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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즈넉하고 평화로운 일요일 저녁은 평범함을 즐기러 나온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아파트 내에 있는 공원, 그 위의 놀이기구를 타고 다섯 명의 어린 아이들이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오며 꺄르르 즐거워한다.

그런 자식들을 바라보는 어머니들은 편안한 티셔츠와 조금 펑퍼짐한 치마를 입고 자기들만의 이야기 세계로 빠진다.

 

노을이 지는 광경, 그 아래에서 울려 퍼지는 웃음소리.

내 방, 창가에서 고개를 조금 내밀면 보이는 장면은 마치 평화라는 단어를 형상화 한 듯 했다.

 

 

 

“아들~ 밥 먹어~”

 

 

 

너무도 그림으로 그린 것처럼 평화로와 이따금씩 이질적이라 느껴질 만큼.

 

아랫층에서는 언제나 들렸던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배우 일 때문에 바쁘실 텐데 최근 며칠 동안은 아주 내 집에 콕 들이 박혀 계시단 말이지.

 

엄마의 밥 솜씨가 뛰어나지 않았다면 제법 화가 났을 지도 모른다.

 

 

 

“네, 내려갈게요.”

 

 

 

메리를 만난 다음부터 정체 모를 이명이 들려온다.

 

‘살려달라.’ ‘죽고 싶지 않다.’ 듣기만 해도 팔 위로 소름이 돋아나는 섬찟한 비명들이.

그리고 그것들이 구체화 되어 하나의 장면을 나에게 보여준다.

 

허공에 걸려 있는 갈고리. 거기에 걸려 있는 주황 머리를 땋은 어린 여자 아이.

도시도 능히 덮어버릴 만큼 거대한 벚꽃 나무. 나무 위에 앉아 자기 자식을 집어 삼키는 여자.

약품 사이로 공기방울이 보글거리며 올라오는 거대한 실험관. 그 안에서 천천히 익사하는 소녀.

 

그리고, 흑과 백이 정확하게 나뉜 옷을 입고 있는 백발이 성성한 아가씨.

 



비명은 음표가 되고, 음표의 머리 부분이 검은 배경이 되어 그 위로 붉은 물감들이 뚝뚝 흘러 내렸다.

이명 속에서 내가 본 광경들은 언제나 그렇게 끔찍했다.

 

그랬기에 나는 내 낡은 통발폰을 손에서 놓을 수가 없었다. 이런 가운데에서도 만지고 있으면 안심이 됐으니까.

꼭 메리의 노란색 원피스처럼.

 

 

 

“오늘은 아들이 좋아하는 로제 떡볶이야~ 전에 데리고 왔던 여자애도 이런 거 좋아했지?”

 

“... ...”

 

 

 

환영일까? 내가 들었던 모든 비명은 전부 다 환상이었을까?

 

나는 속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소름 돋는 비명이 현실에서 울리는 모습을 상상하기란 쉽지 않았으니까.

 

 

 

‘밖을 봐봐. 저렇게 즐겁게 뛰놀고 있는 아이들이 있잖아.’

 

‘저렇게 재미있게 얘기하고 있는 어머니들이 있잖아.’

 

 

 

내가 있는 이곳은 이렇게나.

 

 

 

‘낙원 같은 곳이잖아.’

 

“... ...”

 

 

 

낙원.

저렇게 평화로운 곳이 나의 집이니까, 내가 보았던 것들은 전부 환상일 거야.

 

내가 들었던 이명은 지금의 내 삶과 너무도 정반대였기에 나는 차마 그것을 받아들일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저 내 관성적인 삶에서 벗어날 용기가 없었던 것일 지도 모른다.

두려웠던 것이다. 메리를 만난 이후부터 결코 멈추지 않았던 이 이명들에게 귀를 기울이는 것이, 무시하는 것보다 두려웠다.

 

 

 

“여보? 글쎄, 전에 아들내미 지도 교수한테 전화가 왔었는데 뭐라고 했는지 아세요?

이번에 자기가 학회에 논문 하나를 기재하려고 하는데 아들은 제 2 저자로 해주겠다고 하지 뭐에요?

예전에 대충 대충 뭐 써서 교수님에게 보내던 게 이런 거였던 모양이죠?

어쩜, 우리 아들은 그냥 그렇게 쓱쓱 해도 이렇게나 잘 하는지 내가 다 뿌듯할 지경이라니까.”

 

“그 교수 재인용지수도 제법 높지 않나? 그런 사람이 낸 논문에 이름을 올리는 거면 출세한 거나 다름 없지.

이거, 우리 회사로 데리고 오려고 했는데 그쪽 랩실로 납치 당하는 거 아닌가 몰라? 하하하!”

 

 

 

평화롭다.

 

그림으로 그린 듯이 평화롭다.

 

 

 

“회사일도 같이 병행시키면 되죠. 우리 아들이 그 정도 능력도 없겠어요?

애들이랑 놀 거 다 놀면서 이름 올릴 정도니까 노력만 좀 하면 당신 자리도 금방 뺏을 텐데?”

 

“허허, 이거 나도 오랜만에 손 좀 풀어야겠어.

그나저나 아들아. 저기 있는 것 좀 어떻게 좀 치워봐라. 네 고등학생 때 영상이 유튜브에 다 떠버린 바람에 저 모양이지 않냐.

아빠가 갖다 버리기엔 보내준 사람 성의가 있잖니. 안 그러냐?”

 

 

 

아버지가 우리 집 우편함을 찍은 사진을 내게 보여주었다.

 

넘치다 못해 바닥으로 흘러 내린 편지의 파도. 하나 같이 봉투에 하트 모양 스티커가 붙어있던 것을 보면 연애 편지였을 것이다.


가늘게 떨리는 글씨체. 이따금씩 눈물 자국이 묻어 나오는 편지들.

나라는 사람 한 명에게 글을 보내기 위해 산처럼 쌓인 감정들이 우편함에서 썩어가고 있었다.

 

 

 

“... 아버지.”

 

 

 

평소대로였다면 늘 그랬듯 웃어 넘기며 보냈겠지.

 

하지만 오늘은 그럴 수 없었다. 그 모습을 볼 수록 머리 속의 비명이 점점 커져간다.

그래서 마음이 이끄는 대로 뭐라도 해보기로 했다. 

나에게는 이명에 집중할 용기가 없었지만 그렇다고 작은 핸드폰 하나 올릴 용기도 없던 것은 아니었으니까.

 



탁!

 



주머니에서 통발폰을 꺼내 식탁 위에 올렸다.

 

고급스러운 원형 모양의 탁자. 로제 떡볶이 국물이 한 방울 떨어진 테이블 위에 균열이 잔뜩 나있는 핸드폰 하나가 얹혀졌다.

 

 

 

“이게 뭐니?”

 

“... 아버지. 저 한 가지 여쭤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

 

“뭐니?”

 

 

 

나는 침을 꿀꺽 삼키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게임을... 하나 해보고 싶습니다.”

 

“게임? 무슨 게임?”

 

 

 

어머니가 나의 말이 의뭉을 떨며 고개를 갸웃거리셨다.

 

하지만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내가 이 통발폰으로 무슨 게임을 했었는지, 그 이름이 도저히 떠오르지 않았으니까.

 

그래서 그나마 남은 기억의 파편들을 이리저리 끌어 모아 말에 덧붙일 수 밖에 없었다.

 

 

 

“그냥... 작은 모바일 게임 같은 거요. 돈이 많이 들진 않을 거에요.”

 

“하하, 우리 집이 돈이 문제니? 네가 돈 백 만원 쓴다고 뭐라 할 사람 아무도 없단다.

대신 조건이 있다는 건 알고 있지?”

 

“... ...”

 

 

 

어느 집 아들이나 다 그렇듯이, 나도 한때 컴퓨터 게임에 푹 빠져있던 적이 있었다.

 

어머니께선 그만하라고 셀 수도 없이 잔소리를 하셨지만 게임을 향한 내 똥고집은 오죽 강한 게 아니었다.

초등학생이 주말마다 부모님께 들키지 않기 위해 새벽 6시에 일어나 게임을 했을 정도니까.

 

그래서 걸어두신 조건이 ‘게임에서 배울 점을 찾아라.’였다.

게임의 설정, 캐릭터 형태, 과금 구조, 배우고 분석할 수 있는 것들은 전부 분석해서 보고서로 작성하는 것이 내가 마음껏 게임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조건이었다.

 

 

 

“그 게임, 인기가 많니?”

 

“아마... 그럴 거에요. 아마도.”

 

“그럼 그 인기의 비결이 뭔지 말해줄 수 있니?

훌륭한 게임성? 아니면 풍부한 컨텐츠? 화려한 그래픽과 이펙트는 기본으로 들어갈 테고.”

 

“당연히 그래야지. 요즘 게임 시장이 얼마나 레드 오션인데?

내 후배 중에 하나가 모바일 게임 하나 만들겠다고 인디 게임 회사를 차렸는데 빚만 잔뜩 얻고 쫄딱 망해버렸다지 뭐야?

우리 아들이 하고 싶다는 게임이니까 당연히 그 정도 경쟁력은 갖췄겠지. 안 그러니, 아들?”

 

“... ...”

 

 

 

부모님의 말씀에 나는 왠지 모를 부끄러움이 느껴졌다.

 

 

 

“... 과금...”

 

“응?”

 

“과금을... 덜해도 돼서... 인기가 많은 걸 거에요. 아마...”

 

“과금?”

 

 

 

내 말에 아버지께서 조금 미간을 찌푸리셨다.

 

 

 

“그러고 보니 내 후배도 착한 과금을 내세우느라 제대로 된 BM을 못 만들어 회사가 망했다고 했지.

그럼 그 게임의 과금 구조가 뭔지 말해봐라. 무슨 상품으로 유저를 유혹하지?”

 

“스킨이나... ...”

 

 

 

나는 그 이상으로 입을 열 수가 없었다. 스킨 외에는 사봤던 기억이 전혀 없었으니까.

 

아버지께서는 내 입이 열리길 기다리시다가 한심하다는 듯이 말을 뱉으셨다.

 

 

 

“그것 외에 다른 말이 나오지 않는 걸 보니까 어지간히도 대충 만든 게임인 것 같구나.

그럼 게임 시스템은? 전투 구조는 어떻지?

거기서 우리가 뭐를 배울 수 있는지 말해보거라.”

 

“... ...”

 

 

 

역시나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중구난방이기 그지 없는 버프와 디버프. 

회사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유저들이 만든 공략 사이트를 이용해야 했던 졸작 시스템.

꼬여버린 코드는 버그를 몇 개월에서 몇 년씩 방치하기에 이르렀고, 전투 외에는 그 흔한 캐빨 컨텐츠도 몇 개월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하는 수준이었다.

그나마의 전투도 직관적이지 못하고 엉망진창이었지.

 

그런 게임에서 내가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겠나. 

나는 고개를 푹 숙였고, 아버지의 날카로운 눈빛은 내 정수리를 때렸다.

 

 

 

“... 아들아.

현실을 봐라.”

 

 

 

그리고 그 눈빛은 하나의 문장으로 내 머리 속에 파고 들었다.

 

 

 

“네 능력이 뛰어나단 건 알고 있다. 솔직히 이젠 무슨 게임을 하든 엄마 아빠 허락을 받을 나이는 지났지.

하지만 그렇다고 네가 우리 자식이 아니란 뜻은 아니다.

부모로서 네가 그런 게임을 하겠다고 하면 막아야 하는 게 도리이지 않겠느냐?”

 

“... 그렇겠죠.”

 

“게임성도 좋지 못해, 과금 구조도 단조롭기 그지 없어.

그런 게임을 회사가 만들고 유지하려면 유저들을 끌어 모을 어트랙션이 있어야 하는데, 십중팔구는 선전성을 이용하기 마련이지.

캐릭터들 옷을 다 벗겨놓는 것만큼 이목을 집중시키기 쉬운 건 없으니까. 내 말이 맞지 않느냐?”

 

“맞습니다...”

 

 

 

어머니께서 옆에서 내 손을 꼭 잡으시며 걱정스러운 듯이 반개한 눈으로 나를 위로하셨다.

 

 

 

“아들, 혹시 요즘 뭐 힘든 일 있어?

왜 굳이 그런 걸 하겠다고 엄마 아빠한테 얘기를 해? 도와달라는 무언의 압박이야?”

 

“아... 아뇨. 그런 건 아니고...”

 

“그러면 엄마가 다른 게임 추천해줄까?

왜, 엄마 후배들 중에 재미있는 게임이라고 엄마한테 추천해주는 친구들이 있는데 너도 마음에 들 거야.

나름 잘 나가는 아이돌들이니까 같이 게임하면서 친해질 수도 있을 거고.”

 

“엄마 말씀도 잘 생각해봐라.

굳이 그런 게임이 아니더라도 네가 할 수 있는 건 얼마든지 많다. 네가 소비자니까 말이다.”

 

“... ...”

 

 

 

나는 들고 있는 젓가락을 테이블 위해 천천히 내려 놓았다.

 

직접 뽑은 밀떡, 수제 소세지, 훈제 베이컨, 고급스러운 재료가 잔뜩 들어간 로제 떡볶이가 눈 앞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어머니가 직접 고른 인테리어 회사가 깐 대리석 바닥. 50평 가까이 되는 고급 아파트와 함께 앉아 이야기할 수 있는 여유.

 

축복 받았다고 말하기 부족함이 없는 삶에서 낡고 금이 간 통발폰만이 말없이 화면을 반짝거렸다.

 

 

 

“아들. 그럼 왜 그 게임이 하고 싶은지 이유라도 말해봐. 아들이 자꾸 이러면 아빠도 그렇고 엄마도 그렇고, 괜히 걱정하게 되잖아.”

 

“하고 싶은 이유...”

 

 

 

잘 기억나지 않는다. 나조차 이걸 붙들고 있게 됐을 땐 그저 삶의 일부처럼 변해버린 뒤였으니까.

 

그래도 굳이 하나를 꺼내자면 내가 이 게임을 하게 된 이유는 이것이었다.

 

 

 

“... 이 캐릭터들이 좋아서요.”

 

“응?”

 

 

 

단지 예뻐서 좋았던 것이 아니다. 그저 야했기 때문에 좋았던 것도 아니다.

 

어딘가에 이 아이들이 살아 숨쉬고 있다면, 그렇게나 나를 좋아해주는 아이들이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다면,

그냥 그것만으로도 나는 행복했다.

 

그래. 언제부턴가 나는 이 아이들을 사랑했다.




"... 하하하."




하지만 돌아오는 부모님의 반응은 냉담하기 그지 없었다.

 

 

 

“하하하! 우리 아들이 그런 캐릭터를 좋아한다고?

아들이 누굴 닮아서 그런지 농담도 참~ 잘해. 맨날 여자애들 카톡이 쌓인다고 불평하던 놈이 뭔 바람이 불어서 그래?”

 

“하하하! 그럼 너 좋다고 따라다니던 여자애들은 어쩌냐? 게임 캐릭터들보다 매력이 없다는 얘기가 되는 건데?

그 중에 배우 지망생도 있었던 거 기억 안 나니? 네 전여친 말이야.”

 

“그리고 이 핸드폰은 뭐니? 액정도 다 깨졌고 낡기는 또 엄청 낡았네.

혹시 핸드폰 바꿔달라고 이런 시위를 하는 거야? 호호, 우리 아들이 또 이런 귀여운 면모가 있다니까?”

 

“가족 사이에 이런 건 그냥 부탁해도 될 텐데 말이지.

아들. 다음부터 핸드폰 바꾸고 싶으면 이렇게 분위기 잡지 말고 그냥 아빠한테 말을 해. 알았지?”

 

"하하하!"


"하하하!"


 

 

마치 우습다는 듯이 웃음을 터트리시는 부모님. 웃음의 장조는 단조로운 비명처럼 울려 퍼져 내 머리 속을 집어 삼켰다.


어머니께서 탁자 위의 통발폰을 물끄러미 바라보시며 다시 한 번 웃으셨다. 아버지 역시 그러셨다.

 

알 수 없는 일렁임이 속을 타고 흘렀다.

심장의 혈관 하나 하나가 바짝 솟구치는 듯한 이질감. 시신경이 타오르는 듯한 어색함이 내 시야를 점점 잠식하기 시작했다.

 

왜? 대체 왜?

내가 바라는 것들이, 우스우신 걸까? 내가 이런 캐릭터를 좋아하는 게 정말 저렇게까지 웃길 일일까?


운명의 장난인지 고개를 떨군 채 조용히 시선을 돌린 곳에는 작은 나무 십자가가 하나 걸려 있었다

.

예수님. 당신도 제가 이 아이들을 사랑하는 게 우습게 보이시나요?

인간이 자신이 만든 피조물을 사랑하는 게 저렇게나 웃음 받을 일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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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아들 덕분에 간만에 웃었네.

그래도 아들아. 잊지 말고 들어라.”

 



눈물이 날 정도로 웃으시던 아버지께서 한순간 정색을 하시며 입을 때셨다.




“이젠 좀 어른이 되라. 이상한 짓 하지 말고.”

 

 

 

그 순간, 내 팔 위로 소름이 쫙 돋았다.

 

마치 아버지가 아닌 무언가가 내 아버지를 연기하고 있다는 꺼림찍함.

빙그레 웃으며 올라간 아버지의 입꼬리가 살아 움직이는 괴물의 꼬리처럼 살랑거렸다.

 

 

 

탁!

 

“아들아? 어디 가니!”

 

 

 

나는 재빠르게 통발폰을 손에 쥐고 자리를 박차고 나았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콰과과광!!!


'레이저 광선...?'



 

도시 저편에서 거대한 폭격음이 터져 나왔다. 하늘 위로 한 줄기 푸른 직선이 거칠게 휘둘러졌다. 

마치 무언가가 침공해오는 듯이...

 

 

 

“어머, 어디서 폭죽 놀이를 하나 봐요. 여보.”

 

“그러게 말입니다. 오랜만에 밥 먹고 산책이나 갔다 올까?”

 

‘... 뭐?’

 

[몰입도가 하락합니다.]

 

[몰입도: 59%]

 

 

 

... 폭죽? 저게 폭죽이라고? 

미친 게 분명하다. 한 번 터지고 마는 폭죽 소리와 달리 지금의 굉음은 일말의 텀도 없이 끊이지 않고 이어진다.

 

동굴 벽을 굴삭기가 뚫고 지나가는 듯이 떨리는 소리. 하늘의 노을마저 굉음의 진동에 일렁이기 시작했다. 

 

나는 도망치듯이 집 밖으로 달려 나갔다.

 

 

 

“하아... 하아... 이게 대체 무슨...?”

 

 


집 밖, 아파트 1층으로 내려온 내 눈 앞에는 이해할 수 없는 광경이 펼쳐졌다.

 

 

 

“글쎄, 106호 엄마가 이번에 3살 딸을 영어 유치원에 보냈다네?”

 

콰과과광!!!!

 

“어머, 영어 유치원이면 그 대치동에 있다는 거기?

아휴, 능력도 좋지. 거기 대기열이 얼마나 긴데 어떻게 들어갔나 몰라~”

 

콰과과과광!!!

 

“그 엄마 남편이 대치동에서 학원 강사를 한다잖아~ 마침 거기가 또 아는 사람이 하는 데라고 하더라고.”

 

콰과과광!!!

 

“그래? 그럼 이번에 우리도 한 번 부탁 좀 해볼까? 진우 엄마가 106호랑 친하니까 어떻게 줄 좀 놔주면 안 돼?”

 

콰과과과과광!!!!

 

 

 

평화로운 공원. 너무도 이질적이게 평화로운 세계.

 

도시를 폭격하는 소리가 몇 분째 지속되고 있지만 주변에 있는 어느 누구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이어폰을 끼고 조깅하고 있는 사람도, 친구들과 풍선을 들고 뛰놀고 있는 어린아이들도, 그런 어린아이를 조금 떨어진 곳에서 보고 있는 학부모들도.


아무도 저 굉음에 눈길 하나 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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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입도: 50%]

 

 

 

그 순간, 다시 한 번 머리 속에 이명이 들려오기 시작한다.

 

“주인님. 사랑합니다.”

“각하, 스틸라인은 각하의 말씀만을 따릅니다.”

“달링, 오늘은 뭐 하고 지낼 거야?”

 

전보다 훨씬 진해진 이명들.

하지만 그것들은 비명이 아니라 달콤한 사랑의 말이었다. 비명보다 더욱 끈적하게 나를 잡아당기는 족쇄였다.

 

 

 

“뭐야... 대체 무슨 일이냐고...!!”

 

 

 

세상이 미친 걸까? 아니면 나만 미쳐버린 걸까?

 

하늘이 파도를 치는 듯이 일렁거렸다. 완벽한 원을 자랑하며 지평선에 걸려 있던 노을은 이제 산산이 부숴지기 시작했다.

 

 

 

[몰입도가 하락합니다.]

 

[몰입도: 45%]

 

“아냐... 아냐!! 나는 사령관이...!!”

 

 

 

미친 듯이 달렸다. 등에 땀이 흐르는 것도 잊은 채, 나는 발걸음을 땅으로부터 때어냈다.

벅차 오르는 숨이 가빴다. 허파가 터질 것처럼 부풀었다. 심장은 이전에 비할 바 없이 세차게 뛰었다.

온 몸의 혈관이 살기 위해 몸부림쳤다. 내가 미친 게 아니란 걸 증명하기 위해.

 

하지만 하늘이 돈다. 땅이 움푹 패였다. 길거리의 고양이가 기묘한 원형을 그리며 늘어지기 시작했다.

세련되게 정돈된 가로등이 이리저리 구부러졌다. 높다란 호텔이 누군가에게 접히듯이 고개를 숙이고 옥상을 도로에 맞붙였다.

 

 

 

[몰입도가 하락합니다.]

[몰입도가 하락합니다.]

[몰입도가 하락...]

 

[경고! 경고! 심각한 몰입도 하락 발생!]

[시나리오 강제 개편 코드를 활성화합니다!]

 

[CODE – DEUS EX MACHINA. 인증됨 - 권한 확인 완료.]

[몰입도가 강제로 상승됩니다!]

 

“그만!! 제발 그만하라고!!!”

 

 

 

머리 속이 찢어질 것처럼 아파온다. 보이지 않던 푸른 홀로그램 창이 어느새 내 머리 속을 헤집고 다녔다.

 

홀로그램의 뾰족한 모서리가 뇌의 주름을 타고 긁어 내리는 듯한 격통.

나는 바닥에 주저 앉은 채 이 기괴한 아파트의 입구로 도망치듯이 기어갔다.

 

 

 

“뭐야... 대체 나한테 원하는 게 뭐길래 이러는 건데...!!”

 

 

 

두려웠다. 세상이 반으로 찢기는 것처럼 기괴하게 뒤틀렸던 빌딩과 고양이와 사람들이 두려웠다.

 

하지만 그보다 더욱 무서웠던 것은, 그것들이 점점 두렵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이 뒤틀림마저 당연하게 여겨지는 내가 무섭다. 심지어 내 등 뒤의 광경은 어느새 일요일 저녁의 일상을 아무렇지 않게 그리고 있었다.

 

방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뛰노는 아이들과 그들을 보며 빙긋 웃는 부모들.

뒤틀린 세계의 경계면이 등 뒤에서 천천히 나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그 경계가 나에게 닿지 않게 하기 위해 미친 듯이 입구를 향해 기었다.

 

 

 

“오... 오라버니...?!”

 

 

 

그 때, 입구에서 쭈구려 앉은 채 날 기다리고 있던 메리가 보였다.

 

다른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그림자 속에 숨어 온 몸을 검게 칠한 메리. 

그녀는 나를 발견하자 얼굴에 묻은 물감을 닦을 새도 없이 나에게로 달려오기 시작했다.

 

 

 

“오라버니! 이게 대체 무슨 꼴이에요!

걱정돼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여기가 갑자기... ... 오라버니!”

 

“어... 어...?”

 

 

 

하지만 그보다 경계면이 나에게 닿는 속도가 더 빨랐다.

 

내 발 끝에 무언가가 턱, 하고 걸리는 느낌이 신경을 타고 흘렀다.

그 순간 내 눈 앞으로 푸른색 머리카락이 한 올 흩날렸다.


이윽고 한 여성의 잔잔한 음성이 들려왔다.

 

 

 

[CODE – DEUS EX MACHINA]

 

“돌아가지 마세요... 현실을 보지 마세요...”

 

[몰입도가 급격하게 상승합니다!]

 

“그곳엔 고통 밖에 없답니다...”

 

 

 

푸른 단발을 하고 있는 한 여인의 형상이 나를 조심이 끌어 안았다.

 

내 어깨를 타고 넘어 천천히 나를 감싸 안는 누군가.

어딘지 모르게 익숙한 이 홀로그램은 고혹적인 손놀림으로 내 몸을 경계선 뒤로 끌어 당겼다.

 

 

 

“더 많은 재물을 드릴게요... 더 많은 명예를 드릴게요...”

 

“더 많은 여인을 지배하게 해드릴게요...”

 

“그러니 부니... 제 낙원이 망가지지 않게 해주세요.”

 

[몰입도가 급격하게 상승합니다!]

 

[몰입도: 79%]

 

 

 

매혹적이지만 단호한 그녀의 손가락.

 

나는 직감했다. 이대로 저 너머로 끌려가게 된다면 두 번 다시 돌아올 수 없을 것이란 것을.

 

 

 

“메리!”

 

 

 

그래서 마지막 남은 힘을 다해 그녀를 불렀다.

 

내 몸이 아직 전부 넘어가기 직전, 메리의 달음박질은 내 앞에서 멈췄다.

 

 

 

“오라버니! 가시면... 가시면 안 돼요! 그건 마키나의...”

 

“키스해!”

 

 

 

그 방법 밖에 없다.

 

 

 

“네? 그게 무슨-“

 

“빨리! 이대로 가면 내가 다시 미쳐버릴 지도 모른다고!

네가 말했잖아! 잠자는 숲 속의 공주님을 깨울 방법은 키스 밖에 없다고!”

 

 

 

숨을 한 번 들이마실 때마다 몸 속이 억지로 차분해진다.

여름 밤에 나는 느슨한 풀냄새가 내 어지러운 마음을 힘으로 찍어 누르고 있었다.

 

점점 늘어나는 푸른 단발의 아가씨들이 내 사지를 결박하고 나를 뒤로 끌어 당겼다.

움직이긴커녕 손가락 하나 꼼짝할 수 없을 만큼, 그녀들은 나에게 절박하게 달라 붙었다.

 

그럼에도 나는 왠지 모르게 이 상황의 유일한 해법이 메리의 키스라고 생각했다.

아니, 알고 있었다. 그게 답이라는 것을.

 

 

 

“... 알겠어요!”

 

 

 

메리가 내 얼굴을 손으로 감쌌다.

그 탓에 반쯤 경계선을 넘어버린 메리의 손에서 붉은 스파크가 일었다.

 

 

 

[CODE – MARY SUE 가 CODE – DEUS EX MACHINA 와 반발합니다!]

 

 

 

고통에 일그러지는 메리의 얼굴. 하지만 그녀는 나를 향해 웃으며 천천히 입을 가져다 대었다.

 

 

 

“이번에는 두 번째니까 안 봐주고 할 거에요!”

 

“얼마든지.”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메리가 나에게 입을 맞췄다.

 

빠르게, 급하게, 어리숙하기 그지 없는 솜씨로 그녀는 내 입술을 비집고 자신의 혀를 집어 넣었다.

 

 

 

[CODE – CoC]

[MARY SUE와 접촉에 성공했습니다.]

 

[해당 시나리오의 ‘전형적인’ 행동 패턴을 산출합니다.]

 

 

 

그래. 저 시나리오. 

지금껏 잊고 있었던 것이 바보 같게 느껴질 만큼 나는 이 시나리오의 이름이 뭔지 알고 있었다.


낙원으로부터 온 초대장.

내 등 뒤에서 날 붙잡고 있는 것은 마키나였다.

 

 

 

‘오라버니! 제발... 제발 깨어나주세요...!’

 

 

 

메리의 간절한 속마음이 그녀의 혓바늘을 타고 내 몸 속에 흘러온다.

그에 순응해주기 위해 나는 지금 움직일 수 있는 유일한 것에 힘을 주었다.

 

 

 

[혀를 집어넣는다.]

 

 

 

내 혀가 메리의 입 속으로 들어갔다.

천천히, 네가 놀라지 않게, 끈적한 타액을 교환했다.

 

나와 메리의 혀가 교차할 때마다 나를 붙들고 있던 마키나의 환상들이 거두어졌다.

내 오른팔이 먼저, 그 다음은 왼팔과 오른 다리가.

마지막으로 왼 다리와 허리를 붙잡고 있던 마키나까지 하늘의 가루로 천천히 사그라들었다.

 

 

 

“... 츄읍... 츕... 오라버니... ...”

 

 

 

눈을 꼭 감은 채 어색한 솜씨로 내 입천장을 간지럼 피는 메리.

 

그 모습이 마치 잠에 든 오라비를 깨우는 여동생 같이 귀여웠다.

자유로워진 두 팔로 그런 메리의 허리를 조심이 껴안아 끌어 당겼다.

 

숨 쉬는 것조차 까먹고 나에게 안겨 있던 메리는 얼굴이 잔뜩 부풀어 오를 때까지 키스를 하다가 푸하, 하고 입을 때었다.

우리의 입술 사이의 길게 늘어진 은빛 실타래들을 보며 메리는 뺨을 붉혔다.

 

 

 

“오라버니...?

여... 역시 이렇게 야한 방법으론 오라버니를 구해드릴 수 없는 걸...”

 

“내가 아는 메리였다면 이쯤에서 변태, 저질이라고 잔뜩 놀려댔을 텐데.”

 

“오... 오라버니...?”

 

 

 

내 말에 어안이 벙벙해진 메리가 동그랗게 뜬 눈으로 나를 올려다 보았다.

 

 

 

“깨어... 나신 건가요...?”

 

 

 

대답하는 대신, 나는 빙그레 웃으며 메리와 함께 경계선 너머로 살며시 뛰어 올랐다.

 

우리가 넘어오자 다시 세계를 뒤덮기 시작한 경계선. 이제 노을은 하늘 아래에 온전한 원형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우리는, 메리를 껴안고 있는 나는 돌아오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돌아왔다고 해야 할까?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 지 감이 잘 잡히지 않는다.

 

 

 

“오... 오라버니...

... 히끅! 제가... 제가 오라버니 구해드리려고 얼마나 고생을... 히끅!”

 

“그래 그래. 다 알지. 내가 다 알아.

내가 우리 메리를 얼마나 좋아하는데 그걸 모르겠어?”

 

“오라버니... 히끅...! 나... 나 엄청 힘들었는데... 흐아아앙!”

 

 

 

메리는 자신의 품 안에 있던 팔레트가 떨어지는 지도 모르고 나에게 안겨 마냥 울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떨어진 수많은 그림들.

미호, 리앤, 마리, 레오나... 게임 속의 일러스트를 그대로 따라 그린 그림들이 팔레트와 함께 우수수 떨어졌다.

 

 

 

“오라버니... 히끅... 오라버니가 만약 못 깨어나면 보여드리려고 열심히 그렸는데... 히끅...

전에 못 일어나신 게 제가 키스를 너무 못해서 그런 거라 생각해서 그랬던 건데... 흐아앙!”

 

“미안해. 메리를 봤을 때 내가 멋지게 일어났어야 했는데 못 그랬네.”

 

“흐아아아앙! 오라버니이!!”

 

 

 

울고 있는 메리를 천천히 쓰다듬으며 나는 눈 앞에 떠있는 홀로그램 창을 바라보았다.

 

 

 

[몰입도: 0%]

 

 

 

이제 일어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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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에피소드에서도 특이한 인물이 하나 나올 예정입니다.

하지만 이미 떡밥은 겁나게 뿌려놨지.


나도 메리랑 거칠게 서로 혀를 집어넣고 싶다.



아무튼

절대 애 호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