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그쪽 세계로 가겠다, 사령관txt] 모음집 - 라스트오리진 채널 (arca.l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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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방에 7인의 거물들이 모였다.

닥터, 아스널, 무적의 용, 알파, 홍련, 라비아타, 그리고 요안나.


"다들 반가워."

"안녕하세요, 주인님."


라비가 가장 앞서서 인사를 건넸다.


"주인님의 종, 라비아타에요."

"라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라비가 칼을 겨누었던 건.

몇 가지 법칙에서 벗어나 있던 그녀가,

게임 속 사령관이 진짜 인간이 아님을 느낌으로나마 간파했던 게 아닐까?


"와줘서 고마워."

"후훗."


라비는 싱긋 웃으며 한 발 물러났다.


"어때 오빠?"


닥터가 말한다.


"첫만남이 가장 중요하니까, 성장약을 먹고 왔는데."

"예뻐."

"그게 끝? 섹시하지는 않아?"

"하하하."


그는 웃음으로 넘겼다.

하지만 그의 몸에서 가장 솔직한 부위는 반응이 있었다.


"앗, 오빠 얼굴 빨개졌네? 좀 더 봐도 돼. 후후."


닥터와 미소를 나누는데 옆에서 지긋한 시선이 느껴졌다.


"음.. 홍련? 왜 그래? 나 어디가 이상한가?"

"아, 아닙니다, 사령관님.... 그저.... 음....."

"주인님의 아름다운 모습에 넋을 잃으셨군요."


알파가 웃으면서 다가와 옆에 섰다.


"확실히. 이런 모습이라면 넋이 나가실 만도 하네요."


알파가 그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말한다.

살짝 숙인 허리.

몸의 움직임에 따라 떨리는 가슴.

가히 충격적인 비주얼이었다.

옷을 입고 있는데도 너무 야했다.


"알파...."

"네, 주인님. 레모네이드 알파. 당신의 뜻을 따르겠어요."


그녀가 획득 시 대사를 읊으며 윙크했다.


"반나서 반갑소, 주군."


마지막으로 요안나가 인사를 건넨다.

하지만 어쩐지, 그녀는 게임 속처럼 쾌활하지 못했다.

웃고는 있지만.....

그녀의 미소는 어딘가 아련했다. 


"주군의 방패로써 임무를 다하겠소. 무엇이든 맡겨주게나."

"응."

"자, 주군."


용이 말한다.


"어제 둠브링어와는 좋은 시간을 보냈다고 들었소."


단둘이 있는 자리가 아니라 그런지,

서방님이 아니라 본래의 말투를 쓰고 있었다.


"응."

"듣기로, 화장실에서 한국인을 만났다고 들었소만."

"맞아."

"그래서 말인데, 주군을 부르는 이름을 정하려고 하오."

"이름?"


무용이 고개를 끄덕였다.


"바깥에서도 사령관이라 할 수는 없으니.

간단하게 부를 수 있는 이름을 지으려 하오."


"아하."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그런 것 치고는 많이 왔네? 얼굴 보려고 온 거야?"


"모든 대원들의 의견을 듣고 싶지만

그렇게 하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릴 것 같았어요.

대부분의 인원이 아직 여유롭지 못한 시기여서..

모두의 동의를 받고 저희가 왔어요, 주인님."


라비였다.


"정확히는 라비아타가 결정할 거다.

사실, 우리는 그대의 이름이 무엇이든 상관없다.

원래부터 이름으로 부르지 않았으니까.

그대가 사령관을 지칭했을 때 내가 지적하지 않은 것도 그 때문이었다."


아스널이 설명했고,


"하지만 현실에서 활동할 때에는 아무래도 이름이 정해진 것이 편리합니다.

그래서 저희가 증인인 겸, 사령관님의 새로운 탄생을 축하 드리기 위해 왔습니다."


홍련이 마무리했다.


"새로운 탄생이라니?"

"그대여."


아스널이 다가와 어깨를 짚었다.


"그대는 말을 삼켰으나, 우리도 눈치가 있다."

"......"

"그대는 과거와의 고리를 끊고 싶어했지."


사령관은 묵묵히 듣는다.


"우리는 강제로 그대의 과거에 개입하지 않을 거다.

그대가 해결된 일이라고 말하면, 그걸로 끝난 일이니까.

다만, 과거를 끊으려면 확실히 하는 편이 낫지 않겠나?"


"흐음....."


그는 천천히 고개를 주억인다.

대충 어떤 느낌인지 감이 왔다.


"그러니까 오늘 이 자리에서."


그가 고개를 들어 모두를 본다.


"이름부터 새로 시작하자는 거지?"

"바로 그렇다."

"혹시... 가짜 신분증을 만드는 거야?"


그는 알파와 닥터를 보며 말했다.

저 둘이 있다면 간단한 일일 터.


"네. 언젠가는 가짜 신분이 필요해질 때가 올 거예요.

그럴 수밖에 없어요.

다른 누구도 아닌 펙스와의 전쟁이니까.

아마 이름도 여러 개가 필요할 텐데,

메인으로 사용할 이름을 지금 지어드리려고 해요."


알파가 말했다.


"스파이가 된 것 같은 기분이네."

"후후후. 혹시 꺼려지신다면, 다른 방안을 찾도록 할게요."

"아냐, 해야한다면 어쩔 수 없지."


알파가 한 말은 구구절절 맞는 말이었다.

가짜 신분은 필요하다.

다만.....

존 제임스 엠페러 같은 식이면 곤란하다.


"메인으로 쓸 건 한국식 이름이지...?"

"네, 주인님."


라비가 대답했다.


"어떤 이름을 준비했어?"

".....마음에 드실지 모르겠네요. 일부로 무난한 이름을 택해서..."

"뭐든 좋아."


'내 본명만 아니라면.'


그는 그 말을 마음속으로만 삼켰다.


라비가 바로 말한다.


"지훈."

"지훈?"

"네. 마음에 드시나요?"


지훈.

무난하고 평범하고, 부드러운 이름이었다.


"마음에 들어."

"후후후."


라비가 웃는다.


"자, 그럼 지훈님. 한잔 하실까요?"


그녀들이 술이 잔뜩 담긴 봉투를 들었다.


"어.... 탄생을 축복해준다는 거 아니었어?"

"한국만의 문화가 있잖아요."

"음....."








"술이 들어간다, 쭉쭉쭉쭉~!"


분위기가 후끈 달아올랐다.

가지각색인 대원들이 원 모양으로 둘러앉아 술게임을 진행하고 있었다.


"흥."


유일한 한 명. 닥터만 술을 마시지 못했다.


"미안, 닥터. 여기서는 진짜 범죄라서."

"흥....."


닥터는 홀로 의자에 앉아 다리를 꼬고 쥬스를 마시고 있었다.


"하하...."

"닥터. 그럼 게임이라도 같이 하지 않겠나?"

"아냐... 가짜 신분증도 만들어야 하고... 흥...."

"삐쳤군."

"삐쳤소?"

"삐쳤네요."

"삐치셨습니까?"

"아 그만해! 확 삐뚤어진다!!"

"꺄악! 공포의 닥터닥터맨이다!!"

"디스트로이... 애브리띵....!!"


닥터의 흑화로 분위가가 더욱 달궈졌다.


"아하하!"


TV나 유튜브로만 봤던 술판.

소소하지만 사소하지 않은 이런 일상이 손에 닿은 것은...

그에게 있어 기적이었다.


"주군!"


요안나가 잔뜩 취해서는 일어섰다.


"짐이랑 러브샷을 해주씨오! 어서! 어서 해줏씨오!!"

"러브샷! 러브샷!!"


대원들의 환호 속에서 요안나와 러브샷을 한다.

폭탄주를 원샷하며 잔을 비운 그는,

아직 입에 술이 남았을 때 요안나를 품에 껴안으며 거칠게 키스했고,

그녀와 함께 입안에 있는 술을 나눠 먹었다.


"읏.... 으읏...!"

"기분 좋았어? 혹시 거북했다면 정말 미안..."

"하..."


요안나가 뭐라고 말한다.


"하, 한 번 더 해줏씨오.. 어서...!"

"헤헤."


술이 들어간다, 쭉쭉쭉쭉.

한 잔, 두 잔.

마시자, 마시자.

전부 다 마셔버리자.




그렇게 몇 시간이 지났을 때였다.


"자장, 자장, 우리 아가."


고요한 노랫소리.

사령관은 몽롱한 정신으로 주변을 훑는다.

흐릿한 시야 사이로 그를 내려다보는 누군가의 실루엣이 보였다.


'라비....?'


그는 무릎베개를 한 채 누워 있었다.

라비아타가 그의 머리칼을 쓰다듬으며 자장가를 부르고 있었다.


"으음...."


사령관이 완전히 잠든 후.


"이제 가시는 것이오?"


무용이 라비아타에게 물었다.


"네."

".....진정 그리하시겠소? 그대가 모든 걸 짊어질 필요는 없소."

"전 제 나름대로의 정의와 기준으로 행동하는 거예요."


라비가 웃으며 말한다.

그녀는 잠든 사령관의 목 뒤에 진짜 베개를 놔주고 일어섰다.

그녀의 옆에는 요안나가 서 있었다.


"앞으로 오르카호의 전력은 반으로 나누겠어요.

제가 저쪽에서 사령관님을 대신해 절반의 병력을 통솔할게요.

저와 요안나를 주축으로 공격과 방어를 나누고.

필요에 따라 병력을 교환하는 식으로 해요."


"....라비, 요안나. 그대가 모든 걸 짊어질 필요는 없소."

"병령은 교환할 수 있어요. 인수인계가 빠르니까."


라비가 단호하게 말한다.


"하지만 지휘관은 교체돼서는 안 돼요. 특히 총사령관은.

모든 것을 보고 판단해야 할 자리가 계속 바뀌었다가는.

나날이 강해지는 철충의 공격에 제때 대응할 수 없어요.

또, 저는 사령관님이 오시기 전까지 모두를 이끌었던 몸.

누구보다 잘 해쳐나갈 자신이 있어요."


"......."

"부디, 지훈님을 부탁 드릴게요."

".......알겠소."

"흐음."


아스널이 양반 다리를 하고 앉아서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허면, 왜 지금 돌아가는가? 아직 시간은 남았을 터.

당장은 레오나와 칸이 저쪽을 지키고 있다.

5분이라도 더 있다가 가는 것이 낫지 않겠나?"


".....그러는 편이 지훈님께 더 좋을 거예요.

이미 가족과 관계가 단절된 분이시라면,

헤어짐의 아픔 또한 잘 알고 계시겠죠.

저는 저 분에게 마음의 짐을 안겨드릴 수 없어요.

그러니 여러분. 부디 이 일은 비밀로..."


짝!


이마를 때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으...."


아스널이 사령관의 마빡을 때렸다.


"뭐, 뭐 하는...! 아스널 준장..!"


무용이 깜짝 놀라서 외치는데,

아스널은 아랑곳하지 않고 사령관을 마구 흔들어 깨웠다.


"일어나라, 그대여."

"으, 으응!?"

"너를 위해 희생하려는 자가 있다. 마지막을 배웅해주는 정도는 해줘야지."

"희생...?"


사령관이 순식간에 정신을 차렸다.


"무슨 말이야, 희생이라니?"

"아스널 준장......"


라비가 살짝 미간을 좁히고 그녀를 본다.

아스널은 여유로웠다.


"그늘 속에서 활약할 이유가 전혀 없다.

그대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어떤 고생을 하며 얼마나 노력하는지.

그걸 알리는 것이 왜 부끄러운 일이지?

나였으면 그러그러하니 예뻐해주세용~ 하고 들이댔을 터."


".....!"


요안나와 라비가 움찔했다.


사령관은 잠깐 그녀들의 대치 상황을 보며 상황을 판단한다.

그가 내린 결론은 이러했다.


"라비."

"네, 주인님...."

"각자가 생각하는 게 다른 건 어쩔 수 없어."


라비가 무언가를 숨기려 한다.

예전에, 칸에게 그가 현실을 숨길까 말까 고민 했던 것처럼.


"하지만 나도 아스널과 생각이 같아.

말해줘, 네가 뭘 하려는 거고, 앞으로 어떻게 되는지."


".....이 세계에는 이런 농담이 있더군요."

"어떤?"

"플라잉 더치맨에는 항상 선장이 필요하다."

".....!"

"저는 결코 주인님의 곁을 떠나려는 게 아니에요."


라비가 다가와서 미소와 함께 그의 손을 잡았다.


"숨기려 했던 이유는 주인님께 부담을 드리기 싫어서 그랬어요."

"..부담이야 느끼지."


그는 솔직히 말한다.


"하지만 내가 부담감을 느끼는 것보다, 너에 대한 감사가 더 커.

솔직히, 난 아무 능력도 없어.

너희가 날 위해 모든 걸 희생하며 노력해줄 때,

내가 할 수 있는 게 응원하는 것 밖에 없어.

하지만 라비... 그거라도 할 수 있어서 다행이야."


그는 진심으로 아스널이 깨워준 것이 감사했다.

이대로 응원 한 마디도 없이 헤어진다는 건....

라비에게 너무 가혹했다.


다만, 가지 마라느니, 다른 방법이 있을 거라는 등,

무책임한 소리를 늘어놓을 정도로 멍청하지도 않았다.

반대로, 그는 그런 결단을 내린 라비의 선택을 존중해주고 싶었다.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걸 확실히 구분해야해.'


안 그러면 발목을 잡게 된다.

그가 할 수 있는 건 믿는 것이었다.


"능력 부족한 내가 미안해. 하지만 약속할게.

위협이 사라지고 자유로워지는 날, 가장 먼저 널 찾겠다고."


"후후후. 기뻐요, 주인님."


둘은 손을 맞잡고 미소를 교환했다.


"하지만 다시는 무능력하다고 자책하지 말아주세요."


라비가 살짝 눈에 힘을 주고 말한다.


"주인님에게 필요한 능력은 힘이나 천재적인 지휘 능력이 아니에요.

저희를 사랑해주시고 아껴주시는.....

멸망 전 인간과는 다른, 절대적인 선함이에요."


"선함....?"

"네."


라비가 다시 환하게 웃는다.

그뎌가 두 손으로 그의 손을 꼭 잡고 말한다.


"주인님은 그 누구보다 넓은 포용력을 가지셨어요.

저희는 무기이자 방패.

그러나 무기와 방패는 스스로는 설 수 없죠.

주인님이 저희를 사용하실 때 비로소 가치가 생기는 거예요.

그러니 주인님. 자책하지 마세요. 약속이에요?"


"응. 약속할게."

"반드시 저희의 오르카호를 지킬게요."

"널 믿어, 라비."

"감사해요. 저도 주인님을 믿어요. 이렇게 훌륭하신 분이니."


두 사람은 가벼운 키스를 나눈다.

그리고 라비가 물러난다.


"주군."


요안나가 다가왔다.


"요안나."

"짐은 길게 말하지 않겠소."


그녀가 그의 어깨를 잡았다.


"저쪽과 이쪽.

어느 쪽의 싸움이 먼저 끝날지는 모르오.

하지만 주군. 믿고 기다리겠소.

주군이 어두운 과거를 이겨내고 밝은 미래를 맞이하는 날이 올 것임을."


"요안나....."

"그러니 주군도 믿어주시오. 짐이 해낼 것임을."

"응. 믿어."

"고맙소."


두 사람은 서로를 힘껏 껴안았다.

물론, 키스도 함께.



그렇게 또 하루가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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