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잡았다!”


“몇 주 전부터 계획을 세우길 잘했어. 한몫 단단히 뜯어낼 수 있겠는데?”


“이게 다 내 해킹 실력 덕분이지. 램파트를 해킹할 수 있는건 이 근처에서는 나밖에 없을걸? 귀한 몸이니까 조심히 다뤄, 램파트.”


“오메가 산업은 언제나 시민들에게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왜 대답을 이상하게 하지? 야, 이거 맛탱이 간거 아니야?”


“언어 모듈은 해킹하기 어려워서 지져버렸어. 쓸데없이 떠드는 것보단 낫지.”


“읍읍!”


 램파트의 어깨에 실린 남성이 몸부림친다. 일행은 잠시 걸음을 멈추고 사내가 뒤집어 쓴 안대를 들춘다.


“가만히 있어 형씨. 얌전히만 있으면, 몸값만 받고 무사히 돌려보내줄게. 이래뵈도 이 구역에서 우리는 신사다운 편이라니까?”


“맞아. 다른 놈들한테 걸렸으면 뼈도 못 추렸을걸?”


 천박한 웃음소리가 밤 공기를 가로지른다. 등골이 오싹해진 사내는 이내 저항을 멈추고 얌전히 순응한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거지? 경호원 없이 밤의 슬럼가에 방문한 것부터 문제였나? 아니면 구호활동을 시작한 순간부터?’


 이한은 남부럽지 않게 자라왔다. 아버지가 삼안 그룹 계열사의 중역이었기에, 온실 속의 화초처럼 자라온 그는 애덤 존스와도 사석에서 몇 번인가 만날 수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온실 속의 화초는 너무나 여렸다.


 그의 눈과 귀가 트이기 시작하자, 이한은 사람들을 돕고 싶어했다. 슬럼가 사람들의 생활을 알게 된 이한은 부모님을 졸라 봉사활동에 나섰다. 다행히 그의 부모들은 꽉 막힌 사람이 아니었고, 봉사를 통해 대외 이미지를 쌓는다는 명분도 있었다. 호위 병력을 대동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었지만, 그들이 있으면 주민들이 잘 다가오지 않았기 때문에 이한은 몰래 병력을 따돌리고 혼자 다니고는 했다.


 오늘도 평소와 같은 날이었다. 음식을 나누어주고, 고장난 기반 시설을 수리하고, 아이들과 놀아주다보니 밤이 되었다. 아무리 주민들과 친해졌다 한들 밤의 슬럼가는 위험했다. 그 결과가 이런 결과였다.


‘뭐지? 경호원들이랑 마주쳤나?’


 램파트가 갑자기 멈추는 바람에 이한의 안대가 벗겨졌다. 세 명의 납치범들과 한 명의 인질, 그리고 램파트 한 기의 앞을 가로막은 것은, 한 남자였다. 


 그는 너무 작지도, 크지도 않은 적당한 키를 가지고 있었다. 반팔 티셔츠 위로 드러나는 몸은 철저하게 단련된 근육들이 돋보였으며, 피부 위는 온갖 종류의 흉터가 수놓아져 있었다. 하지만 눈을 사로잡은 것은 그것들이 아니었다. 희미한 불빛을 받아 반짝이는 머리, 머리카락 한 올 보이지 않는 그 머리에 3명, 아니 4명과 한기의 AGS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바쁜거 안 보여? 조용히 한다면 그냥 지나가게 해줄게.”


“램파트 어깨 위에 있는 그거, 사람이지? 그것도 이 근처에서 구호활동 하는 사람이야.”


“그러면 어쩔건데. 네가 이 자식 경호원이라도 되냐? 대머리 주제에. 썩 꺼져!”


 대머리라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사내의 표정이 금강역사처럼 일그러진다. 잠시 주춤한 납치범들이었지만, 가장 덩치가 큰 사내가 칼을 들고 나선다. 얼핏 보기에도, 앞에 서 있는 남자보다 20cm은 더 커보인다.


 기합 소리와 함께 마체테를 휘두르자마자 거구의 남성이 날아가 벽에 박힌다. 머리가 완전히 목 안으로 들어간 채, 어깨까지 벽에 박혀 대롱대롱 매달려있는 모습은 마치 현대 미술같다.


“래..램파트, 가서 저새끼 조져버려”


“너 미쳤어? 이거 파손되면 우린 끝이야!”


“당장 죽겠는데 그딴게 무슨 소용이야! 야, 그거 내려놓고 가서 조용히 죽여버려.”


“오메가 산업은 언제나 시민들에게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램파트가 조심스럽게 이한을 내려놓은 다음, 달을 등지고 서 있는 사내를 향해 달려가기 시작한다.


“문의 사항은 고객의 소리 창구를 통해 전달해주세요.”


 램파트가 내려찍은 진압 방패를 한 손으로 잡아버린 남자는 이내 그것을 튕겨내고는 체중을 실어 로봇의 중심을 강하게 쳤다. 400kg의 AGS가 날아간 곳은, 인질범들이 서 있는 곳이었다.


“잘 들어. 나는 대머리가 아니다! 내가 깎은 거야! 삭발이라고!”


 물론 희미하게나마 보여야 할 이마선이 없었기 때문에 전혀 설득력 없는 외침이었다. 분을 삭히듯 애꿎은 전봇대를 몇 번 걷어찬 그는, 바닥에 누워있는 이한을 발견하고는 다가온다.


“괜찮아? 보아하니 좀 사는 친구 같은데, 주소를 부르면 바래다 줄게. 이런, 재갈을 푸는 걸 까먹었군.”


 사내는 간단하게 이한의 입에 물려있던 재갈을 찢어버렸다. 마침 숨 쉬기가 점점 힘들어졌던 이한은 그의 용력에 대해 감탄하며 숨을 골랐다. 한참 동안 기침을 하고 나서야 비로소 이한은 입을 열 수 있었다.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이한이라고 합니다. 혹시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성함이?”


“딱 보니까 나이도 비슷한 것 같은데 그냥 편하게 말해. 내 이름은 이정훈이야. 투기자지”


“투기자라 한다면...?”


“맞아, 바이오로이드 투기장에서 싸우고 있어.”


 하얀 이빨을 드러내며 웃는 정훈의 머리에, 마침 구름 뒤에서 모습을 드러낸 달빛이 비추어 반짝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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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아니라 문어였구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