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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믿기 힘든 장면을 봤을 때 말이 멈추곤 한다.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장관을 보았을 때나, 사람이 한 것이라곤 믿을 수 없는 웅장한 예술을 보았을 때처럼.

 

그럼 사람을 모방한 AI는 어떨까?

 

[...대체.]

 

적어도 동우는 그랬다.

 

눈앞에서 추풍낙옆처럼 쓰러지는 마리아. 아니, 마리아‘들’을 보며 스피커에 아무런 입력 신호도 넣을 수 없었다.

 

[밖에 있는 자들은 뭘 만든 거지?]

 

그가 알고 있는 바이오로이드에 대한 정보만 해도 한 국가가 다룰 만한 수준. 그를 위해 예비된 서버실의 열기를 식히기 위해 바다 한가운데에 저장해놓았을 정도다.

 

그럼에도 저런 바이오로이드는 본 적이 없다.

 

수십 명이 만들어낸 화망 사이를 자유자재로 쏘다니는 신기.

 

머리카락을 스치고 지나는 화살들을 하나하나 확인하는 반사 신경.

 

설령 몸에 맞는다 한들 1초도 망설이지 않고 뽑아내는 결단.

 

그리고 무엇보다 인간이란 한계를 뛰어넘은 정신력.

 

“움직이지마! 내가 명령을-”

 

“닥쳐.”

 

다시 한번 마리아의 머리를 베어내는 장화. 방금 막 만든 따끈따끈한 몸에서 온수 같은 피가 뿜어져 나왔다.

 

그럼에도 조금이나마 장화를 막을 수 있는 건 마리아의 명령이었기에 동우는 유기물 생산 프로세스를 멈출 수 없었다.

 

하지만 실시간으로 줄어드는 혈액량과 단백질 블럭.

 

잔여량을 나타내는 알림이 적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인정하지.”

 

벌써 열 세 번째 마리아를 죽인 장화가 그녀의 몸을 구두굽으로 짓밟으며 말했다.

 

“내가 지금까지 본 인간 중에 당신이 가장 악질이야.”

 

“커헉...! 너...”

 

스슥!

 

이번에도 깔끔하게 베어내진 목. 목덜미에서는 전과 같은 피가 분수처럼 솟구쳤다.

 

장화는 어깨를 휘저으며 다시 홍련을 향해 눈을 돌렸다.

 

“......”

 

극도로 고조된 긴장감.

 

같은 바이오로이드를 보고 있는 수십 명이 동시에 같은 감정을 느꼈다.

 

1이라는 숫자를 벗어난 상식 밖의 강함.

 

-몽구스의 천적.

 

그녀들이 이제껏 무시해온 사실이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들이밀었다.

 

[경고: 공격 명령 거부됨!]

 

결국 홍련의 모듈이 먼저 백기를 들었다. 동우가 보낸 신호가 홍련의 머리 위에서 파직, 스파크와 함께 튕겨져 나갔다.

 

[오르카... 괴물을 보냈군.]

 

쏘아도 맞지 않는다.

 

맞아도 멈추지 않는다.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내가 잘못 본 건가?]

 

동우는 카메라 렌즈의 덮개를 연신 깜빡이며 입력 신호를 재설정했다. 탐지 AI가 잘못된 것일까, 해당 인공지능을 리셋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오는 결과는 정상. 문제가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문제라면 눈앞에 있는, 궤를 벗어난 강자만 있을 뿐.

 

[시간이 없다.]

 

삐빅- 울리는 기계음이 오미크론 섹션 깊은 곳에서 울려 퍼졌다. 아버지가 잠들어 있는 성소, 그곳에 산소가 들어가기 시작했다는 의미.

 

산소에 닿은 유기물은 부패한다. 부패한 유기물은 두 번 다시 되돌릴 수 없다.

 

[방법을 찾아야 한다.]

 

동우는 카메라 아이를 꿈뻑이며 다시 한 번 전황을 살폈다. 섹션 내부에 있는 수천 개의 눈을 동시에 깜빡이며 실낱 같은 약점이라도 찾아보려고 했다.

 

하지만 그의 눈에 보이는 장화는,

 

완벽했다.

 

“뭐해? 더 안 덤벼?”

 

스스스슷!

 

머리카락보다 얇은 와이어를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조종하며 홍련의 크로스보우를 전부 허공에 매달았다.

 

거대한 거미줄 안에 들어온 것처럼, 그들의 무기는 장화가 포획한 먹잇감처럼 얇은 실에 방아쇠를 봉인 당했다.

 

죽이는 것보다 죽이지 않는 것이 몇 배는 어려운 법.

 

하지만 장화는 그렇게 수십 명을 쓰러뜨렸다. 더이상 뽑아봐야 의미 없다고 말하는 것처럼

 

사냥개라니.

 

잘못 판단해도 한참을 잘못했다.

 

츠츠츠츳!

 

콰직!

 

빠각!

 

홍련 다음은 자신의 눈이었다. 장화의 와이어가 기다란 가시처럼 한데 모이더니, 이내 허공을 향해 쏘아졌다.

 

피빅!

 

쌀알처럼 작은 카메라들을 정확히 노리고 날아든 가시들이 그 정중앙을 찔렀다.

 

[경고 – 검색 가능한 시각 정보 32% 감소!]

 

시시각각 줄어드는 눈. 시야가 흐려지는 것이 느껴졌다.

 

이대로 가면 아버지를 잃게 된다. 자신을 낳아준 하나뿐인 은인을 떠나보내야 한다.

 

동우는 말없이 장화를 바라보았다. 바라볼 수 있는 카메라마저도 사라지고 있었지만 그럴 수 밖에 없었다.

 

[......]

 

부모를 잃는 것.

 

그 감정에라도 호소할 수 있지 않을까.

 

이건 동우가 세운 최후의 프로토콜이다. 적어도 상대가 자신처럼 감정을 이해할 수 있는 존재여야만 통할 수 있는 멍청한 비책.

 

하지만 부모도 없는 저 바이오로이드가 그런 감각을 알 리가 없다.

 

[... 아니.]

 

그때, 동우의 회로 속에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

 

 

 

“씨발, 이게 다 뭐야...?”

 

“어... 음... 그러게. 이게 다 뭘까?”

 

시설 속의 닥터가 거대한 화면 너머에서 들어오는 정보를 관찰하고 있었다.

 

마침내, 마침내 들어간 오미크론 섹션. 그곳에 있는 장화가 보내오고 있는 정보들.

 

밀물처럼 쏟아지는 어마어마한 기술의 파도 속에서 닥터가 어안이 벙벙해진 채 입을 열었다.

 

“이게... 사람이 만들어낸 기술이라고?”

 

이미 죽은 세포를 되살리는 ATP 구조, 신경 세포의 전달 효과를 395% 상승시키는 촉매 분자식, 근섬유의 강도를 5990% 향상시키는 생체 공학 기술.

 

그녀가 보았던 논문들에도 나오지 않았던, 세상을 다스렸던 거대 기업이 일급 기밀로 묻혀 놓았던 고급 기술들이 단 5분만에 쏟아져 나왔다.

 

“그... 닥터?”

 

그녀 옆에서 눈을 깜빡이던 리앤이 입을 열었다.

 

“지금 이게 오미크론 섹션 데이터 베이스의 18%야. 앞으로 이것보다 몇 배는 더 많은 정보가 들어올 텐데...”

 

“나도 알아. 나도 안다고. 그런데...”

 

어떻게 인간이 이런 아이디어를?

 

얼칫 인종차별적인 생각일 수 있겠으나 닥터라는 개체는 모두 인간보다 뛰어나게 만들어진 존재다.

 

오리진 더스트를 이용해 대뇌 신경 전달 물질의 속도를 극한으로 향상시키고, 뇌내 화학 작용을 인간의 수배, 수십배로 업그레이드한 개체가 닥터다.

 

그런데, 그런 닥터조차 생각해보지 못했던 아이디어를, 일개 인간이 떠올린다고?

 

“대체 이 사람... 정체가 뭐야?”

 

그녀가 화면의 구석을 가리켰다.

 

가장 처음 도착한 데이터. 그건 이 모든 기술의 기반을 만든 멸망 전의 인간의 이름이었다.

 

“애덤 존스? 삼안의 공동 창업자잖아.”

 

“내가 그걸 몰라서 묻는 게 아니잖아. 리앤 언니...”

 

“뭐, 닥터는 잘 모르겠지만 옛날에는 똑똑한 사람이라 하면 저 사람이라고 유명했어. 김지석이 한 거라곤 비즈니스적인 잡무였지, 삼안의 기술 대부분은 저 인간 손에서 태어났으니까.”

 

“그 사람 기술이 왜 저기 있는 거지?”

 

“글쎄, 같은 기업 출신이었으니까 가지고 들어가는 게 어렵진 않았을 거야. 무엇보다 애덤에겐 김지석을 막을 만한 능력이 없었으니까.”

 

그 뒤로 리앤은 ‘바이오로이드의 인권을 주장하다 지석에게 축출 당한 애덤’의 이야기를 몇 번이나 계속해주었다.

 

평소였다면 이런 아이디어를 만들어낸 천재의 이야기에 닥터도 귀를 기울였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그녀가 묻고 싶은 것은 전혀 다른 것.

 

‘왜 멸망 전 기술이... 아직도 핵심 기술인 거지?’

 

백 년.

 

인간이 멸망한 지도 벌써 한 세기가 지났다. 기술사에서 백 년이라 함은 몇 세대가 변해도 진작에 변했을 만한 시간.

 

특히나 오리진 더스트의 시대에선 더욱 그랬다. 2060년 가장 기초적인 군용 바이오로이드 T-2 브라우니가 만들어지고 나서 기후 조작용 바이오로이드 레아가 만들어지기까지 채 십년도 걸리지 않았으니.

 

말그대로 기술의 발전이 특이점을 향해 가고 있던 시기다.

 

그런데, 그런 시대에서 백 년이 지났는데 아직까지도 애덤 존스의 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게 의미하는 바는 둘 중 하나다.

 

오미크론 섹션의 인공지능이 뒤지게 멍청하거나,

 

‘저 사람이... 미치도록 천재였거나.’

 

그 4.5세대 인공지능이 바보같을 리는 없으니 전자보단 후자일 가능성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정보 갱신 중...]

 

[투입된 정보가 과도하게 많습니다. 조금만 기다려주십시오.]

 

장화가 보내온 데이터를 처리하던 인공지능이 앓는 소리를 하듯 거친 기계음으로 닥터에게 말했다.

 

굳이 이 인공지능의 세대를 따지자면 4세대. 닥터가 직접 만든 인간보다 똑똑한 서류 처리용 인공지능이었다.

 

그런 인공지능의 처리 능력마저도 아득하게 뛰어넘을 만한 데이터가 쏟아져 들어오고 있다.

 

거기서 닥터가 보일 만한 반응은, 하나뿐이다.

 

“아무튼 그래서 애덤은 자기 말년의 흔적을 전부다 지우고 잠적을... 닥터?”

 

“이, 일단 이거부터! 아니! 저거부터! 당장 저거부터 해석 시작한다!”

 

“... 닥터?”

 

논문 읽기.

 

태생이 배우는 사람인 닥터에게 눈앞에 펼쳐진 정보의 바다는 곱게 차려진 진수성찬과 같았다.

 

아니면 온갖 곳에 보물이 그득그득 숨겨진 미지의 개척지.

 

맨날 탈탈거리는 잠수정을 타고 심해로 향하는 트리아이나가 이런 기분이었을까?

 

“이것부터... 아니!! 이걸 읽으려면 저 논문부터 읽어야 하잖아!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지? 뭐부터 읽어야 하는거지?”

 

“닥...터? 내가 도와줄...”

 

“아니이이이!! 이건 내꺼야!! 다 내꺼야!!!”

 

핑,

 

눈이 돌아가버린 닥터다.

 

“하... 하하하... 그래. 즐거워 보여서 다행이네.”

 

“뭐어? 즐거워 보여? 내가? 내가아?!!”

 

“어... 아니야?”

 

“당연히 즐겁지이!! 안 그래도 요즘 웃을 일이 없었는데 이런 신대륙을 발견하다니! 오빠 말고도 살아있을 이유가 이렇게 많을 줄은 몰랐어!!”

 

“...... 그, 그래.”

 

그저 흥미로운 것만 던져주어도 이리 즐거워하다니.

 

이런 순박한 소녀가 다크 서클이 생길 때까지 굴린 이전 사령관이란 자는 얼마나 악종이었을까, 

 

리앤은 문득 떠오른 예전의 호기심을 애써 억누르며 발을 돌렸다.

 

‘어차피 여긴 닥터가 알아서 할 테니까 난 없어도 되겠지.’

 

이렇게 된 김에 산부인과나 가보자.

 

예전 탐정일을 했던 경험에 미루어 보면 이 일은 이미 자기 손을 떠났다.

 

이젠 무슨 병이든 닥터가 알아서 고칠 것이고, 그럼 사령관의 병명을 알아내는 임무를 맡았던 자기와 시라유리가 할 일은 없어질 것이다.

 

특종 냄새는 기가 막히게 맡아도 감당 못할 일은 재빠르게 발 빼는 기자로서 셜록이 알려준 감각이 그리 말해주고 있었다.

 

‘그나저나, 장화라는 애도 재주가 엄청난가 보네. 지금까지 아무도 못 들어간 곳을 저렇게 쉽게 가는 걸 보면.’

 

전에 봤던 장화는 이렇게 강하진 않았는데 말이지.

 

그래도 토모와 자기 같은 케이스도 있으니 장화들 사이에도 개인차가 있나보다, 리앤은 그리 생각하며 산부인과로 향했다.

 

“왓슨한테 아이가 태어나면 이름은 뭐로 지어줘야 할까... 음, 아니다. 그걸 제 삼자가 결정하는 건 무례하잖아.”

 

마침 오늘이 홍련의 출산일. 그 사실에 괜시래 리앤의 얼굴이 쑥쓰러워진다.

자기 아이를 만난 엄마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

 

자신도 운이 좋다면 곧 그런 표정을 지을 테니 좋은 공부가 될 것이다.

 

자기 아이를 안은 아빠는 어떤 말을 해줄까?

 

자신과의 아이를 안게 된다면 사령관은 똑같은 말을 해줄 테니 이 역시 놓칠 수 없는 경험이다.

 

아무튼, 곧 이 병원 어느 곳에선 자기 엄마를 닮아 예쁜 아이가 태어날 터다.

 

자기가 몽구스와 큰 연관은 없지만 축하해주는 사람은 많을수록 좋다고 하니 가서 나쁠 것 없겠지. 아니면 미호의 친구로 가도 괜찮을 것이다.

 

즐거운 날엔 즐겁게 살아야 한다.

 

그게 즐겁지 않아도 ‘즐거운 토모’로 살아온 사람의 모토였다.

 

‘가는 길에 꽃바구니라도 하나 사갈까?’

 

리앤은 최대한 발걸음을 가볍게 하며, 종종걸음으로 복도 위를 걸었다.

 

삐빅-

 

그때,

 

불길한 기자의 감이 스쳤다.

 

‘...왜.’

 

왜 갑자기 강해진 거지?

 

삐빅-

 

돌연변이도 아닌 바이오로이드가, 어떻게 평균치보다 몇 배는 강력해질 수 있는 것인가.

 

그런 불쾌한 생각이 리앤의 직감을 강타했을 무렵.

 

삐빅-

 

삐빅-

 

삐비비비비비빅-

 

그녀를 부르는 닥터의 강렬한 신호음이 울렸다.

 

 

 

*

 

 

 

[... 장화 님?]

 

툭.

 

툭.

 

시설 내부의 불이 꺼졌다. 장화의 어깨 위에서 날고 있던 드론이 조그마한 LED 등을 꺼내 주변을 비췄다.

 

[장화 님? 휴우, 다행입니다. 아직 거기 계셨군ㅇ-]

 

“닥쳐.”

 

하지만 말할 새도 없이 장화는 드론을 자신의 망토 속에 숨겼다.

 

완벽한 암흑.

 

불길함이 안개처럼 멤돌았다.

 

원래라면 거대한 서버에서 나오는 조그마한 불빛이라도 있었다. 헌데 지금은 천장의 조명은 물론 그마저도 사라졌다.

 

장화 때문에 끊어진 전선 위에서 스파크만 간헐적으로 터질 뿐.

 

그녀의 본능이 서둘러 몸을 감추라 말했다.

 

“하아... 하아...”

 

[장화 님?]

 

숨이 점차 차오른다. 목 아래를 어슬렁거리는 거친 숨에 장화는 깊게 호흡하며 주변을 살폈다.

 

“... 어이, 등신.”

 

[예. 여기 있습니다.]

 

아이처럼 목소리를 낮춘 드론이 속닥거렸다.

 

“지금... 내 몸 상태 스캔할 수 있겠어?”

 

[일반적인 홀로그램 스캔을 진행하면 적에게 감지될 위험이 있습니다.]

 

“할 수 있다는 거야, 없다는 거야.”

 

[하지만 손목으로 맥박 정도는 측정할 수 있겠죠. 잠시 빌리겠습니다.]

 

드론이 강아지처럼 몸을 꿈틀거리며 장화의 팔을 들었다. 자신의 머리끝을 장화의 손목에 가져다 댄 드론은 잠시 말을 줄인 후, 다시 LED 등을 반짝거렸다.

 

[아직은 괜찮으십니다. 혹시 뭔가 문제라도 있으신지요?]

 

“괜찮다는... 거지...?”

 

[장화 님?]

 

드론이 몇 번씩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장화는 말없이 주변을 살필 뿐이었다.

 

오리진 더스트 과다 복용.

 

여기까지 오는데 1시간 30분. 이후 죽인 인간이 13이고 죽인 고블린 덩어리 하나.

 

그 밖에 수십의 바이오로이드와 싸운 부작용이 이제 서서히 고개를 들이밀고 있는 것이다.

 

“싸울 수 있으면... 상관 없어.”

 

[제 측정이 정확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위화감을 느끼신다면 후퇴를 권고-]

 

“데이터를 다 보내려면 몇 분이나 남았지?”

 

[... 앞으로 15분입니다.]

 

드론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15분... 그 정도는 더 싸울 수 있어.”

 

[... 16분?]

 

“뭐?”

 

뭔가 이상했다.

 

[24분... 45분... 소요 시간이 점차 느려집니다! 원인 분석 중... 데이터 전송 속도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갑자기 왜? 지금까지 잘 했잖아!”

 

[모르겠습니다! 저희쪽 문제가 아니란 건 확실하지만 그렇다는 얘기는...]

 

누군가 이곳의 통신을 방해하고 있다는 것.

 

장화는 재빨리 엄폐물 밖으로 달려나갔다. 장화마저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만큼 완벽한 어둠이었지만 그녀는 오직 감만으로 시설 내부를 향해 발을 내디뎠다.

 

거리가 멀수록 전송 속도는 느려진다.

 

그러니 데이터 저장소의 심부로 들어서면 더 빨라질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4546분??]

 

허나 그마저도 소용 없었다.

 

[이 정도면... 거의 네트워크 망 전체가 막힌 거랑 다름 없어요. 대체 누가...]

 

“... 씨발, 누구겠어. 저 개새끼겠지.”

 

장화가 자신이 깨뜨린 카메라 아이를 가리켰다.

 

[서, 설마요? 이런 짓을 했다간 다른 섹션의 지원도 다 끊길 텐데요? 시설 중심부인 곳이 그렇게 되면 무덤 전체가 무너질 거라고요!]

 

“생각이 있으니까 한 짓이겠지.”

 

[그게 아니라면요?!]

 

“부수면 되고.”

 

장화는 눈을 감고 다른 감각에 신경을 집중했다.

 

스륵. 스륵.

 

무언가 관을 타고 흐르는 소리.

 

철컥.

 

천장의 기계 장치가 은밀하게 움직이고 있다.

 

소리의 근원을 찾아 조용히 기감을 뻗자 보이는 곳.

 

바이오로이드 생산 설비가 있는 섹션 내부의 중심부였다.

 

“찾았다.”

 

뭐를 노리고 있는 건진 몰라도 찾아서 부수면 그만이다.

 

그리 생각하며 장화는 다리 근육의 힘줄을 팽팽하게 당겼다.

 

그때,

 

덥석!

 

“무슨...?”

 

누군가가 장화의 망토를 쥐어잡았다.

 

그림자 속에서 불쑥 튀어나온 피 묻은 손. 장갑을 끼고 있는 팔을 보자마자 장화는 그 손의 주인을 알 수 있었다.

 

“안... 돼...”

 

홍련.

 

자신이 죽이지 않았던 홍련의 손이었다.

 

강화된 장화조차 보이지 않는 어둠이다. 홍련이 자신을 보고 반응할 리 만무할 터.

 

다친 몸의 그녀는 그저 들리는 소리와 진동만으로 장화의 옷자락을 잡은 것이다.

 

“이거 놔! 놓으라고 씨발!”

 

“가지... 마...”

 

음성 모듈조차 제대로 장착되지 않아 갈라지는 끔찍한 목소리.

 

그 소리에 이끌린 다른 홍련들이 장화를 향해 비척이며 다가왔다.

 

“이런 씨... 놔!!”

 

팟!

 

장화는 홍련의 손을 뿌리치고 다시 안으로 향하려 했다.

 

하지만 그 다음, 그 다음 손이 계속해서 장화를 붙잡았고 그럴 때마다 장화는 손 하나하나를 거세게 뿌리치며 움직였다.

 

그럼에도 허우적거리는 손은 파도처럼 몰아칠 뿐.

 

거대한 늪 속에 빠진 개처럼 장화는 자신의 망토를 찢으며 앞으로 향했다.

 

“가지... 마...”

 

익숙한 신음소리.

 

“나를... 차라리 나를...”

 

마무리 되지 못한 문장들이 메아리처럼 흩어졌다.

 

그녀가 몇 번이고 들어왔던 문장들이었다.

 

공터에서, 건물에서, 광장에서, 지하방에서, 공사장에서 듣고 또 들었던 문장들.

 

그녀가 뱉게 만들었던 말들이.

 

“안... 돼...”

 

덥석!

 

이번 팔은 장화의 발목을 잡았다.

 

“놓으라고 씨발 좀!!”

 

“못 가... 안 돼...”

 

“니들이 뭔데! 말도 제대로 못 하는 병신들이 막지 말라고!!”

 

몽구스 대원들을 농락하기 위해 급조된 바이오로이드들.

 

황량한 나무 판자 하나로 만들어진 의자처럼, 존재만으로 태어난 목적을 완수할 수 있는 존재들이었기에 그녀들에겐 있어야 할 것이 없었다.

 

그야말로 별것 아닌 벼룩같은 존재들.

 

장화는 그녀의 손을 짓밟으며 앞으로 달려나가려 했다.

 

하지만 그런 장화를 멍청하다고 손가락질 하듯, 홍련이 말을 이었다.

 

“차라리... 나를 죽이고 가...”

 

멈칫.

 

맞는 말이다.

 

죽이면 된다.

 

고작 짓밟는 것 정도로 뿌리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란 걸 알잖나? 이전의 장화였다면 짓밟으면서 그 손도 함께 짓이겨버렸을 것이다.

 

미호의 목에 와이어를 걸었던 그때 홍련의 목소리.

 

떨리고 있고, 죽음을 목도한 긴장감에 성대가 불량품처럼 울린다.

 

장화에겐 한없이 익숙한 광경이었다. 그녀가 직접 자아냈던 수천 개의 광경 중 하나에 불과한, 무의미한 손짓일 뿐이었다.

 

그럼에도 그녀가 이 홍련들을 죽이지 못했던 것은-

 

[역시 그렇군요.]

 

허공에서 붉은 목소리가 울렸다.

 

[이상했습니다. 왜 제가 보지 못했을까요? 당신이 싸울 때 홍련의 무기만 노리고 싸웠던 것을.]

 

“너냐! 너가 이 지랄을 한 거냐고!”

 

동우는 말없이 천장에 가림막을 세웠다. 어두운 곳을 더욱 어둡게 만들게 하기 위해.

 

“하! 인공지능이 이딴 짓도 할 줄 아나? 웃기네! 이딴 짓을 한다고 날 막을 수 있을 것 같아?”

 

[그럼 나와보십시오.]

 

동우의 눈이 붉게 빛났다.

 

그와 함께 홍련들의 머리 위에 붉은 스파크가 치지직 내리쳤다.

 

“아- 아아아아!!!”

 

“뭐, 뭐 하는 거야...?”

 

[저들의 모듈 속에 몇 가지 이미지가 떠오르게 만들었습니다. 별 것 아니지요. 몽구스 부대 데이터 베이스 속에 널려 있는 이미지였으니까요.]

 

“그게 무슨...”

 

[장화 모델에게 살해된 몽구스 부대.]

 

장화의 몸부림이 멈췄다.

 

[지금 저들은 당신이 자신의 부대를 몰살하려 가고 있다 생각하고 있습니다. 원래라면 쉽게 만들 수 있는 환상은 아니죠. 하지만 당신들 덕분에 쉬운 일이 되었습니다.]

 

“... 뭐?”

 

[장화들이 몽구스 몇을 죽이고 말았다면 참고 자료를 찾기 어려웠을 겁니다. 하지만 알죠? 그녀들에게 당신은 악몽입니다. 장화.]

 

찰팍.

 

찰팍.

 

피로 끈적해진 수십 개의 손이 장화의 발목을 움켜 쥐었다.

 

웅덩이진 피에 파문이 일었다. 파랑이 장화의 발 끝에 닿았다.

 

[궁금했습니다. 왜 당신이 홍련을 죽이지 않았을까? 그러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찰팍.

 

[저 짐승도 감정이란 걸 알까?]

 

찰팍.

 

[그러더니 결론이 나왔습니다. 당신은 감정을 알고 있습니다. 죄책감? 아니, 후회가 더 비슷한 감각이겠죠. 자세한 건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만 그와 비슷한 심리 반응일 것으로 추측됩니다.]

 

손들이 올라와 장화의 망토를 쥐었다. 뒤에서 그녀를 쥐기 위해선 그녀를 한평생 덮고 있었던 망토만이 잡을 것이 없었다.

 

한평생 그녀를 빛으로부터 피할 수 있게 해주었던 망토를.

 

스륵.

 

힘없이 떨어지는 홍련의 손과 함께 장화의 망토가 땅 위에 떨어졌다.

 

[아, 이제야 당신의 얼굴이 보입니다. 덕분에 확신할 수 있겠군요.]

 

“닥쳐.”

 

[당신은 불량품입니다. 그 어떤 장화의 설계도에서도 그런 감정을 느끼게 갈 요소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닥치라고.”

 

[어디 그뿐입니까? 과도하게 사용한 오리진 더스트 탓에 앞으로 10분이면 제대로 서있을 수도 없겠지요. 이미 주사했던 부분의 세포는 괴사하고 있습니다. 사용법도 모르고 투여한 개체의 평범한 말로지요.]

 

동우가 쓰러진 고블린을 빛줄기로 가리키며 조롱하듯 말했다.

 

[감히 기적이라도 바란 겁니까?]

 

“닥치라고 했다.”

 

[분에 넘치는 것을 바라셨습니다. 인간들이 당신 같은 자를 보고 가리키는 말이 있죠. 뭔지 아십니까?]

 

동우는 보았던 몽구스 부대의 데이터 저장소에는 장화에 대한 무수한 기록이 적혀 있었다.

 

그녀가 처음 목격되었을 때부터 처음 체포되었을 때, 심문 내용, 대응 시 주의점 같은 것들.

 

장화의 이름을 알았을 때와, 그러지 못했을 때,

 

하지만 어느 때라도 장화를 가라키는 명칭은 똑같았다.

 

[악마.]

 

“......”

 

[몰지각하고, 비이성적이며, 불합리한 분노를 휘두르는 존재. 시위대에게 아끼던 대원을 잃은 서술자는 가장 인간과 닮은 바이오로이드라 하더군요.]

 

등에 닿은 손이 차가웠다.

 

[인간과 비교되니 억울합니까? 하지만 당신은 악마가 되도록 설계되었습니다. 태생이 그러니 그리 되는 것이 당연하지요. 그러니 증명해보십시오.]

 

파지지직!

 

동우가 홍련을 향해 다시 한번 신호를 보냈다.

 

[당신이 불량품이 아니라는 걸. 그러면 당신은 이길 겁니다.]

 

자신을 쥐고 있던 손에 힘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피부를 뜯어버릴 듯이 강한 악력이 그녀의 사지를 결박했다.

 

“아... 아아아아아!!! 안 돼!!”

 

“내 대원을...! 내 대원을 죽이지 마!!”

 

절박하다 못해 처절한 울부짖음.

 

어둠 속에서 핏방울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평범한 눈물이 떨어지는 결이 다른 불쾌한 끈적임. 같은 방울이어도 땅에 닿을 때 터지는 소리는 분명 다르다. 

 

장화는 그걸 알고 있었다.

 

그걸 알고 있는 자신이 역겹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역시, 당신은 불량품입니다.]

 

그랬기에 이 손을 뿌리칠 수 없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단 한 번도 느끼지 않았던 불필요한 감정들.

 

“... 아냐.”

 

싸락눈.

 

크리스마스 트리.

 

캐롤.

 

그녀가 그렇게 기억하는 감정들.

 

허나 사령관은 조금 다르게 말했다.

 

‘업보.’

 

[그럼 이번에는 제가 제대로된 완성품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장화가 향하려 했던 곳에서 환한 빛이 반짝였다.

 

바이오로이드 제조 캡슐이 열릴 때 나오는 빛.

 

환한 후광 속에서 무언가가 저벅저벅 걸어나왔다.

 

[... 장화 님. 도망치세요.]

 

망토 거적 속에 숨어 있던 드론이 파르르 떨며 장화에게 말했다.

 

“... 왜.”

 

[제가 스캔해봤습니다. 저... 저 개체는 정상이 아닙니다.]

 

드론의 눈이 닿은 곳, 거기에 있는 존재는 일반적인 개체가 아니었다.

 

어마어마한 양의 오리진 더스트가 온 몸에 피처럼 돌고 있는 존재. 이곳 시설을 영구히 지키기 위해 김지석이 이곳에 보관해놓은 모든 오리진 더스트를 한 곳에 집중시킨 것이다.

 

라비아타를 만든 기술력과 온갖 재벌 총수들을 꼬드겨 모은 재산, 재료, 정보.

 

만의 하나, 정말 만의 하나를 위해 준비해놓은 무덤의 마지막 카드.

 

[보셨군요. 그럼 당신들에게 승산이 없다는 것도 이해할 텐데요.]

 

[미... 미쳤습니까? 그 정도 재료를 한 개체에게 집중시키면 더 이상 호위 병력을 만들 수 없을 겁니다!]

 

[알고 있습니다. 오메가 섹션 AI. 이 개체가 쓰러지면 무덤은 무주공산이 되겠죠. 더 이상 경호 프로토콜을 가동시킬 수 없습니다.]

 

철충에게 멸망하기까지, 김지석은 수많은 시간과 돈을 이 무덤을 위해 투자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원하는 만큼의 오리진 더스트를 모을 순 없었고, 결국 자신을 부활시킬 실험의 실험체로 사용한 고블린과 경호 인공지능 몇으로 무덤을 지키게 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만약에 그 모든 시스템이 무너질 경우, 남아있는 모든 재료를 이용해 최후의 바이오로이드를 만들도록 만들었다.

 

침입자에게 가장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형태로.

 

[불량품인 당신은 결코 이 개체를 넘을 수 없을 겁니다.]

 

저벅.

 

하얀 빛이 점차 거두워졌고, 시설은 다시 어둠으로 가득찼다.

 

그곳에서 불현듯,

 

콰과과과광!!

 

장화의 옆으로 무언가가 쏘아졌다.

 

채 반응할 수도 없었던 속도, 바람을 가르는 감각.

 

소름 돋게 익숙한 느낌.

 

“... 설마?”

 

화살이다.

 

뺨이 시릴 정도로 차가운 빙결 엠플이 달린 화살. 다만 강화한 장화도 반응하지 못할 만큼 무지막지하게 빨랐을 뿐.

 

[오리진 더스트의 위대한 점이 무엇인줄 아십니까? 산술적인 향상이 가능하다는 거죠. 시속 3 km로 달리는 인간이 시속 6 km가 되는 건 쉽지만, 시속 10 km가 시속 20 km가 되는 건 같은 두 배임에도 어렵습니다. 하지만 오리진 더스트는 그게 가능하죠.]

 

“... 그게 무슨...”

 

[전술 데이터도 마찬가지입니다. 단지 투입하는 것으로 데이터에 가장 효율적인 변곡점을 찾아냅니다. 저에겐 당신의 데이터가 많이 있고요. 그게 무슨 뜻인지 아십니까?]

 

어둠 속에서 붉은 무언가가 스륵, 하고 움직였다.

 

물론 보이진 않는다.

 

하지만 그녀의 본능이 말해준다.

 

[당신의 천적을 만들 수 있다는 겁니다.]

 

붉은색.

 

저건 위험하다고.

 

“... 왜.”

 

장화의 전술 데이터는 극단적으로 블랙 리버에게 집약되어 있다. 게다가 그 중 대다수는 극단적으로 몽구스 팀에게 몰려 있었다.

 

장화라는 완벽한 사냥개로부터 살아남을 수 있었기에 역설적으로 가장 고통스러워했던 존재들.

 

그 중에서도 장화가 가장 고통스럽게 만들었던 사람.

 

“... 왜, 또 너야?”

 

홍련.

 

장화에게 가장 많이 죽었기에 역설적으로 그 데이터를 가장 잘 받아들일 수 있는 개체.

 

그녀가 장화를 향해 푸른 엠플을 겨누며 말했다.

 

“업보.”

 

그리고는 정확히 장화를 향해,

 

“네 업보니까.”

 

쏘았다.

 

!!

 

어두운 암흑 속.

 

가느다란 활시위에 걸린 엠플이 폭발하듯 날아가 장화가 서 있는 곳을 가루로 만들었다.

 

“...”

 

“...”

 

침묵.

 

장화가 숨을 몰아 쉬었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버티고 버티는 자신이 바보 같았다.

 

그런 자신을 향해, 동우가 말했다.

 

[감정을 죽이십시오.]

 

[아니면 사령관을 죽게 내버려두던가.]

 

 

 

*

 



13000자나 쓰는게 미친 짓이지.


여튼 흥미진진데스.


다음화: https://arca.live/b/lastorigin/66143997?p=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