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스카라비앙

2. 스카라비아와 워울프




나 같은 하급 정비원이 사령관의 부름을 무시할 수 있을 리가 없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그가 죽으라면 나는 당장 죽어야 할 만큼의 계급차가 있었다.


물론 그가 그런 명령을 내릴 리가 없다.

길가에 굴러다니는 돌멩이처럼 흔한 B급 병사가 다쳐도 호들갑을 떨며 신경 쓰는 남자였으니까.

오르카호의 사망자가 0%에 수렴하는 것도 사령관의 그런 성격 탓이었다.


그건 뭐라고 해야할까.

 

조금 답답할 정도였다.


사령실의 문이 열린다.

어두운 방에서 스탠드를 켜놓고 일을 하는 그의 모습이 보였다.


“아, 왔어?”


안경을 벗어 내려놓은 뒤 그는 기지개를 켰다.

시간은 새벽 두 시.

일을 마친 뒤 아무 병사나 불러서 침대 위로 데려가기엔 좋은 밤이겠지.


그가 언제나 이런 짓을 하는 건 알고 있다.

매일 밤마다.

매일 다른 여자를 불러서 자신의 방으로 데려간다는 건 이제는 소문도 아닌 공공연히 퍼져 있는, 누구나 아는 사실이었다.


“여기 앉아. 차 한 잔 마실래?”


그는 소파에 놓여 있던 담요를 치우며 내게 물었다.


“딱히. 차 마시고 싶은 기분은 아니야.”

“아… 그래?”


오늘 밤의 시중 상대는 나인가.

아쿠아랜드의 건설에 투입 된 누군가를 부르건, 혹은 다른 여자를 부르건 나에게는 상관 없는 일이다.


어차피 오르카호에 들어가 그와 대면한 순간부터 각오는 했었고.

도와줄 이는 아무도 없는 폐허에서 철충들에게 발각 되어 죽는 것보단 나은 일이다. 한 번쯤 몸을 바치는 건 아무렇지도 않다.


“그보다… 얼른 끝내줬으면 좋겠어.”

“아, 그렇지. 이미 늦은 시간이니까. 응.”


사령관은 포트에 물을 받다가 이내 머쓱해하며 소파에 앉았다.

안 쪽으로 들어가면 간이용 침실이 있는 건 알고 있는데.

굳이 소파에서 하는 건가.


그건 여러모로 불편하지 않을까.

뭐 됐다.

그 의중을 상하게 할 마음은 없다.


언뜻 이렇게 상냥한 척, 마음 따듯한 척하는 인간이라도 바로 돌변할 수 있다는 걸 나는 알고 있다.

밤에는 온갖 독한 취향으로 여자들을 괴롭힌다던가.


밧줄로 묶거나 목을 조르거나 때리거나. 무엇을 해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소파에 앉는다.

그는 천천히 다가와 손을 뻗었다.

순간 어깨가 움츠러 들었다.


“그럼 당분 보충이라도 해야지.”


그의 손이 나를 스쳐지나 테이블 위의 작은 바구니에 들어갔다.

그 안에 쌓여 있던 사탕 하나를 집어 입에 넣고 있었다.


뭘까. 

키스 직전의 입가심? 


“별 건 아니고. 진척이 얼마나 됐나 궁금해서 말이야.”

“………….”


왜 쓸떼 없이 빙빙 돌아가는 걸까.

이 쪽은 어서 끝내고 자고 싶은데.


“워터파크 말이야? 그건 굳이 나를 부르지 않아도 확인할 수 있잖아.”


매일 보고서를 올리고 있다. 

다른 이들의 여러 보고서를 포함해 충분히 그에게도 전달이 됐을 터였다.


“아… 그랬나? 미안. 아직 확인을 못했네.”


사탕을 오독오독 씹어 삼킨 그는 태블릿을 집어 내 맞은 편에 앉았다.


할 거면 어서 와줬으면 싶은데.

그는 피곤에 절은 표정으로 눈을 가늘게 뜨며 태블릿을 만지고 있었다.


“아… 아아~ 있네. 응… 잠깐만.”


보고서 확인 따윈 그다지 중요한 일이 아니다. 

그가 확인을 못 했어도 그냥 그렇게 넘어갔을 것이었다.

 

“응, 확인했어. 수고했어.”


그는 태블릿을 내려놓으며 미소를 지었다.

그 쳐진 눈가가 힘겨워 보였지만 동정심은 들지 않았다. 피곤한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저 남자는 어차피 지금부터 날 갖고 놀려고 부른 거니까.

남자는 숟가락 들 힘만 있어도 어쩌고… 라는 속설이 있다. 그건 매일 수많은 격무에 쌓인 그에게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아… 실은 스카라비아를 부른 건 이런 게 아니라… 부탁이 있어서 말이야.”


거 봐.

매우 신사적으로 나오고 있지만.

어차피 명령이나 다름 없다.

부탁이란 이름의 강제다.

내게 거절할 권리는 없는.


“……… 맘대로 해. 난 상관 없으니까.”


그 말에 그의 눈이 크게 떠졌다.


“어? 진짜?”

“그래. 나도 피곤하니까. 얼른 끝내줬으면 좋겠어.”

“아…… 좀 오래 하기는 할 텐데….”


오래 하는 건가.

해가 뜰 때까지. 

혹은 지쳐서 기절할 때까지?


“일단 스카라비아가 들어만 준다면 어떻게든 조정해볼 테니까. 응.”

“조정…….”


어쩐지 스케줄을 짜는 듯한 말투다.

그에게 있어선 매일 이어지는 일상이니 그런 단어도 나오는 걸까.


“응. 근데 내가 무슨 부탁인지 얘기했던가?”

“그걸 굳이 말로 해야 돼?”


설마 모든 병사들에게 이런 식으로 ‘부탁’을 하는 건가.

퍽이나 상냥한 위선이다.


“어? 알아? 그렇다면야 설명할 필요가 없으니 편하지만….”

“그래. 처음부터 말했잖아. 얼른 끝내달라고.”

“아니, 그러니까… 좀 장시간을 뛰어야 할지도 모르는데….”


이쯤에서 조금 답답해졌다.

그렇게나 오랫동안 날 갖고 놀려면, 어서 지금이라도 하는 게 좋다.


“사령관. 난 귀찮은 건 딱 질색이야.”


빙빙 돌려말하는 것도. 위선을 떠는 것도 싫다.

셔츠의 단추를 하나 씩 풀어 내려갔다.


기름 때 묻은 셔츠가 소파 아래로 떨어진다.

콜록 그가 헛기침을 했다.


“어? 아니… 저기… 여기서?”


펼친 손바닥으로 눈을 가리면서도 은근슬쩍 나를 바라보며 그는 얼굴을 붉혔다.


마치 여자경험이 없는 어리숙한 남자처럼.


“어서 끝내줘.”

“뭐, 뭘… 말이야.”


천천히 그에게 다가갔다.

여자의 알몸은 처음 보는 것처럼 그는 흠칫하고 물러났다.


“자, 잠깐만…! 기다려봐, 여기선…!”


천천히 그의 어깨 위로 팔을 뻗는다.

그에게 닿은 내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저 남자는 아니겠지만, 나는 오늘이 처음이라. 


첫경험 따위엔 의미를 두지 않았고.

이런 쓸모 없는 처녀 따윈 어딘가에 버려도 된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막상 그 날이 오자 긴장한 것이었다.


“아… 자, 잠깐만!”


그가 내 손을 잡아 치우며 소파에서 벗어났다.


“어?”


왜 도망치는 건지.

그는 구석에 놓인 옷장의 문을 열었다.

그 안에서 누군가가 굴러 떨어졌다.


“뭔가 오해하는 것 같은데… 내 부탁은 그게 아니라….”


옷장 안에서 떨어진 경호 요원은 아랑곳 않고 그는 무언가를 꺼냈다.

그건 화려한 빛깔의 수영복 같았다.


“코스튬이야. 컨셉은 인어.”


그것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고도 그는 화려한 장신구나 알 수 없는 액세서리를 연달아 꺼내 놓았다.


어째서 옷장 안에 그런 게 있는 거야.

언뜻 보기에는 다른 요상한 의상도 많이 걸려 있었다.


“곧 있으면 아쿠아랜드 완공이잖아. 대원들한테 홍보도 할 겸 너한테 부탁하려 했거든.”

“어…….”


거기서 내가 무언가를 착각했다는 걸 깨닫는다.

그는 바닥에 떨어진 셔츠를 주워 내밀었다.


“어서 입어. 근데 넌 항상 이거 한 장만 입고 다니는 거야?”


얼떨결에 받아들어 주섬주섬 셔츠에 팔을 넣는다.


“코스튬이거든. 일단 한 번 보고 판단하라고. 보여주려고 했는데… 갑자기 벗으니까.”


빨개진 이마를 문지르던 경호요원 리리스는 아무렇지 않게 사령관의 뒤에 섰다.


“내가 몇 시간도 전에 퇴근하라고 했지.”

“경호는 항상 25시간 내내 붙어서 하는 게 원칙이랍니다.”


힐긋 리리스를 노려보며 투덜거리던 그가 나를 보았다.


“너한테 어울릴 것 같아서. 아쿠아 랜드에 어울리는 인어 공주야. 어때?”

“어떠냐니… 무슨 소린지 모르겠어.”

“아, 잠깐만.”


태블릿을 다시 집어든 그가 어느 사진을 띄워 보여주었다.


“그거 입고… 여기 이렇게 들어가서… 가만히 누워 있기만 하면 되거든. 아무 것도 할 필요 없어.”

“무슨…….”


그가 보여준 건 커다랗게 입을 벌린 조개 모형이었다. 주위에는 알록달록한 산호초가 박혀 있다. 위에는 'Mermaid Princess' 라고 적힌 나무 간판이 붙어 있다.


“그러니까… 놀이공원의 마스코트 같은 거야. 스카라비아가 해줬으면 해서.”

“………….”

“주인님. 이건 제가 더 잘 어울리지 않을까요?”

“머리 아프니까 좀 조용히 해줄래.”

“이 정도 노출은 부족하잖아요! 저는 아예 아프로디테처럼 조개 위에서 알몸으로…!”

“변태는 켈베로스랑 세이프티가 잡아갈거야.”


뭐야.

밤상대로 부른 게 아니었나.

맥이 빠지면서도 어이가 없어진다. 


마스코트라니.

푸석푸석한 머리칼에 다크서클 진 더러운 정비원에게 그런 역할을 맡기겠다니.


“사령관…… 진심이야?”

어?“

“나는 마스코트다운 일은 하나도 못해. 누군가에게 말을 거는 것도, 활기차게 외치는 것도, 밝게 웃는 것도.”


전부 성가신 일이다.

내게는 모조리 귀찮기만 하다.


“아…… 그거는 괜찮아.”


고개를 들이미는 경호요원을 밀어내며 그는 씩 미소를 지었다.


“인어공주니까.”

“인어…….”

“이야기는 알지? 그 내용대로야. 그냥 말없이… 조용히 있어주면 돼.”

“………….”


그런 마스코트도 있나.

나는 벙찐다.

그리고는 조심스레 물었다.


“왜 나야?”

“어?”

“왜…… 하필 나야?”


거기에 그는 아무 생각도 없이 말했다.


“예쁘잖아. 인어공주.”

“………….”

“너랑 잘 어울릴 것 같다고 생각했어.”


그건 무슨 의미인지.

금방 알아듣지 못하고 나는 굳어 버렸다.

그 뒤로는 고개를 들지 못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