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하자는 에라토의 말을, 거절했다.



세계 최고의 가수, 신의 목소리, 이 시대 최고의 싱어송라이터.

이 식상한 수식어들을 전혀 식상하지 않게 만드는 에라토.


그런 에라토와 얘기해본 적 있다는 건 분명 그 개인에게 큰 영광이다.

그런 에라토와 아는 사이라는 건 분명 그 가족에게 큰 영광이다.

그런 에라토가 친구라고 말해준다면 분명 그 집안 대대로 큰 영광이다.

그런 에라토와 같이 길을 거닐 수 있다면 분명 그 지역에 큰 영광이다.


그런 에라토가 사랑한다고 하는 나라는 인물은

분명 말로 다 할 수 없을 이 극상의 행복을 느끼는 게 당연하겠지.


나보다 훨씬 훌륭한 사람을 많이 만날 그런 위치임에도

에라토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언제나 나만 바라봐줬다.


그 정도가 엄청나서

사귀기 시작한 직후에 언론에 나와 사귄다는 말과 함께 내 신상도 공개해버렸고

나중엔 중요한 자리에도 꼭 나를 데리고 다니니

사실상 세상이 인정해버린 커플인 셈이다.


조금 집착이 심하다고 생각은 하지만,

뭐 어떤가.

나도 사랑하는데.



그런 내가 에라토의 프러포즈를 거절해버렸다.



에라토는 이따금 나를 ‘프로듀서’라고 불렀다.

물론 내 직업이 진짜 프로듀서는 아니다.


“달링이 내 곁에 있으니까 내가 노래할 수 있어.

달링이 있으니 내 노래가 나올 수 있어.

그러니 달링이야말로 진짜 내 프로듀서 아니겠어?”


그렇게 말하며 환하게 웃는 에라토의 얼굴에

농담이 아니라 정말 눈이 멀어버릴 정도였다.


그렇게 웃으며 밝게 말하는 에라토의 말에

농담이 아니라 정말 무의식적으로 사랑한다고 말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난 에라토의 청혼을 거절했다.



에라토는 내가 곁에 있어서 힘이 난다고 했다.

세상 사람들이 자신의 노래를 들으며 힘을 얻는 건 내 덕이라 했다.

하지만 오히려 나야말로 에라토가 있기에 지금까지 살아있을 수 있었다.


힘든 순간에 우연히 들었던 에라토의 노래에

에라토의 다른 노래를 듣고 싶다고 생각해 하루를 더 살아갈 수 있었다.

에라토의 모든 노래를 다 들은 뒤에는

다음에 발매할 앨범을 사고 싶다고 생각해 더 열심히 일할 수 있었다.


내가 곁에서 힘을 줬기 때문에

온 세상이 주목하는 상황에서도 얼마든지 웃을 수 있다고 했다.

수많은 고초를 겪었지만,

내 덕분에 구원받았다고 했다.


하지만 그 이전에 에라토 덕분에 내가 지금까지 웃으며 살 수 있던 만큼,

이거야말로 에라토가 진정 자신을 스스로 구원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래도 그녀와 결혼할 수 없다.



“······왜?”


그녀를 알게 된 이후로 처음 본, 싸늘하게 식어버린 얼굴.

그 얼굴에 스스로 역적이 되어 버린 기분이 든다.


“······왜? 달링, 나 사랑하는 거 아니었어······?”


당장에라도 울 것 같은 목소리에 나는 당연히 사랑한다고 했다.

그러면 왜 결혼하지 않느냐는 에라토의 말에,


“말했잖아.”


그저 담담히 답한다.


“난 에라토 너와 비교하기엔, 아무것도 아니니까.”


에라토의 연인.

날 표현하는 말은 사실상 그뿐이다.


온 세상의 스타인 에라토의 연인으로 있기 위해서 난 제대로 직장을 가질 수 없었다.

행여나 내 행실이 에라토의 앞길을 막아버릴지도 모르니까.


그래서 에라토의 소속사에 들어가 에라토의 매니저 비슷한 일을 했으나

내가 연인임을 숨기지 않은 에라토 때문에 나도 에라토와 자주 방송에 나가게 되어

준 연예인 취급을 받게 되었다.

자연스레 에라토의 매니저 일은 제대로 할 수 없었다.


그나마 처신을 잘해서 주위에서 딱히 비난받지 않았으나

나 자신의 비난은 피할 수 없었다.


“네 곁에 서 있기엔 난 아무것도 아니야.

분명, 이대로 우리가 결혼하면 난 너의 가장 큰 결점이 되겠지. 그렇지만······.”


에라토의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

에라토의 곁에 당당히 설 수 있게

에라토의 오점이 되지 않기 위해

준비 중인 일이 있다.


그러니 그 일이 모두 끝난 뒤

사랑한다고, 결혼해달라고

직접 청혼하겠다.


는 말은

전할 수 없었다.



······



정신을 차리니 머리가 욱신거린다.

뭔가에 맞았던 걸까.

그래도 그 고통 덕인지 좀 더 빠르게 주위를 살필 수 있었다.


흰 대리석 기둥과 보기만 해도 웅장한 아치형 대들보.

불이 꺼져 살짝 어두워도 꽃 덕에 화려한 공간.


전에 에라토가 ‘이런 곳에서 결혼식 올리고 싶다’라 말했던 그 결혼식장이다.


멍하니 주위를 보며 일어나려는데 팔다리에 쇠사슬이 묶여있다.

내가 누운 곳은 부부용 커다란 침대.

그제야 날 내려다보니 흰 정장, 즉 결혼식 날 신랑이 입을 법한 옷을 입고 있다.


“일어났어, 달링?”


결혼식장 문이 열리며 에라토의 목소리가 들린다.

아니, 목소리가 묘하게 이상하다.


이전까진 언제나 밝고 활기찬 목소리였다면

지금의 목소리는 묘하게 살기가 서려 있다.


빛을 등지고 실루엣만으로 신랑을 맞이하러 다가오는 에라토가 천천히 말한다.


“있지, 달링. 우리가 처음 마주친 날 기억해?”


잊을 리가.

이어폰 속에서 들리던 그 목소리의 주인이 바로 앞에 있었는데.


“달링은 잘 몰랐겠지만, 달링과 마주친 순간에 악상이 막 떠올랐다?”

“악상?”

“응. 그대로 돌아가서 곡을 만들었는데, 그 곡이 바로······.”


에라토를 지금의 위치에 오를 수 있도록 해준,

처음으로 히트한 바로 그 곡이다.


“맞아······. 그 이후 갑자기 감사할 일이 있다면서 나한테 왔었지.”

“응. 일부러 달링한테는 자세히 말 안 했었어.”

“왜?”


후후훗, 하는 웃음소리가 들린다.


“원래는 나도 그냥 신기한 일이다 싶어서 정말 감사 인사만 하려고 했어.

그래서 달링이 어떤 사람인지 조금 알아봤지.


그런데 알아보면 알아볼수록 점점 관심이 가더라?”


흥신소 같은 곳을 이용할 생각은 못 하고

혼자 틈틈이 뒤를 따라다니며 무슨 일하는지 살펴보곤 했다.

알면 알수록 점점 마음에 드는 면이 늘어갔고

특히 알바하다 이어폰을 끼고 에라토의 옛 곡을 흥얼거릴 때.


“그때 조금 더 만나보고 싶어서 일부러 얘기 안 했어.”


감사하는 이유를 다음번 데이트 때 알려준다면서

계속 만날 이유를 만들어냈다.


“그때 이미 정했어. 달링은 영원히 내 곁에 두겠다고.”

“저기, 에라토. 그러니까······.”


아무래도 에라토가 뭔가 착각하는 것 같아서 좀 달래보려고 하는데

이어지는 말이 뭔가 이상하다.


“그래서 계속 데리고 다닐 수 있도록 했는데, 여기까지 왔는데······!”

“······어?”



역광 속에서 실루엣을 벗어던지고 등장한 에라토.

아무래도 아이돌인 만큼 어느 정도 노출이 있는 옷을 입은 건 본 적 있지만,


지금 입은 옷은 솔직히 속옷 아닌가?


거기에 천천히 다가오는 에라토의 얼굴.

이전의 생기 가득한 눈은 어디로 간 건지

차가운, 아니 죽은 눈을 하고 있다.


“계속 내가 데리고 다니려고 일부러 직장도 그만두게 했는데!”

“무, 무슨 소리야? 직장은 내가 일부러 문제가 안 생기도록······.”

“문제가 안 생기도록 주위에서 퇴사하는 게 낫지 않겠냐고 얘기했겠지.”


그 말이 맞는다.

물론 퇴사하라는 압박은 아니었지만,

어떻게 그걸?


“취직하려고 해도 안 됐지? 다들 달링을 내 연인으로 여기기 시작했으니까.”


부드럽게, 하지만 섬뜩하게 웃는 에라토의 말에 나는 아무런 반박도 못 했다.

그 말대로, 취직을 하려고 해도 에라토의 연인으로 알려진 만큼 잘 안됐고

주위에서도 굳이 취직해서 에라토한테 폐를 끼칠 필요가 있느냐고 하곤 했다.


“매니저로 쓰면 내 곁에서 편하게 있을 줄 알았건만, 그것도 아니더라?”


아무리 에라토 전속 매니저라고 해도, 에라토 옆에 붙어있을 수만은 없으니까.

사무실에도 업무를 봐야 하는 만큼 에라토와 떨어져 있기도 하고

살인적인 업무 강도 때문에 아무리 에라토가 좋아도 갈수록 지쳐갔다.


그런데 이 일련의 일들을,

특히 매니저가 되기 이전의 일들을

말한 적도 없는데 에라토가 어떻게 안 거지?


마치

에라토가 모든 걸 주도한 것처럼?


“응. 맞아. 그래서 전부 못 하게 해버린 거야.

온 세상에 내 연인으로 공표하고 방송에 내보내면서,

나와 비슷하게 같이 살아갈 수 있도록 말이야.”

“네가, 에라토 네가······?”


그동안 에라토 곁에 당당하게 있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데.

그 노력이 무산될 때마다 얼마나 미안했는데.

그게 모두 에라토가 꾸몄다는 말에 스멀스멀 올라오는 배신감.


“아하핫! 귀여워, 달링♡♡♡.”


내 가슴팍에 던져진 부케.

완전히 다가온 에라토는, 아슬아슬하게 흔들리는 옷 따위 신경 쓰지 않고

천천히 침대로, 내게로 다가온다.


“내 곁에 서 있기엔 아무것도 아니라고?

그래서 내 곁에 당당히 서 있으려고 노력했다고?


틀렸어, 달링.


달링은 내 곁에 서 있는 것 말고 아무것도 못 해야 해.”

“에라토, 너······. 으읍!”


이제 못 견디겠다는 듯 입술을 탐하는 에라토.

제대로 반항도 못 한 채 숨마저 에라토에게 빼앗기고

방금 들은 그 충격적인 일들마저도 점차 머릿속에서 스러져간다.


한참 뒤에야 에라토는 입을 때지만,

에라토도 나도 곧 이어질 일을 예감한다.


“달링. 다다음 앨범 주제가 뭔지 알아?

태교. 바로 태교에 좋은 노래야.”


내 위에 엎드리고 옷의 단추를 푸는 동시에 귀에 대고 속삭이고는

그대로 그 긴 혀로 귀를 탐하다 다시 몸을 일으키는 에라토.


“자, 달링. 그럼 그 이전, 그러니까 다음 앨범 주제는 뭔지 알겠지?”


내 삶을 구원했으면서 동시에 자신의 것으로 떨어뜨린 여자.

에라토가 어두운 눈빛으로 미워할 수 없는 요염한 미소를 지으며


다음 앨범에 수록될, 듀엣으로 부를 사랑의 세레나데 연습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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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ducer

명사

1. 생산자, 생산 회사.

2. 제작자


이제 에라토의 아기 생산자로 취직한 주인공.

잘 됐네 잘 됐어.


아까 에라토가 와이프처럼 얀데레 느낌 나서 좋다고 했는데 직접 함 써봤음

생각해보니 와이프도 아이돌 스킨 있네

(와이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