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안하게 눈을 뜬 오르카... 가 아닌 다른 곳.

항상 봤었던 회색의 천장과 하얀색의 은은한 조명이 있는 천장이 아닌 다른 거점에서 눈을 떴다.


"..."


이곳으로 거점이 바뀌어버린지 꽤나 되었지만, 그래도 익숙해지지는 않았는지

하의만 입고 있는 한 남자는 좌우로 고갤 돌리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오르카에서는 있었던 책상도, 아이들이 정성스럽게 한땀한땀 만들어 놓았던 오르카 훈장도.

오드리가 자신을 생각하면서 민든 제복과 사복들도 전부. 이곳에는 없었다.


이곳에 있는 거라고는 그저 침대 하나와 눈이 아플 정도로 빛이 나는 하얀 조명

그리고 옷을 갈아입지도, 씻지도 못해 흙냄새가 짖게 베어있는 자신의 몸 하나 뿐이었다.


"...깨어나셨습니까. 주인님."


깨어난지 얼마 되지도 않은 그를 살펴보기 위해 콘스탄챠가 방에 들어왔다.

그의 누추한 모습과 비슷하게 콘스탄챠도 제대로 씻지도 못 했는지 머리에는 흙먼지인지도 모를

갈색의 가루들이 머리게 묻어 있었고 옷 마저도 갈색과 짙은 붉은색의 얼룩들이 잔뜩 묻어있었다.


거기다 주인의 방이라면 들여와서는 안 되는 자신의 주무기까지.

세상에서 가장 소중히 여기고 사랑하는 주인님을 모신다는 메이드라고 말하기에는 깨끗하지 못한 모습이었다.

이 상황이 평소같은 상황이라면 말이다.


"그래서.. 오늘 저쪽 상황은 좀 어때?"


"...이전에 만들어 놓았던 시설들을 이용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어요. 이렇게 되면.."


"어쩔 수 없지. 이렇게 될 거는 예상 했었으니까.."


"일단.. 오늘 할 일은.."


"..어째 예전보다 할 일이 더 많아진 것 같은데.."


일어난 바로 직후이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이 그는 패널을 집어 들고는 오늘 할 일을 훑어보았다.


71번 울타리 점검, 2번 초소 보강 작업과 같은 일반적인 업무에도 4019번, 8941번, 19921번 브라우니, 5812번 레프리콘, 7601번 실키 등 1개 분대의 전멸로 인해 부족한 인원들을 채워 넣어야 한다는 오르카에는 상상도 못했던 작업들까지.


지금 이 상황과 아주 어울리는 작업들만이 그를 반겨주고 있었다.


"주인님.. 오늘도 이런 소식 전해드려서.. 정말.."


패널을 건네 준 콘스탄챠의 눈에서 순간 눈물이 흘러나왔다.

이전의 오르카에서는 이런 소식을 전해듣지도, 사랑하는 주인에게도 전달하지 못했었던 안건을

건네주었다는 사실에 그녀는 커다란 슬픔을 느끼고 있었다.


"..울지는 마. 그때부터.. 우리가 이렇게 될 거라고는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그래도.. 정말.. 죄송.."


- 사령관님! 사령관님! 즉시 지휘통제실로 와주십시오!


콘스탄챠와 조금 슬픈 분위기가 만들어질 무렵, 급하게 그를 찾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른 곳도 아닌 이 작은 기지 안에 있는 지휘통제실에서.


"...다녀올게 콘스탄챠."


"다녀오세요.. 주인님.."


그렇게 그가 대충 옷만 걸친 채로 떠나자 콘스탄챠는 그 자리에 주저 앉아서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이러지 않았었는데, 예전의 오르카라면 이러지는 못했었는데 하고.


그리고 지휘통제실로 들어오자마자 상황은..


-여기는 알파팀 09! 포위당했다 즉시 지원을 요청한..


"알파?! 응답하라! 알파!"


매우 안 좋게만 흘러갔다.


"...사령관님 언제 오세요.. 지금 너무 급한데.."


- 여기는 브라보 팀 05! 공습이다! 퇴각 명령을 요청합니다!


"사령관님.. 제발.."


- 관제! 응답하라! 여기는 브라보 팀 05! 어서 퇴각 명령을 요청합니다!


"...알파 09는 현 상황에 집중, 통신망 복구에 힘써라. 브라보 05는 퇴각 명령을 기다리면서 공습에 대비하도록.."


"사령관님! 현재 상황은.."


"...알고 있어. 오면서 조금 들었으니까. 그건 그렇고 나머지는 어때."


"알파 04, 01은 통신 미응답, 생명 징후 확인 불가능.. 브라보 팀 07과 19는 전멸이 확인 되었습니다. 적은 육로로는 두 방향, 공습과 해상 포격 진행중으로.."


지휘통제실에 있는 레프리콘의 보고를 듣건 사령관의 얼굴이 점점 어두워지기 시작하더니, 서서히 눈을 감기 시작했다.

그리고선.. 그는 이전이라면 절대로 말하기 싫었던 것을 입 밖으로 꺼냈다.


"알파 09과 브라보 05를 미끼로 쓴다. 나머지는.. 대열을 유지하면서 현 상황에서 후퇴한다."


"...알겠습니다."


그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레프리콘은 급히 무전을 하기 시작했다.

어쩌다가 이렇게 되어버린 것일까. 그는 눈을 감으면서 생각했다.


도대체


어쩌다가


오르카의 유일한 인간이자 사령관이었던 그는


오르카와 싸우고 있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