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어진 왕관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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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령님, 더 이상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 수고했다. 잠시 휴식을 취한뒤 다시 진군한다."


그렇게 말하며 레드후드는 바위 위에 걸터앉았다.

부관이 가져다준 물을 들이키며 그녀는 방금의 전투를 복기해보았다.


'예상대로 산에는 매복이 있었다. 예측가능한 기습은 기습이 아니지...'


'적의 지휘관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상당히 무능한 자로군. 복병의 배치가 형편없었어.'


'하지만 한 가지 이상한 점은, 복병들의 사기가 그리 높지 않았다는 것이다.'


'복병들의 위치를 생각했을 때, 습격을 감행한 병사들이 빠져나갈 길은 없다고 생각하는 쪽이 합리적이다.'


'그렇다면 일부러 패배하고 도망치려 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그럼 그 미지근한 습격은 뭐지?'


'어찌 되었건 간에, 복병이 있었다는 것은 아군의 진격 루트가 이미 발각되었다는 것이다.'


'산 아래로 내려가더라도, 병력이 대기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아. 골치 아파졌군.'


그렇게 휴식 시간이 지난 후, 레드후드는 일어나 외쳤다.


"자, 다시 진군을 개시한다."


'적이 어디에 있든 간에, 아군의 목적은 주의를 끄는 것이다. 시간만 벌면 그만이니 신경쓸 필요는 없다.'


그리고 자신이 직접 선봉에 나서 군을 이끌어 진격을 시작했다.



시간이 지난 후, 산에서 완전히 내려온 레드후드 앞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텅텅 비어있는 요새와 얼어붙은 것처럼 조용한 분위기만이 스틸라인을 반겨주고 있었다.


레드후드의 머리는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병력이... 없다. 무슨 일이지?'


'아군이 상당히 은밀한 기동에 공을 들였음에도 매복에 걸렸다. 그건 내부에서 샌 정보가 아니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야.'


'내부에서 정보가 새어나갔다고 한다면, 목적지로 향하는 루트 역시 적에게 알려져 있지 않을 수 없다.'


'이 요새만 돌파하면 공화국 내부 어디든지 침투할 수 있다. 그런데, 이곳이 비어있다?'


...


"발키리, 스틸라인의 구호를 기억하고 있어?"


"서서 죽는다...였던가요."


"그래. 서서 죽는 스틸라인이지."


"자, 그럼. 이제 그 구호를 현실로 만들어줄 시간이야."


"격발."


...


타다당!


총성이 울려퍼지며 레드후드의 생각을 끊었다.


"뭣, 매복이라고?"


'이런, 당했다! 땅 속에 매복이라니, 그런 말같지도 않은...'


레드후드가 당황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제국군은 앞으로는 빈 요새를 바라보며 뒤로는 산을 등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공화국군은 그 제국군의 양 옆의 땅 속에 숨어있었는데, 아무리 위장을 잘 했더라도 평소라면 발각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레오나는 자신이 짜 놓은 판 안에서 이 함정을 제대로 활용할 자신이 있었다.


'젠장, 그렇다면 숲에서의 복병은 미끼였군. 그 배치는 무능한 게 아니라, 우릴 안심시키기 위해 고의로 던져준 거였나?'


'아무리 전쟁이라고는 해도, 자기 병사를 사지로 내몰아 죽이는 방법으로 작전을 실행하다니, 제대로 미쳤군!'


속으로 욕을 씹어 삼키면서도, 수많은 전투를 거쳐 온 레드후드는 빠르게 판단을 내렸다.


"전군, 요새 안으로 들어간다! 달려라!"


레드후드가 깃발을 들어 올리며 선두에서 달려나가자, 제국군은 그 뒤를 따랐다.

요새로 들어가던 도중 몇몇 병사가 낙오되어 적진 가운데에 갇히게 되자, 레드후드는 급히 병사를 나누어 그들을 구해 돌아왔다.


"제길, 병력이 많이 상했군..."


"대령님, 요새 안에는 예상대로 아무런 물자도 남아있지 않습니다."


"그래. 우리가 가져온 보급품이 있으니, 3일 정도는 버틸 수 있겠군..."


그때, 멀리서 큰 소리가 들려왔다.


"레드후드ㅡ 나와봐라ㅡ!"


그 소리를 들은 레드후드는 요새의 위로 올라가 밖을 살폈다.

방금의 전투로 인해 흐른 피가 땅을 끈적하게 적시고, 그 시신들이 쌓여있는 풍경을 본 레드후드는 참담한 기분이 되었다.


"내 부족함이 저 수많은 병사들을 죽였군... 미안하다."


그렇게 읊조린 후 주변을 둘러보는데, 아래에는 차가운 미소를 짓고 있는 레오나가 보였다.


"오랜만이네, 레드후드."


"이런, 반란군의 수괴께서 여기까지 행차하셨군. 나에겐 무슨 볼일이지?"


그녀는 차갑게 대꾸했으나, 레오나의 표정에는 일말의 변화도 없었다.


"그 딱딱한 성격은 여전하네. 얌전히 투항하는 게 어때? 그 안에 아무것도 없다는 건 서로 잘 알텐데?"


"내가 너같은 냉혈한으로 보이나? 방금 전투에서 목숨을 잃은 영령들이 지금 내 옆에 있다. 마땅히 너를 죽여 그 원한을 갚아야 하지 않겠나?"


"말이 안 통하면 어쩔 수 없지. 며칠 뒤에도 그렇게 말할 수 있나 보자고."


그 말을 끝으로, 다시 한 번 격렬한 전투가 이어졌다.


그러나, 요새는 요새였다. 쉽사리 함락되지 않는 요새의 모습에 전투는 잠시 소강상태에 들어서게 되었다.


'여기서 오래 버티긴 힘들겠지만 괜찮다. 시간을 끌기에는 요새가 오히려 더 좋을수도 있어.'


'이쪽의 소식이 끊겼으니 본부에서도 이변을 알아차렸겠지. 지원군이 도착할 것이다.'


'내가 미끼부대를 이끌고 있으니, 본대는 대장님께서 직접 지휘하고 계실 것이다.'


'적의 주력이 여기 묶여있다면, 대장님이 목표하신 바는 훨씬 쉽게 이루실 터.'


'양동작전이 성공해 목표가 달성된다면, 적 역시 병력을 나누어 대처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병력이 분할되어 이쪽의 포위망이 약해진 순간, 지원군의 도움을 받아 이곳을 탈출한다.'


'그때까지, 조금만 더 여기서 버티면 된다.'


"전군, 모두 힘들겠지만 조금만 더 힘을 내라! 지금쯤 본대가 우리를 지원하러 오고 있을 것이다."


"본대가 도착하면 저 반란군 놈들을 모두 죽이고, 돌아가 영광을 누리자!"


본대가 온다는 말은 비록 거짓이었지만, 그녀의 그 말은 침체되어 있던 제국군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그렇게, 하루가 저물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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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입니다.

레드후드는 병사들에게 거짓말을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지만,

거짓말이라도 해서 사기를 끌어올려야만 버틸 수 있고, 버텨내야만 모두가 살아나갈 수 있기에 거짓말을 했습니다.

하지만,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 자체에는 죄책감을 느끼고 있을 것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연재가 하루 늦어졌습니다. 자고 일어나보니 이미 하루가 다 지나 있더군요. 죄송합니다.

늦어진만큼, 평소보다는 분량이 조금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