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모음집   



 

 

사령관실에는 적막이 감돌았다. 환풍구에 몸을 감춘 리리스가 떨어뜨린 종이를 받은 사령관은 빠르게 점과 선의 어지러운 조합을 읽었다. 철저히 아날로그적인 방법이라 오히려 더 안전할 수 있었기에 사령관은 리리스가 제안한 이 아이디어가 마음에 쏙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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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리건 고문, 구인류와 유사함, 의심 필요’

 


내용을 확인한 그는 종이를 구겨서 입안에 넣고 삼켰다. 약 싸먹는데 사용하는 식용 종이인 오부라이트를 정보 전달방법으로 사용한 뒤 먹어서 증거를 인멸하는 방법은 정말 좋은 방법이었다. 혀끝에 감도는 약간의 단맛을 느끼며 사령관은 예전에 읽었던 책의 한 구절을 떠올렸다.

 

“의심하라. 믿고 싶으면 더욱 의심하라.

 

맞는 말이야. 난 리마토르 당신을 믿고 싶단 말이지.”

 

사령관은 업무용 컴퓨터로 칸에게 리마토르를 자신의 방으로 보내라고 연락을 넣었다. 그녀가 자신의 연락을 읽었음을 확인한 그는 천장에 있는 리리스가 들을 수 있도록 검지로 책상을 톡톡 두드렸다. 밖에서 보면 그 혼자 앉아 업무를 보는 평범하디 평범한 일상의 풍경이었으나, 분명 그밖에 없을 공간에 울려 퍼지는 책상 두드리는 소리가 어딘가 석연치 않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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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관찰하라, 긴급하면 사후보고를 허가한다. 

 

알겠어요, 주인님.”

 

리리스는 사령관의 답을 듣자마자 몸을 움직여 환풍구를 빠져나갔다. 비좁은 공간을 능숙하게 타고 움직이면서 그녀는 자신의 자매들에게 지시 사항을 전달했다.

 

“페로, 시위대 동향 잘 살펴. 아직은 분노 터뜨리지 말고, 충분히 폭발력을 낼 수 있을 정도로 리마토르를 향한 분노를 축적하렴.

 

하치코, 펜리르. 너희는 사령관실 앞을 지키고 있으렴. 조금 있으면 리마토르가 그쪽으로 향할 테니 주인님을 보호해야한단다.

 

페더, 포이. 너희는 후방지원을 부탁할게. 유사시 와일드카드로 남아주렴.”

 

“알겠어요.”

 

“네!”

 

“맡겨주라고.”

 

“네.”

 

“냐앙!”

 

자신의 말에 전원 알겠다는 답이 돌아오자 리리스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끈끈한 자매간의 결속에 내심 자부심을 느끼며 그녀는 아직 자신이 파악하지 못한 리마토르의 우군이 있나 파악하고자 오르카호 전체의 환풍구에 뛰어들었다.

 

그 사이 리마토르는 복도를 따라 사령관실로 향했다. 그리 길지 않은 복도임에도 그는 한걸음 한걸음이 형장으로 향하는 사형수의 발걸음과 진배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먼발치서 해맑게 생글생글 웃고 있는 하치코와 붉은 머리칼을 흔들며 자신을 바라보는 펜리르의 형상이 눈에 들어오자 그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컴패니언. 사령관의 경호를 담당하는 부대. 역사적으로 경호부서의 장(長)은 권력자의 최측근이었고, 경호부대가 권력자의 수족으로 부려지는 일도 있었지. 대다수의 독재자들이 자신의 최측근을 통해 권력을 유지했다는 점을 생각하면 컴패니언이 나를 직접적으로 노린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어.

 

그렇지만 보통 권력자가 자신의 통치수단으로 쓰는 건 정보부나 군경처럼 정보와 무력을 전부 가진 조직이야. 그런 면에서 컴패니언은 사령관의 지시와 무관할 수도 있어. 경호실이 경호라는 측면에 한해서 무한에 가까운 자유를 갖는다고 해도, 정보기관처럼 빽빽하게 정보를 수집하는 것과는 이야기가 머니까. 게다가 들킬 염려도 있으니 사령관 입장에서도 정보기관을 음지에서 굴리는 게 더 나을 거야.

 

하지만 정말 양지에 사령관이 구멍을 안 만들었을까? 정보기관은 음지에 있을 때 진가를 발휘하기에 함부로 양지로 꺼낼 수 없다는 단점이 있어. 이는 곧 양지에서 사령관의 영향력이 음지만하지 못한다는 약점이 될 수도 있기에 사령관은 이를 보완하려고 하겠지. 음지의 공작보다 양지에서는 사정기관을 부리는 경우가 더 명분도 있고 실익도 커. 오르카호 내부의 사정기관이라고는 내가 아는 한 시티가드가 전부인데, 사령관이 시티가드를 시켜 나를 옥죄지 않았다는 점에서 시티가드는 권력의 수족과는 거리가 있다고 볼 수 있어. 그럼 남는 건 사정기관이 아니라, 사령관이 마음 놓고 부릴 수 있는 최측근이자 양지에서도 탄탄한 입지를 보유한 부대여야 하는데 이 조건을 충족하는 건 컴패니언 밖에 없어.

 

오르카호에 처음 승선했을 때부터 껄끄러웠는데... 결국 이렇게 척을 지는 사이가 되어버리고만 건가. 그렇지만 한 명이라도 포섭을 성공하면 이야기가 바뀔지도 모르니 일단 완전한 적으로 분류하지는 말자.’

 

리마토르가 생각을 마칠 때쯤 그는 이미 사령관실 앞에 도착해있었다. 겨우 한 걸음 정도 간격을 두고 하치코와 펜리르를 마주한 그는 심각함 위에 여유를 뿌려 평소의 느긋한 얼굴로 위장했다. 헤실헤실 웃는 하치코와 달리 대놓고 도끼눈을 뜨고 으르렁대는 펜리르가 무슨 짓을 저지를까 눈에 밟혔으나 그는 아무렇지 않은 말투로 문을 열어달라고 요청했다.

 

“사령관님께서 날 호출하셨습니다. 문을 열어주시겠어요?”

 

“네!”

 

형식적인 검문이라도 있을 줄 알았으나 입장 절차는 생각보다 간단했다. 팔다리를 만져보리라 생각해 팔을 들려고 했던 리마토르는 하치코가 바로 문을 열어주자 언뜻 사령관이 자신을 심각하게 경계하는 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문을 열자 바로 보이는 책상 뒤로 하얀 정복을 입은 사령관이 앉아있었다. 안과 밖의 공기조차 다른 듯했으나 리마토르는 개의치 않고 뚜벅뚜벅 걸어갔다. 마주앉은 의자 앞에 선 그는 사령관에게 목례와 함께 의례적인 인사를 최대한 공손하게 건넸다.

 

“안녕하세요, 사령관님. 무슨 일로 절 부르셨나요?”

 

“꼭 무슨 일이 있어야 부르겠습니까. 잠시 이야기나 하자는 거죠. 일단 앉으시겠어요?”

 

“네, 감사합니다.”

 

사령관의 허가에 따라 착석한 리마토르는 사령관의 정복 두 번째 단추에 시선을 맞추었다. 철저히 사령관의 권위에 복종하는 모습을 연출함으로써 그는 자연스럽게 사령관의 경계 해제를 이끌어내려고 했다.

 

‘넛지. 분위기를 조성해주는 것만으로 사람들은 연출자의 의도에 따라 움직여준단 말이지. 사령관 당신도 내 손바닥 위로 올라와줘야겠어.’

 

“홍차 향이 참 좋습니다. 드셔보시죠.”

 

사령관은 주전자를 들어 리마토르의 잔에 차를 따랐다. 진홍빛 홍차가 찻잔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며 넘실거리자 리마토르의 시선도 그쪽으로 따라갔다. 그 짧은 순간을 놓치지 않고 사령관은 리마토르의 몸을 빠르게 훑어보았다.

 

‘캐주얼 정장이지만 자켓을 걸치지 않아 와이셔츠만 입고 왔군. 안에 무언가를 감추고 있다고 생각할 여지는 없겠어. 그렇지만 초소형 녹음기를 내가 앉은 위치에서 볼 수 없는 하체에 숨기고 있을 가능성도 있으니 최대한 내가 대화의 주도권을 쥐어야겠군.’

 

“맛이 깊네요. 귀한 홍차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령관이 머릿속 계산기를 두드리는 동안 리마토르는 감사의 인사를 사령관에게 전했다. 약간의 미소를 가식의 가면에 덧바르고 리마토르에게 별말씀이라며 답한 사령관은 먼저 주제를 꺼냈다.

 

“요즘 오르카호에서 어떻게 지내시나요? 바이오로이드의 인간성에 대한 보고서는 꾸준히 제출하고 계시는데 좀 쉬엄쉬엄하시죠.”

 

“사령관님의 배려 덕분에 늘 편하게 지내고 있죠. 논문 완성을 앞두고 있으니 빠른 시일 내로 좋은 결과를 전해드릴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그래주시면 저야 감사드리죠.”

 

일상적인 대화로 위장되었으나 그 속내를 뜯어보면 단 한 번의 실수로 벼랑에 떨어질 수 있는 팽팽한 바둑 경기나 다름없었다. 승리를 위해 필요한 건 오직 상대방의 활로를 막고 자신의 영토를 확장하는 것. 둘은 어떤 수를 두어야 자신이 바라보고 있는 자의 숨통을 조를 수 있을지 몇 번이고 판을 두고 허물기를 반복했다. 먼저 계산을 끝낸 건 리마토르였다.

 

“사령관님, 오늘 아침에 스프리건이 쓴 기사를 보셨나요?”

 

“무슨 내용이 있었나요? 제가 일하느라 뉴스를 잘 못 봐서요.”

 

떠보기 없는 돌격. 리마토르는 주제를 직설적으로 꺼냈다. 대화를 주도하려 주제를 고르던 사령관은 선공을 내주었음에도 크게 불리할 건 없다고 판단하며 그의 이야기를 경청할 준비를 했다. 한 마디 말을 꺼내기 전, 찰나의 순간에도 리마토르와 사령관은 계산을 끝냈다.

 

‘시간을 끌수록 내가 불리해. 판을 짜두지 않고 덤비는 건 내 스타일이 아니지만 직설법으로 빠르게 끝내야 내 쪽에서 책잡힐 껀덕지를 내주지 않을 거야.’

 

‘발등에 불이 떨어졌나보군. 이런 식으로 직접적인 도전을 한다면 피할 생각은 없지. 더욱 내 영역으로 깊숙이 들어오도록 유도한다.’

 

“스프리건이 오늘 작성한 기사를 보니, 제가 하르페이아와 불륜 관계라는 주장을 하고 있었습니다. 명백히 사실이 아니기에 스프리건에게 엄중히 항의했음에도 이미 기사가 많이 퍼졌는지 저를 규탄하는 시위대가 조직되어 지금 상황이 난처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일이 있었나요? 이거 아주 큰일이군요.”

 

사령관은 짐짓 놀라는 척하면서 더 말해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잠깐 사이 스쳐지나가는 그의 표정을 읽은 리마토르는 바로 상황을 분석해서 어디에 다음 수를 놓을지 판단했다.

 

‘놀라는 것처럼 보이지만 눈썹이 올라가지 않고 입만 벌어지고 있어. 게다가 동공의 떨림이나 크기에도 사소한 변화조차 없는 걸 보니 현재 사령관은 놀라는 ‘척’을 하고 있다고 봐야겠지. 이미 내게 무슨 일이 있는지 파악했음에도 처음 듣는 연기를 한다는 건 이 사건에 당신이 개입되어 있음을 증명해. 더 끌지 않고 바로 찔러야겠어.’

 

“저만 규탄하면 그래도 다행인데, 칸까지 피해를 보고 있어서 걱정이 큽니다. 아스널의 도움을 받아 아니라는 해명을 했음에도 시위가 사라지지 않아서 사령관님께 도움을 구하고자 합니다.”

 

“제게요? 제가 뭘 할 수 있다고 그러시는 겁니까.”

 

리마토르의 말을 들은 사령관은 속으로 혀를 찼다. 차가운 조소를 날리는 동시에 그는 리마토르가 했던 말과 리리스가 자신에게 보고한 사안을 교차 해석했다. 한 번이라도 주도권을 내주면 상대의 공격에 쭉쭉 밀릴 수밖에 없었기에 사령관은 그를 몰아붙일 방법을 철저히 계산했다.

 

‘엄중한 항의? 고문을 달리 이르는 말인가, 같잖군. 그런 와중에 자신이 아닌 칸이 피해를 보고 있음을 강조해서 자신에게 돌아갈 비판점을 줄이려고 시도하는군. 두 번째 인간인 자신을 규탄하는 시위를 막으려고 하면 구인류의 본성을 의심받을까봐 지휘관인 칸의 안위를 들어 시위 문제가 심각함을 강조하려는 것 같은데, 그런 얕은 수에는 넘어가지 않아.’

 

“제가 사령관 직함을 달고 있지만 함내에서 제 권한이 전능함을 의미하는 건 아니지요. 특히 바이오로이드에 대해서는 더더욱 그렇죠.”

 

“아닙니다. 저항군의 총사령관이라는 이름이 어떻게 가벼울 수가 있나요. 바이오로이드에 대해 전권을 쥐는 게 아니라 권위가 우러나온다고 해석함이 타당합니다.”

 

‘겸손한 것처럼 보이지만 자신이 손을 대지 않겠다는 뜻을 은근슬쩍 드러내고 있군. 사령관, 이번 일의 배후가 당신임을 부인하려는 모양인데, 이럴수록 의혹만 강해진다고. 날 도울 의사가 없다면 어떻게든 이 상황을 무마할 수를 두게 넛지를 써야지.’

 

리마토르는 머릿속을 뒤져서 전에 읽었던 넛지의 사례 중 지금 사용할 수 있는 패를 골랐다. 상대방의 숨길을 완전히 끊을 수 없으면 난전으로 몰고 가서 자신에게 유리한 길로 들어오도록 덫을 놓을 생각이었다. 그가 다음에 할 말을 정한 순간, 사령관이 먼저 말을 꺼냈다.

 

“혹시 스프리건의 시위대를 제게 막아달라는 부탁이라면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개인이 자유로운 의사 표현을 명령권으로 제한할 수는 없습니다.”

 

자신이 하려던 말을 앞질러 방어책을 꺼낸 사령관이 모습에 리마토르는 속으로 혀를 찼다. 세워둔 계획이 어그러지자 그는 즉시 우회로를 모색했다. 반면 리마토르의 생각을 앞질러서 수를 놓았다고 생각한 사령관은 여유롭게 그를 더 몰아붙일 방법을 생각했다.

 

‘젠장, 빠르게 찌르려고 했는데 역으로 내가 찔려버렸군. 역시 만만히 봐서는 안 될 상대야. 사령관이 명분으로 자유를 앞세웠으니 그걸 제한하자고 말하면 나 스스로 내 입지를 좁히는 함정에 빠져. 이런 상황에서는 언론의 책임으로 가야겠어.’

 

‘리마토르 당신은 나한테 어떤 식으로든 방비책을 세워달라고 하려는 모양인데, 그렇게 둘 수는 없지. 미안하지만 이번 시위대는 리리스를 통해 프락치를 심어둔 시위라서 내 손으로 해산시키기는 곤란하다고. 당신을 흔들어서 숨겨둔 본성을 읽어주겠어.’

 

“스프리건이 오르카호 내부에서 언론으로서의 입지를 갖고 있는 걸로 압니다만, 펜을 쥔 자는 그에 상응하는 책임도 져야죠. 이번 사태에 대해 사령관님께서 한 마디만 논평해주시기를 부탁드리겠습니다.”

 

“논평이라니 가당치도 않습니다. 제가 어떤 식으로든 메시지를 표하면 그게 곧 겁박이 될 수 있죠. 죄송합니다만 제가 이 일에 있어 도와드릴 수 있는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리마토르가 불리한 상황을 타개하려 괜찮아 보이는 선택지를 골라도 사령관은 원칙을 고수하며 그의 앞길을 막았다. 명분만 따지면 사령관 쪽이 더 우세했기에 리마토르는 자신이 점점 모퉁이로 몰림을 여실히 느꼈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결론은 돕지 않겠다는 말. 처음부터 사령관이 판을 짰다는 정황증거는 신뢰할 수 있을 정도로 굳어졌어. 만약 사령관이 무관했다면 시위대가 발생하는 중대한 상황에서 하다못해 최소한 견책 정도는 했을 텐데, 그마저도 해주지 않겠다는 건 나를 곤란에 빠뜨려야할 이유가 있다는 의미지.

 

그렇지만 대체 왜? 날 밀어붙여서 사령관이 얻는 게 뭐가 있지?’

 

 

‘뭐라도 해볼 요량인가 본데, 가만 둘 생각은 추호도 없다고. 스프리건 고문은 당신이 했다는 증거가 아직 확실치 않으니 제쳐놓는다고 해도 조사가 끝나는 대로 결과에 따라 처분을 결정하겠어. 그때까지 머리 굴릴 틈을 안 주는 게 내게는 최선이니까 당신은 열심히 고생해야지.’

 

“그러시다면야 저도 달리 더 드릴 말씀이 없군요. 이번 일이 더 커지지 않게 수습하도록 하겠습니다.”

 

“부디 잘 넘어가시길 바랍니다. 필요하시면 제가 능력이 닿는 한 도울 테니 말씀해주시길.”

 

리마토르는 더 끌고 가봤자 자신의 승률만 줄어든다는 상황을 파악하고 판을 떴다. 사령관은 그가 방에 처음 들어왔을 때와 변함없이 인자한 목소리로 그를 배웅해주었으나 그의 얼굴에 묘한 자신감이 붙은 희열이 생긴 걸 확인한 리마토르는 이번 대화가 철저한 수 싸움이었음을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젠장, 얻은 게 확실한 만큼 잃은 것도 크군.”

 

문을 닫고 사령관실을 빠져나온 리마토르는 여전히 사령관실 앞을 지키고 있는 펜리르와 하치코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음을 느꼈다. 그녀들이 무언가를 알아내리라는 보장은 없었으나, 뭐가 되었든 자신에게 불리한 정보가 더 퍼지면 득이 될 게 하나도 없었기에 그는 급히 호드의 숙소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컴패니언 숙소에서 리마토르의 동선을 카메라로 바라보던 포이와 페더는 그를 두고 한 마디씩 주고받았다.

 

“주인님께 제대로 당했나 보네.”

 

“저 방향으로 쭉 가시면 페로 언니가 나올 텐데...”

 

포이는 날이 선 발톱을 만지작거리면서 리마토르가 공격적인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가 주시했다. 스노우 페더는 그와 반대로 안타까움이 가득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예상대로 리마토르가 호드의 숙소로 향하는 도중 시위대가 그를 에워쌌다. 리리스의 소형 카메라에도 똑똑히 잡히는 페로의 하얀 기척이 시위대를 암약하며 리마토르를 향한 분노의 방향을 자극하고 있었다.

 

“다들 빈손이 아니야...”

 

스노우 페더는 영상을 바라보다가 알아챈 사실을 중얼거렸다. 흐릿해서 무얼 들었는지 구체적으로 식별되지는 않았으나, 한눈에 보기에도 맞았다가는 곱게 끝나지 않게 생긴 물건들이었기에 그녀의 연민은 눈살에 주름을 잡았다. 마음속에서 삼각형이 빙글빙글 돌아가며 그녀를 콕콕 찔렀음에도 스노우 페더는 영상에서 눈을 돌리지 못했다.

 

그녀의 불길한 예감은 이번에도 적중했다. 리마토르가 무언가를 말하려고 했으나 녹색 물체가 허공을 가른 걸 신호탄으로 온갖 물건이 그를 과녁으로 해서 날아왔다. 원거리 공격의 끝은 근접 공격의 효시였고, 근접 공격의 끝은 보이지 않았다.

 


그 광경을 계속 보던 스노우 페더는 말없이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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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령관 vs 리마토르, 드디어 두 사람이 제대로 맞붙기 시작했네. 한 수 한 수에 따라 승패가 결정되는 치열한 접전에서 승리할 이는 과연 누굴까. 사령관에게는 아르망이 있으니 리마토르가 지나치게 불리한 게 아닌가 싶겠지만, 아르망에게도 치명적인 한계가 있지. 그 점을 파고들어서 밸런스는 어느 정도 맞출 생각이야.


사령관과 붙는 스토리라고 해서 계속 무겁게 가는 건 아니야. 이번 에피소드가 끝나면 칸을 포함한 다른 등장인물들과 일상 에피소드 몇 편 다시 풀고 본편으로 넘어갈 예정인데, 혹시라도 질질 끈다는 인상을 받으면 언제든 의견 남겨주길 부탁할게. 가능한 선에서 적절히 완급 조절할게.



오늘도 부족한 글 읽어줘서 모두에게 감사를 전한다. 다들 좋은 일만 가득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