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


오래 전 27번 더치 아일랜드에서의 트릭스터가 아더를 제일 성가시게 만든 존재였다면, 알파는

등 뒤에서 무언가가 쫓아오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깨닫게 해주는

괴물 중의 괴물이었을지도 모른다.


"하! 겨우 그거 밖에 안 되나! 괴물 중의 괴물이라면서 이렇게 느려터졌을 줄이야!"


아더의 말과는 다르게 알파는 괴성을 내지르며 달려드는 동시에 숲의 고목들을 뽑아 던지면서도 아더의 뒤를 바짝 쫓고 있었다.


강화 시술을 받은 아더였기에 일반인보다 더 월등한 속도로 달리고 있었지만, 최신 장비의 주파수를 느끼며 눈 앞의 먹잇감을 먹어치우려는 거대한 괴물의 달리기 앞에선 한 없이 뒤쳐질 수 밖에 없었다.


"사령관님, 고개 숙이십시요!"


로네의 유탄 사격과 동시의 소라의 기관총이 알파의 금 간 갑피들을 향해 불을 내뿜자, 알파는 고통 섞인 비명을 내지르며 한 촉수로 쥐고 있던 고목을 투창처럼 던졌다.


아더의 시야에서 소라와 로네가 먼지 속에서 달려 나왔으나, 아더는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없는 상황이었다.


"소라! 이젠 네 차례다! 나와 대원들이 최대한 엄호해주겠다! 유미! 지금 당장 신호 위치를 변경해!"


"신호 위치 변경했어요! 이제 죽어라 뛰어요!"



곧 알파가 아더로부터의 관심이 끊기고 소라가 있는 곳을 향해 몸을 돌리자, 아더는 간신히 숨을 몰아쉬며 자신의 반려를 엄호하기 위해 알파의 뒤를 쫓아갔다.


"유미! 해피랑 기간테스는 도대체 언제 온답니까?! 이 상태로는 계속 버틸 수가 없단 말입니다!"


"지금 이쪽으로 통신이 온 것도 없는데, 제가 그걸 어떻게 알겠어요?! 어서 달리기나 하세요! 2분 17초 후에 바로 그 쪽으로 통신 주파수를 옮길테니까 그리 알아두시고요!"


"이런 개 씨발!!"


숨이 턱까지 차 오르는 상황 속에서 로네는 온 몸이 무거워진 듯한 느낌을 받으며, 그녀는 계속해서 소라를 뒤쫓는 알파의 뒤에서 총격을 가했다.






알파의 머릿속에는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자신의 주위에서 성가시게 뛰어다니는 벌레들의 공격도 성가시기 그지 없었지만, 이상하게도 그것이 느낄 수 있는 주파수가 갑자기 다른 곳에서 느껴지는 것이 그것의 의문을 더더욱 가중시키고 있었다.


느껴지는 것과 다르게, 알파는 점차 자신이 짐승마냥 능욕당하고 있다는 느낌에 불쾌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순간 한 벌레에게서 느껴지는 주파수가 어느 한 곳을 잠깐 거쳤다 다른 벌레에게 옮겨지는 것을 감지한 알파는 본능과 지성의 논리를 정리해보기 시작했다.


벌레들의 주파수들이 거쳐가는 곳을 없애면 한 주파수를 가진 벌레를 아무 방해 없이 먹어 치울 수 있지 않을까?


알파는 곧바로 몸을 돌려 커다란 바위 언덕을 향해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어쩌면 알파에게 있어서 그것의 논리가 충분히 실현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을지도 몰랐다.






"...잠깐, 뭐가 어떻게 된 거지...?"


어느덧 아더에게 주파수가 전달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알파는 아더를 쫓는 대신 갑자기 방향을 돌려 어디론가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아더는 거친 숨을 헐떡이며 상황을 정리하려 하였으나, 오랫동안 달리고 또 달린 나머지 생각의 정리가 더뎌지고 있었다.


"여기는 로네! 문제가 생겼습니다! 


알파가...알파가 지금 언덕 쪽으로 가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놈이 주파수를 옮겨주는 곳을 알아챈 것 같습니다!"


로네의 헐떡이는 숨 소리 사이에서 들리는 무전 덕에 아더 역시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는 지 알 수 있었다.



알파는 그들이 아는 것 그 이상으로 지능이 향상되어 있었다.


"유미! 그렘린! 지금 당장 언덕에서 내려오세요! 알파가 그 쪽으로 가고 있어요! 어서요!"


"예? 그게 무슨 소리에요? 알파가 갑자기 왜... 어 잠깐, 저기 뭐가 날아오는--!!!"


유미의 무전이 갑작스럽게 끊기는 동시에 둘이 있던 언덕에 커다란 돌덩이가 언덕을 무너트리는 굉음이 울리자 아더와 대원들은 더 이상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고, 알파를 향해 그 어느 때보다 미친듯이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어, 씨발! 이,이런 개 미친 씨발!!"


유미는 힘겹게 낭떠러지를 붙잡으며 매달려 있었다.


갑작스럽게 날아온 돌덩이가 언덕의 중간 부분을 무너트렸고, 그 충격으로 인해 유미는 낭떠러지에 간신히 매달리는 신세가 되었다.


"유미 씨! 좀만 기다려요! 내가 잡아줄..."


그렘린은 다급히 유미의 손을 잡아주기 위해 달려갔지만 갑작스러운 붕괴의 조짐으로 주머니에 있던 킹콩의 칩이 빠져 벼랑으로 굴러 떨어지기 시작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어느 한 곳에 걸려 떨어질락 말락 하는 기미를 보였지만, 그 기미도 오래 갈 조짐을 보이지 않았다.


"아, 잠깐만...이러면...이,이러면..."


비틀거리며 일어난 그렘린은 겨우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유미와 칩의 거리는 너무나 멀었기에 둘 다 챙길 수 없었다.


인류의 유산을 챙기면 유미는 죽을 것이며, 유미를 구하면 인류의 유산은 저 아래로 곤두박질 쳐 영원히 잊혀질 운명이었다.


"어,그,그렘린! 빨리 나 좀 올려줘요! 나 진짜 죽는다고요! 난 죽기 싫어!! 죽기 싫다고!!"


그렘린은 유미와 칩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녀가 그토록 찾던 인류의 유산이 저 절벽 아래로 곤두박칠 치는 것을 그녀는 도저히 보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짧은 시간이었지만 함께 할 수 있었던 유미가 저 아래로 떨어져 곤죽이 되는 것 또한 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렘린은 둘 중 하나만을 골라야 했고, 결국 그녀는 선택을 내렸다.


"유미 씨! 내 손 꽉 잡아요! 금방 들어 올려줄게요!"


그렘린은 유미에게 달려가 그녀의 손목을 붙잡았고, 있는 힘껏 끌어 올리기 시작했다.


물론 그녀의 선택에 대한 대가로 칩은 절벽 아래로 떨어져 점차 그 모습이 사라져가기 시작했다.


그렘린은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는 동시에 유미의 손을 더 강하게 붙잡아 졀벽 위로 끌어 올리는데 성공했다.


"아...씨발...하느님....아 씨발....진짜 죽는 줄 알았네..."


숨을 헐떡이며 비틀거리던 유미는 그렘린의 어깨를 붙잡으며 흔들리는 눈으로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당장 여기서 내려가야 해요. 여기 더 있다간....."


순간 유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또 다른 바위 덩어리가 굉음과 함께 또 다시 언덕을 무너트리기 시작했고, 그 충격으로 인해 그렘린과 유미는 중심을 잃고 절벽 아래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유미와 그렘린은 떨어지는 와중에 정말로 죽기 직전 주마등이 보인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고, 그렇게 둘은 저 아래로 곤두박질쳐 곤죽이 될 운명을 받아들여야 했다.


하지만 육중하고 투박한 강철의 손이 그 둘을 받아냄과 동시에 그 손의 주인이 섬의 흙들을 온 몸에 뒤집어쓰며 충격으로 인해 나뒹굴고 있었다.


"기간테스, 그렘린, 유미 개체 구조 완료."


흙먼지들을 털어내며 기절해버린 유미와 그렘린을 달려오는 아더 일행의 앞에 내려놓은 기간테스는 저 멀리 수송선에서 내려 포효와 함께 착지한 해피를 바라보았다.


"하! 저딴 놈이 알파라고? 알파 중의 알파는 나다! 그리고 그걸 오늘 내가 저 놈의 머리를 씹어먹는 걸로 증명해주지!"





"....사령관님, 하나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기절한 그렘린과 유미를 부축하던 로네가 나직이 아더에게 말을 걸었다.


"....물어보도록, 로네."


"지금 제 눈 앞에 있는 저 세 괴물들간의 싸움에서...저희가 할 수 있는 게 과연 뭐가 있습니까?"


"......"


아더는 천천히 헬멧의 바이저를 올려 자신의 눈 앞에 있는 세 괴물들을 올려다 보았다.


기업 전쟁부터 폭군 중의 폭군으로 날뛰어 온, 그러니까 '해피'라 불리우는 타이런트


그렘린의 정비와 모종의 프로그램 오류로 인해 마치 지능을 가진 인격체처럼 행동하는 강철 거인, 기간테스.


그리고  동족에게는 악몽 그 자체이자 , '수 만의 포식자'로 불리었으며, 이 섬의 왕으로 오랫동안 군림해 온 알파.


셋 중에서 누군가는 왕관을 내려놓음과 동시에 죽음을 맞이할 것이며, 누군가는 피 묻은 왕관을 쓰고 왕 중의 왕으로 인정받을 것이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아주 간단하다.


최대한 저들에게서 멀리 떨어져야 하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