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때와 마찬가지로 그의 곁에서 시간을 보내던 내게 들려온 그의 짧은 질문. 단순히 왜 오르카에 남은 것이냐 묻는 그의 질문에 잠시 생각을 정리했다.


"음.. 남는데 이유가 딱히 필요한가?"

"그건 아니지만, 그냥 궁금해졌거든."


서류를 갈무리하며 대답하는 그의 모습에 피식- 짧게 바람을 세나가는 듯한 웃음이 나왔다. 그는 태연한척 보였으나, 혹여 내가 심심하지 않을까 종종 저런 식으로 질문을 던지고는 했으니까. 그의 저런 사소한 질문에 대답을 해주며 이어 나가는 대화는 아주 좋아하는 일과였다.


"그냥, 재밌어 보였으니까?"

"겨우 그런 이유였어?"

"풉! 뭐야~ 뭐 기대한 답변이라도 있어? 응? 핫팩~"


이렇게 아양을 떨며 남자에게 달려드는 모습을 과연 과거의 내가 봤다면 무슨 표정일까. 아마 기겁하지 않았을까. 허나 지금의 내게 있어서 가장 행복한 시간이 되어버린 이런 사소한 시간을, 과거의 나는 전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사냥개에게 이런 감정은 필요 없었으며, 무엇보다 사냥개를 부리는 주인에게도 있어서 사냥개란 사냥만 잘 하면 되는 그런 존재였을 뿐이었으니.


하지만, 그는 집도 없이 떠돌아다니는 사냥개를 주웠다.


그리고, 사랑으로 사냥개의 얼어붙은 마음을 녹여주었다.


"그보다 핫팩은 왜 나같이 의심스러운 녀석을 무턱대고 받아준 거야? 내가 알기도로 주변에서 반대가 꽤 있었다던데."

"천아는 의심스럽지 않았으니까."

"뭐?"


의심스럽지 않았다는 말을, 적어도 그의 입으로 들을 것이라고 상상도 하지 못했기에 벙찐 대답이 나오고 말았다. 상식적으로 툭 튀어나와 갑작스레 합류한 녀석을 의심조차 하지 않았다는 것은 이해가 가질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천아는 장화를 도와주고 있었잖아. 친구를 돕는 녀석이 나쁜 녀석일리 없어."

"후~ 정말 단순하구나? 핫팩은.."


타박하는듯 한숨을 내쉬면서도 결국 숨기지 못한 미소가 지어졌다. 아무래도 난 사냥개 노릇은 더이상 하지 못할 것이다. 이래서야, 사냥개가 아닌 완벽히 사랑에 길들여진 애완견의 모습이니까.


하지만 그렇기에 그의 곁에 남을 작정을 했다. 그의 명령을 따라, 무자비하게 적의 목덜미를 물고 늘어지는 사냥개가 아닌, 그의 따스한 손길과 포근한 마음씨에 길들여져 버린. 사냥개로 활동할 수 없는 나였기에, 그래서 그의 곁에 남았다.


"이렇게 단순한 녀석을 어째야 하나~"

"하핫! 그러니까 천아가 옆에서 나를 지켜주면 되겠네."

"야! 원래 이럴 때는 남자가 여자를 지켜준다고 하는 거라고! 어휴~ 븅신아~"


또다시 거친 말을 섞으며 그를 타박했지만, 살포시 그의 손을 부여잡고 그의 가슴에 머리를 기댄다. 두근- 두근- 일정한 리듬으로 들려오는 그의 심장소리를 들으며, 그에게 말하지 못한 진심을 곱씹으면서, 소녀가 짝사랑하는 소년에게 수줍은 듯 풋풋한 첫사랑을 절절하게 적은 러브레터를 건네 주듯이, 스스로의 각오를 그 몰래 속삭였다.


'걱정하지 마. 핫팩은 반드시 내가 지켜 줄게. 나에게 핫팩은 내가 이 세상을 살아갈 유일한 이유니까.'


누군가의 명령으로 누군가를 해치는 삶을 살아오던 사냥개를 받아준 너이기에, 난 새로운 삶을 얻었으니까. 난 무슨 일이 있어도 널 지켜낼 거야.


"...저기, 핫팩."

"응?"


떨어지지 않는 입을 어거지로 떼며 그를 작게 부르자 그가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대답했다. 내가 있을 장소이자, 내가 머무를 장소. 그리고 내가 반드시 지켜야할 장소. 그것들을 제공해준 네 품에서, 나는 그의 입술에 살며시 내 입술을 맞부딪히며 그의 귓가에 진심을 전했다.


"고마워, 난 핫팩을 만나서.. 한번 살아보고 싶어 졌어."

"뭐? 그럼 예전에는 살기 싫었던 거야?"

"음~ 그건 아니지만. 푸훗! 아무튼! 고마워~"


창피한마음에 도저히 말하지 못하는 진심을 다시금 입 안으로 집어넣고, 그에게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대답하자, 그 역시 더이상 묻지 않고 나를 그의 품으로 끌어당겨 안아주었다.


'난, 핫팩 덕분에 진심으로 살아가고 싶어 졌어. 정말 살아가는 것처럼, 언젠가 너와 가정을 이루고.. 함께 생활하면서.. 네 곁에서 잠들고, 네 곁에서 눈뜨는.. 그런 삶을 살아가고 싶어 졌어. 정말 진심으로 고마워 핫팩!' 


떠돌이 사냥개는 드디어 소유주가 아닌, 진실된 주인을 만났다.

떠돌이 사냥개는 '그' 라는 있을 장소를, 지킬 대상을 만났다.


"그나저나 어쩌냐~ 이제 사냥개 노릇도 못하겠네~"

"언제나 말하지만, 난 사냥개 같은 거 필요 없다니까."

"그럼 핫팩의 애완견을 노려볼까?"

"애완견도 필요 없거든?"


정말, 쓸데없이 착한 얼빠진 녀석 같으니.

그래서 난 너를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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