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하네요..”


오르카 내의 인원 대부분이 자리를 비웠다곤 하나, 같이 온 녀석들의 성격상 일을 얌전하게 진행할 것 같진 않다. 그런데도 이러한 정적이라니..


“예전부터 침묵은 좋았어요. 당신은 어떻게 생각.. 아! 말을 못하시지. 죄송해요, 전 신경 쓰지마세요.”


독백하는 마리아는 오르카 내의 경비 시스템을 조작해가며 널부러진 세이프티에게 말을 걸어본다. 바닥에 단단히 고정된 미스 세이프티는 눈을 흘기며 그런 마리아를 노려본다.


“너무 그런 눈으로 보지 말아주세요. 당신들이 철충을 몰아내 인류를 재건하려는 것처럼, 저희 또한 인류재건이라는 대의를 등에 업고 있답니다?”


무슨 소리냐는 듯한 세이프티의 눈빛에 작은 한숨을 내쉰 마리아는 단말기를 조작하는 손을 멈추지 않은 채, 자신만의 대화를 이어간다.


“그러니까.. 방법이 다를 뿐이에요. 여러분들의 최우선 목표는 우선 방해되는 철충의 구제겠죠? 하지만 저흰 다르답니다. ..배척하는 것만으론 진화에 다다를 수 없어요.”


숨을 한번 들이쉰 마리아는 어딘가 먼 곳을 바라보는 듯, 관리실의 한쪽 면을 응시하며 조용히 읇조린다.


“저희도 말이죠.. 찾고 말았어요. 아니, 찾아냈어요. 태어났을 때부터 쭈욱 염웠했던.. 그래, 미래를요..!”


고조되는 음성은 더 이상 주변의 시선따윈 의식하지 않고 내뱉는 기도문을 연상시킨다. 푸른 하늘을 닮은 눈동자는, 어느 틈엔가 한겨울의 얼어붙은 호수로 변해버려 차가운 냉기마저 뿜어내고 있다.


“없다면 대신하면 돼요. 사라졌다면 다시 만들면 돼요. 그래요.. 저흰 더 이상 쓸모없는 고철이나 기계 따위가 아니에요. 저희는 인간이.. 아니, 그보다 더 위대한 존재가 될 수 있어요!”


광기마저 느껴지는 그녀의 얼굴은 한껏 일그러져 있지만, 마치 신의 강림을 간절히 희망하는 인간의 그것과도 닮아있다. AGS에 불과한 그녀는 지금 분명하게 희망과 기쁨, 사랑, 전율을 느끼고 있으리라.


“뭐.. 당신에게 떠들어봤자.. 얼마나 알아들을 수 있을까요.”


아까 전의 표정이 거짓말처럼, 처음의 사람 좋은 웃음을 짓는 마리아는 눈앞의 콘솔을 조작해 오르카의 경보 시스템을 작동시킨다.


마리아에게 시선을 빼앗긴 세이프티는 그녀의 목적을 깨닫곤 몸부림쳐 보지만, 속수무책. 반복적인 경보음과 함께 오르카 내의 복도와 숙소, 정비실, 식당, 사무실 등을 나누는 격벽이 강제로 닫혀버린다.


“이제 곧.. 조망간이야.. 우리들의 꿈이 이루어져.. 그곳엔..”


중얼거리던 마리아의 목이 돌연 180도 돌아간다. 두 눈을 부릅떠 노려보는 그녀의 모습은 천사 아자젤이 전파하던 교리의, 사악한 것과도 어딘가 닮아있는 느낌을 준다.


“어머나~ 이런 곳엔 무슨 일인가요, LRL? 지금은 주무실 시간이 아니던가요?”


수습하려는 생각조차 없는지, 목을 돌려 이쪽을 향하는 마리아의 모습은 이미 LRL에겐 공포나 다름없었다. 가랑이를 타고 흐르는 기분나쁜 느낌마저 인지하지 못한 채, LRL은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한다.


“어.. 그.. 히끅..! 자.. 잠이 안와서.. 잠깐 산책을 좀.. 그러니까.. 히끅..!”


어느새 그녀의 구두엔 자그마한 물웅덩이마저 생겨나고 있다. 딸꾹질을 하면서도 어떻게든 마리아에게 벗어나려는 LRL의 모습은 너무나도 애처로워 강한 동정심마저 느껴지게 한다.


“저런~ 제가 그 부분은 신경을 못썼나보네요~ 미안해요, LRL.”


그런 LRL에게 다가가며 마리아는 자신의 신체를 원위치로 돌려놓는다. 뼈가 맞물려가는 기이한 소리와 함께 LRL과 마주하는 마리아.


그런 그녀를 제대로 바라보지도 못하는 LRL의 눈에선 수도꼭지를 비튼것처럼, 사정없이 눈물이 쏟아져 내리고 있다.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된 그녀는 작전에 함께할 것을 제안한 알비스의 제안을 다시금 곱씹어 본다.


“LRL은 착한 아이니까~ 착한 아이는 언니의 말을 들어야겠죠? 다시 취침에 들어가도록 해요~”


부드러운 그녀의 목소리. 어쩌면 이 자리를 피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고개를 드는 LRL. 하지만 그녀의 눈에 들어온 건, 자신의 목 깊숙이 손을 찔러넣어 가느다란 검신을 꺼내드는 마리아의 뒤틀린 모습.


“어.. 아.. 아.. 으...”


입을 벌린 채, 그 광경을 지켜보는 LRL. 그만 눈의 초점을 잃고 쓰러지고 만다.


그런데 웬걸? 바닥에 처박힐 LRL의 몸이 둥실 떠오르더니 복도의 어둠으로 쏜살같이 사라져간다.


“...?” 의문을 표하는 마리아.


“아무래도 당신에겐 요리보단 서커스가 더 어울릴듯하옵니다.”


복도의 끝. 번쩍이는 식칼을 양손에 쥔 소완이 특유의 사람좋은 미소를 띄며 이쪽을 향해 걸어온다. 그런 그녀의 뒤쪽엔 고개만 내민 아우로라와 포티아가 LRL을 잡아끌고 있다.


“안녕하세요, 소완 주방장님. 다행이네요. 이제 LRL과는 완전히 친해진 것 같아 보여요.”


“그럴리가요. 그보다 더욱 귀찮은 존재 때문에.. 이렇게 직접 행차한 것 뿐이랍니다.”


양쪽 모두 얼굴엔 미소가 가득하지만 손에 쥔 무기는 이미 서로를 향해 있다.


“그럼.. 여긴 무슨 일로?”


“말했을텐데요? 제가 관리하는 주방에선 한 치의 오차도 용납할 수 없다고. 아무래도 관리소홀로 인해 벌레가 기어들어온 것 같사와요.”


“저런~ 성가시겠다. 아! 하지만 조심하세요. 자칫 벌레에 물리기라도 했다간~ 사령관님이 걱정하시니까요~”


노려보는 둘.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를 향해 힘껏 뛰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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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장 저건 대체 뭐냐고?! 분명 내 칼에 베였는데도 다시 회복되잖아! 저런 거 반칙이야! 사기라고!”


“떠들 힘이 있으면 총이나 더 쏴요.”


투덜거리는 워울프에게 반박하며 퀵 카멜은 자신의 기관총을 사방으로 흩뿌려댄다.


마주했던 그것은 어느새 점점 수가 늘어나 이쪽을 압도하는 전력으로 일행들을 쫓아온다.


“모두! 탈출지점까지 서둘러! 놈들에게 잡히면 무슨 꼴을 당할지 몰라!”


소리치는 사령관 역시 저것들의 정체에 대해선 아는 바가 없다. 그저 쉬지않고 달리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는 상황. 꽤나 먼 거리를 달린 탓인지 드디어 탈출지점인 해안가가 보인다.


“어어..? 안돼안돼! 머.. 멈춰!”


선두의 퀵 카멜과 워울프는 한시바삐 출력장치의 바퀴를 역방향으로 되감는다. 하지만 뒤이어 달려온 이들은 그들의 속내도 모른 채 전력질주.


“으아아아악~~!!!”


속도를 이기지 못하고 깊은 구덩이로 빠지고 만다.




“아흑..!”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려고 한 그의 발밑엔 몸을 날려 자신을 보호한 블랙 리리스와 칸이 자빠져있다. 다행히 큰 상처는 없어 보이지만..


“괘.. 괜찮아, 너희들? 다친 곳은?”


“주인님~ 저 아무래도 다리가 삔 것 같아요~”


다리가 삐었다는 말과는 달리, 슬쩍 치마를 들어올려 속옷을 내비치는 블랙 리리스. 다행이야, 무사한 것 같네.


“문제없다. 그보다 여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일어난 칸은 정신을 차리기 시작한 주위의 부대원들과 함께 주위를 관찰한다. 떨어진 구멍에선 밤하늘의 달빛이 쏟아지고 있지만, 높이가 장난이 아니다. 이 녀석들이 아니었다면..


그런 생각을 하고있는 사령관의 곁으로 돌연 붉은색의 빛이 나란히 일자로 뻗어 점등한다. 경계태세를 갖추는 일행들의 눈에 보인건.. 기찻길..?


붉은빛의 점등이 늘어선 곳엔 커다란 동굴, 멸망 전의 지하선로가 일행들의 앞길을 밝힌다.


“이쪽으로 오라는 말 같지?”


중얼거리는 워울프는 평소와는 다른 사뭇 진지한 얼굴로 사나운 눈매를 드러낸다.


“함정이에요, 주인님. 굳이 어울릴 필요 없습니다. 다른 길을 찾아보죠.”


“다른 길은 없다. 저 곳 외엔 사방이 막혀있어. 그렇다고 위쪽으로 가기엔 너무 높군.”


만류하는 블랙 리리스에게 주변 상황을 설명하는 칸. 위험한 냄새를 풍기지만 선택지가 없다. 분하지만 마른침을 삼키며 다짐하듯 내뱉는다.


“가보자. 방법이 없어.”


“주인님의 뜻이 그렇다면.. 하지만 제 곁에서 떨어지진 말아주세요.”


특별한 방법이 없다고 판단한 블랙 리리스는 끝내 못미더워 보이지만 내 말을 따라준다.


터널을 따라 한참을 걸었을까.


그 끝엔 무수히 쌓여있는 폐기된 AGS들의 잔해. 그리고 그러한 산더미 위에선, 붉은색의 드레스를 정갈하게 차려입은 한 여인이 눈에서도 똑같이 붉은빛을 띄며 이쪽을 내려다보고 있다.


모두의 무기가 눈앞의 신비스런 여인에게 겨누어진다.


“주인님, 제 뒤로! 절대로 움직이시면 안됩니다.”


동시에 내 몸 주위엔 푸른색의 배리어가 전개된다. 선두의 칸이 여인을 경계하며 묻는다.


“넌 누구냐? 밖의 녀석들은 네놈의 수하인가?”


여인은 이쪽을 향해 가슴께를 한 손으로 가리며 고개를 숙인다. 우아한 그 동작은 격식을 아는 귀부인을 연상케한다. 하지만 그녀의 안면, 두 눈이 자리잡아야 할 공간엔 붉은색의 렌즈가 그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환영합니다, 육지의 동료분들. 전 이 섬을 관리하는.. 레드라고 합니다.”


간드러지는 목소리로 자신을 소개하는 여인. 마치 이쪽의 사정따윈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는 것처럼 천천히 일행들을 향해 걸어온다.


“그만! 그 이상 다가오면 쏘겠다. 방금전의 질문에 대답해라. 바깥의 이상한.. 놈들은 네놈 소행인가?”


다시 떠올린 괴생명체. 칸은 분명 그 잊지못할 광경에 넌더릴 치지만 마땅히 지칭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 되는대로 이상한 놈이라 불러본다.


“전 그 아이들의 소망을 들어준것 뿐이랍니다. ..인간이 되고 싶다는 소망을요.”


모두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광인의 헛소리다. 방금 전의 그 끔찍한 악몽들 역시 어딜봐도 인간은커녕, 바이오로이드에도 한참 떨어진 듯한 모양새다.


“시스템에 문제가 생긴건가.. 대장, 역시 이놈 그냥 쏴버리는게..”


“저희에겐 꿈이 있답니다!”


워울프의 말을 자르며 레드는 양팔을 치켜뜬다. 온몸이 붉은색으로 뒤덮인 그녀의 행동은 하나하나가 신께 기도를 올리는 경건한 사제를 떠올리게 한다.


“인간님들에게 만들어져, 인간님들에게 버려지고! 인간님들을 위해 일하면서, 그들에게 희생하는 삶! ..하루하루가 지옥같은 나날이었지만 저희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여인은 피를 토하듯 소리치며 또렷하게 이쪽을 응시한다.


“그런 인간님들은 어느날을 기해 모두 사라져 버렸죠. 심판을 받은 거에요! ..허나 저흰 그런 인간님들의 마지막 말들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주변의 기기들이 여인의 발걸음을 축복하듯 붉은빛을 뿜어낸다. 무대에서 노래하는 디바가 주위의 스포트라이트를 즐기듯, 레드 역시 기쁨의 광소를 터트린다. 그와 동시에, 주변의 수많은 음향기기에서 녹음된 음성들이 재생된다.


《아.. 안돼..! 이대로 죽을순 없어! 사.. 살려줘!》


《우리 아이가 죽어가요! 제발! 제발 살려주세요!》


《신이시여, 저희를 가엾이 여기시고 구원을 내려주소서. 제발 저희를 살려주시옵소서!》


《아파. 아파. 아빠, 엄마.. 살려줘요..》


《어차피 이제 마지막이야! ..아, 안돼! 사.. 살려줘! 그러지마!》


스피커에서 들려오는 수많은 절규. 그건 이미 절규가 아닌 절망에 가까운 지옥도. 모두가 얼어붙은 채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한다.


“맞아요. 살려줘, 에요. 인간님들은 저희에게 말했습니다. 살려달라고! ..그러니 그 명령을 수행해야만 해요.”


“하지만 저희는 한낱 AGS에 불과한 존재. 따라서 변화가 필요했어요. 네, 맞습니다. 진화에요! 생물의 레벨을 한 단계 높일 수 있는 그런 진화가!”


“때문에 저흰 먼저 인간이 되어야만 해요. 살아있는 생물의 장기로 내부를 욱여넣고, 인공적으로 만든 뼈와 살로 외부를 꾸며야 했죠. 매우 고되었답니다. 하지만 불가능하진 않았죠. 하늘에서 떨어진 저 축복받은 생명체들은 저희에게 그것을 가능케 해줬답니다.”


“하지만 부족해요. 딱 하나. 하나가 부족해요.”


그 말을 끝으로 이쪽을 똑바로 바라보는 레드. 그녀의 얼굴에 달린 불빛에는 어느새 일렁이는 귀기까지 서려 등골마저 오싹해진다.


“살아있는 인간의 피. 신선한, 박동하는 붉은 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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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태풍이 오네요.


비 피해 없으시길 바라겠습니다. 재밌게 읽어주세요~


굿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