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모음집


 

 

“닥터, 안에 있어?”

 

“제로 언니가 웬일이야?”

 

닥터는 자신의 공방 문을 두드리는 제로를 보고 되물었다. 보통 자신의 도움을 찾는 인원 목록에 제로는 없었기에 닥터는 왜 그녀가 자신을 찾아왔는지 궁금했다.

 

“연에 이상이 생긴 거 같아서 말이야. 한 번 봐줄 수 있겠어?”

 

“아, 그런 일이야 해줄 수 있지. 연 갖고 들어와.”

 

닥터가 제로를 안으로 들이자 제로는 재빨리 수신호를 보냈다. 천장에서 알아들었다는 신호를 보낸 카엔은 파이프 위로 몸을 감추더니 혼잣말로 속삭였다.

 

“카엔, 은신 족고수.”

 

 

그 시각, 리마토르는 창고에서 책을 몇 권 꺼내 연구실로 향하고 있었다. 책 제목을 훑던 그는 머릿속을 채우는 즐거운 생각에 싱글벙글 웃으면서 가벼운 발걸음을 내딛었다.

 

“존 듀이의 책을 이렇게나 많이 건지다니. 오늘은 아주 운이 좋은 날이야.”

 

그가 책을 읽고 연구를 진행할 생각에 들떠 신나게 연구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독서에 열중하던 하르페이아가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문을 열고 들어온 이가 리마토르라는 사실에 안도한 하르페이아는 한숨을 쉬면서 투정을 부렸다.

 

“깜짝이야, 놀랐잖아요 교수님.”

 

“미안해요. 존 듀이가 쓴 저서를 5권이나 찾았더니 들떠서 말이에요.”

 

리마토르가 들고 있는 손가방에서 케케묵은 책이 한 무더기 나오자 하르페이아는 책을 빤히 쳐다보다가 들릴 듯 말 듯 말했다.

 

“교수님, 좋아해요.”

 

“네?”

 

“아니, 이 사상가 좋아하시냐고요!”

 

리마토르의 반응에 하르페이아는 화들짝 놀라면서 그에게 질문했다. 리마토르는 오늘따라 하르페이아의 반응이 크다고 생각하면서도 존 듀이라는 사상가에게 초점을 돌렸다.

 

“존 듀이 말하는 거죠? 네, 관심이 많답니다. 롤스, 사르트르만큼이나 흥미를 갖고 있어요.”

 

“이야... 교수님이 좋아하실 정도면 대단한 사상가겠네요.”

 

“혁혁한 업적을 세운 건 맞죠. 철학도 철학이지만 존 듀이는 특히 근대교육의 아버지로도 유명해요.”

 

리마토르는 <학교와 사회>, <민주주의와 교육>이라는 책 2권을 뽑아 하르페아에게 보여주었다. 하르페이아는 책 제목을 눈으로 훑더니 책 뒤에 있는 리마토르의 얼굴로 초점을 옮겼다. 그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한 리마토르는 아예 존 듀이의 사상에 대해 즉석 강의를 시작했다.

 

“존 듀이는 실용주의를 연구한 학자입니다. 이야기에 앞서 실용주의라는 학문이 무엇인지부터 빠르게 짚고 넘어가도록 하죠.

 

실용주의경험과 과학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용한 지식을 얻는 걸 목표로 하는 사이에요. 19세기 말, 미국에서 영국의 경험론과 다윈의 진화론을 한데 모아 탄생한 사상이기 때문에 경험과 과학이라는 두 가지 핵심어로 설명될 수 있는 사상이죠. 이런 실용주의는 플라톤이 말한 이데아처럼 형이상학적인 불변의 진리는 존재하지 않으며,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세계 내에서 존재하는 도덕과 진리를 끊임없이 수정하고 탐구해야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실용주의의 포문을 연 학자는 찰스 샌더스 퍼스라는 학자입니다. 퍼스는 받아들인 사실에 의심을 던져 탐구를 시작하고, 과학적 방법을 통해 의심이 그칠 때 유용한 지식을 알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유용한 지식은 진리가 아니라는 점이에요. 앞에서 말했듯이 실용주의는 진리의 탐구보다 문제해결에 도움이 되는 지식을 더 중시했기에 퍼스는 유용한 지식을 얻어 만족감을 얻으면 실용주의의 목적은 달성했다고 보았습니다.

 

이 사상을 승계한 학자가 윌리엄 제임스에요. 윌리엄 제임스는 실용주의에 진리론을 도입한 학자로, 퍼스가 지식의 참과 거짓보다 유용성을 중시했다면 제임스는 지식의 유용성이 보장되면 참이라고 보았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다시 말해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충분한 도움이 되는 현금가치가 존재한다면 그 지식은 참입니다. 시간이 흘러 유용한 지식이 바뀐다면 바뀐 지식이 참이 되죠. 즉, 제임스는 진리가 존재하지만 계속해서 바뀐다고 주장했습니다.”

 

제임스에 대한 설명까지 마치고 존 듀이로 넘어가려던 리마토르는 잠시 말을 멈췄다. 평소라면 눈을 빛내면서 그의 말을 경청할 하르페이아가 오늘은 멍하니 자신을 바라보고 있어서였다. 왠지 모르게 그녀의 눈에서 안광이 사라진 것 같아 리마토르는 조심스럽게 그녀를 불렀다.

 

“하르페이아?”

 

“아, 아! 네.”

 

“몸 상태 괜찮아요? 어디 아픈 건 아니죠?”

 

“네... 괜찮아요. 문제없어요.”

 

정신이 든 하르페이아가 볼을 새빨갛게 물들이면서 자신에게 말하자 리마토르는 진지하게 그녀가 어디 아픈 건 아닌지 걱정했다. 다프네에게 다녀와 보라는 말에도 하르페이아가 계속 괜찮다고 하자 그는 우려 섞인 시선으로 이야기를 계속했다.

 

존 듀이는 퍼스와 제임스의 사상을 계승해서 실용주의를 사회/교육/도덕적 영역에까지 확장했어요. 듀이는 인간이 문제를 마주치고 해결하는 과정에서 경험이 축적되어 학문이 형성된다고 보았습니다. 이는 화론적 관점에서 세상을 살아가는 도구였기에 듀이는 자신의 사상을 도구주의라고 명명했습니다.

 

도구주의는 실험과 실천적인 지적 태도로 탐구를 행하는 걸 중시했습니다. 이 점은 퍼스랑 비슷하죠? 하지만 듀이는 퍼스처럼 탐구에서 머물지 않고, 탐구를 통해 문제 해결과 사회 성장까지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장과 변화가 있을 때 도덕과 윤리도 비로소 의미를 갖는다고 말했죠.”

 

“교수님, 그럼 성장하기 전까지 윤리는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하나요?”

 

“그렇죠. 듀이는 자신의 저서 <철학의 재구성>에서 평생 선하게 살았던 이가 악행을 시작하면 악한 이로 정의되고, 도덕적으로 무가치하게 살아온 이도 선해지기 시작하면 선한 이로 명명된다고 주장했어요. 듀이는 도덕적 가치도 지식처럼 하나의 가설이자 도구라서 끊임없이 수정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하지만 항상 변화하고 고정점이 없으면 학문의 안정적인 발전이 어렵겠죠? 그래서 듀이의 도구주의는 진리 대신 ‘보증된 주장가능성(warranted assertibility)’이라는 어휘를 제안합니다. 우리의 지식은 일시적으로 보증된 주장에 불과하기에 끊임없는 행동과 실천을 통해 늘 검토하고 수정해야한다는 거죠.

 

앞에서 말했다시피, 듀이는 사회 문제의 해결에도 과학적 문제 해결 방식을 적용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하지만 사회가 당면하는 문제는 개인이 당면하는 문제보다 훨씬 큰 규모라서 여러 사람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듀이는 민주주의가 가장 실용주의에 적합한 방식이라고 평했어요. 이런 민주주의를 통해서 사회가 성장할 수 있기에, 듀이는 민주주의에 참여할 수 있는 이들을 기를 수 있는 방법이 교육이라고 주장했답니다.”

 

리마토르의 말을 듣던 하르페이아는 그의 말이 끊기자 다시 정신을 차리고 그가 말한 내용을 되짚었다. 그의 얼굴을 보느라 생각의 흐름에 구멍이 뚫려있었지만 다행히 내용을 재구성하는데 성공한 그녀는 질문을 던져 자신이 설명을 듣고 있었음을 증명했다.

 

“듀이가 근대 교육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게 이 때문이군요. 민주주의에 참여할 수 있는 인재를 기르는 게 교육이라는 거죠?”

 

“그건 아니에요. 듀이는 다양한 종류의 지식을 습득하게 하는 걸 교사의 업무라고 보았어요. 하지만 ‘지식의 습득’은 단순히 ‘인재’를 길러 내거나 지식을 주입하는 게 아니에요. 이제부터 제가 들려드릴 듀이의 교육철학을 들으면 1900년대 초반에 이런 주장이 나올 수 있는가하고 놀라실 겁니다.

 

듀이는 민주주의가 제대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창조적 지식이 필요하다고 보았어요. 지식을 꾸역꾸역 집어넣는 게 아니라, 지적인 호기심에 기반을 두고 배우려는 의지를 따라 새로운 걸 만들어내는 적극성을 중요한 덕목으로 본 거에요. 그렇기 때문에 듀이는 성공적인 교사의 상(像)으로 모든 과목에 뛰어나지 않지만, 한 과목에 지적 호기심과 열정을 가진 인물을 제시했어요. 한 과목에 대한 진정한 사랑이 진정한 지식과 통찰력을 이끌어낼 것이라고 믿은 듀이는 학생들과의 소통을 두 번째로 꺼내들었습니다.

 

듀이는 학생들의 반응을 날카로운 주의력으로 파악하고 그에 대처하는 능력이 교사에게 반드시 요구된다고 말했어요. 교사는 복잡한 심리의 변화에 대해서 진실하게 인식하고 이런 과정의 성공과 실패뿐만 아니라, 그것을 후에 어떻게 개선할 지를 판단할 수 있어야 학생들이 지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본 것이죠. 또한 교사는 다른 전문직에 비해서 더 스트레스가 많고 근무시간이 길지만 경제적인 수입은 적다는 치명적인 단점에도 학생들에 대한 진심어린 애정과 공감으로 극복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교사의 부정적인 감정이 학생들에게 영향을 미치면 배움과 지적 성장의 방해물이 되기 때문이죠. 그래서 듀이는 학생들이 교육적인 과정에 더 참여하고 지식에 대한 호기심을 발휘하기 위해 교사는 그들 스스로 학생들에게 어떻게 반응하는지와 가르치는 데서 스트레스를 조절해야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자, 열정 있고 소통 잘하는 교사가 학생들에게 왔어요. 그럼 학생들은 어떻게 배워야 할까요? 실용주의의 가장 큰 특징인 실험과 과학적 탐구로 배워야 합니다. 교사가 주는 지적 내용에 물음표를 달고 반박하면서 자신의 지식으로 재구성하는 게 학생들의 업입니다. 개인을 성장시키는 방식이 교육이고, 사회를 성장시키는 방식이 민주주의죠. 학생들은 능동적으로 생각하고 질문하는 배움을 통해 어떻게 사회에 유용한 지식을 떠올리고자 참여하는 방법을 습득하게 됩니다.

 

즉, 듀이는 학생들에게 억지로 지식을 구겨 넣지 말고 열정 있는 교사와 소통하면서 학생들이 지식을 스스로 탐구하는 교육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어요. 이 주장이 20세기 초에 나왔다는 사실이 놀랍지 않나요?”

 

리마토르의 말에 하르페이아는 고개를 끄덕여서 동의의 의사를 밝혔다. 그녀는 그의 말에 맞장구를 치면서 그의 얼굴을 다시 눈으로 힐끗 보았다.

 

“놀랍네요. 어떻게 이런 주장을 그 시기에 했을까요?”

 

“그러니 신기하죠. 저는 개인적으로 듀이가 남긴 말 중에 이 말을 가장 좋아해요.

 

‘세상의 모든 차이는 '할 말이 있는 것'과 '말을 해야 되는 것' 사이에 있습니다.’

 

자신의 생각을 적극적으로 말할 수 있는 이와 타인에 의해 말해지게 되는 이. 어느 쪽이 세상을 더 나은 방향으로 바꿀 토의에 적극적으로 참여할지는 감이 오죠.

 

어때요? 이 내용으로 다음 강의를 하려는데 하르페이아는 어떻게 생각하나요?”

 

“...좋아요.”

 

“그렇죠? 강의 자료 만들어야겠네요.”

 

하르페이아의 말을 들은 리마토르가 자리에 앉으려고 몸을 돌리자 하르페이아의 머릿속에서 방금 들은 듀이의 격언이 떠올랐다. 할 말이 있는 듯 우물쭈물하던 그녀는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등을 돌린 리마토르를 뒤에서 끌어안았다. 20cm가 넘는 키 차이 때문에 리마토르의 목덜미에도 닿지 않았지만 하르페이아는 그를 꼭 끌어안고 놔주지 않았다.

 

“하, 하르페이아?! 이게 무슨-”

 

“교수님. 고민을 많이 했는데... 들어주실 거죠?”

 

당황한 리마토르의 말을 끊고 하르페이아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금방이라도 감정이 쏟아질 것처럼 위태로운 기색을 읽은 리마토르는 더 묻는 대신 그러겠다고 답했다. 그의 답을 들은 하르페이아는 이대로 들어달라면서 그의 등 뒤에서 말문을 열었다.

 

“뮤지컬 뒤풀이 때, 제가 교수님께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하시나요? 그때 제가 술 마시겠다고 한 거, 전부 교수님 때문이었어요.”

 

“....”

 

하르페이아의 목소리는 점차 차분해지고 있었다. 언뜻 들으면 가라앉는 듯했으나 리마토르는 그녀의 목소리에 침전되었다가 두 배가 되어 부유하는 감정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억지로 독한 술 다 마시고 교수님한테 안겼을 때 교수님은 제가 취한 줄 아셨겠죠. 사실 사리분별은 될 정도였어요. 그 다음에 토하고 나서부터는 기억이 없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때 제가 교수님께 한 말은 취해서 횡설수설한 것 따위가 아니에요. 전부 제가 하고 싶었던 말이었어요.”

 

“....하르페이아.”

 

“지금은... 지금은 듣기만 해주세요.

 

교수님을 언제부터 좋아하게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처음 자유론 강의를 듣고, 총균쇠와 사피엔스, 호모 데우스 강의를 듣고, 조교가 되어서 교수님 곁에 계속 있게 되었을 때. 교수님에게 연심이 딱 싹 텄다고 짚을 수 있는 시점은 잘 모르겠지만 어느 순간 제가 교수님을 좋아하고 있더라고요.

 

저, 참 이기적인 년이죠? 교수님께는 이미 칸 대장님이 있는데, 저는 사령관님에게도 연심을 품었으면서 교수님에게도 같은 마음을 가졌어요. 두 사랑 중 어느 쪽이 진짜인지 몰라서 혼란스러웠어요. 사랑은 한 명과 하는 거니까, 그러니 두 명이나 좋아하는 제 마음은 분명 잘못된 거니까요.

 

 

교수님, 저... 그래도 교수님을 좋아해요. 잘못된 건 알지만 교수님을 향한 제 마음이, 지우려고 해도 지워지지 않고 계속 떠올라서 저를 아프게 만들어요.

 

그래서, 그래서, 그래서...”

 

하르페이아는 말을 끝맺지 못했다. 같은 말만 되풀이하던 그녀의 목소리에 이미 눈물이 묻어나고 있었다. 리마토르는 몸을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을 한 하르페이아가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리마토르는 휴지를 뽑아 그녀의 얼굴을 닦아주었다. 끝내지 못한 말을 눈물로 대신하던 그녀는 그래도 말로 표현해야겠다는 생각에 울먹이면서 말을 계속하려했으나 리마토르가 고개를 저었다. 그는 그녀를 가볍게 안아주면서 귓가에 조곤조곤하게 이야기했다.

 

“누군가에게 고백한다는 건 용기를 냈다는 거에요. 저는 용기가 없어서 고백을 한 적이 없기 때문에, 지금 하르페이아가 내준 용기가 정말 고마워요.”

 

“교수님...”

 

“하르페이아, 두 마음 중 어느 게 진실이고 어느 게 거짓이라고 제가 확답할 수 없어요. 그건 하르페이아만이 찾을 수 있고, 찾아야만 하는 답이니까요. 그렇지만 제 입장에서 말할 수 있는 건 저는 이미 임자가 있는 몸이라는 사실이에요. 하르페이아가 내준 용기는 정말 감사하지만, 저는 이미 한 사람을 사랑하고 있어서 하르페이아의 마음까지 전부 받을 수는 없어요. 미안해요.”

 

그녀가 상처받지 않도록 사근사근 말하는 리마토르의 말은 결국 실연을 의미했다. 찬란하지만 아픈 순간에 하르페이아는 가슴 한 켠이 찌르르 떨리는 걸 느꼈다. 하지만 동시에 입에 호선이 그려졌다. 정하지 못해 아프던 마음이 한 방향의 길을 찾은 기분이 들었다. 그녀는 눈물을 닦으며 자신이 사랑한 그에게 말했다.

 

“이해해요, 교수님. 그래도 이제야 알겠어요. 듀이의 말대로 문제해결을 위해 생각하니까 제가 찾는 답을 얻었네요.”

 

애써 웃으면서 말하지만 그녀의 눈에서는 눈물이 샘솟고 있었다. 웃으면서 맞이한 울음에 리마토르는 말없이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그 일만이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고, 그렇게라도 그의 손길을 받는 게 그녀에게 최선이었다.

 

“좋아해요, 교수님.”

 

하르페이아는 마지막으로 중얼거리더니 그에게 기습적으로 입을 맞추었다. 예상 밖의 상황에 리마토르는 얼굴에 한줄기 놀람을 띄우며 갑자기 뭐냐고 되물었으나 하르페이아는 미소만 한 번 날린 뒤 책을 들고 자리에 앉았다.

 

“자, 강의 준비하셔야죠.”

 

“...그래요, 준비합시다.”

 

말할 수 없는 비밀 한 가지와 함께 그는 듀이의 책들을 들고 강의 준비에 착수했다. 하르페이아는 그에게 눈길을 한 번 보내더니 공책에 한 구절을 적었다.

 

 

‘말할 수 없고 이어질 수 없는 이 마음은 혼자 간직할래요.’

 

 

 

둘만 알고 넘어갈 비밀스러운 광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제3자에 의해 관측되었다. 감시카메라에서 넘어오는 영상을 전부 본 리리스는 귀에서 헤드폰을 벗더니 가증스럽다는 투로 중얼거렸다.

 

“하, 주인님께 위험이 될 정도로 인성이 나쁘네. 칸 대장과 거사까지 치른 주제에 하르페이아에게 꼬리를 쳐? 이 사실은 주인님이 반드시 아셔야 해.”

 

 

그 시각, 닥터의 공방에서 연을 챙겨들어 나온 제로는 천장에 대고 물었다.

 

“언니, 잘 됐어요?”

 

“응. 카엔, 잠입 족고수.”

 

그림자처럼 천장에 완벽히 모습을 감추다가 나타난 카엔은 종이뭉치 한 무더기를 제로에게 넘겼다. 내용을 넘겨보며 가볍게 살피던 제로는 사령관이 지시한 사항이 맞다고 판단했다.

 

“좋아요, 언니. 주공께 보고하죠.”

 

“주공, 좋아해줄 거야. 스미레, 하츠나. 안아줄 거야.”

 

“어, 언니! 벌써부터 그런 걸 생각하면...!”

 

“스미레, 얼굴에, 다 비쳐.”

 

“언니!”


------------------------------------------------------------------------------------------------------------------------------------------------------------------

한 편만 들고 오기는 미안해서 한 편 더 써왔어. 이걸로 40.5화부터 나왔던 하르페이아 떡밥 해소했네. 아무래도 일단 리마토르를 궁지로 몰고 시작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우선 사령관이 선공으로 리마토르를 몰아붙일 예정이야. 오래 걸리지는 않고 다음 편에 바로 나올 거니까 질질 늘어질 걱정은 접어놔도 된다고 감히 장담할게. 사령관이 택하게 될 방법은 과연 어떤 걸까?


부족한 글 읽어줘서 모두 고맙다. 다들 행복한 하루 보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