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리에 엘레이손.

 주님. 전능하신 하느님. 저희를 보고 계신다면, 자비를 베푸소서. 믿음을 잊고, 기도를 잊고, 당신을 잊은 저희의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수육한 신의 대리인의 용서를 받을 수 있게 하시옵소서.


 때는 지금으로부터 약 x개월 전, 두 번 째 인간이 발견되었다. 그는 붉은색 계열의 정복을 입고 있었으며, 그 정복에는 이제는 빛바랜 훈장들이 가득했다. 또한 그의 얼굴은 지난 험난한 세월을 나타내는 흉터와 주름이 존재했다. 그의 생명유지장치가 운 좋게 꺼지지 않았고, 그렇기에 오르카 호에서 간단하게 눈을 뜨게 하는 것이 가능했다.


 그는 냉혈한이었다. 이길 수만 있다면 어떠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고, 부하의 처형도 서슴지 않았다. 그런데도 반발이 적었던 이유는 그가 직접 전장에 나서는 경우가 대다수였기 때문이다. 그는 언제나 자신의 직속 부하와 함께 최전선에 섰다. 또한 그는 바이오로이드를 신용하지 않았다. 명령만 따르는 깡통에, 만들어진 불완전한 존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의 직속 부하들은 오로지 인간이었다.


 그는 눈을 뜨고, 주변을 둘러봤다. 자신이 잠들었던 광경이 아닌, 생경한 방의 풍경. 그리고 자신을 둘러싼 바이오로이드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행히 몸에는 문제가 없는 듯했다. 그는 인간을 찾았다. 주위의 바이오로이드가 하는 말은 듣지 않았다. 자신에게 친근하게 인사를 건네오는 그것들은 그에겐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잠시 둘러보던 그는 시선 끝에서 인간 남자를 발견하고, 그에게 다가갔다. 그리고는 굵은 목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반갑소.”

 사령관은 그의 인사를 흔쾌히 받았다. 그리고 얘기를 하려 했지만, 곧 남자에게 가로막혔다.


 “잠시만, 난 이곳의 통수권자와 얘기하고 싶소.”


 “왜죠?”

 

“...당신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난 최소한의 신용이 존재하는 자와 얘기를 나누고 싶소.”


 주위의 공기가 무거워진다. 바이오로이드들은 자신의 주인을, 그러한 의도가 없다 하더라도. 무시하는 듯한 발언을 하는 낯선 자를 용납하기란 어려웠다. 정작 사령관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그의 발언을 곱씹을 뿐이었다. 어색한 침묵의 시간이 지나고, 사령관은 입을 열었다.


 “어째서 제가 격이 없다고 판단하신지는 모르겠지만, 이곳의 통수권자는 저입니다.”


 “...내 사과하겠소. 무례를 범했군.”


 그는 모자를 벗고 고개를 숙였다. 그러고는 모자를 다시 쓰고는 말을 이어나갔다.


 “내 안좋은 버릇이오. 그저 보이는 것만으로 사람을 단정짓고는 하지.”


 “제가 보기에는 별로였나 보군요.”


 “그렇소. 군용 시설로 보이는 이런 장소에서 태연하게 사복을 입는 사람의 십중팔구는 격이 없는 사람이기에 멋대로 판단해 버렸소.”


 “그렇지만...”


 그는 주위를 둘러봤다. 바이오로이드들의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그들은 혐오의 감정을 넘어서 살의에 가까운 감정을 지닌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언제나 전장의 사선을 넘어온 그에게 있어 어색한 상황은 아니었다.


 “...확실히 통수권자로군. 심지어 충성심도 높아.”


 “방금은 격이 없어보인다고 하셨는데, 의외로 쉽게 인식을 바꾸시는 군요.”


 “늙은이의 감은 예리하지 못한 법이지. 그렇게 잘못을 질책하지는 말아 줬으면 하는군.”


 “전 크게 신경안쓰는데, 그녀들은 그런 걸 싫어하거든요.”


 “그녀들? 그렇게는 안보였는데 꽤나 호색한인가 보군.”


 사령관은 별 말 안하고 방 안의 바이오로이드의 얼굴을 찬찬히 살폈다. 그것만으로 살의가 조금씩은 누그러지고 있었다.


 “저 꼭두각시들을 인간 취급하는군.”


 “그녀들에게도 각자의 인격이 있습니다.”


 “인격이 아니라 부여된 성격일세. 저것들은 만들어진 인형에 불과해.”


 “저희에겐 긴 대화가 필요할 것 같네요.”


 “아무래도 그러할 것 같군.”


 사령관은 확연하게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녀들에 관한 험담이나 자신에 관한 험담도 전부 레모네이드들에게 들어봤을 텐데, 같은 인간에게 듣는 것이라 그런가. 별 생각 없이 넘기기엔 힘들었다.


 “일단 앉아서 얘기하시죠.”


 “좋지. 그리고 말은 편하게 해도 되네.”


 “나이가 있으신 분을 대하는 건 처음이라, 한동안은 이렇게 얘기하겠습니다.”


 “알겠네, 그럼 가지.”


 그와 사령관은 응접실로 향했다. 응접실이라 해봤자 사령관실 옆에 명목상으로 작게 만들어둔 테이블 하나와 소파 둘뿐인 삭막한 공간이었다. 둘은 말 한마디 섞지 않고 복도를 걸어갔다. 서로의 생각을 읽을 수가 없었다. 그는 의식하진 않았지만 꽤 신기하단 듯이 여기저기를 살펴보고 있었다. 곧이어 응접실에 도착하고, 둘은 소파에 마주 앉았다.


 “차라도 드시겠습니까?”


 “아니 괜찮네. 그보다 궁금한게 산더미 같군.”


 “답할 수 있는 거면 다 답해드리죠. 우선 먼저 들어주셨으면 하는 얘기가 있습니다.”

 사령관은 자신에 관한 얘기를 했다. 자신이 최후의 인간이었던 것, 인류는 철충과의 전쟁에서 패한 것, 어떻게 그를 발견했는가 까지 다 얘기하자 시간이 상당히 지나있었다.


 “믿기 어렵지만 아마도 전부 사실이겠군.”


 “그렇게 생각하시는 이유가?”


 “우선 여기엔 자넬 제외하곤 바이오로이드 밖에 보이질 않네. 심지어 염가형 제품부터 최 고가형 제품, 한 때는 적군이었던 제품들 까지 한 곳에 모여있지.”


 “그렇죠. 여긴 다양한 바이오로이드가 한 데 모인 저항군이니까요.”


 “그리고 철충, 그것들이 ags에 기생하고, 인간들의 학살을 자행하는 것을 난 눈앞에서 봐왔네.”


 “경험이 풍부하시군요.”


 “살아온 세월이 길어서 그런 것 뿐일세. 그렇지만 인류는 결국 졌는가.”


 “두 번 질 생각은 없습니다.”


 “마음가짐은 좋군. 내 부관이 생각나. 자네처럼 매사에 긍정적인 것처럼 행동했지”


 “당신의 얘기도 들려주실 수 있습니까?”


 “그러지. 늙은이의 지루한 얘기일테니 짧게 얘기하지.”





간만에 글 쓰니까 어려운 레후. 우마우마한 개추와 댓글을 주는 레샤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