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생각해보면 참 복에 겨운 일이다
일어나보니 볼 일도 만날 일도 없을 미인들이 있고 그런 세상에서 남자가 나 혼자
하지만 그것도 여자에 익숙하거나 하다못해 연애라도 한 번이라도 해봤던가 하는 남자들에게 해당되지
회사, 집, 게임, 밥 이 4가지 말곤 아는 게 없는 나에게는 이 낙원이 오히려 너무 불편하게 다가왔다
"머리가 어지럽다거나 눈 앞이 잘 안 보인다던가 불편한 곳은 없어요?"
"아 예... 눈 앞도 잘 보이고 불편한 곳은 없습니다"
"흐응... 겉으로만 봐도 충분히 어딘가 불편해 보이시는데요?"
"아 그게... 제가 일어난 지 얼마 안되서 좀 당황스러운 것 같습니다"
눈도 제대로 못 마주치고 대화했다 당연히 꼬투리 잡히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하지만......!
나는 여자와 대화 해 본거라곤 보험 가입이나 분식 집 아주머니가 끝이다
그런 사람이 평생 보기 힘든 미인들이랑 태연히 대화를 나누는 게 말이 될리가...
"말 안 하셔도 알 것 같아요 많이 힘드셨죠 몸만 봐도 어떤 삶을 살으셨는지... 흑..."
뭐지 애 왜 울어
"여러분 아무래도 아직 남성 분은 준비가 안되신 것 같네요 다들 돌아가시죠"
눈에 맺힌 눈망울을 닦는 사령관을 두고 레모네이드 알파가 해산 하자며 이야기를 꺼내자
흥미 섞인 눈
한심하다는 흘겨보고 가는 눈
딱히 아무런 관심도 없다는 무심히 지나치는 눈
경계하듯 날카롭게 벼려진 듯 한 눈
각기 다른 시선들이지만 공통점이 있다면 나는 그들에게 달가운 존재는 전혀 아니란 거다
"그럼 몸조리 잘하시고 다음에 뵐게요"
"예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령관님"
"잘 있어 괴짜 인간님~"
"편히 쉬세요"
사령관과 감사인사를 하고 나가는 알파에게는 간단한 목례로 닥터에게는 어색하게 웃으면서 손을 흔든다
하... 힘들다 회사에서 야근하며 밤새우는 것 보다 더 힘들어...
차라리 사령관이 남자였다면 둘 이서 뭔 이야기라도 꺼낼텐데 그저 앞으로 가 걱정이다
한숨 쉬며 침대에 드러눕는다 침대에서는 좋은 향이 난다
분명 많이 잤을 텐데 가만히 누워 향을 맡고 있으니 조금씩 눈이 감겨온다
아 그래 어쩌면 이건 꿈이 아닐까
불편했지만 그래도 정말 애정 갔던 게임의 캐릭터들을 만나는 꿈
성인이 되어서 이런 꿈 꿨다는 건 아무한테도 말 못하겠네 이대로 눈을 감고 뜨면 집에서
일어나서 씻고... 옷 갈아입고... 가방 챙겨서 출근해야지...
"아... 익숙한 천장이네"
"인간님은 병원 많이 다녔나 봐?"
눈을 뜨자 보인 건 닥터.... 꿈이 아니구나
"아 그...."
"닥터라고 불러줘 앞으로 내가 인간님 자주 봐야 하는데 우선 친해져야 하지 않겠어!"
천진난만하게 웃으면서 악수하자며 내민 작은 손을 잡자 조금 웃음이 새어나온다
"예 앞으로 잘 부탁합니다 닥터"
"굳이 존댓말도 안 해도 되는데?"
"제가 편해서 그럽니다"
"흥 그러시든가~ 오늘은 어때? 대화 가능하겠어?"
어차피 부딫쳐야 할 일이다 이대로 간다면 내가 대화하기 힘들든 뭐든 의심 받다 최악에는 실험체...
돌아갈 길은 없고 이젠 이곳에서 지내야 한다....
"예 오늘은 상태가 많이 좋습니다"
"좋아 좋아! 나도 인간님한테 궁금한 거 많았거든~ 아쉽게도 내가 물어볼 수는 없고 다른 언니랑 대화할거야~"
"아 어디로 가면 되겠습니까?"
"아냐 아냐~ 가만히 있으면 올 거야 그때 같이 가면 돼~"
닥터의 말을 듣고 일어서다 다시 침대에 앉은 채로 몇 분 정도 기다리자 노크와 함께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닥터~ 이번에 온 인간 분 데리러 왔어~"
"인간님 처음 만나지? 리앤 언니야 얌전히 따라가면 돼!"
"예 아 그... 반갑습니다 리앤씨"
"아하핫 꽤나 특이하신 분이네 자세한 이야기는 가서 할까요?"
"예 가시죠"
먼저 문을 나선 리앤을 뒤따라 가려 할 떄 닥터가 소매를 잡으며 작게 말한다
"부탁이니까 솔직하게 말해"
그 말에 그저 쓴웃음을 지을 수 밖에 없다 솔직하게 말하면 좋아야 정신병자다 취급이다
대뜸 저는 이 세계에서 온 사람입니다 라고 말하면 믿을 사람이 몇 이나 될까....
"노력하겠습니다"
안락했던 연구실에서 나와 리앤의 뒤를 따른다
연구실 침대에서 누워있을 떄나 지휘관들 과 사령관을 만날 떄 그저 꿈이라며 실감이 안 났지만
드문 드문 가는 길에 보이는 바이오로이드들을 보다보니 꿈이 아닌 현실이라는게
점점 실감 난다 아 내가 진짜 라오 세상에 왔구나
꽤 걷다 보니 어느 문 앞에서 리앤이 멈춰 선 채로 키패드를 눌러 잠금을 해제하며 먼저 들어가라 손짓한다
안에서는 제대로 앞으로 시선을 두기 힘들게 사디어스 와 소니아가 둘 이서 벽에 기댄 채로 이쪽을 보고 있었다
"이쪽 방으로 들어가서 앉아있어"
차갑게 내려앉듯 귀에 꽂히는 목소리에 순순히 응하며 고갯짓으로 가리킨 문을 열고 자리에 앉는다
자리에 가만히 앉아서 둘러보니 영화에서만 보던 취조실 같은 곳이다
처음 보는 광경에 이곳 저곳 둘러보던 중 문이 열리고 리앤이 웃는 얼굴로 들어온다
"읏차 일단 우리 대화 시작 전에 자기소개부터 할까요? 자비로운 리앤, 리앤이라고 불러주시면 되고~
아 말을 혹시 놓고 해도 될까요? 존댓말은 익숙지가 않아서.."
"김민호 입니다 이름으로 불리는 건 어색해서 김대리라 불러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말씀은 편히 하셔도 상관 없습니다"
"음 음 본인 이름이랑 직업은 기억이 남아있는거야?"
바로 말 놓는구나...
"예 그런데 좀 기억이 많이 끊겨있습니다"
"많이 끊겨있다면 어디까지 기억하고 있을까?"
"퇴근 하는 길에 칼에 맞고 쓰러진 기억까지.....만 납니다"
"흐음.... 그래애..?"
말하는 걸 들어보면 꽤나 이상한 인간이라 생각하겠지만
그런 이상한 인간은 나 한 명만 있는 게 아니다 그러니...!
꼬르륵
........씨발
"아하하핫 배 많이 고팠구나? 이야기 하지~"
"아뇨 그게..."
"잠깐만 기다려봐~"
왜 하필이면 지금이냐 왜 하필.... 아 그 검은놈이 웃으면서 볼 걸 생각하니 속이 쓰리다
속으로 욕지거리를 삼키고 있을 떄 다시 문을 열고 국밥을 들고 온 리앤
영화 같네 진짜...
"역시 이런 취조실 에서는 국밥이지!"
"아 예...."
"반응이 너무 미지근해~ 너무 그렇게까지 경계할 필요는 없는데..."
"....많이 티 났습니까?"
"눈 제대로 보지 않고 말도 단답에다가 존댓말 김대리가 생각해도 너무 티 나지 않았어~?"
"하아.... 오해 좀 풀자면 경계는 아닙니다 그냥..."
"그냥?"
"제가 여자.. 특히 그... 얼굴 예쁘신 분들이랑 제대로 대화를 못합니다..."
괜히 수작 부린다고 만 생각 안 해줬으면 한다 진짜로 말 그대로 뜻인데....
왜 항상 말은 하고 나면 후회하게 될까....
쓸데없는 걱정인지 그저 한 귀로 듣고 흘린 건지 변하질 않는 웃는 표정으로 국밥이 담긴 뚝배기를
내 쪽으로 민다
"일단 먹고 나서 이야기 할까? 배가 좀 부르면 달라질 수도 있지~"
"잘 먹겠습니다..."
뽀얀 국물에 반들 거리며 빛나는 쌀 알 큼지막하고 얇게 썰린 고기들...
냄새를 맡은 것 만으로도 입에 침이 고인다 항상 동네에서 먹던 국밥을
라오 세상에서 그것도 취조실 에서 살다 살다 별 일을 다 겪어보네
한 입 먹어보니..... 음 맛있다 그냥 딱히 맛있다 라는 말 말고는 할 말이 없다
"입에 맞아?"
"맛있습니다"
"흐흥..."
맛있다라 말한 게 맘에 들었는지 살짝 눈을 감은 채로 뿌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귀엽긴 하네...
"잘 먹었습니다"
"그럼 본격적으로 대화를 좀 해볼까?"
"예 기억나는 거라면 다 말하겠습니다"
질문은 생각보다 평범했다
나이 라던가 취미 라던가 직업이라던가 딱히 뭔 갈 캐낸다거나 하는 느낌은 아니었다
"수고했어~ 이걸로 질문은 끝이야 혹시 궁금한 거 있어?"
"아뇨 딱히 없습니다"
"그래? 그럼 사디어스한테 바래다 달라 할게"
"아뇨 괜찮습니다 저 혼자...."
"길도 잘 모르잖아"
"....예"
리앤 의 권유로 결국 사디어스 와 불편한 동행을 하게 됐다
"김대리라고 했나?"
"예 뭔가 하실 말이라도?"
"안 불편해? 우리들은 이렇게 편하게 말하는데 게속 존댓말하고"
"안 불편합니다"
"하 그래 본인 처지가 어떤지 잘 이해하고 있나 보네 본인 처지 잘 알고 있는 인간은 싫지는 않아"
"예 칭찬으로 듣겠습니다"
"딱딱하긴 자 앞으로 지낼 방이야 오늘은 일찍 자둬 내일 아침 안내하러 한 명 올테니까"
"알겠습니다..."
연구실로 다시 돌아갈 줄 알았지만 왠 방 하나를 배정 받았다
이제 막 취조가 끝났는데 굳이 이런 방 하나를 준 건... 무슨 뜻으로 받아들여야하지...
가만히 서서 생각하다 사디어스에게 고맙다고 말하려 뒤를 돌았을 떄 는 이미 사라진 뒤였다
"후.... 버겁다 속 쓰리고.... 안에 위장약이라도 있었으면..."
받은 키 카드로 문을 열고 들어가니 전에 살던 집 보단 좀 더 큰 방이 나왔다
책상 있고 침대 있고 화장실도 있고 더 좋네
지금까지 본 걸로 정리하면 일단 지역은 8지역은 넘어온 거 같은데.... 대체 어디쯤이냐...
그렇게 걱정 과 쓰린 속을 달래가며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하는 김대리
한편 사령관실에서는
"왓슨~ 취조 끝났어 들어가도 돼?"
"어 들어와 리앤!"
사령관실 문을 열고 들어온 리앤
원래라면 쉬고 있었겠지만 두 번쨰 인간 그것도 꼭 찾아야 했던 남성이 발견 되어
꽤나 바빠진 사령관
리앤이 의자에 앉자 보던 스크린을 치우고는 눈을 반짝이며 묻는 사령관
"그래서 어땟어 리앤? 그 사람은?"
"흠 뭐랄까... 정말 마키나 가상현실에서 본 사람 그대로 랄까... 조금 반전 이었달까"
"응?"
"대답은 단답 눈도 제대로 안 마주치고 그런데 그 이유 물어보니까~"
"응 물어보니까?"
"여자 특히 예쁜 사람이랑은 대화하기 힘들다하더라구~"
"다른 사람들 처럼 아픈 기억이 있는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닌가 보네"
"응 일단 감시는 게속 해야겠지만 우리한테 해를 입히는 인간은 아닐 것 같아"
"알았어 취조 하느라 수고 많았어 원하는 거라도 있어?"
"글썌~? 딱히 생각 나는 건 없네 그나저나 갑자기 왜 그리 손이 분주해지시나~?"
"조금 재밌는 게 생각나서~"
"어디 봐봐~ 아하핫 너무한 거 아니야?"
"대화하는 게 어려우면 익숙해지면 되겠지! 그리고 나도 우리 애들이 야시시한 모습 보고싶은걸~"
"왓슨은 참 겉모습은 천상 여자애인데 말은 아저씨 같다니까..."
분주하게 손을 놀리며 패널을 조작하는 사령관
다음날 아침 김대리에겐 낙원 혹은 가혹한 시련이 내릴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