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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가 터진다.

 

콰직!

 

뼈가 부러진다.

 

으득!

 

근육이 찢어진다.

 

찌지직!

 

내장이 튀어나온다.

 

 

 

“커허억! 크헙! 이 개새...!!!”

 

“뭐.”

 

 

 

나는 미친듯이 주먹을 내질렀다.

 

주먹 끝에 응어리진 핏덩어리들이 젤리처럼 묻어 나왔다.

내장을 손으로 잡고 뜯어낼 때면 놈의 몸 속 더러운 지방 덩어리들이 내 손가락 위로 미끄러지며 비산했다.

 

파직!

 

놈의 입에서 짓이겨진 이빨 조각이 내 손에 박혔다.

하얀 가루로 코팅된 것처럼 엉망이 된 주먹을 보면 나는 이를 악 물었다.

 

 

 

“어금니 꽉 깨물어라.”

 

“너... 너 이 미친 새끼가...”

 

“안 그러면 너만 더 아파질 테니까.”

 

 

 

퍼억!

 

내 손가락 사이에 박힌 놈의 어금니가 너클처럼 놈의 턱뼈를 가격했다

턱을 뭉개버리며 더욱 파고 드는 어금니.

놈의 얼굴뼈가 무너지며 이목구비의 형상이 불꽃에 녹아버리는 것처럼 흐물거렸다.

 

누가 보아도 그로테스크하기 그지 없는 장면.

 

하지만 나에겐 더할 나위 없이 익숙한 광경이었다.

 

 

 

“죽고 나서 일주일 된 브라우니가 딱 그 얼굴이었는데, 알아?”

 

“내... 내가 그걸 어떻게 알-“

 

“알았어야지.”

 

 

 

한 순간에 회복된 놈의 안면.

 

퍼억!

 

나는 다시 한 번 똑같은 궤도로 주먹을 내지르며 왼쪽 턱뼈를 산산조각냈다.

 

 

 

“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네가 사령관이었는데, 알았어야지.

너 때문에 죽은 애들이었잖아.”

 

 

 

비명을 지르는 놈의 입 속에서 분홍색 혓바닥이 보였다.

 

10 cm도 되지 않는 작은 혀.

 

저 혀는 몇 명이나 되는 사람의 눈물 맛을 기억하고 있을까,

저 혓바닥의 미뢰를 충족시켜주기 위해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희생했을까,

 

허망하구나.

 

수천, 수만 명을 죽인 혀라고 하기엔 너무 작다.

 

 

 

“으아?!!”

 

“네 호의 한 번이면 기뻐할 수 있는 애들이었잖아.”

 

 

 

나는 놈의 혀를 손으로 잡은 뒤, 그대로 잡아 당겼다.

 

꾸지지지직!

 

굴 속에 숨어 있던 뱀처럼 길게 뻗어져 나오는 혓바닥.

놈의 입에선 우스꽝스러운 비명 소리가 터져 나왔다.

 

 

 

“으에에에에에!!!”

 

 

 

혀가 움직일 수 없으니 제대로 말조차 할 수 없게 된 놈.

 

만약 아이들 중 한 명이라도 이렇게 할 수 있었다면, 그딴 더러운 명령 같은 건 듣지 않아도 됐을 텐데.

 

답답하다.

이토록 나약하고 무력한 인간 한 놈 때문에 하나의 세계가 버려질 뻔했다.

 

혀를 쥐고 있던 손에는 무의식적으로 힘이 들어갔다.

 

콰지직!

 

길게 딸려 나오다 못해 끊어지기 시작한 혀.

 

혀와 혀 사이에 미세한 틈새가 벌어졌다.

근섬유와 단백질들이 작은 다리처럼 엮어져 있는 틈새.

내가 손에 힘을 줄 때마다 그 사이는 단숨에 벌어졌다.

 

 

 

“아아아아아아!!!!!!!!!!”

 

“엄살 부리지 마. 어차피 또 회복될 거 아냐?”

 

“으갸갸갸갸갸!!!!”

 

“다음에는 혀가 아니라 목을 잘라버려야 되겠네.”

 

 

 

콰지직!

 

거대한 나무의 뿌리를 뽑는 듯, 나는 힘껏 팔을 잡아 당겼다.

 

길쭉하게 뽑혀 나오는 분홍색의 기다란 가닥.

마치 100년 묵은 삼산처럼 살이 토실토실 오른 혓바닥은 들고 있는 것만으로도 조금 묵직하게 느껴졌을 정도다.

 

 

 

“아아아아아아아아!!”

 

 

 

입에서 분수처럼 피를 뿜어대는 놈을 보며 나는 생각했다.

 

안 된다.

이대로 내버려 두면 무의미한 괴롭힘이 될 뿐이다.

얼마 안 가 놈은 또 회복할 테고, 그럼 괜히 내 힘만 빠지는 악순환이 계속 되겠지.

 

쿠직!

 

그래서 나는 입고 있던 옷의 소매를 찢어 돌돌 만 다음 놈의 입 속에 처넣었다.

 

 

 

“으브브브브브!!”

 

“아무리 여기라도 회복되는 건 만능이 아니겠지.

방해물이 있으면 속도가 늦춰질 거야.”

 

“으브?”

 

“혓바닥에서 나오는 피에 질식사하고 싶지 않으면 빨리 뽑아보라고.”

 

 

 

내 말을 들은 녀석은 미친 듯이 발버둥치며 입 속에 손을 집어 넣으려고 했다.

입 속 가득 물려 있는 천을 빼내려 손으로 잡아 당기기도 했고, 지 입가를 스스로 뜯으려 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계속 놈의 입을 손바닥으로 짓누르고 있었고, 놈의 눈동자는 점차 뒤집히기 시작했다.

아마 자세 때문이었겠지.

내게 깔려 있던 터라 꼴사납게 바닥에 누워 있던 놈은 아마 피를 뱉기 힘들었을 것이다.

이대로 내버려 두면 기도로 혈액이 빨려 들어갈 테고, 그러면 금방 기절해버리고 말겠지.

 

 

 

“벌써 자려고?”

 

 

 

그러면 안 된다.

아직 느껴야 할 고통이 얼마나 많이 남았는데.

 

나는 바둥거리는 놈의 다리뼈를 발로 천천히 짓눌렀다.

 

으지직!

 

수수깡처럼 으스러지기 시작한 놈의 종아리뼈가 피부 밖으로 삐죽 튀어나왔다.

갑자기 잔잔해진 몸의 격통에 놈은 이질감이 드는 다리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그리고 다음 순간.

 

 

 

“!!!!!!!!!!!!!!!”

 

 

 

입에 물린 천 조각을 뱉어내려 했던 녀석은 그걸 반대로 쑤셔 넣었다.

해일처럼 몰려오는 고통을 참으려면 뭔가 씹을 게 필요했으니까.

 

어금니가 빠직거리는 게 들린다.

어찌나 세게 씹고 있으면 잇몸 주변에 멍이 일고 있었다.

 

 

 

“네가 재미 삼아 죽였던 브라우니들.

그 애들 대다수가 제조 캡슐에서 떨어질 때 다리부터 떨어졌다 하더라고.”

 

“으브브브브브!!!!!”

 

“그러니까 너도 한 번 당해봐.”

 

 

 

으득!

 

나는 녀석의 발꿈치를 반대 방향으로 뒤틀어 버리며 천천히 위로 향했다.

 

발과 발목 사이에 연결되어 있던 힘줄을 한 가닥 한 가닥 손톱으로 잘랐다.

종아리의 부러진 뼈가 비복근을 최대한 찌를 수 있도록 온갖 방향으로 수 차례 뼈를 으스러뜨려다.

반막근, 대퇴이둔근이 짓이겨지는 기분을 느낄 수 있게 주먹으로 천천히 누르고 압착했다.

 

외력이 가득 담겨 있던 주먹은 마치 반죽기처럼 놈의 다리를 빨아 들었고, 이내 놈의 두툼한 허벅지는 얇은 종잇장처럼 매끈해졌다.

 

피부와 근육 속에서 터져 나오는 핏덩어리들.

 

 

 

“으뱌뱌뱌뱌뱍!!”

 

“에이, 네가 했던 짓에 비하면 이 정도는 아픈 것도 아닌데 뭘 그래?”

 

 

 

놈의 몸은 발작적으로 경련을 일으켰다.

마치 죽기 직전의 물고기처럼.

예전에 물고기 척수에 가느다란 철사를 집어 넣어 신경을 죽이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그러면 몸 전체가 미친 듯이 떨리는데, 아마 지금 이 놈의 모습이 딱 그 꼴이지 않을까 싶다.

 

 

 

“... 하아.”

 

 

 

하지만, 나는 힘이 부쳤다.

 

애초에 몸 상태가 엉망이었던 탓도 있고, 이 이상으로 외력을 운용하는 건 내 쪽에서 먼저 기절할 것 같다.

 

바닥에 죽은 동태처럼 엎드려져 숨을 몰아 쉬는 놈이 보인다.

 

숨을 쉬어?

너 같은 놈이 감히?

 

 

 

“으브브브?!”

 

 

 

생각이 마무리 되기도 전에 손이 나갔다.

 

너는 자격이 없다.

감히 살아 있을 자격이.

눈 앞에 생명을 생명으로 보지 않았던 네게 그런 자격 따윈 주어질 수 없다.

 

나는 쓰러져 있는 놈의 몸에 올라타 목을 손으로 움켜 쥐었다.

놈의 입에선 피거품이 터져 나왔다. 눈은 핑그르르 돌기 직전이었고 눈동자는 이미 반쯤 위로 사라졌다.

하지만 여기서는 죽을 수 없었기에 놈의 의식은 여전히 팽팽하게 이어져 있었다.

 

지긋지긋한 바퀴벌레처럼 살아남아 있는 놈.

기운이 빠진다.

복수의 무용론 따위 때문이 아니었다.

 

내가 어떤 짓을 해도 제대로 된 복수가 되지 못할 것 같아서.

 

수천 명의 아이들이 겪었던 그 고통의 백 분의 일도 돌려주지 못할 것 같아서.

 

 

 

“일어나라.”

 

 

 

뒤쪽에서 별의 아이가 나에게로 걸어온 것은 그 때였다.

 

 

 

“네...?”

 

“일어나라 하였다. 그렇게 죽인다고 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

 

“... 제가 못다한 일을 해야 합니다.

이 놈이 그 아픔을 조금이나마 이해하려면...”

 

“그걸 네가 할 수 있겠느냐?”

 

 

 

나는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아무리 네가 2회차를 견뎌낸 환생자라 한들, 네 힘이 무한한 것은 아니다.

잔혹한 것을 보면 정신이 흔들리고, 상상할 수 있는 것 이상의 이야기는 떠올릴 수 없지.”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 지 알 것 같았다.

 

아이들 한 명 한 명의 고통은 내가 품어줄 수 있을 지 모른다.

하지만 ‘모든’ 아이의 트라우마를 동시에 품을 수는 없다.

 

다리가 잘리고, 피부가 뜯겨 나가고, 온 몸의 뼈가 부숴지던 그 고통을,

수천 명 분의 격통을 내가 품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만약 그랬다간 내 정신이 먼저 붕괴해버리고 말테니까.

 

 

 

“... 그래도 복수를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면 악귀가 되겠느냐? 여기까지 와서?”

 

“... ...”

 

“네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을 갚기 위해 손에 피를 묻히지 마라.

그랬다간 복수는커녕 네가 먼저 망가지고 말 터니.”

 

“그래서... 포기하란 말입니까?”

 

 

 

내 말에 별의 아이는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아니. 너의 복수를 어느 누가 부당하다 말하겠느냐?”

 

“네?”

 

“너는 충분히 고통 받아왔고, 그 모든 걸 참고 인내해 여기까지 왔지.

네 복수는 정당하고, 네 분노는 만인이 이해할 수 있는 가치다.”

 

“그러면...”

 

“내가 도와주마.”

 

 

 

그 순간, 손 끝에서 미약하게나마 느껴지던 외력의 흔적이 완전히 사라졌다.

 

내 몸에서 흩어져 나가는 보라색 아우라.

그 모든 것이 원래 자신의 주인에게로 돌아가고 있었다.

 

파직-

 

별의 아이. 그녀의 주변에 푸르른 강기가 흘러 넘쳤다.

처음 만났을 때만큼 웅혼한 격이 느껴지는 것은 아니었지만, 사람을 두렵게 만들기엔 충분한 기운이었다.

 

보라색 안광이 길게 이어지는 시선.

 

 

 

“일어나라.”

 

 

 

그 시선이 마침내 이 ‘선’의 원래 주인에게로 향했다.

 

 

 

“으브브브브!!!”

 

“이 별의 마지막 기회여. 잘 들어라.

나는 아주 오랜 시간 동안 너를 보았다.”

 

 

 

짙은 안개처럼 흩뿌려지던 자색의 연무가 놈의 몸을 휘감았고, 바닥에 쓰러져 있던 녀석의 신체는 뭔가에 붙들린 것처럼 허공에 떠올랐다.

 

중력의 영향으로 아래 쪽으로 쓸려 내려가는 놈의 내장과 뼛조각들.

그 충격으로 기절하기 직전이었던 놈은 단숨에 정신을 차렸다.

 

별의 아이는 놈의 입을 막고 있던 천 덩어리를 빼냈다.

딱딱한 돌덩어리처럼 굳어 있던 핏덩이들이 우박처럼 쏟아져 내렸고, 그 속엔 지저분하게 잘려져 있던 혓바닥이 회복의 낌새를 보이고 있었다.

 

 

 

“이... 이거 뭐야 씨발! 놔! 놓으라고!”

 

“네 죄악이 하늘에 닿았고, 네 악행이 지옥 끝자락에 다다랐다.

나의 별은 너로 인해 비극을 맞이 했고, 너는 그 속에서 희희낙락 유희를 즐겼다.”

 

 

 

별의 아이가 자신의 오른손을 들어 친히 놈의 얼굴을 매만졌다.

나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을 때 그랬던 것처럼 부드럽게.

 

하지만 왜였을까, 그 속에서 깊이를 알 수 없는 분노가 느껴졌다.

곁에 있는 나조차도 알아챌 수 있을 만큼 선명한 분노.

피부에 소름이 돋았고, 온 몸의 솜털이 바스스 솟아 올랐다.

사지가 검게 물드는 듯한 감각, 등골을 타고 흐르는 신경계가 일제히 마비된 느낌.

 

이건, 공포다.

 

정체 모를 미지의 존재의 분노.

그것이 공포가 되어 절망처럼 놈의 정신을 가장자리부터 갉아먹기 시작했다.

 

 

 

“이것은, 그 모든 것에 대한 대가다.”

 

 

 

쿠구구구구구.

 

하늘이 울리는 소리에 나는 불현듯 고개를 돌려 심혼한 바닷가를 보았다.

 

태풍이 올 것처럼 거칠게 흔들리는 수면.

세차게 이는 바람에 일렁이는 파도는, 마치 가시처럼 뾰족한 물비늘로 수면을 찔렀다.

 

 

 

“아... 아아아아아...!!!”

 

 

 

별의 아이에게 붙들린 놈이 미치광이처럼 단말마를 내질렀다.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봤던 것처럼, 떠지지 말아야 할 계몽에 눈을 뜬 사람처럼.

그리고 그 원인은, 나의 눈에도 보였다.

 

드넓은 바다 전체를 아우르는 거대한 존재의 환영.

 

심해에서 올라온 것처럼 반투명의 무기질적인 신체.

 

생명이라 볼 수 없으나, 분명 우리를 오시하고 있다는 저 선명한 시선.

 

고오오오오오오.

 

족히 하늘을 가릴 만큼 거대한 촉수를 가진, 정체불명의 존재가 바다에서 튀어나와 섬뜩한 눈으로 우리를 보고 있었다.

 

 

 

“... 저게... 진짜 별의 아이...”

 

 

 

생각해 보면 나는 별의 아이의 진체를 보지 못했다.

‘달’을 비롯한 몇몇 별의 아이의 시체는 교황의 전시장에서 본 적이 있긴 하지만 그것도 잘게 조각난 형태였을 뿐, 살아있는 생물체는 아니었다.

 

하지만 저걸 보는 순간, 나는 그걸 다행이라 생각할 수 있었다.

 

온 힘을 다한, 삶의 끝자락에 다다른 별의 아이마저 저토록 웅혼하고 신비하기까지 한 강기로 감싸여 있다.

 

바다와 하늘의 경계를 우습게 짓누르며 나타난 ‘지구’의 진체를 보며 나는 입을 다물었다.

 

 

 

“우리는 더러운 살덩어리를 씹어 삼키는 자.”

 

 

 

거대한 환영에 달린 동그란 자색의 눈동자가,

마치 태양처럼 크고 광대한 그 눈동자가 놈을 바라보며 심연처럼 어두운 입을 벌렸다.

 

부륵- 부륵- 부륵-

 

그 순간, 녀석의 몸의 온갖 곳이 풍선처럼 부풀기 시작했다.

 

 

 

“으브? 으브! 으브!!”

 

“또한 인간 영혼의 수확자이니, 지금 이 별의 악혼(惡魂)을 수확한다.”

 

 

 

팔과 몸의 접합부에 종양 같은 것이 생기더니, 이내 팔 전체를 삼켜버렸다.

 

내장 겉면에 붙어 있던 지방덩어리가 순식간에 어린 아이 크기로 커지며 다리와 하체를 전부 뒤덮었다.

 

부풀고, 커지고, 삼켜지고,

외신의 무자비한 시선 속에서 놈의 몸은 마치 하나의 거대한 세포처럼 덩어리지기 시작했다.

당연하게도 내부의 근섬유와 뼈 역시 무질서하게 뒤엉켰다.

 

빠각! 빠각!

 

부러진 뼛조각들이 자신을 삼킨 살덩어리를 쉴 새 없이 찔렀다.

질긴 힘줄들이 응어리진 지방을 팽팽하게 휘감으며 잘라버릴 듯이 신체를 압박한다.

 

하나의 생명이 하나의 고깃덩어리 블록으로 전락해버리는 모습.

 

-아무리 네가 2회차를 견뎌낸 환생자라 한들, 네 힘이 무한한 것은 아니다.

잔혹한 것을 보면 정신이 흔들리고, 상상할 수 있는 것 이상의 이야기는 떠올릴 수 없지.

 

어째서 ‘지구’가 나에게 그런 말을 했는지 알 것 같다.

나는 결코 저런 ‘복수’를 상상할 수 없었을 테니까.

 

 

 

“나의 별을 비극으로 몰고 간 인간이여.”

 

 

 

별의 아이는 눈 앞에 있는 ‘살점 블록’을 바라보았다.

 

냉장고 만한 크기의 살색 덩어리.

그 위에는 눈 한 개가 달려 있었고, 입 하나가 성의 없이 그려진 한 줄기 선으로 남아 있었다.

자세히 보니 작은 구멍 두 개가 달려 있다. 아마 저게 콧구멍이겠지.

 

숨 쉬는 것, 눈으로 바라보는 것,

그저 사는 것과, 눈으로 시간을 흐름을 느끼는 것밖에 할 수 없게 된 녀석이 떨리는 눈으로 ‘지구’를 바라보았다.

 

 

 

“너는 너의 죗값을 다하라. 그리하면 원래의 몸으로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

 

 

 

그 말에 순간 희망을 본 것인지, 놈은 반짝이는 눈으로 ‘지구’에게 아첨하듯 꿈뻑거렸다.

 

어떻게 하면 죗값을 다 치를 수 있죠?

어떻게 해야 원래 몸으로 돌아갈 수 있는 건가요?

그런 질문을 물어보려는 것 같은 눈빛.

기다란 입은 힘겹게 뻐금거리며 별의 아이의 시선을 끌었다.

 

하지만 ‘지구’는 벌레 보는 듯한 눈초리로 내려다 보며, 옆으로 한 발자국 물러났다.

 

 

 

“네 죗값을 치르는 방법은 다음과 같으니.”

 

 

 

눈 앞에 펼쳐진 광활한 바다.

 

그 순간, 모든 바닷물이 어마어마한 기세로 후퇴하기 시작했다.

 

한 때 바다였던 모든 공간이 광대한 벌판이 되어버렸고, 그곳에 있었던 물들은 하늘에 있는 거대한 구멍 속으로 홀연히 빨려 들어갔다.

 

상황의 맥락조차 이해할 수 없는 녀석에게, 별의 아이가 말했다.

 

 

 

“바다를 채워라.”

 

“... 으브?”

 

“눈물로 채워도 좋다. 피로 채워도 좋다.

네가 흘릴 눈물은 대원들이 흘린 눈물의 값이고, 네가 흘릴 피는 대원들이 흘린 피의 값이니.

땀도 좋다. 체액도 좋다. 무엇으로든 저 빈 곳을 채우라.”

 

 

 

그 말을 듣자마자, 놈의 눈에서는 눈물이 한 방울 흘러나왔다.

아마 아파서 그런 것일 거다. 무질서하게 엉킨 살덩어리 속에서 뼛조각들이 자기 몸을 찌르고 있을 테니까.

 

마찬가지로 피도 한 줄기 흘러 나왔다.

자신이 들은 말을 의심하는 것처럼 식은땀도 흘렸고, 입이 달려 있는 곳에선 바보처럼 침도 흘러 내렸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합쳐봤자 고작 한 줄기 방울이 될 뿐.

놈의 눈은 바다를 향해 흘러 가는, 모래알갱이 몇 개 크기도 안 되는 얇디 얇은 물줄기를 바라 보았다.

 

 

 

“수만 명의 하루는, 한 명에게 수만 일과 같다.”

 

 

 

‘지구’는 그 줄기를 보란 듯이 발로 짓밟으며 놈에게 말했다.

 

 

 

“네가 수만 명의 아이들로부터 앗아간 수만 일은, 과연 무엇과 같을까?”

 

“으... 으브브... ...”

 

“어디 한 번 잘 견뎌보거라. 가증스러운 비극이여.”

 

“으브브브브브브브!!!!!!!”

 

 

 

그 말을 끝으로, ‘지구’는 나를 데리고 해안가를 따라 걸어갔다.

 

다리도, 팔도, 아무런 부속지도 없던 놈은 파닥거리지도 못한 채 멀어지는 우리를 황망하게 지켜볼 뿐이었다.

 

그렇게 한 줄기 눈물이 또 바다를 향해 흘러 내렸다.

자신의 운명을 깨달았다면 아마 몇 줄기 정도는 더 흘렀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게 바다에 닿기 전에 증발될 지 어떨 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바다의 물은 지금도 하늘의 구멍을 향해 소용돌이 치며 빨려 들어가고 있었으니까.

 

저벅-

 

살결이 떨려 오는 섬뜩함과 함께, 나는 별의 아이를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멀리서 들려오는 누군가의 흐느낌을 들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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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해안가를 따라 걸은 우리는 더 이상 놈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곳까지 걸어올 수 있었다.

 

바다가 전부 다 빠져버린 탓에 내가 걷고 있는 곳이 해안가라는 것조차 잊을 때가 많았지만, 그래도 발에 걸리는 모래 덕분에 지금 내가 걷고 있다는 사실만은 인지할 수 있었다.

 

 

 

“흉한 꼴을 보였구나.”

 

“... 아닙니다. 보는 제가 속이 시원해졌을 정도니까요.”

 

“괜히 나를 위해 그런 말을 할 필요는 없다.

네가 그런 장면을 보고도 ‘시원하다’라고 말할 만한 인물은 아니지 않느냐.”

 

“... ... 모르겠습니다.”

 

 

 

확실히 방금 봤던 것처럼 확실한 ‘복수’는 없을 것이다.

아이들이 느꼈던 고통도, 무력감도, 영원에 대한 두려움도 전부 느낄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한 명의 인간이 지옥 밑바닥까지 추락하는 모습을 봐서였을까, 속이 울렁거리는 건 사실이었다.

 

바삭-

 

발 끝에 닿은 모래알갱이가 내 상처를 질렀다.

 

아프다.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눈치구나.”

 

“... ...”

 

“괜히 숨길 생각하지 마라. 너와 이리 말을 섞을 수 있는 것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으니.”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하는 듯, 별의 아이의 몸은 조금 흐릿하게 보이고 있었다.

몸이 희미한 빛가루로 변해가는 감각. 저게 어떤 기분인지는 나도 잘 안다.

2회차로 환생할 때의 느낌이 딱 저랬으니까.

 

... 그럼에도 나는 입술을 달싹거렸다.

물어보고 싶은 게 없던 것은 아니다.

내가 몸을 바꿨을 때, 교황과 몸을 공유했을 때 왔던 이 공간이 어디인지,

 

‘카나리아’라는 존재가 누구인지 아는지.

 

사실 이곳이 어디인지는 어느 정도 감을 잡고 있었다.

 

 

 

“여기는..”

 

“그래. 말해보거라.”

 

“... 여기는 FAN 파로 죽은 사람들이 오는 곳입니까?”

 

 

 

별의 아이의 눈썹이 움찔거렸다.

 

이곳이 ‘죽을래야 죽을 수 없는 공간’이라 말했을 때 어느 정도 감을 잡곤 있었다.

게다가 아까 놈의 몸을 살덩어리로 바꿨을 때, 그 때 내 귓가에 희미하게 익숙한 멜로디가 흘러 들어왔다.

 

세 번째 추기경의 성가대가 나를 공격했을 때의 멜로디.

그 때에 비해 더없이 고아하고 우아한 흐름이긴 했지만, 느껴지는 감각은 비슷했다.

 

 

 

“죽었다라... 얼추 비슷하긴 하구나.

이곳은 우리가 흡수한 영혼들이 도착하는 공간. 무저갱으로 빨려 들어가기 전 의식이 존재하는 마지막 정거장이지.

‘휩노스 병’으로 죽은 이들 역시 이곳으로 오긴 한다. 우리가 흡수한 것이긴 하니까.

하지만 그런 자들만 오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말한 별의 아이가 의중을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나에게 손을 뻗었다.

 

 

 

“아이야.”

 

“네?”

 

“너에게 보여주고 싶은 손님이 있단다.”

 

“손님... 이요?”

 

“그래. 손님.

목이 빠져라 너를 기다린 아이들이지.”

 

 

 

기다린다고? 이런 흉흉한 곳에서?

그럴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내 머리 속은 기름칠한 모터처럼 쌩쌩 돌아가기 시작했다.

 

혹시 내가 잊고 있던 원작 속 캐릭터가 있던가?

아니면 멸망 전의 인간?

어줍잖은 머리로 어림짐작을 해봤지만. 어느 것 하나 괜찮은 가설이 없었다.

 

결국 나는 말없이 손을 잡고 따라갈 수 밖에 없었다.

잡을 손도 흐릿해서 물컹거렸지만.

 

‘지구’가 나에게 이상한 질문을 한 것은 그 때였다.

 

 

 

“아이야. 너는 바이오로이드에게도 영혼이 있다고 생각하느냐?”

 

“... 네?”

 

“어렵게 생각할 것 없다.

너희가 디자인하고 만든, 그런 생물체에게도 영혼이 있겠느냐는 말이다.”

 

 

 

생각해 본 적 없는 문제다.

 

지금껏 영혼이라고 해봤자 내 몸 속에서 원래 인격을 몰아내는 방법으로만 떠올렸을 뿐, 다른 아이들의 영혼은 딱히 고민해본 적 없었다.

 

없다고 하기엔 찜찜하긴 하지만, 있다고 하기에도 뭔가... 좀 그렇다.

애초에 나는 환생하기 전까진 사람 몸에도 영혼이 있는지 확신하지 못했던 사람이다.

환생한 이후에도 별반 다르지 않았고.

 

 

 

“그... 혹시 없으면 만들어주실 수 있습니까?”

 

“응?”

 

 

 

내 대답을 들은 별의 아이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입을 벌리고 크게 웃었다.

 

 

 

“하하하하, 만들어달라니? 귀여운 부탁이구나.”

 

“그, 그야 당연한 거 아닙니까? 이제 와서 ‘물건이니까 영혼 같은 건 없을 겁니다.’라고 말하는 것도 웃기고...”

 

“그래. 그런 기계론적 입장은 나도 동의하지 않는다.

영혼이란 건 모두에게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니까.”

 

“무슨 얘깁니까?”

 

“직접 확인할 수 밖에 없다는 얘기다.”

 

 

 

‘지구’는 말없이 나를 해안가의 끝자락으로 데리고 갔다.

 

지금까지와 별반 다를 것 없는 풍경.

 

하지만 무언가 다른 것이 내 눈에 보였다.

 

무너져 내리는 항구.

콘크리트 더미가 온 사방에 난잡하게 놓여져 있는, 멸망한 인류의 어느 도시.

그곳에서 조금 올라가면 있는 숲과, 그 끝에 있는 절벽.

 

그리고, 오르카 호.

 

 

 

“... 저게 뭐죠?”

 

 

 

나는 눈을 꾹 감았다 다시 떴다.

 

분명 오르카 호다.

바다가 사라져 바닥이 드러나긴 했지만, 항구의 정박소에 들어서 있는 저것은 분명 오르카 호다.

 

저게 왜 여기 있느냐고 물어보고 싶었으나, 별의 아이는 내 등을 밀치며 저곳으로 보낼 뿐이었다.

 

 

 

“네 두 눈으로 확인해보려무나.

과연 바이오로이드의 영혼이 존재하는지.”

 

 

 

그 말을 끝으로, 별의 아이는 허공 속으로 사라졌다.

그녀를 찾아보려 있는 힘껏 눈에 힘을 주었지만, 완전히 사라져버린 외력이 고작 힘 준다고 모일 리 만무했다.

다만 하늘에 보이는 거대한 ‘선’들의 움직임을 통해, 아직 죽은 것은 아님을 알 수 있었다.

 

... 대체 이게 뭐지?

 

이해할 수 없는 것 투성이다. 하지만 움직이지 않을 수도 없었다.

 

처음 가보려 했던 곳은 오르카 호였다.

겉면이 말라 있는 것, 주변 곳곳에 수리되지 않은 흔적이 가득한 것을 보니 꽤나 오랫동안 방치된 것 같다.

입구를 열어보려 손잡이에 손을 잡고 끌어 당겼지만 녹슨 철의 파찰음만 들릴 뿐 꿈쩍도 하지 않았다.

 

 

 

“나보고 여기서 어쩌라고... ...”

 

 

 

그렇게 생각할 무렵, 나는 문득 주변의 전경을 바라보았다.

 

무너진 항구 도시, 숲, 그리고 절벽.

 

정박소.

 

어두운 밤.

 

비닐 봉지가 부스럭거리는 소리.

 

 

 

“... 어라?”

 

 

 

절벽 끝에서 묘한 인기척이 느껴진 것은 그 때였다.

 

나는 무거운 몸을 이끌고 빠르게 숲을 향해 달렸다.

도시의 무너진 건물 잔해를 뛰어 넘고, 포장이 사라진 도로 사이를 달음박질하며 나무가 울창한 숲으로 들어왔다.

 

바스락거리는 풀소리.

바람에 이는 나뭇잎.

 

잊을 수 없는 광경이다.

 

내가 잊을래야 잊을 수 없다.

 

터벅-

 

터벅-

 

나는 걸음을 재촉했다.

 

무언가 감이 느껴진다.

별의 아이가 나를 이곳에 보낸 이유가.

 

나는 지금껏 나에게 처음으로 마음을 연 바이오로이드가 리리스라고 생각했다.

1회차 때 그녀가 아니었으면 비밀의 방을 치우지도 못했을 테고, 1회차가 끝날 때까지 그녀는 내 마음의 기둥이었으니까.

 

하지만.

 

하지만.

 

 

 

“진짜..? 아니, 그럴 리가... ...”

 

 

 

그 아이가 첫 번째가 아니라면?

 

사실 나를 처음으로 용서해준 아이는 전혀 다른 아이였다면?

 

미친 듯이 달리기 시작한 나는 마침내 숲의 끝에 도착했다.

 

하늘의 전경이 훤히 들여도 보이는 절벽의 꼭대기.

 

그리고 그곳에서, 어느 주황색 꽁지 머리가 바람에 흩날리고 있었다.

 

 

 

“어서 와, 사령관.”

 

 

 

그럴 리 없다고 생각했다.

 

절대 구할 수 없다고.

 

절대, 절대 용서를 받을 수 없다고.

 

저 아이들만큼은 영원히 차가운 방 안의 벽지로서 살아갔을 것이라고.

 

 

 

“아... 아아... ...”

 

“정말이지, 여기서 다시 볼 일 없기를 바랬는데.”

 

 

 

내 허리만큼 오는 자그마한 아이가 나에게 다가와 조용히 포옹을 했다.

 

주변에 산재해있는 무수한 무덤들.

 

누군가 조악하게 팠을 뿐인 무덤의 안에는 하늘거리는 가죽 한 장이 들어있을 뿐이었다.

 

 

 

“더치걸... ...?”

 

“안녕. 사령관.”

 

 

 

1회차에서도, 2회차에서도 구하지 못한 아이.

 

 

 

“보고 싶었어.”

 

 

 

그 아이가 나를 조용히 끌어 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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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절대 애 호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