇겠지.


그렇게 가벼운 발걸음으로 집에 가기위해 지하철에 탄 나는 기분이 좋았다.


지금은 3월…즉, 어떤학교건간에 신입생들이 가득할 시기다.


그리고 내가 탄 지하철은 오전 8시의 지하철.


학생들과 직장인들이 혼재된 공간속에서 나만이 자유롭다! 다들 학교나 회사로 가야하지만 나는 집에 간다고?


물론 사람들이 많아 제법 붐비고 있었지만, 3월이라 그런지 그렇게 덥거나 갑갑하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나는 노약자석에 앉아있었으니까.


이 사나이 강철남, 팔에 깁스를 하고 있으시다. 현재 상태가 환자인만큼 내가 이곳에 앉을 이유는 충분하다.


그렇게 집에 거의 도착해서 내리기위해 엉덩이를 들어올리려던 그 때, 눈앞에 또다른 엉덩이가 보였다.


언짢은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는 여고생.


그리고 사람좋아보이는 얼굴을 했으면서 손으로는 그런 여고생의 엉덩이를 만지려고 간을 보는 변태 영감님.


역시 1호선이야…미쳐버릴것만 같은 광기가 존재하는군.


근데 여기서 내가 괜히 나설수는 없었다.


비록 내가 체력만큼은 특급전사였지만, 지금은 팔이 하나 부러진 환자였으니까.


이런 경우는 성범죄와 길거리 치안문제의 전문가중의 전문가, The mighty '여경'들을 불러 진압시키자.


국가와 민중의 지지를 얻는 살아숨쉬는 슈퍼히어로인 '그녀'들이라면 저 치한변태영감을 영/감/치/한/변/태로 만들어주겠지.


…좋아. 차량번호도 외웠고, 이 열차가 어디로 가는지도 안다.


적당히 신고를 하면 경찰이 도와주겠지? 그럼 나는 오늘도 정의를 집행했다는 마음으로 집에 가면 되겠어.


그렇게 뿌듯한 마음을 가진 채, 나는 미리 자리에서 일어났다.


역에 도착했을때 일어나면 개찰구에서 앞서 나온 사람들때문에 조금 기다려야하니까.


여기서 미리 일어난 다음 문앞에 대기하고…열리자마자 빠르게 나가서 빠르게 개찰구로 가고 빠르게 에스컬레이터로 가서 느긋하게 올라가기를 기다리고 빠르게 집으로 가면 되는거야.


이래서 일찍 일어난 새가 피곤하다고 하지.


<이번역은…>


안내방송이 나오는 순간, 나는 계획대로 일어섰지만 계획에 없던 예상하지 못한 일이 생겼다.


기관사님이 초짜라 브레이크를 급하게 잡은건지, 아니면 내가 집으로 간다는 마음에 너무 들떠서 그랬던건지, 아니면 너무 편하게 앉아있다가 일어나서 찾아온 기립성저혈압때문인지는 몰라도 출입구를 향해 걸어가던 내가 그만 균형을 잃고 넘어지고 말았던 것이다.


"으아아아?!"


"야이 변…!"


빠악!


실수로 넘어진 나는 깁스를 한 팔로 아까의 그 변태영감에게 백스핀 엘보우를 날리고 말았고, 석고에 얻어맞은 영감님은 그대로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어…?"


오, 이런. 전역하자마자 사고를 치다니.


전역날 24시까지는 군인신분이라고…!


여기서 사고치면 군생활이 늘어날지도 몰라!


<문이 열립니다.>


때마침 문이 열렸기에, 나는 재빨리 몸을 던져 이곳을 벗어나기로 했다.


일단 오늘을 넘길때까지만 집에 숨어있자.


그런다음 경찰서에 찾아가서 조서를 쓴다음 폭행으로 인해 입건되고 구속수사를 당하겠지만…영창보다는 낫다!


3월 4일의 오전, 나는 전역하자마자 놀러가는 대신 집안에 틀어박혀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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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저녁.


"…엄마, 나 오늘 지하철에서 치한 만났어."


새학기를 맞이한지 얼마 안된 고등학생 소녀가 집에서 오늘 아침 겪은 일을 털어놓고 있었다.


그녀의 모친인 붉은머리 여성은 딸이 치한을 만났다는 말에 깜짝 놀랐다.


"뭐? 치한? 어떻게했어?"


"소리지르고 신고하려고 했는데…어떤 아저씨, 아니 군인 오빠가 도와줬어."


"미호 너를 도와줬다고? 좋은 사람이구나."


"…거기다가 좋은 냄새도 났어. 군인인데 향수까지 챙겨서 뿌리나봐."


"그래서, 고맙다고 인사는 했니?"


"아니…나 도와주고 바로 가더라고. 아무래도 일이 커져서 그런가봐."


일이 커졌다는 미호의 말에, 주위에 있던 그녀의 가족들이 모두 관심을 보였다.


"왜?"


"치한…변태를 때려눕혔는데 기절했거든. 그것때문에 당황해서 도망갔나봐. 안도망가도 됐는데…그런 순수한 모습이 조금 귀여웠달까."


"아하하…도망갈만하네."


"우와! 완전 히어로네?"


"되게 힘 센가보다!"


"그렇구나…도와줘서 고맙다고 보답이라도 해야하는데."


그녀의 가족들은 사랑하는 자매이자 딸인 미호가 치한에게 안좋은 일을 당하지 않은것에 모두 기뻐해주었고, 그녀를 도와준 남자에게 고마운 마음이 생겼다.


"아, 근데 이름은 봤어."


"그래? 이름이 뭐니?"


"강철남. 좀 특이하지만…멋졌어."


'그리고…정말로 좋은 냄새가 났어. 진짜로…좋은…또 맡고싶은 그런 냄새.'


미호가 오늘 아침에 만난 철남에게서 맡았던 한순간의 향기는 노릇노릇하게 잘 익은 고기와 각종 화장품에게서 나는 향기, 그리고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초콜릿의 향보다도 더욱 짙고 강렬했다.


그리고 그 강렬함 탓에, 미호는 더더욱 아침에 마주친 그 남자를 잊을 수 없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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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화



오르카 바이오로이드를 유혹하는 철남충이 현대배경에서 맥락없이 막 여자 홀리는 그런 장면이 보고싶다는 한가지 생각으로 썼습니다.


앞부분에 철남충이 좀 정신병자 미치광이처럼 나왔는데…철남충 특유의 철충흔적을 위한 화상사고

이만큼 전체적으로 칠해져있지는 못해도 약간 기스라도 있어야할것 같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