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어어어…."


신음소리를 내며 겨우 몸을 일으켰다.

어린 몸이라 그런지 원래 몸보다 숙취가 더 심한 느낌이다.

당장이라도 다시 드러눕고 싶지만 목이 탈 것만 같은 갈증에 겨우겨우 냉장고까지 기어가 생수를 마시자 이제서야 전날의 일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분명 다가올 새해를 기념해 모두에게 술을 포함한 고급 기호품들을 개방하고 파티를 진행시킨게 시작이었다.


그러나 중반부터 다수의 지휘관급 인원이 참가하자 건배보다 경례를 더 자주하는 불상사가 발생하고 분위기도 무거워지기 시작하자.

'대부분의 문제는 일단 취하면 해결돼요!! 사령관님!!' 

이라는 오렌지에이드의 막무가내식 제안에 이미 반쯤 취해있던 나도 동의했고 도중 합류한 탈론페더에게 선동당해

'신년기념 특별대회! 가장 많이 마신 대원이 속한 부대에게 사령관님 2주 이용권을 드립니다!!'

라는 자폭성 이벤트를 개최.

광란의 연회가 시작됐다.


그 결과 나도 특별 게스트로 참가했고 여러 강호를 넘어 어찌저찌 준결승까지 올라왔지만 상대는 바로 그 키르케. 만만치 않은 상대였다.


"여기서 만나다니…. 사실상의 결승전으로 봐야겠군."

"후후. 저 같은 숙녀에게 농담도 잘하시네요~, 자~사령관님을 위해 특별히 준비한 술이 있답니다~ 한 잔 받으시죠?"


키르케가 품속에서 꺼낸 플라스크에 들어있던 액체를 서로의 잔에 따르고 서로 마주봤다.


"큭큭큭…."

"후후후…."


""자 그럼!""

""건배!""


기세좋게 서로 잔을 들이켰다.

그리고.


"자!! 이번 대회도 막바지에 달했습니다!! 시스터즈 오브 발할라와 앵거 오브 호드, 두 라이벌 부대의 뜨거운 대결!! 지금 시작하겠습니다~!!"


정신을 차려보니 레오나와 칸, 둘만의 결승전이 시작됐다.

뭐?

준결승은?

거기에 더해 이 통증은 뭐지?


"일어나셨나요~? 사령관님~?"

그제서야 겨우 옆에 엎어져있는 키르케가 보였다.


"키르…케, 나…에게 뭘… 마시게한 거냐…?"

목이 가버린 모양이다.

말할 때마다 목구멍이 따가웠다.


"하아~~ 평범한 복분자주랍니다 사령관님~ 96도의 스피리터스와 스피리터스에 담궈둔 복분자와 수제작한 스피리터스를 섞은 담금주를 제가 다시 특별~하게 다시 증류한 복분자주죠."

"그건 그냥 스피리터스 아니야…?"

"도수가 더 높답니다?"

"그럼 그냥 알코올이잖아!"


조만간 키르케를 다프네에게 보내 알콜성 치매 검진을 받게 해야겠다 생각하던 중.


"흥, 생각보다 잘 마시는데? 역시 허투루 나이를 먹은 건 아닌가봐? 안그래?"


평소보다 약간 얼굴이 붉어진 레오나가 칸을 도발했다.


"글쎄…, 누군가와 술을 취할때까지 마셔본 기억이 없어서 말이지. 그대가 좀 어울려주겠나?"

"큭!, 당신은 그런식으로 매번…!"


그녀들은 갑자기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더니 잔을 바닥에 던졌다.


"~한잔 더!""


…….

아무래도 오늘 둘 중 하나가 쓰러지기 전까지는 끝나지 않을 것 같다.


"""""""하나, 둘!"""""""

"""""""힘내세요 대장님!!"""""""


어느새 마련된 임시 응원석에서 다들 한마음이 돼 응원하는 발할라 자매들과는 반대로….


"우와, 우리 대장이 저렇게 취한거 처음보는데? 역시 레오나 대장, 제법 치는데?"

"아하핫! 이미 돌이킬 수 없다고? 특히 대장에 대한 의리를 배신하고 역배를 건 나는 말이지!"

"너희들…, 우리 부대는 물론 칸 대장의 명예가 달려있는데 대장을 응원해야 하는거 아니야!?"

"칸 대장이 이기면 참치, 거기다가 사령관까지 먹는다! 캬하핫! 완벽해!"

"하아, 하아, 평소와 다르게 술때문에 새빨개져서 흥분한 모습의 칸 대장님도 멋져요오오오옷!!!!"

"……Zzz."

"아앗! 여기서 주무시면 안돼요! 탈론페더씨도 그…그런짓을 밖에서 하시면…!"

"밖에서? 뭐야 지금 또 카멜 놀리는 시간이야?"

"넌 좀 닥치고 있어!!"


호드쪽의 응원석은 탐욕과 성욕과 수면욕으로 이미 폭력이 지배하는 세기말 혼돈상태였다.

힘내라! 케시크!

울지 마라! 케시크!


그럼에도 칸과 레오나, 둘 모두 전혀 기세가 줄질 않았다.

이대로 가다간 언제 끝날지….


"자! 새해가 오기까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시간 단축을 위해 저 스프리건이 사회자 특별 권한으로! 사령관님이 한잔만에 넉다운된, 키르케님 특제 독극…복분자주를 전부 마시고 사령관님을 차지하는 쪽이 승리하는 룰로 변경하겠습니다!"

"방금 독극물이라 했지!?"


스프리건이 막무가내식으로 룰을 바꿨으나 두 사람에게는 이미 서로밖에 보이지 않는 모양이었다.


"흥, 달링은 내가 받아가겠어. 너처럼 재미도, 욕심도 없는 여자에게 내가 질리가 없거든."

"흠, 확실히 내가 그렇게 보였을수도 있겠군. 하지만 그렇지 않다."


그녀들은 저 독극물이 든 잔을 든채로 마주보고 있었다.


"뭐?"

"난 아주 욕심이 많거든. 내 부하들을 지키고 싶다. 모두를 행복한 일상으로 돌려보내고 싶다, 평범한 여자가 되어 사랑받고싶다… 라던가."


하, 우습지 않나?

라며 말을 이어갔다.


"하지만 이 모든걸 사령관이 이루어주었다. 모두를 잃고 혼자만 살아남던 패전을 거듭하는 나에게 말이지…. 거기에."


"이렇게 함께 잔을 나눌 수 있는 친구도 생겼는데 뭘 더 바라겠나?"

"……."


"후후…. 이런, 답지않게 말이 많아졌군. 취기탓으로 생각하고 용서하게."


칸은 잔을 내밀며 말했다.





"쿡…, 당신. 생각보다 바보구나? 역시 그 부대에 그 대장이지. 하지만…. 그런점은, 제법 마음에 들어."


""건배.""


레오나도 웃으며 서로의 잔을 부딫혔다.


""윽!!""


'뭘 만든거야? 저 여자!?'

'이 느낌은…등유인가!?'


아무리 그녀들이라도 저 액체는 버티기 힘든지 양쪽 모두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자! 사령관님은 저쪽입니다! 먼저 터치하고 키스하는쪽이 승리!"

"아까부터 이상한 룰이 추가되는것 같은데!?"


물론 스프리건은 들은척도 하지 않았다.

거기에 더해 좀비처럼 비틀거리며 걸어오는 두 사람.

심지어 관객들은 어디서 배운건지 뽀뽀해! 뽀뽀해! 라며 멸망 전에 있었을 듯한 구시대적 술자리 문화를 부활시켰다.


'이게 바로 역사는 반복된다는건가!'


머릿속으로 현실도피를 하던 와중.

그녀들이 동시에 도착했다.


"히익!"


그 눈빛에 마치 사자 앞의 토끼처럼 움츠러들었다.


"잡…잡아먹지 말아주세요…?"


뒤쪽에서 음!! 소리와 함께 누군가 끌려나갔지만 돌아볼 여유는 없었다.


"레오나…, 그대도 한계인것 같은데 무승부로 하지 않겠나?"

"큭, 당신은…내가 절반…따위로 만족…할 여자로 보여?"


다가온 레오나가 내 턱을 잡았다.


"하아…. 내꺼야. 전부."

"하하…, 나보다 더한 욕심쟁이로군 그래."


새해 카운트다운에 맞춘 불꽃놀이와 함께 레오나는 입을 맞췄다.


"이번 신년기념, '두근두근 사령관을 차지하라 대회' 우승자는~~철혈의 레오나와 시스터즈 오브 발할라입니다!!"


폭죽 소리와 함께 환호성이 넘쳐나왔다.


"축하해! 레오나!"


레오나는 힘이 다했는지 내게 안긴 상태로 움직이지 않았다.


'이런… 너무 무리했나?'


조용히 발키리를 불러 숙소로 돌아가던 도중.

레오나가 눈을 떴다.


"일어났어? 레오나."

"응…? 달링…? 응…. 윽…! 우웁!"


…….

그 이후로 벌어진 일들은 레오나의 명예를 위해 덮어두기로 발키리와 맹세했다.


새해 처음하게 된 일이 걸레질이라니….


기나긴 회상을 마치고 오늘은 아르망과 알파를 비롯한 비서진 덕분에 오전 업무가 없으니 한숨 더 자볼까 생각하던 중.


'쨍그랑!!'


문밖에서 들려오는 갑작스러운 파괴음에 눈이 떠졌다.

뭐지!?

이터니티인가?

황급히 문을 열어보니 그곳엔.





"에잇! 사령관님! 새해 복 많이 받아!"

"큭큭큭…, 짐의 권속이여 이 「블랙 래빗 다크 사이클롭스 프린세스」의 축복을 받거라!!"

"사령관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내 방문을 향해 접시를 던지는 알비스와 LRL, 엘리가 있었다.


"응, 너희들도 새해 복 많이받으렴…?"

"에잇!"

"이얍!"

"이얏!"


인사가 끝나기도 전에 또 다시 접시를 던졌다.

괴롭힘…?

일리는 없고.

새해에 접시를 깨는 전통은 아마….


"이러면 사령관님한테 복이 온다고 알비스가 모두에게 알려줬어!"


덴마크였지.

알비스가 최초로 제조된 국가.

그 나라의 새해 문화였던가?


"사실 레오나 대장님이나 언니들이랑 같이 하려했는데 대장님이 오늘은 사령관님을 알비스가 독점해도 되는 날이랬어!"


…그런 모습을 보였으니.

당분간은 얼굴을 보이고 싶지 않겠지.

그녀답다고 생각하던 중 궁금증이 생겼다.


"그럼 2주 이용권을 어떻게 나누기로 한거야?"

"응~ 첫날은 나, 나머지 6일은 다른 언니들이랑 안드바리가 하루씩, 마지막 일주일은 전부 대장님이야!"

"쿡…."


웃음이 나왔다.

전부 내것이라면서 결국 자매들에게 양보하고, 그와 동시에 대장으로써의 위엄을 보여주고 싶어하는 모습이 정말 레오나다웠다.


"그럼 오늘은 제가 뭘 하면 될까요? 알비스 대장님?"

"음, 우선 배를 채우지! 알비스 탐험대! 식당으로 출발이다!"

"히잉, 원래 대장은 난데…."

"후훗. LRL, 오늘은 알비스에게 양보해주세요. 네?"


식당으로 이동하는 중, 안드바리도 합류해서 다같이 즐겁게 식사했다.


이후, '저는 다른 날 담당인데 같이 놀아도 되는걸까요….' 라는 안드바리를 강제로 데려온 뒤 안전이 확인된 지역을 탐험하고, 다같이 눈사람을 만들기도하고 눈싸움을 하기도 하며 평화로운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밤이 깊어지자 잠든 LRL은 에이미를 불러 돌려보냈고, 안드바리와 엘리는 인사를 한 뒤 숙소로 돌아갔다.

그리고 알비스는….

내 침대에서 졸고있었다.


"알비스, 피곤하면 먼저 자렴."

"으응, 오늘은 사령관님이랑 있는 날이니까...같이 잘래."


밀려 있던 업무를 빠르게 처리한 뒤, 알비스에 곁에 누웠다.


"헤헤, 알비스가 따뜻하게 데워뒀어…."

"고마워 알비스."


알비스의 뺨을 쓰다듬어주자 기분 좋은듯 얼굴이 풀어졌다.


"오늘 즐거웠니?"

"응! 안드바리도 올해는 보급품 훔쳐가지 말라고 모아둔 초코바 선물로 줬고, LRL이랑 같이 깨뜨릴 접시 받으러 돌아다닌것도 재밌었고, 눈싸움 할 때 엘리 양산을 뺏은것도 재밌었어!"

"그럼 다행이야."


'……엘리는 생각보다 무서웠지.'


엘리에게 혼나보는건 처음이었는데, 알비스가 선생님이라 부르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럼 잘까?"

"응! 잘 자 사령관님!"


불을 끄고 눈을 감았다.

서로의 숨소리만이 들리자.

마치 이 세상에 나와 알비스,

둘만이 존재하는것만 같았다.

그 때 갑자기 알비스가 내 손을 잡았다.


"사령관님. 자?"

"아니?"


"사령관님."

"응?"


"고마워."

"갑자기 쑥스럽게 왜그래?"


"알비스는…다른 언니들이나 대장님처럼 머리가 좋지 않아서 잘 모르지만. 그래도 사령관님 덕분에 우리가 웃을 수 있는건 알고 있어. 그래서 고마워."


알비스는 진지하게 말했다.


"그치만…가끔씩 그래서 무서워."


"아무리 아껴먹던 초코바라도 먹다보면 결국 없어지잖아."


"이렇게 우리가 매일 행복해도 되는걸까?"


"아니면 이제 행복한건 끝이고 이제 나쁜 일이 생기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때면 가끔씩 너무 무서워…, 사령관님…."


알비스는 내 품에서 울고있었다.


나는….


"알비스 말이 맞아."


"좋은 일이 있으면 나쁜 일이 더 아프고, 두렵게 느껴지지."


"지금 이 순간의 행복을 덮을 정도로 큰 아픔이 올 수도 있어."


알비스는 몸을 떨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항상 생각해."


"너희들이 있다면, 어떤 일이라도 극복할 수 있을거라고."


"무슨 일이 있더라도 결국 다시 웃을 수 있을거라고."


"그러니까, 걱정하지 말고 푹 자렴 알비스."


알비스를 안아줬다.

이제 떨림은 사라졌다.


"사령관님은 억지쟁이네?"


알비스는 물기섞인 눈으로 웃으며 말했다.


"울다가 웃으면 안되는데? 털났는지 볼까?"

"으윽, 언니들한테 다 이를거야!"


알비스는 삐졌다는듯 등을 휙 돌렸다.


"잘 자렴."

"…응, 잘 자. 사령관님."


잠시 후 잠든 알비스의 숨소리를 들으며 나도 잠에 빠졌다.


이렇게 새해 첫 날이 지나갔다.


미래는 아무도 모른다.


나는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채


허무하게 철충에게 살해당할지도


단순한 사고로 죽을지도


모든 걸 잃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순간


이 장소에서 있었던 일들을 잊지 말자.


이 세상의 마지막까지.




알비스 애호에는 '감동'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