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아닌 피보호자의 바이오로이드 - 목록




"Another Settlement needs our help."

-폴아웃 4 중에서, 프레스턴 가비



  

 커다란 바다뱀을 연상케 하는 괴물이 비명을 지르면서 몸을 뒤흔들었다. 입에서 부식성의 타액을 마구 쏟아내며 걸레짝이 된 몸을 뒤흔들던 괴물이 수면 아래로 가라앉자, 보트를 때려 부수던 촉수들 몇 개가 이리저리 꿈틀거리다가 따라서 가라앉았다. 


 간신히 괴물 하나를 해치운 펜리르가 거친 숨을 내쉬면서 주변을 돌아보았다. 이미 여러 차례에 걸쳐 괴물들의 공격을 받은 배는 반쯤 박살이 나 있었고, 상당수의 바이오로이드들이 부상을 입거나, 무기를 다 소진하거나, 체력이 떨어져서 더 이상 전투를 계속할 수 없는 상태였다.


 "마법이니까-!"


 "-피하기 없기!"


 마법소녀 모델 둘이 동시에 소리치면서 화려하게 꾸며진 유탄발사기의 방아쇠를 당겼다. 원래는 마법도 뭣도 없는 그저 유탄발사기에 불과했지만, '진짜 마법'을 사용하는 '진짜 마법사'들의 가호를 받아서 '진짜 마법 무기'가 된 유탄은 목표물에게 정확하게 날아가 꽂히면서 확실한 치명타를 가했다. 


 마치 썩다 만 시체들이 뒤섞여서 만들어진 듯한 끔찍한 촉수 형태의 괴물이 두 동강이 났다. 이리저리 꿈틀거리던 아래 부분이 먼저 물 속으로 가라앉고, 저 멀리 날아간 윗부분이 수면과 충돌하면서 물기둥을 일으켰다.

   

 잘 하면 이번 공격도 어떻게 버틸 수 있겠다고 생각한 펜리르가 못마땅해하는 시선을 덜덜 떨면서 불덩어리를 마구 던져대는 세 여성에게 쏘아보냈다. 


 고급스러운 옷차림을 하고, 창백한 피부와 붉은 눈을 가진 세 여성이 손을 이리저리 휘두를 때마다 바이오로이드에게 향하는 괴물들의 공격이 튕겨져 나가거나 작열하는 불덩어리 또는 얼어붙은 창이 괴물들에게 쏘아져 나갔다. 


 여기 있는 바이오로이드들을 지난 수십 년 동안 가두고 있었던 끔찍한 곳에서 꺼내고, 수많은 바이오로이드들이 처참한 최후를 맞이했던 저주받은 곳을 불태워 없애고, 갇혀 있던 바이오로이드들을 여기까지 오게 해 준 사람들이 바로 이 세 여성들이었다. 바이오로이드들을 세상 곳곳에서 날뛰는 괴물들로부터 지켜준 것도 세 여성들이었고 그녀들에게 무기를 쥐어준 것도 세 여성들이었다.


 지금도 그녀들은 괴물들에 맞서서 싸우고 있었고, 바이오로이드들이 쓰러뜨린 괴물들보다 그녀들이 쓰러뜨린 괴물들이 더 많았다. 그녀들이 마법을 사용해서 배와 바이오로이드들을 보호하고, 괴물들의 습격이 잠시 그칠 때마다 배를 수리하지 않았다면 여기 있는 모두는 진작에 괴물 밥이 되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펜리르가 세 여성들을 보는 눈빛이 좋지 않은 이유가 있었다.


 배를 탄 이후로 세 여성들은 무서워서 덜덜 떨었고, 지금도 덜덜 떠느라 제대로 자신들이 가진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이 펜리르의 눈에 보였다. 그녀들이 물을 무서워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바 아니었지만, 괴물들의 습격을 받는 상황에서도 저렇게 능력 발휘를 제대로 못 하고 있으니 펜리르로서는 그저 답답할 뿐이었다.


 "물 위에 있는 건 마님들뿐만이 아니잖아! 마님들이 그러고 있으면 우리 다 죽는단 말이야!"


 "펜리르, 너무 그러지 말아요~"


 마치 커다란 피라니아를 연상케 하는 괴물에게 폭탄을 마구 집어던져서 처리한 키르케가 펜리르를 만류했다. 그녀의 의지나 마음과는 상관없이 그녀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해야 했고, 그녀가 있고 싶지 않았던 곳에 묶여있어야 했던 키르케는 세 여성들이 느끼는 두려움이 그녀들의 의지나 마음, 현재 처한 상황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여기 있는 바이오로이드들 중에서 제일 잘 이해하고 있었다.


 잠시 으르렁거리는 소리를 낸 펜리르가 괴물의 피로 얼룩진 전기톱을 한 번 크게 턴 다음 다른 괴물을 향해서 뛰어들었다. 또다른 물뱀 모양의 괴물이 광선처럼 뿜어낸 부식성 타액을 높이 도약해 오르는 것으로 회피한 펜리르가 괴물의 머리에다 두 자루의 전기톱을 있는 힘껏 박아넣었다.

 

 [-사라져어엇!]

 

 뽀끄루가 내던진 불꽃을 맞고 잠깐 몸을 뒤틀던 커다란 칠성장어 형태의 괴물이 다시 뽀끄루에게 달려들려 하자, 검은 옷을 입은 여성이 비명을 지르듯 소리치면서 손을 휘저었다. 그러자 검은색의 수정 같은 것이 괴물의 머리를 감쌌고, 뒤이어 날아온 보라색과 검은색의 에너지 투창이 수정과 함께 괴물의 머리를 산산히 부숴버렸다.


 시꺼먼 피를 뿌려대면서 바닷속으로 가라앉는 괴물의 시체를 본 붉은 옷차림의 여성이 황급히 허공에다 손짓을 하고, 뒤이어 전직 군용 바이오로이드들이 힘겹게 상대하는 괴물을 향해서 손을 뻗었다. 


 붉은 색의 에너지와 뒤섞인 시꺼먼 괴물의 혈액이 맹렬하게 회전하는 구체로 변했다. 쏜살같이 날아간 구체는 자신의 창조주가 목표로 지정한 괴물의 머리 위에서 퍼져나가듯 폭발했고, 흩어져 사라지기 전에 괴물의 머리 위쪽과 목 위쪽을 갈아버렸다. 


 [더 이상 다가오지 마아아아아!]


 또 다른 검은 옷차림의 여성이 비명에 가까운 고함을 지르면서 바다를 향해 두 손을 펼치자, 피 냄새를 맡고 수면 위로 고개를 내민 괴물들을 화염의 폭풍이 휩쓸었다. 적지 않은 괴물들이 머리가 타 버린 채로 가라앉았고, 심하게 화상을 입은 괴물들은 공격을 계속하지 않고 철수하는 편을 택했지만 일부 괴물들은 계속해서 배를 향해 접근했다. 물 위에 있다는 두려움과 배가 화염 폭풍에 휩쓸릴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여성이 마법을 다소 약하게 사용한 탓이었다.


 머리가 반쯤 녹아내린 괴물이 배를 향해 돌진하다가 트리아이나의 로봇과 프로스트 서펀트들이 뿜어내는 물대포를 맞고 비틀거렸다. 


 그것만으로는 괴물을 막기에 역부족이었지만, 괴물에게 유효타를 날릴 수 있는 누군가가 지원을 올 때까지 아슬아슬하게 시간을 벌어줄 수는 있었다. 파일 벙커가 아니라 스파이크 캐논으로 개조된 무기를 든 불가사리가 날린 금속 스파이크가 괴물의 머리통을 완전히 깨부쉈다.


 "엄마, 누가 무전 연락을 받긴 받았어?!"

  

 "아직 무전 연락을 보내는 중이에요!"


 이제 불가사리에게 남아있는 금속 스파이크는 몇 개 없었다. 그녀가 무전기를 붙잡고 구조 신호를 보내는 홍련에게 물었지만 돌아온 것은 그다지 희망적이지 않은 대답이었다. 


 홍련의 곁에는 미호와 로열 아스널이 각각 커다란 석궁과 대물 저격총이 결합된 무기를 들고 괴물들에게 사격을 가하고 있었다. 둘 다 단독으로는 몰려오는 괴물들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주기에 부족했고, 다른 바이오로이드들이나 세 여성들의 공격을 받아서 걸레짝이 된 괴물들에게 최후의 일격을 날리거나 반대로 바이오로이드들이나 여성들이 치명타를 날릴 수 있도록 견제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스틸 드라코는 언제나 그랬듯 방패와 샷건을 들고 앞장서서 싸우다가 부상을 입고 홍련의 곁에 누워있고, 핀토도 체력과 무기가 다 떨어져서 더이상 싸울 수가 없는 상태였다. 

 

 "이번 공격은 어떻게 넘기더라도 다음이 문제인데......"


 "불길한 소리 하지 마라!"

 

 불안해하는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미호에게 로열 아스널이 단호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비록 그것이 사실일지라도 지금 같은 상황에서 함부로 입에 담을 이야기가 아니었다.


 "여기서 괌까지의 거리가 얼마나 되지, 홍련?"


 ".......아직 한참 멀어요. 게다가......"


 로열 아스널의 질문에 답하려던 홍련이 말꼬리를 흐렸다. 


 어딜 가나 온갖 괴물들이 날뛰는 세상이다.


 괌이라고 해서 괴물 소굴이 되지 않았으리라는 보장도, 괌에 있는 바이오로이드들이 이미 전멸당하지 않았으리란 보장도 없다. 


 너무 재수없는 소리인데다 자칫하면 일행의 희망을 꺾어버릴지도 모르는 이야기인지라 차마 입 밖으로 낼 수 없는 이야기였다.


 "아오, 또 헛방이야! 마님, 제발 좀!"


 "저 멍멍이는 좀 조용히 해줄 수 없대?" 펜리르가 세 여성들 중 누군가를 갈구는 소리를 들은 미호가 짜증을 냈다. "자기는 그 세 사람만큼의 활약도 못 하면서!"


 "이해도 하고 동의도 하지만 칭찬은 못 해주겠군."


 로열 아스널도 펜리르의 행동에 대해 박한 평가를 내리면서 계속 방아쇠를 당겼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지금 당장은 이것 말고는 그녀도, 주변의 다른 그 누구도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괴물들과 마주치면 살기 위해서 싸우고, 살아남으면 박살이 난 배를 빨리 고치고, 무기를 빨리 준비하면서 계속 가는 길을 가는 것이 이들이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이제 와서 돌아갈 수도 없었고, 달리 할 수 있는 것도, 갈 만한 곳도 없었다.


 있다면 한계에 부딪히기 전에 그녀들이 괌에 도착하기를, 혹은 어디서든 그녀들을 데려갈 이들이 오기를 바라는 것 정도였다.

  



 

 라비아타의 말대로 긴급 회의는 각자 있는 자리에서 개인 단말기를 통해 이루어졌다.

 

 시젠과 함께 애니메이션을 보고 즐거워하던 바이오로이드들도, 각자 할 일을 하거나 개인적인 시간을 보내던 바이오로이드들도 모두 바짝 긴장한 채로 회의에 임했다. 티타니아에게 안긴 시젠은 불안해하는 표정을 지으며 바이오로이드들과 컨스트럭트들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였고, 오늘 새로 제조된 바이오로이드들은 가만히 서서 다른 이들이 하는 말을 경청했다.

 

 타이거샤크의 바이오로이드들이 회의를 하는 동안 두 군데에서 추가적인 지원 요청이 들어왔다.


 하나는 과거 비스마르크 사에 소속되어 있었으나 지금은 독자적인 세력으로 떨어져 나간 소규모 바이오로이드 세력이었고, 다른 하나는 스카이 나이츠의 바이오로이드인 슬레이프니르가 있는 곳이었다. 


 "안 그래도 가용 병력도 마땅치 않은데 지원 요청이 여기저기서 들어오고, 그런 와중에 싱글벙글들은 또 어디로 간 거라니?"


 [저희가 분석한 바에 따르면 웃는 얼굴들이 향한 지역에 몇 시간 전 공간이동 현상이 있었습니다. 아마도 웃는 얼굴들과 관계가 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섬의 주민들의 말에 따르면 웃는 얼굴들이 떠나기 전 무척 동요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합니다.]


 샤크튜리아와 레이라미아-122의 보고는 바이오로이드들에게 그렇게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싱글벙글들은 그렇다 치자. 나머지는 어떻게 할 거야? 지금 지원 요청이 들어온 곳을 정리하면 아쿠아팰리스, 보트피플, 쿠노이치들에게 쫓기는 덴세츠 덕후, 자칭 여제의 사냥개들이란 바이오로이드 집단, 비스마르크에서 독립한 바이오로이드 세력, 그리고 뗑컨인데."


 "저희 쪽에서 분리독립한 바이오로이드들은 제가 지원하겠습니다."


 레모네이드 에타가 메이의 질문에 제일 먼저 대답했다.


 "......너한테서 독립한 세력인데 다시 붙겠어?"


 "그 세력에 대해서 제일 잘 아는 것도 저예요. 분리독립이라 해도 유혈 충돌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요."


 레모네이드 에타의 호언장담이 신뢰가 가지 않았던 메이가 짤막하게 콧방귀 소리를 냈지만 별다른 반대는 하지 않았고, 다른 바이오로이드들도 딱히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슬레이프니르 쪽은 우리가 가도록 할게."


 "나도....... 가보고 싶어."


 "나도."


 두 하르페이아들이 슬레이프니르의 구출을 자원하고 나서자, 지금까지 가만히 있던 네 제피루아들이 같이 가겠다고 나섰다. 


 스텔스 능력과 더불어 뛰어난 전투 능력을 가진 하르페이아들이 출격하는 데에는 별다른 이견이 없었던 바이오로이드들이었지만 제피루아들이 이들을 따라가는 것을 찬성하는 바이오로이드들은 없었다. 


 이제 막 만들어진데다 하르페이아에 비하면 지속적인 전투 수행 능력이 크게 떨어지는 제피루아들을 보내는 것은 타이거샤크에 있는 누구에게도 좋은 생각처럼 들리지 않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시젠만 눈을 깜박거리면서 의문이 가득한 [뀨?] 소리를 냈다.


 "......나앤, 스피어, 레이, 그리고 나. 이렇게 넷도 같이 갈게."


 "대장이...... 말입니까?"


 "그래," 진심인지를 묻는 나이트 앤젤을 메이가 똑바로 쳐다보았다. "내가 직접 전투 수행능력을 갖추도록 개조되었다는 사실은 너도 알고 있을 텐데?"


 "지식 모듈을 통해서 받은 지식이 전부라서 도저히 안심이 안 되는군요. 정말로 자신 있으십니까?"


 "하르페이아들은 몰라도 너, 스피어, 레이, 그리고 저기 저 메이드 아가씨들 넷하고 동시에 싸워도 이길 자신 있어."


 메이의 말에 네 제피루아들이 살짝 불만스러워하는 표정을 지었다.


 잠시 메이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던 나이트 앤젤이 손을 들었다.  


 "알겠습니다."

  

 "잠시만요, 저는요?"


 "자칭 언니는 스텔스도 없고 속도도 느려서 안 됩니다. 살이나 찌우고 계십쇼." 


 자신은 빼놓고 가는 것에 대해 불만을 표시한 스트라토 엔젤이 나이트 앤젤의 독설을 듣고는 발끈했지만 따지지는 못했다. 그녀가 나이트 앤젤에게 나중에 돌아오면 두고 보자는 눈빛을 쏘아보냈지만 무시당했다. 

 

 "그래서, 라비아타," 메이가 라비아타에게 시선을 돌렸다. "넌 쿠노이치들에게 가 볼 거야?"


 "네, 갈 거에요. 잘 하면 쿠노이치들을 우리 편으로 끌어들일 수 있을지도 모르고요."

 

 라비아타의 말을 들은 카엔과 제로가 움찔했고, 레모네이드 에타의 얼굴에는 잠깐이지만 기묘한 미소가 걸렸다. 


 비스마르크에서 떨어져 나간 바이오로이드 집단, 슬레이프니르, 쿠노이치들과 그녀들에게 쫓기는 흐레스벨그에게 갈 인선이 정해지자 레오나 2호가 팔짱을 끼며 말했다. 


 "그러면 남은 것은 아쿠아팰리스, 여제의 사냥개들과 보트 피플이네."


 [아쿠아팰리스에는 지원군으로 타이거샤크가 직접 움직여야 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여기에 레이라미아들과 세피리아크들, 유갈리안티들, 그리고 아드라스테이아 님들이 있으면 충분하다고 봅니다.]


 "엠프레시스 하운드 쪽에는 제가 가겠습니다." 


 샤크튜리아의 말이 끝나자 카틀레야가 엠프레시스 하운드 쪽으로 가고자 하는 의사를 밝혔다.


 "여기 있는 사람들 중에서 엠프레시스 하운드의 바이오로이드들에 대해서 제일 잘 아는 사람은 라비아타 언니와, 티아멧들과 바닐라들을 제외한다면 저일 겁니다."

 

 "그렇다면......"


 세 티아멧들이 서로의 눈치를 살폈다. 원래 그녀들은 라비아타를 따라서 쿠노이치들에게 갈 생각이었지만 만일 카틀레야가 엠프레시스 하운드에게 간다면 최소한 둘은 카틀레야를 따라갈 필요가 있었다. 


 잠시 고민하던 티아멧들이 서로 가위바위보를 했다. 


 결론은 바로 나왔다.


 다른 두 티아멧이 바위를 낸 가운데 혼자서 가위를 낸 티아멧 3호가 라비아타를 따라가기로 하고, 나머지 두 티아멧은 카틀레야를 따라가기로 했다. 


 랜서 미나들도 카틀레야와 티아멧들을 따라서 엠프레시스 하운드 쪽으로 가기로 마음먹었고, 몽구스 팀도 만약의 경우에 대비해서 카틀레야와 함께 움직이기로 했다.


 "보트 피플 쪽은......."


 "저희가 가도록 하겠습니다." 


 엠피트리테들 중 하나가 말을 꺼냈다. 


 "그 동안 밥만 축내고 있었으니 이번에 제대로 밥값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누구 구해주러 갔다가 구하러 갈 일 만들지 마려무나, 너희들."

 

 "네."


 빈정거리는 듯한 에바의 말에 살라시아나 갈라테아, 멜리테는 자신들을 무시하는 거냐면서 대놓고 뾰루퉁한 표정을 지었지만 엠피트리테는 조금도 화내지 않고 차분한 태도로 대답했다. 


 "그렇다 하더라도 머메이드만으로는 위험할 수 있어," 그렇게 말한 레오나 2호가 샌드걸과 다인슬라이프를 쳐다보았다. "샌드걸, 다인슬라이프. 머메이드와 함께 움직여."

 

 "스트라토. 실피드. 밴시. 다이카, 지니야. 너희들도 머메이드와 같이 행동해."


 "나도 같이 움직이도록 할게."


 메이의 말을 들은 피닉스도 보트 피플들의 지원에 자원했다. 


 비행 장비가 없는 다른 스틸 라인 출신 바이오로이드들이 "비행장비도 없는 우린 뭘 할 수 있음까?" "쓸모가 없단 자학은 저기 쓰레기통에 갖다 버려. 시젠 지켜주는 게 우리 일이야."라는 말을 주고받았다. 

 

 [갑작스럽게 끼어들어 죄송합니다.] 


 세레스티아가 회의에 끼어들었다. 

 

 비록 웃는 얼굴들이 그녀의 마을 사람들도, 그녀들과 아주 친한 사이도 아니기는 했지만 그래도 가끔씩 만나면 인사나 대화는 하는 사이였고, 같은 섬에 사는 이웃이었으며 여러모로 신경쓰이는 존재들이었다. 그런 웃는 얼굴들이 어디론가 떼로 몰려갔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불편했다.


 [웃는 얼굴들 님들이 가신 곳에 혹시 지원군을 보내주실 수는 없으신가요? 아무래도 걱정이 되네요.]


 [그쪽으로 일반적인 바이오로이드들이나 AGS들을 보낼 수는 없습니다. 아쿠아팰리스의 전투에 투입될 레이라미아들이나 유갈리안티들을 빼는 것은 위험하고, 안 그래도 부족한 세피리아크들을 그쪽으로 투입하는 것은 좋은 생각이 아닙니다.]

 

 [저희들과 플라멘가드들이 있습니다.]


 샤크튜리아가 반대하고 나서자, 타이거샤크 일행이 델타를 지원하러 유럽에 갔을 당시에 합류한 검은색의 전함들, 세바체리츠들이 대답했다. 


 [웃는 얼굴들 님의 지원군으로는 플라멘가드들을 투입하고,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모두 공간전이시킨 다음 그 지역을 소각해버리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새로 받은 장비로 음기를 막아낼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 


 검은 전함들이 자신들의 의견을 피력하자 아자젤도 입을 열었다. 


 원래는 시젠을 보호하기 위해서 인공 마법사들로부터 받은 장비인데 이렇게 쓰게 될 줄은 그녀도 몰랐다. 하지만 아자젤은 웃는 얼굴들이 있는 곳으로 꼭 가야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녀는 그것이 빛이 그녀에게 내린 하나의 계시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제가 웃는 얼굴들 님들과 동행하겠습니다.]


 [아자젤이 간다면 나 또한 가겠다.]


 "저 또한 동행하겠습니다." 


 [저도요.]


 사라카엘과 베로니카, 엔젤 또한 아자젤과 같이 갈 뜻을 밝혔다.


 [위험부담이 너무 큽니다. 반대하겠습니다.]


 [꼭 가고 싶습니다. 부탁드립니다.]


 샤크튜리아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아자젤은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샤크튜리아 님, 천사님들이 장착한 모듈과 장비로 음기의 영향을 막아낼 수 있나요?"


 [라비아타 님, 재고를 부탁드립니다.]

 

 "가능한가요?"


 라비아타의 목소리에서 그녀가 뜻을 정했음을 알아차린 사크튜리아가 잠시 침묵하다가 대답했다.


 [네. 충분히 막아낼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함대와 함께 파견하도록 하겠습니다. 단, 위험해지면 네 분 모두 즉시 돌아오셔야 합니다." 


 [네, 라비아타 님.]


 라비아타의 결정에 레오나 1호는 반대할지 말지 고민하다가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웃는 얼굴들과 용족이 보내준 전쟁 병기들에게 네 바이오로이드들이 합류한다 한들 얼마나 큰 도움이 될지는 미지수였지만, 미묘한 힘의 균형이나 불리한 상황을 단 몇 사람, 심지어는 단 한 사람의 존재나 활약이 뒤엎을 수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럼 마지막으로 남은 건 아쿠아팰리스인데, 그건 마법사 양반들이 말한 대로 하면 되는 거야?"


 수중전 전문 바이오로이드인 아드라스테이아 넷과 유갈리안티들, 레이라미아들, 그리고 타이거샤크. 


 바이오로이드들이 생각하기에 아쿠아팰리스를 지원하기에는 좀 많이 부족하지 않나 싶은 전력 규모였다. 


 아무리 타이거샤크의 무장이 대폭 강화되고, 레이라미아들과 유갈리안티들이 강력한 화력을 가지고 있고, 마법사들이 마법으로 지원을 해 준다 하더라도 아쿠아팰리스쯤 되는 규모의 수중 도시가 위험에 빠질 정도인데 이 정도 전력으로 괜찮을까 하는 걱정을 지울 수 없었다. 


 "티타니아 님과 에키드나 님이 타이거샤크에 계신다면 큰 도움이 되겠지만, 이 둘은 시젠 님과 같이 계셔야 합니다." 


 아르망의 말을 들은 티타니아와 에키드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라비아타도 카틀레야도 아자젤도 시젠의 곁에 없는 상황에서 그녀들까지 시젠의 곁을 떠날 수는 없었다.


 ".......그리고 상황이 이러니 이터니티 님께서 시젠 님의 곁을 지켜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네."

 

 아르망이 이터니티를 언급하자 티타니아와 포이들, 앨리스들을 포함한 몇몇 바이오로이드들이 살짝 못미더워하는 표정을 지었다. 


 분명히 주인에게 그 누구보다도 헌신적이어야 할 바이오로이드여야 할 그녀였지만, 그녀가 시젠 곁을 지키는 모습을 본 바이오로이드들은 타이거샤크에 아무도 없었다. 실제로 이터니티는 현재 타이거샤크에서 바닐라들이나 포티아들, 아우로라들과 안드바리를 제외하면 가장 시젠과의 사이가 소원한 바이오로이드였다.


 "그러면 시젠하고 함선 운용에 필요없는 인원들은 타이거샤크에서 내려야겠네."


 [필요한 모든 자료들은 샤크튜리아로 옮겼습니다. 시젠 님도 샤크튜리아에 계시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레이라미아-122의 말에 시젠이 불안해하는 눈빛으로 단말기 화면에 떠오른 바이오로이드들의 얼굴과 주변 바이오로이드들의 얼굴을 살폈다. 


 그런 시젠을 티타니아와 에키드나가 감싸안고, 포이들도 커다란 가슴을 들이밀면서 시젠을 안으려고 시도했다.  


 "금방 돌아올게, 시젠. 너야말로 언니들 말 잘 듣고, 안전한 데 있어야 해. 알았지?"


 "시젠과 시젠을 돌볼 인원 말고도 타이거샤크에서 내릴 인원들을 골라야 할 것 같은데. 내릴 사람들은 빨리 손 들고 누가 시젠 곁에 있어야 할지 의견 빨리 말해." 


 레오나 1호가 시젠을 달래는 동안 레오나 2호는 타이거샤크에서 내리고 싶은 바이오로이드가 있는지, 혹은 내려서 시젠을 돌봐야 할 인원이 있는지를 물었다. 


 피닉스를 제외한 스틸 라인 인원들 전원이 시젠의 곁을 지킬 것을 자원했고, 더치 걸들과 안드바리는 고민하다가 다른 이들에게 떠밀려서 타이거샤크에서 잠시 내리기로 했다. 


 님프와 베라, 프로스트 레프리콘은 대장이자 큰 언니들인 두 레오나들의 곁에 남아있기로 했고, 히루메들은 앨리스들과 포이들의 강압에 의해 시젠 곁에 남기로 했다. 도합 일곱 바이오로이드들에게서 언제까지 킹치만 짓을 하고 살 거냐는 소리를 다시 한 번 들은 것은 덤이었다.


 이젠 히루메들이 앨리스들과 포이들에게 혼나도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게 된 시젠이 한숨 쉬듯 [뀨] 하는 소리를 냈다. 


 인원 편성을 마친 바이오로이드들이 각자 움직이려 할 때, 타이거샤크의 오퍼레이터가 또 다른 구조 요청이 들어왔음을 알렸다. 


 [......구조 요청 신호가 하나가 더 들어왔습니다.]

 

 "......끝내주네."


 여기저기에서 한숨과 탄식 소리가 들려오고, 한숨을 푹 내쉰 레오나 2호가 중얼거렸다. 


 자신도 한숨을 쉬고 싶은 마음을 꾹 참은 오퍼레이터가 구조 요청 메시지를 재생하자 절박하다 못해 처절하기까지 한 뽀끄루 대마왕 모델 바이오로이드의 목소리가 함내에 울려퍼졌다. 


 [도움! 도움! 누구 안 계신가요?! 미친 마법소녀들이 절 죽이려고 해요! 도움! 도우우우움!!]


 구조 요청 메시지를 들은 레모네이드 에타와 에바가 헛웃음 소리를 내고, 라비아타와 카틀레야는 한숨을 커다랗게 내쉬었다. 


 ".......위치는?"


 ".......그렇게 멀리 떨어지지 않은 무인도입니다."


 ".......이거 도와주러 가실 분?"


 질문을 꺼낸 라비아타와 다른 바이오로이드들의 머릿속에는 누가 도와주러 갈지에 대한 예상이 이미 떠올라 있었다. 

 

 그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후, 후후후후후....... 마법소녀들이 본좌의 또다른 화신을 해하려 드는구나."


 얼굴 위쪽으로는 수상한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눈에서는 안광을 뿜어내는 뽀끄루 13호가 별로 위엄이 안 느껴지는 웃음소리를 내면서 다 들으라고 말하는 듯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렇다면 본좌가 가만히 있어선 안 되지 않겠느냐!"


 ".......다녀올게요."


 어쩌다보니 소위 말하는 중2병이 패시브로 달려버린 동형 자매가 쇼하는 것을 지켜보던 뽀끄루 12호가 힘없이 말했다. 


 두 뽀끄루 대마왕들의 모습은 다른 이들이 보기에, 심지어 시젠이 보기에도 전혀 믿음직스러워 보이지 않았다.


 메이와 레오나 1호, 카틀레야와 시선을 주고받은 라비아타가 원래대로라면 시젠을 보호하거나 보트 피플을 지원하는데 보내려고 했던 자매들을 불렀다.


 "앨리스."


 "네, 언니."

 

 "도와주렴."


 "네."


 네 앨리스들이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으며 주먹을 꺾어 보였다. 애초에 화력으로는 마법소녀 바이오로이드들과 비교가 되지 않고, 지금은 육탄전으로 붙어도 마법소녀 바이오로이드들 정도는 제압할 자신이 있는 그녀들이었다. 하다못해 그녀들이 좋아하는 기계 망치나 무식한 기계 건틀렛, 기계 빠따 같은 거 안 들고 맨주먹과 맨발로 붙어도 이길 자신이 있었다.


 "괜찮으시다면, 저희도 같이 가겠습니다."


 라비아타가 앨리스들에게 뽀끄루를 구조하러 가라고 하자 이지스들도 같이 가겠다고 나섰다.


 "저기, 라비아타 언니? 혹시 저희도 같이 가도 될까요?"


 오베로니아 레아들까지 따라가겠다고 하자 다른 바이오로이드들의 얼굴에 먹구름이 꼈다. 


 타이거샤크 바이오로이드들 중에서 특히 강력한 전력들이 별로 필요도 없어 보이는 상황에 우르르 몰려가겠다고 하는 이 상황을 긍정적으로 보기는 어려웠지만, 세 모델 열 바이오로이드들의 목소리와 눈빛에는 꼭 지원 요청을 보낸 뽀끄루 대마왕 모델에게 가 보고 싶다는 의지가 가득했다.     


 티타니아가 레아들을 보면서 저게 무슨 주책들이냐고 쏘아붙이려 하자 콘스탄챠들이 그녀를 만류했다. 에키드나는 자신이 가고 싶었다면서 아쉬워하는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샬럿을 한심한 눈초리로 쳐다보았고, 카엔과 제로는 자신들도 갈까 말까를 고민하다가 그냥 시젠의 곁에 남아있기로 결정했다. 

 

 ".......일이 끝났든 안 끝났든, 급하게 부르는 분이 계시면 즉시 그 쪽으로 가셔야 해요."


 "네~"


 행복해하는 목소리로 대답하는 오베로니아 레아들과 무덤덤한 어조로 답하는 이지스들의 대답을 들은 바이오로이드들이 하나같이 쓴웃음을 짓거나 고개를 저었다. 

 

 자신들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강력한 바이오로이드들이 열 명이나 동행하는 것이 확정되자 뽀끄루 13호가 부들부들 떨었다.


 "이, 이거 아무리 봐도 본좌는 그냥 쩌리가 될 그런 상황이 아니냐?"


 ".......그렇게 보이네요."


 "보, 본좌가 활약할 기회는 어디로 가 버린 것이냐......?"


 ".......애초부터 없었을지도 모르겠는걸요.......?" 

  

 처음부터 그런 거 없었다.



이번 화에 나온 보트 피플에 포함된 세 여성의 외형입니다. 역시 노벨ai에게 외주를 맡긴 그림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