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모음집   


 

 

“리마토르, 안에 있어?”

 

“아, 칸! 출격 갔다 왔어요?”

 

칸은 읽던 책을 덮고 자신을 반겨주는 리마토르에게 뛰어가 안겼다. 두사람의 키 차이가 7cm 정도밖에 나지 않아 칸이 그의 품에 얼굴을 묻는 건 아니었지만, 고개를 조금만 들면 입술이 닿았기에 오히려 칸은 그 편을 더 선호했다. 리마토르는 칸에게 가벼운 입맞춤을 하고 냉장고로 향했다.

 

“일하느라 고생 많았어요. 커피 마실래요, 아니면 버터밀크 마실래요?”

 

“버터밀크로 부탁해. 슈크림이랑 같이 먹어야 하니까.”

 

칸은 한 손에 들고 있던 종이상자를 책상 위에 펼쳤다. 아우로라가 만든 슈크림 4개가 먹음직스러운 자태를 드러내자 리마토르는 버터밀크를 따라 그녀에게 건넸다.

 

“맛있어 보이는데요! 출격하는 것만으로도 피곤했을 텐데 언제 이런 거까지 사왔어요?”

 

“당신 생각해서 그렇지. 맛있는 거 먹으면 좋잖아.”

 

리마토르는 고맙다는 말과 함께 슈크림 하나를 들어 작게 베어 물었다. 얇지만 폭신한 겉면 아래로 달콤하고 몽글몽글한 커스터드 크림이 입안에 퍼지자 그는 피어오르는 행복을 만끽했다.

 

“맛있다... 고마워요, 칸.”

 

“이걸로 지난번에 오해한 건 다 봐주는 거다?”

 

사과하고 용서를 받았다고는 하나, LRL에게 담배를 물렸다는 크나큰 오해를 하고 앞뒤 맥락 파악도 없이 그의 등짝을 때린 일을 내심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던 칸은 그에게 슈크림을 뇌물로 건넸다. 리마토르가 이미 잊은 일이라며 웃자 칸도 싱긋 웃으면서 슈크림을 맛보았다.

 

“으음... 역시 아우로라의 솜씨는 확실해.”

 

레오나가 먹던 버터가 들어간 버터밀크가 아닌 저지방 우유인 버터밀크를 곁들이자 슈크림 맛은 한층 풍미를 더했다. 그렇게 칸과 리마토르가 달콤한 맛을 만끽하던 중, 리마토르가 칸의 얼굴을 보면서 손을 뻗었다.

 

“칸, 얼굴에 크림 묻었어요. 닦아줄게요.”

 

그가 검지손가락으로 그녀의 뺨에 묻은 커스터드 크림을 닦아 혀로 핥자 칸은 왠지 장난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당신도 크림 묻었어. 내가 닦아줄게.”

 

뺨에 묻은 크림을 닦는 건 손이 아닌 입이었다. 그의 뺨에 입을 맞췄다 뗀 칸은 방금 벌어진 일에 얼굴을 새빨갛게 붉힌 리마토르를 바라보며 수줍게 말했다.

 

“슈크림 맛있네.”

 

한 번 장난을 당했으니 갚아주는 게 당연한 도리라고 생각한 리마토르는 그녀가 한 것보다 조금 더 과감한 방법을 쓰기로 했다. 손가락에 슈크림을 살짝 묻혀 그녀의 귀에 갖다 댄 그는 아직 홍조가 사라지지 않은 얼굴로 칸에게 속삭였다.

 

“크림 닦아줄게요.”

 

리마토르의 입술이 칸의 오른쪽 귀에 찾아왔다가 떠나자 칸은 귀까지 새빨개졌다. 그녀의 모습을 본 그가 ‘한 방 먹었지?’라는 표정으로 웃자 칸도 질 수 없다며 손가락에 크림을 묻혀 그의 코에 갖다댔다.

 

 

그 뒤로도 장난은 이어졌다. 이마, 턱, 쇄골, 손, 발. 탁구 랠리가 이어지는 것처럼 서로의 몸을 캔버스 삼아 크림을 바르고 입으로 닦아주는 장난은 끝이 보이지 않았다. 칸의 목덜미에 입을 맞추었다가 뗀 리마토르는 의기양양한 말투로 그녀에게 질문을 던졌다.

 

“이제는 할 곳이 없죠?”

 

“아니, 아직 하나 남았어.”

 

칸은 세 번째 슈크림을 들더니 자신의 손가락에 커스터드 크림을 묻혔다. 그러고는 리마토르의 입술에 크림을 진하게 발랐다.

 

“여기는 일부러 아껴뒀거든.”

 

일부러 반쯤 눈을 감아 농염한 미소를 지은 칸은 몸을 일으켜 그의 입술에 묻은 크림을 닦았다. 크림을 다 닦은 후에도 한참이나 그를 놔주지 않던 칸은 그를 보며 자신의 승리를 장담했다.

 

“이제 내가 이긴 거지?”

 

“글쎄요, 그건 아닌 거 같네요.”

 

하지만 리마토르도 승기를 놓칠 생각은 없었다. 크림을 손가락에 묻힌 그는 칸의 입을 벌리더니 혀를 내밀어 보라고 했다. 칸이 내민 혀에 크림을 듬뿍 바른 리마토르는 체크메이트를 둔 승부사의 표정으로 말했다.

 

“여기는 생각 못했죠?”

 

“...내가 져뜨니까 크임 다까더 (내가 졌으니까 크림 닦아줘).”

 

칸이 붉게 물든 얼굴로 패배를 인정하자 그도 노을의 색을 입힌 얼굴로 그녀의 크림을 닦아주었다. 혀에 묻은 크림을 자신의 혀로 닦으면서 둘은 서로의 입안 구석구석에 상대가 자신의 것이라는 흔적을 새겼다. 입을 뗀 둘은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다가 마지막 남은 슈크림 하나로 시선을 돌렸다.

 

“반씩 나눠먹을까요?”

 

“그러자.”

 

“둘 다 먹는 걸로 장난치는 거 아니다.”

 

리마토르가 슈크림에 손을 뻗는 순간, 아스널이 방문을 열고 들어와 남은 슈크림을 집어 물었다. 갑작스러운 아스널의 등장에 칸과 리마토르는 언제 왔냐고 놀라서 물었다.

 

“아까 칸이 크림 닦아준다면서 그대의 뺨에 입을 맞출 때부터 와 있었지.”

 

“그럼 전부 다 봤다는 거잖아요...!”

 

자신들의 애정행각이 타인에게 싹 중계되었다는 사실에 리마토르와 칸은 용광로처럼 달아오른 얼굴을 식히지 못했다.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고 싶은 둘과 달리 아스널은 쿡쿡 웃으면서 말했다.

 

“좋은 구경 시켜줘서 고맙네. 이틀 전, 칸이 그대에게 찾아갔을 때도 둘이서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거 같아 바로 자리를 떴는데 그때도 계속 바라봤으면 드라마 한 편 다 봤겠어.”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 아스널!”

 

칸이 소리를 버럭 질러도 아스널은 웃음을 참지 못하더니 아예 대놓고 소리 내어 웃었다. 그녀는 품에서 패널을 꺼내들며 둘에게 한 가지 사실을 더 알려주었다.

 


“그리고 나만 아는 것도 아니야. 탈론 페더의 뜨거운 취재 정신이 더 뜨거운 광경을 포착 못할 리가 없잖아? 오르카호 내부에서 생중계 되고 있었다고.”

 


“잠깐만요, 그 말은...?!”

 


“방금 그게 전부 다...?”

 


“크하하하, 그래! 전부 다 생중계되었지!”

 


“으아아아아아!!!!!!”

 


아스널이 알려준 사실에 칸과 리마토르는 모두 화끈거리는 얼굴을 싸매 쥐었다. 부끄러워하는 둘의 모습마저도 웃겼기에 아스널은 한참을 웃다가 슈크림에 버터밀크까지 잘 챙겨먹고 방을 나섰다. 문을 열고 나갔던 아스널은 고개를 내밀면서 한 마디를 덧붙였다.

 


“다음에는 잼 닦아주기 어때?”

 


“조용히 해!”

 


그 날 남은 시간 내내 칸과 리마토르는 말을 더 잇지 못했다. 이 사건은 <둘이서_슈크림_닦아주기.avi>로 탈론 허브에 올라와 실시간 조회수와 인기 급상승 동영상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으며, 탈론 페더는 숙소에 돌아온 칸에게 리마토르의 연구실에 설치된 카메라를 제거하라고 호통을 들었다. 탈론 페더는 침울해하면서도 칸이 보는 앞에서 모든 카메라를 제거했지만 그러면서도 몰래 카메라 하나를 심어 둘의 애정행각을 계속 기록으로 남길 수 있게 조치를 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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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편만 쓰고 자려고 했는데, 머릿속에서 아이디어가 팍 떠오르길래 쓴 단편. 순애 싫어하는 사람이 드물 거라는 가정 하에 나름대로 달달하게 써봤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