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령관이 변하고 있는걸 알게 된 계기는 순전한 우연이었다. 


사령관과 함께 먹은 저녁이 꽤나 매웠던 탓일까. 새벽에 잠이 깨어 뒤척이다 결국은 화장실을 가야만 했다.

늦은 밤 여전히 형광등 빛이 새어나오던 다른 바이오로이드의 방. 아마 기억엔 드라큐리나였던가. 

그녀의 폭유는 처음 봤을 때 부터 뇌리에 각인됐기 때문에... 

당연히 그런 일을 하는 줄로만 알고 마저 화장실로 가던 도중, 전혀 상상도 못한 신음소리가 흘러나왔다.


"하... 씨발... 이젠 배를 칠 때마다 토하고 있네... 토마토쥬스라도 쳐마시질 말던가..."


사령관이 그녀를 향해 윽박질렀다. 앞으로는 니가 스스로 치우라며 저벅저벅 걸어나오는 듯 했다. 나는 재빨리 화장실로 가 문을 닫았다.

다행히 사령관이 나오기 전 숨어들어갈 수 있었다. 아프던 배도 쏙 들어가고 머리는 헤집어 놓은 듯 혼란스럽기만 했다.

밤마다 사랑을 속삭이던 입으로, 반지를 건네주던 그 손으로, 좋은 레스토랑까지 같이 거닐던 그 발로...

나에겐 단 한번도 행한 적 없는 가학적인 폭력이 밤마다 일어나고 있었다.

그러나 이는 서막에 불과했음을 그때는 아직 모르고 있었다.



사실 그 날 그 일을 훔쳐듣지 못했더라도, 아마 불과 며칠 뒤엔 사령관의 학대행위를 알아채릴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바이오로이드들의 하얀 피부에 생채기가 나고 흉터가 지는 등... 시퍼런 멍 또한 곳곳에 숨기지도 못할 정도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늘 퀭한 눈과 의미없이 주절거리는 습관들... PTSD라 불리는 스트레스성 장애와 다양한 후유증들이 그녀들 사이로 전염되기 시작했고, 기간이 더 지나자 성향별로 사령관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져갔다.


누군가는 뒤틀려 폭력 자체에 숨겨진 사랑이 있을 거라며 학대에 성욕을 느꼈고, 누군가는 사령관을 죽이고 싶다며 격한 살의를 품고 실제로 행동에 옮기기도 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실패로 돌아갔지만...누군가는 망상증에 걸려 사령관과 동료들을 알아보지 못하며 헛소리를 늘어놓곤 했고, 또 다른 바이오로이드는 그저 매일 울며 두려움에 떨곤 했다.


사실 내가 가장 무서운건 사령관의 태도였다. 

차라리 그가 그녀들에게 분노한다면, 혹은 내가 그간 몰랐을 뿐 사디스트적인 성향이었기 때문에 그런 행위들에 격한 성적 욕망과 쾌감을 느낀다면 나는 이해할 수 있었다.

하다못해 악인이라면. 그가 그녀들을 순수하게 재밌어서 괴롭히는 것이라면... 그럼에도 나는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았다. 

밤마다 하나의 일과라는 것처럼 그녀들을 폭행했다. 뺨을 때리고, 욕을 하고, 발로 걷어차고, 복부에 어퍼컷을 꽂으면서도...

사령관은 그 어떤 희열이나, 분노도... 품지 않고 있었다.

아무 감정도 느낄 수 없었다.

그 눈빛과 무표정한 표정... 그리고 가끔 중얼거리는 숫자들은 꼭 나를 데려갔던 주식시장에서의 사령관과 거의 똑같은 모습이었다.


그렇게 몰래 훔쳐보고 듣기를 얼마간 했을 무렵...


어젯밤 사령관은 분명 더욱 이상했다.

처음엔 여느 때처럼 그저 동일한 폭행을 반복하는 줄 알았다. 

드라큐리나의 복부를 한번 패고, 이어 키스를 하더니... 다시 그녀를 무차별적으로 걷어차고, 다시 일으켜세워 가슴을 벗겨 빠는 것이었다.

폭행과 애정 장면을 번갈아 하는 괴이한 행위에 미처 숨을 생각조차 못하던 나는 결국 방에서 나오는 사령관과 정면으로 맞닥뜨려 버렸다.


"뭐야?"

"앗...아! 사령관..."

"하... 들어가서 자자. 이제 이 짓도 오늘로 마지막이야."


"뭐... 정신붕괴 상태에선 무슨 반응인지 궁금하기도 했고."


그는 나를 놀래지도, 혼내지도, 나를 추궁하지도 않고 그대로 먼저 들어가서 잠을 청했다. 열린 방문 너머로 드라큐리나는 이젠 더이상 폭행행위에 울음조차 터뜨리지 않았다. 나는 멍투성이인 그녀를 뒤로 하고, 사령관의 마지막 말을 곱씹으며 따라 방에 들어가 옆에 누웠다.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그럼 이제 이 끔찍한 학대 행위를 그만두는걸까...?

다른 바이오로이들도 나처럼 사령관과 이곳저곳 다니며 함께 사랑을 나누고 끝내 반지로 영원한 서약까지 이뤄낼 수 있는걸까...?



그러나 그런 기대는 허무하게도 사라졌다. 그러나 소원은 어쨌든 이루어진 듯 했다.

과거 인간들에게도 비슷한 이야기가 있다고 했던가? 소원을 들어주는 원숭이손?

내가 그녀들과 사랑으로 점철되어 사령관을 두고 투닥거리는 일은 없었지만, 사령관의 추잡한 밤업무는 어쨌든 종결되었다.


오늘 아침, 그녀들이 한꺼번에 사라져있던 것이다.

사령관에게 물어도,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으니 내보냈다는 말 뿐, 정확한 설명을 바랄 순 없었다.

그러나 그의 성격 상 그녀들을 테마파크에 팔거나, 폐기처분하여 모듈화하진 않았을 것이다.

사실 이제는 잘 모르겠다... 정말 그럴 사람인지, 아직도 내가 그때의 약속을 잊지 못해 그를 믿고 싶은 것인지.


그리고 방금 전... 그가 나의 잠자리를 이전의 드라큐리나의 방으로 옮기면서 말했다.


"미안..."

"찾아보니까, 일반 상점과는 달리 혼인 상태여도 판매할 수 있다더라고."

"한번만..." 

"딱 한번만 해볼게. 너가 처음이자 마지막일거야. 정말로."


나는 여전히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을 뒤로하고...

그날의 너무나 달콤한 고백과...

따스하게 반지를 끼워주던 그의 손길을 떠올리며...

처음으로 그와 떨어져 잠을 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