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대원들의 연말 정산 6번째 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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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엄마... 으흑...


기나긴 전투가 끝나고 난 다음, 바르그가 눈밭에 주저앉아 눈물을 흘렸다.


-죄송해요.... 당신이 살아계실 때 조금이라도 더 보은했어야 했는데... 어머니의 사랑 받는 딸로써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드렸어야 했는데...


서럽게 우는 작은 소녀.

알파는 결코 눈을 돌리지 않으면서 그 장면을 바라보았다.


-그랬다가는 여제님한테 버림 받을 것 같아서...


소녀가 닭 똥 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뜨리고 있을 때, 알파의 뺨에도 눈물이 흘렀다.


-한 번 더 당신을 보고 싶었어요. 당신과..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칭찬 받고 싶었어요....


마지막으로, 바르그가 진심을 토해낸다.


-태어나게 해주셔서 감사해요, 엄마...


그 말을 내뱉는 바르그는 슬프지만 응어리가 조금이나마 풀린 듯 속이 시원해 보이기도 했다.

그 점이 부러웠기에 알파는 입을 달싹였다.


"...."


그러나 목은 열리지 않았다.

소리는 꽉 막힌 목구멍을 결코 넘어오지 못했고, 다시 깊은 절망 속으로 파묻혔다.


"....."


알파는 눈물을 닦는다.


손에 묻어난 것은 피였다.







"알파, 안녕."

"안녕하세요, 주인님."


알파는 싱긋 웃으면서 사령관을 대했다.

그를 보자마자 뷰지와 가슴이 달아오르면서 몸이 뜨거워졌다.

그런 상기된 마음은 고스란히 얼굴에 드러나 사령관에게도 똑똑히 보여졌다.


"음... 아직 일 하기 전에 조금 시간이 남았지?"

"네... 주인님."

"잠깐만 저쪽으로 갈까?"

"후후후."


알파는 조용히 그를 따라 복도 끝으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치마를 올리고 팬티를 내리며 사령관의 자지를 받아들였고, 보지에 들락날락하는 굵은 압박감을 느끼며 그와 키스했다.

피스톤질이 이어질 때마다 바닥에는 애액이 흩뿌려졌고, 알파는 극상과도 같은 쾌락에 정신이 아찔해지는 것을 느꼈다.


"오늘은 유난히 말수가 적네."

"...싫으신가요?"

"아니, 그래서 더 야해. 정신 못 차리고 강간당하는 것 같아서."

"후후..."


알파는 허리를 숙이고 엉덩이를 뒤로 쭉 뺀다.


"이러면 진짜로 범하시는 것 같을 거예요."

"알파...!"


다시 한 번 시작된 과격한 정사.

알파는 수 차례 절정하면서 침을 흘렸다.


"싼다.. 쌀게...!"

"안에.. 안에 가득 채워주세요..! 아.. 아아..!!"


진한 전액이 질의 끝부분을 가득 채우기 시작한다.

그렇게 정사가 끝나 여운에 잠겨 있을 때, 의문이 한 가지 들었다.


'유사강간이라지만, 어째서 이렇게 기분이 좋을까요?'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그런 장면을 봤으면서.

가장 소중하고, 가장 친했던 사람이 번갈아가며 윤간당하는 모습을 이 두 눈으로 봤으면서.

어떻게 유사 강간을 당하며 기뻐할 수가 있는 걸까?


사실 알파는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어머니는 왜....'


알파를 포함한 레모네이드 자매 시리즈는 안나 보르비예프 박사의 손에서 태어났다.

즉, 그녀가 알파의 어머니인 셈이다.


'어머니는 왜 저에게 색욕이라는 감정을 주셨을까요.'


안나 보로브예프는 레모네이드들을 만들 때 한 가지 감정을 주제로 삼았다.

오메가는 오만함.

델타는 질투.

그리고 알파에게는 색욕을.


물론 그건 그녀가 회장들에게 윤간당하기 전의 일이었지만....

그때 그녀는 대체 무슨 생각을 했을까?

지금 유사 강간 플레이를 하며 쾌락을 느끼는 그녀를 보면, 대체 무슨 생각을 할까?


"알파. 알파, 괜찮아?"

"아, 주인님."


알파가 고개를 든다.


"너무 심하게 했나? 더워서 그래?"


정사가 끝나고도 한참 동안 고개를 숙인 채 있어서 어디가 아프다고 착각한 모양이었다.

알파는 싱긋 웃어주었다.


"아뇨.... 너무 기분이 좋아서 잠깐... 다리가 풀릴까 봐 가만히 있었어요."

"그럼 안아줄까? 공주님안기."

"네...? 하, 하지만 그런..."

"뭐 어때."


사령관이 그녀를 번쩍 들어 안았다.


"저... 팬티도 안 입어서 정액이 그대로 흐르고 있는데요?"
"그러면 자지 박은 채로 갈까?"

"후후후후."


알파는 그에게 안긴 채 목을 끌어안으며 키스했다.


"네, 주인님. 부디 주인님이 원하시는 대로."

"에이, 그래도 그건 너무 갔지."


알파의 말에 사령관은 웃음을 터트리며 다시 키스해주었다.


"이러고 있으니 좋네요. 누군가의 품에 안긴다는 건, 저에게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일이라."

"항상 안기고 있잖아?"

"네, 그러네요. 맞아요."


알파는 어리광을 피우며 그의 품에 파고들었다.

그녀가 이렇게까지 아양을 떠는 건 흔치 않은 일이라 사령관도 살짝 놀라워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그녀는 물러서지 않았다.

오늘은.

지금만큼은...

소중한 사람의 온기를 느끼고 싶었다.


"주인님."

"응."

"올해가 지나면, 펙스와 전쟁이 시작되는 거겠죠?"

"....맞아."


사령관은 그녀를 더욱 꼭 안으면서 뺨을 이마에 댔다.


"내가 뭐 도와줄 건 없어?"

"....."


알파는 옅게 웃었다.

그녀가 평소와 다르다는 걸 사령관도 눈치 챈 것이다.


"자지에 센서가 달리셨나봐요. 어떻게 이렇게 잘 알아차리실까요."

"내 자지가 민감하기는 하지. 특히 알파의 보지는 감정을 흘리거든."

"후후후. 말도 안 되는 소리지만 어쩐지 그럴싸하네요."


알파는 그의 품에 얼굴을 파묻는다.

어쩐지 눈물이 나올 것 같았기 때문이다.


"....바르그는 조금 진정했나요?"

"응. 많이 나아졌어."

"....그녀와 대화를 나누고 싶어요."

"바르그랑?"

"네."


마침 올해를 마무리하는 날이다.

안 그래도 첩자였던 전적이 있으니, 바르그와는 다시 한 번 대화를 나눠야 했다.

여러 가지 일들의 정산을 위해서라도 말이다.


"괜찮을까요?"

"물론이지."


사령관은 즉시 자리를 마련해주었다.







알파가 방으로 들어갔을 때, 작은 소녀 무당이 있었다.


"그 차림으로 오셨군요."

"그렇다."

"저한테는 존대를 하지 않으시네요?"

"너는 내가 모실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칼 같은 말이었다.


"맞아요, 아마도 저는 신 같은 것에서 가장 거리가 먼 사람이겠죠. 색욕이란, 가장 무거운 죄 중 하나니까요."

"흥...."


바르그는 의외로 점잖게 반응했다.

예전 같았으면 콧방귀를 뛰며 독설을 퍼부었을 성격이었으니, 많이 누그러졌다고 할 수 있었다.


"앉아도 되겠죠?"

"네가 부른 것이 아니던가? 나한테 묻을 필요는 없을 텐데."

"그렇군요."


알파는 바르그의 맞은편에 앉았다.

테이블에는 다과와 차, 사탕 같은 것들이 있었다.


"좀 드시겠어요?"
"아니, 내 속내를 재확인하려고 부른 것을 알고 있다. 어서 시작하지. 연말 시즌이 다가오고 있어서 무녀의 일이 바쁘다."

"네, 알겠어요. 바로 시작할게요."


알파는 몇 가지 질문을 하며 바르그가 오르카호에 머물러도 되는지에 대한 적합 조사를 시작했다.

그렇게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상당히 형식적인 질문이군."

"실제로 형식만 맞추는 거니까요."

"어째서지?"

"어째서라뇨?"

"왜 형식적으로 진행하느냐고 물었다. 너희들의 입장에서 내가 위험인물이라는 건 알고 있다. 머릿속을 뜯어본다고 해도 찬성하는 자가 나올 텐데."


엄격하게 따지면 그녀의 말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알파는 가볍게 넘긴다.


"신의 말씀이시니까요. '믿어라. 그녀는 개화했다.'라고."


알파는 바르그의 반응이 기대됐다.

그녀의 생각에는 바르그가 화를 낼 것 같았다.

감히 신의 말씀으로 말장난을 하느냐고 말이다.

하지만 그녀의 기대는 틀렸다.


"흥... 맹목적인 신자로군."

"그런가요?"

"그렇다."

"그렇군요."


알파는 옅게 웃는다.


"....할 말이 있다면 빨리 해라. 간 보지 말고."

"제가 할 말이 있어 보이나요?"

"그렇다."

"....."

"....."


잠시 침묵이 흘렀다.

정말 의외인 점은, 바르그가 불 같은 성격을 억누르고 제자리에 앉아 있다는 점이었다.

알파가 아는 그녀라면 시간 낭비라며 떠났을 텐데, 그녀는 변해 있었다.


"나는 신을 모시는 무녀다."

"네...?"

"너희는 신을 섬기는 신자고."

"....?"

"나는 신과 신자를 잇는 중간 다리의 역할을 하고 있다. 무녀란 그런 것이기에."


정말 의외의 말.

알파는 순수하게 놀랐다.


"그러니 나에게 뭔가 할 말이 있다면, 그걸 들어주는 것은 나의 역할이자 임무다. 선뜻 입이 열리지 않는다면 마음을 가라앉혀라. 언제까지라도 기다릴 테니."

"후후...."


알파는 눈을 감으며 웃었다.

저렇게까지 성실하게 나와주니 고맙기도 하고, 슬프기도 했다.


아이는 어미와 떨어지면서 성장하는 법.

바르그는 이미 소녀가 아니라 한 처녀로써 독립한 상태였다.


"엄마라...."

"....."


그래도 엄마라는 단어에는 아직 민감한지 바르그가 살짝 움찔했다.

시비를 걸려고 온 것은 아니기에, 알파는 서둘러 말을 잇는다.


"저도 어머니가 있었어요."

"....안나 보르비예프 박사인가."

"예. 알고 계시네요?"

"당연하다. 델타와 오메가에 대해서 조사를 했었으니까. 나를 배신했을 때를 상정해서."

"철저하시네요."

"칭찬으로 듣지."


바르그가 자세를 고쳐 앉는다.

다소곳이 앉은 그녀를 보니, 정말로 경건한 무녀가 그곳에 앉아 있는 듯했다.

아니, 앉아 있었다.


"계속해라."

"....제 어머니는 저를 아끼셨어요. 당신과는 조금 다른 사이였죠. 어느 정도 교류가 있고, 또 어느 정도... 의지를 이어 받은. 그런 사이였어요."

"안나 박사가 너에게 복수를 부탁했는가?"

"....아뇨."


그녀가 직접적으로 복수를 부탁했던 적은 없다.

보여줬을 뿐.


"복수는 저의 의지에요."

"그러나 복수만을 위해 살고 있지도 않은 것 같군."

"...네. 맞아요."


복수만을 위해 살았다면 그녀는 모든 감정을 억눌렀어야 정상이다.

그러나 그녀는 상당히 여러 일들에 손을 댔고, 여러 행복을 누리고 있었다.

그리고 더 큰 행복을 누리고 싶어했다.


"복수심이 흔들리는 것이냐?"

"....아뇨."


알파는 안나 박사가 겪은 일들을 떠올렸다.

그 분노는 여전했다.


"이렇게 눈물이 흐를 만큼 아직도 생생해요."


뺨을 타고 흐르는 붉은 눈물이 빛을 받아 검게 빛났다.


"....복수에 대한 목적도, 그 원동력도 잃지 않은 상태로 현재의 행복도 즐기고 있다면 부족함이 없을 터."

"...그러겠네요...."

"하지만 굳이 나를 찾아온 것을 보면 뭔가 응어리 진 것이 있겠지. 본론을 말해라."


바르그가 알파를 똑바로 바라본다.

그 맑고 투영한 눈은 그녀의 영혼을 꿰뚫어보는 것 같았다.


"당신은....."


알파는 목이 메어오는 것을 느꼈지만 꾹 참았다.


"당신은 어떻게 감사 인사를 보낼 수 있었나요?"

"감사 인사?"

"....."


알파는 대답하는 대신 녹음기를 하나 꺼내 틀었다.


-한 번 더 당신을 보고 싶었어요. 당신과..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칭찬 받고 싶었어요....


"이건...."

"당신의 목소리에요."

"....."


-태어나게 해주셔서 감사해요, 엄마...


녹음기가 끝났다.

이제 다시 알파가 묻는다.


"마지막 말을 따라하려고 해봤어요. 저 역시 제 어머니에게 그런 감정을 가져서."


그녀는 복수심을 느끼는 만큼 현재의 삶에서 행복을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행복을 누릴 수 있게 해준 창조자에게 인사를 건네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안 되더군요. 그 이유를 알고 싶어요."

"....."


바르그가 눈을 감았다.

한참 동안 침묵이 흐른다.


"...너무 어려운 질문이었-"

"나의 경우."


알파가 입을 열 때, 바르그가 말했다.


"어머니를 되살리겠다는 계획이 완전히 무산되었을 때 비로소 응어리를 풀 수 있었다."

"...."

"그 경험에 빗대어 생각하면, 현재의 행복을 잃거나, 복수의 원동력을 잃어야 응어리를 풀 수 있겠지."

"...하지만 그건...."

"물론, 그렇게 행하라는 것은 아니다. 이 문제는 나도 입을 가벼이 열 수가 없겠군. 많은 시간과 고민이 필요한 문제다."

"그렇다면...."

"나도 나름대로 방법을 생각해보겠다. 조금 시간이 걸리겠지만."


바르그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이제 갈 채비를 하려는 듯했다.

하지만 그녀는 바로 떠나지 않고 잠깐 뒤를 돌아봤다.


"허나 우문이로군."

"네?"

"내 생각에, 너는 감사를 전할 대상을 잘 못 생각하고 있다."

"무슨....?"


바르그가 조금 노려보는 듯 미간을 오므렸다.


"지금 너의 행복은 어디에서 오지?"

"네...? 그야.... 오르카호에서 오..."


알파는 입을 다물었다.

바르그가 뭘 말하는지 깨달은 것이다.


"알파. 내 생각에, 지금이 너의 생과 감정의 전환점이 되는 시기 같다."

"전환점이라뇨?"

"네가 보기에, 나는 얼마나 변한 것 같지?"

"....상당히 많이 변하셨어요."


바르그는 처음과 지금의 인상이 전혀 달랐다.

그녀는 말 그대로 개과천선한 수준으로 사람이 달라졌다.


"너도 나처럼 목적을 위해 오르카호에 왔을 터."

"네.... 복수를 위해 사령관님을 주인님으로 모셨어요."

"이제 그 마음이 변화할 시기인 것이다. 복수를 위해서가 그분을 모시는 것이 아니라. 행복을 위해 그분을 모시는 것으로."

"행복을 위해....? 복수를 버리라는 말씀이신가요?"

"비슷하지만 다르다."


바르그가 딱 잘라서 말한다.


"안나 박사의 그늘에서 벗어날 때라는 얘기다. 복수에 비중을 조금 덜고 행복에 더 큰 비중을 두어라. 그러면 지금 네가 느끼는 마음의 무게는 알아서 줄어들 테니까."

"행복에 비중을....."

"내가 경험해본 바에 따르면."


바르그가 잠깐 말을 멈춘다.

다시 입을 여는 그녀의 입가에는 미소가 피올라 있었다.


"사람이 앞으로 나아가는 데에 필요한 것은 복수나 미련이 아닌, 행복이었다."

"....!"

"알파, 너는 지금 과거를 보며 머물러 있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당시 나는 늪에 갇혀 있었다."


작은 무녀가 슬피 웃는다.

알파에게 느낀 동질감과, 자신의 과거를 다시 한 번 후회하면서.


"너는 나보다 더 빨리 깨닫기를. 그래서 더욱 빨리 행복을 손에 쥐기를."


무녀가 눈물을 흘린다.

마지막 남은 미련이 녹아 있는 눈물이었다.


그리고 알파도 눈물을 흘린다.

어쩐지 마음이 시원해지는, 아주 뜨거운 눈물이었다.

느낄 수 있었다. 이번에는 피가 섞이지 않았다고.


"그 마음을 깨닫는다면, 너도 어머니에게 감사할 수 있을 거다."

"아아...."


알파는 두 손을 꼭 쥐며 고개를 떨궜다.


"네... 맞아요.... 감사합니다.. 바르그. 고마워요."

"마침 새해가 밝아오고 있으니, 너와 안나 박사를 위해 굿을 올리겠다. 부디 미련을 떨쳐내고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한 해를 시작하기를 빌겠다."


문이 닫히고 어둠이 깔렸다.

완벽히 혼자가 된 알파는, 흐느껴 울며 감사 인사를 보내었다.


올해가 끝나고 새해가 시작되는 자정.


알파는 소리 없이 울며 내면에 있던 안나 보르비예프를 놔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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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맞이대회] 부대원들의 연말 정산 단편 모음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