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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언제까지 전쟁을 계속해야 하는 거야?'


자연히 그런 의문이 들 수밖에 없는 날이었다.

알비스는 홀로 새벽을 지키며 생각한다.


벌써 몇 명이나 발할라로 떠났다.

샌드걸 언니도, 그렘린 언니도, 님프 언니도, 안드바리도.


남은 것은 넷.


'전쟁은....'


별이 꺼진 새벽.

알비스는 상처투성이인 방패 손잡이를 꼭 쥐었다.

그러나 눈물은 흐르지 않는다.


전쟁은 거대한 소각장이다.


생명도 감정도.

모두 불타 사라지고.

증오의 재를 남기기에.









"대장님!"


알비스와 레오나는 지저분한 시가지를 질주하고 있었다.

아니, 패주하고 있었다.


도망친다.

그 레오나 대장이.

천재 지휘관이.

하늘 높이 날아올랐던 천재는 벽을 만났고,

위상은 깃발과 함께 꺾였다.


그녀의 앞을 막은 건 동등한 천재도, 천재를 더 뛰어넘는 천재도 아니었다.

한 마리의 맹수였다.


맹수와 천재의 싸움은 우위를 정하기 힘들 정도로 치열했다.

그러나 사소한 요소 하나로 판도가 뒤바뀌었다.


"앞에....!"


알비스가 정면을 가리켰다.

도주로 끝에, 한 여성.. 아니, 괴물 늑대가 서 있었다.


"칸.....!"


레오나가 이를 악물었다.


"시스터즈 오브 발할라의 지휘관, 철혈의 레오나."


칸이 안광을 번뜩이며 이쪽을 보았다.


"긴 싸움은 여기서 끝이다."

"그래, 너의 죽음으로."


레오나도 지지 않고 응수했다.


"엄호해, 알비스."

"네!"


알비스가 방패를 치켜세우며 레오나의 앞을 지킨다.


칸은....


항상 그랬듯이 기동 장치를 발진하며 돌진해온다.

정면으로.


카가각-!


총검에 꽂힌 칼날이 방패의 표면을 긁자 불꽃이 튀었다.


"어리석어, 칸."


레오나가 방패 위로 권총을 내밀며 칸의 머리를 겨낭한다.


"너의 무모한 돌진에, 처음에는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지."


다른 칸들과는 달랐다.

케시크에서 칸으로 이어진 특수개체는 특별했다.

죽기 위해 뛰어드는 것 같은 양상에, 천하의 레오나 대장도 당황했을 정도였다.


"난 같은 수에 두 번이나 당하지 않아."

"훗."


방아쇠가 당겨지는 찰나.

칸은 피하지 않고 오히려 더욱 밀어붙였다.

불을 뿜으며 발사된 총알이 칸의 뺨을 스친다.

찰나의 움직임으로 궤도가 틀어진 탓이었다.


"네가 천재적인 두뇌를 가졌다면."


그녀가 총검을 밀어붙이며 방패를 압박한다.


"나는 압도적인 피지컬을 가졌다."


콰직-!


칸의 총검에 방패가 뚫렸다.


"헉....!"


알비스는 숨을 삼킨다.

다행히 칼날은 그녀의 배 바로 앞에서 멈췄다.


"짧았나."

"이이이익!"


알비스가 있는 힘껏 방패를 밀친다.

하지만 칸이 더 강했다.

칸이 억센 힘으로 방패를 밀어붙이자, 알비스는 중심을 잃고 뒤로 휘청거렸다.


그나마 알비스가 할 수 있는 것은 레오나를 깔아뭉개지 않도록 옆으로 쓰러지는 것이었다.

아니,  또 하나가 있었다.

칸의 무기를 빼앗는 것.


알비스는 칼날을 꽉 움켜쥔 채 옆으로 쓰러졌다.


"쳇...!"

"끝이야."


칸과 레오나가 동시에 반응한다.

칸은 방패 때문에 고정된 총검을 놓고 맨손으로 달려들고,

레오나는 다시 권총을 움직인다.


탕.


총성이 발포되는 순간, 칸의 손날이 레오나의 가슴을 찔렀다.

레오나의 총알은 칸의 머리카락을 스쳤을 뿐이었다.


"대장님!!"


알비스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칸이 싸늘한 시선으로 알비스를 본다.


"이걸로 너희 발할라 부대를...."


타아아앙-


칸이 알비스를 향해 한 걸음을 내딛는 순간.

굵은 총알이 그녀의 양쪽 종아리를 훑고 지나갔다.


"헉....!"

"....늦잖아, 이 멍청이가...."


레오나가 말했다.


"대장!"


알비스가 벌떡 일어나 레오나에게 달려간다.

살아 있었다.

상처가 조금 깊지만 이 정도면....


"뭐 하고 있어."

"대장....?"

"빨리 숨통을 끊어. 기동력만 없어졌지 아직 건재해! 나처럼!!"

".....!!"


알비스는 칸을 본다.

칸은 지저분한 아스팔트 위에 쓰러져 있었다.

양쪽 종아리에 큰 구멍이 뚫려 거동할 수는 없지만 눈빛은 살아 있었으며,

표정도 아직 죽지 않았다.


"양쪽 대장이 전투불능으로 쓰러졌다라."


칸이 여유로운 투로 말한다.


"허면, 알비스. 날 죽여 명예를 취하겠는가?"

"도발이야. 듣지 말고 쏴. 어서."

"....."


알비스는 벌떡 일어나 칸에게로 간다.


레오나가 알비스 손에 아무것도 없는 걸 보고 기가 차서 외친다.


"알비스....!"

"......"


알비스가 앞에 서자 칸이 피식 웃었다.


"권총을 두고 오다니, 목 졸라 죽이기라도 하겠다는 건가?"

"알비스 시간 끌지 마! 곧 놈들이 와! 호드가 온다고!"

"칸....."


알비스는 두 눈을 질끈 감는다.


-전쟁은 마음을 병들게 합니다.


언젠가, 샌드걸이 했던 말이었다.


-사방팔방이 적이에요. 어린아이도 안심할 수 없습니다. 스파이거나, 뒤돌면 총을 겨누는 일이 비일비재하기에.


쓰디쓴 미소를 지으며 담배를 피우던 샌드걸도 결국 죽었다.


-다가오는 사람을 보고 안심하며 웃었던 게 언젯적인지 기억이 안 나는군요.


"전쟁은 거대한 소각장이야...."

".....?"


알비스의 중얼거림에 칸이 고개를 갸웃했다.


"당신을 살려주면, 더 이상 쫓아오지 않아줄 수 있어?"

"......."

"알비스!"


알비스는 레오나 대장의 외침을 무시했다.


"더 이상 언니들을 잃기 싫어. 레오나 대장도 빨리 치료하면 괜찮을 거고, 그쪽도 마찬가지일 거야, 그렇지?"

".......되돌아가기에는 서로 너무 많은 것을 잃었다고 생각하지 않나?"


칸이 부드럽게 묻는다.


"맞아. 하지만....."


알비스의 등 뒤, 발키리와 베라가 달려오고 있었다.

남은 인원은 이 네 명이 끝이었다.

발할라의 정원이 벌써 절반이나 찼다.


"나에게는 남은 언니들도 소중해. 복수 때문에 남은 언니들마저 잃기는 싫어."


전쟁은 거대한 소각장.


그러나 마음 만은.....


"칸 대장. 당신도 부하들을 살리기 위해 싸웠잖아? 그래서 홀몸으로 이 먼 곳까지 온 거잖아?"

"......"


칸은 입을 다물었다.


"우리를 놔줘. 부탁해."

"전쟁이라는 게 말로 해결되면 누구나-"

"여기...."


알비스가 탄창주머니에서 초코바를 꺼냈다.

여기저기 구겨지고, 몇 번을 녹았다가 굳기를 반복했던 초코바였다.


알비스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초코바를 건넨다.

여러 언니들을 먼저 발할라로 보낸 뒤, 처음으로 눈물이 흘렀다.


"부탁해.. 아니, 부탁 드릴게요. 칸 대장님. 제가 가진 전부에요. 부디.... 저희를 보내주세요. 저희를 살려주세요."

"........"

"저희는 괴물이 아니잖아요. 마음이 있잖아요. 그렇죠...? 아직... 마음이 남았잖아요. 인간의 마음이."


알비스는 마음을 담아 말한다.


"알비스는 살고 싶어. 모두와 함께."

"알비스!"


발키리가 외쳤다.


저 멀리, 호드 부대가 오고 있었다.










"나참. 어딜 갔나 했더니 혼자 싸우고 있었어?"


워울프가 담배를 피우며 비죽 웃었다.


"종아리가 관통을... 이래서는 당분간 움직임에 지장이 있겠어요."


탈론페더가 상처를 살피면서 말한다.

그녀는 고개를 들어 칸을 살짝 쏘아봤다.


"이렇게 무모한 짓을 두 번만 하면 팔다리가 잘리시겠어요. 전 사지절단 쪽에는 취향이 없으니까 자중해주세요, 대장."

"....."

"조금만 기다리면 우리가 합류했을 텐데 뭐 그리 급했어?"

"10초만 늦었어도 놓쳤을 거다."


칸이 입을 열었다.


"하기야, 그 레오나의 전술을 앞질러 갈 만큼 빠른 건 대장님이 유일하니까요.

"....뭐, 발할라 부대도 여간 노련한 게 아니니까. 이번 부대는 특히 빡셌어. 알비스인지 뭔지 하는 하얀 놈 때문에 애먹었다고. 방패가 너무 견고해."

"상공으로 탐색하는 것도 쉽지 않았어요. 저격수의 눈이 어디에서나 보고 있으니까."


탈론페더와 워울프가 각자 전쟁을 추억하며 한 마디씩 떠들었다.

웃어 넘길 수 없는 무거운 내용이었으나, 그녀들은 웃고 있었다.

일상이었으니까.


"그런데 저쪽은 무슨 바람이 불었기에 대장을 살려줬대?"

"추적 당하지 않기 위한 전략일 수도 있겠네요. 부상병을 살려두면 시간이 끌리고, 실제로도 그러고 있으니까요."


탈론이 말한다.


"얼마나 걱정했는지 아세요? 저희에게는 대장이 가장 소중해요. 제발 목숨 버리는 짓은 하지 마세요."

"알았다."

"그래..... 이제 어쩔 거야? 다리도 그 모양인데."

"걸을 수는 있고, 걸을 수 있다면 달릴 수도 있다."


칸은 붕대가 감긴 다리로 바닥을 쾅 찍었다.

피가 조금 세어나왔지만 그녀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럼 추적에 나서나요?"


잠시 침묵이 흐른다.


"아니."

"아니라고?"

"그래."


칸은 자리에서 일어나 천막 밖으로 나갔다.

석양이 내리쬐고 있었다.


"우리가 상대했던 발할라 부대가 몇 개지?"

"음. 5, 6개 됐나? 발할라도 은근히 부대가 많아서 골치 아팠지."


발할라는 스틸라인 부대 다음으로 부대수가 많았다.


"이번 부대는 특히 애를 먹었고요."

"그래, 강적이었다."


칸은 지평선을 본다.

거듭된 전쟁으로 도시는 폐허가 되었다.

그러나 이렇게 망가진 세상에서도.....


초코바를 건네던 알비스를 떠올리며 칸은 살짝 웃었다.


'나도 아직 멀었군.'


"부대를 재정비해라. 휴식 후, 다음 임무를 수행한다."

"보고는 어떻게 할까?"

".....마지막 발할라 부대는 전멸했다고 보고해라. 참, 워울프. 탈론."

"응?"

"네?"


칸이 주머니에서 초코바를 꺼내 던진다.


"사이좋게 나눠 먹어라."

"오... 이 귀한 걸 어디서 구했대?"

"응? 이거 다 녹았는데요?"

"원래 녹은 초콜렛이 제일 맛있어. 봉지에서 땀냄새가 나는 건 좀 그렇지만."

"스읍- 짙은 땀냄새가 벤 초코바라니. 전 꼴리는데요?"

"하아..... 정말..... 어떻게 이렇게 한결 같을까."









"상처가 깊지는 않아요."


베라가 말했다.


"살려두고 정보를 얻어낼 생각이었겠지."


레오나가 툭 뱉었다.

급하게 가슴을 꿰맨 뒤, 붕대를 칭칭 감아 상처를 압박했다.

그녀가 외투를 껴입으며 알비스를 노려본다.


"멍청한...."


알비스는 움찔 했다.


"죄송해요 대장...."

"이....."


레오나는 미간을 좁히며 뭐라고 쏘아붙이려고 했다.

하지만 이내 숨을 깊게 들이켜며 눈을 감았다.


"그때는 마음이 급해서 죽이라고 했지만, 사실 그 자리에서 죽일 수는 없었어. 죽였다가는 분노한 늑대들이 우리를 찾아 죽이려고 도시 전체를 휘저었겠지."


레오나는 냉정함을 되찾았다.


"현재 우리 전력으로는 당해낼 수 없어. 또, 방패가 박살 났으니 앞으로 전쟁을 이어갈 수도 없겠지."

"....."

"발키리. 베라."

"네."

"저 멍청한 녀석한테 초코바라도 쥐어줘. 식량을 적에게 건네다니, 바보 같아."

"....!"


레오나가 홱, 고개를 돌리고 걸어간다.


"알비스."


발키리가 어깨에 손을 얹었다.


"응...."

"대장께서는 분명 알비스를 자랑스러워하실 겁니다."

"알비스는 옳은 선택을 하신 거예요. 먼저 간 자매들의 넋은.. 저희끼리 기리도록 해요."


발키리와 베라가 그녀를 위로한다.


"헤헤....."


알비스는 웃으며 눈에 맺힌 눈물을 닦아냈다.


"빨리 와! 칸이 마음을 바꿔서 추적대를 보낼 수도 있으니까!"


레오나가 저 앞에서 외쳤다.


"자, 알비스. 손을."

"가요, 함께."

"응!"


마지막 남은 발할라 부대는 초기 칸 개체가 이끄는 호드와의 전쟁에서 대패했다.

워울프가 보고하기를, 시체조차 남지 않고 사라졌다고 했다.


그런데 몇 달 후.

평화로운 어느 도시에서는,

마지막까지 싸우다 죽은 것으로 알려진 네 명의 여자 유령이 돌아다닌다는 소문이 떠돌았다.







"이제 어디로 갈까?"

"바다! 바다 가고 싶어요 대장!"

"알비스, 이제 대장이 아닙니다."

"응, 언니. 레오나 언니."

"흠.... 바다라. 베라, 너는 어때?"

"바다요...? 물에 빠지기라도 하면... 으음... 바다에 갔을 때 안전 수칙을...."


허둥지둥 휴대폰으로 정보를 검색하는 베라를 보며, 레오나는 피식 웃었다.


전쟁은 거대한 소각장.

전쟁터는 생명과 감정을 불태우며 증오의 재를 남긴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마음을 잃지 않고 행복을 쫓는 이들이 있었다.


"좋아, 바다에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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