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화



0화 / 1화 / 2화 / 3화 / 4화

5화 / 6화 / 7화 / 8화 / 9화

10화





============================================================================================






누군가 말했다. 결혼은 미친 짓이라고.

미치지 않고서야 결혼을 할 수 없다고.

같은 제목의 영화도 있었으며 사람들 끼리 모이는 곳에서도 왕왕 나오는 그 말 말이다.


맞는 말 같다. 정 반대의 의미로.

나는 그녀에게 미치지 않고서 결혼이란 결정을 할 수 없었을 것이고,

그녀 또한 나에게 미치지 않고서 나와 남은 삶을 끝까지 함께 하지 않았을 것이다.


서로에게 미쳐버린 나머지 자신의 모든 것을 줘버리는 그것이야말로 사랑이니까. 

그 미친 짓을 오늘 우리는 행하려 한다.


아,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미친'이라는 단어 때문에 조금 오해의 소지가 있는데 나와 금란의 감정은 '광기'가 전혀 아니다.

오히려 근래에 보기 드문, '지고지순'이란 단어가 더 어울리는 관계니까.


그저 서로에게 일편단심으로 서로 떨어지는 것을 상상할 수 없는 그런 관계라는 의미이다.




이미 예식장에는 많은 하객분들이 와주었다.

물론 신랑측 하객만 오는 조금 특별한 결혼식이긴 하다만 다들 나와 금란이 예전부터 퍼뜨려온 각색(?)된 금란의 사연 덕분에 식장에 오는 하객 모두 우리들을 진심으로 축하해줬다.


나는 부모님과 함께 식장 입구에서 하객분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었다. 그런 와중 예식장 직원이 잠깐 신부와 사진을 찍으러 갈 것이라고 나를 금란이 있는 곳으로 안내했다.








금란은 이미 드레스와 모든 화장을 끝마치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정말이지... 다시봐도 순백의 여신이 한분 계시는 걸 보니 감탄이 절로 나왔다.

이전에도 미리 웨딩샵에서 드레스를 맞출때 느끼던 그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을 다시금 느끼고 있었다.



금란: 어때요? 드레스 괜찮아요?


나: 아름다워. 너무나도. 왠 여신이 계시나 했네 ㅎㅎ


금란: 뭐에요~ 부끄럽게. 맨날 한복만 입다....앗....




금란은 급히 말을 멈추고 주변에 우리 말고 다른 사람이 있는지 살핀 후 다시 내게 말했다.





금란: 조금 들떴나... 무심결에 하마터면 저항군 시절 얘기를 말할 뻔 했네요 ㅎㅎ


나: 이제 와서 들어도 이해 못 할껄? ㅎㅎ 그나저나 벌써 1년 반이 넘었구나. 우리가 만난지.


금란: 시간 금방 가죠?


나: 그러게. 솔직히 실감이 잘 안 났달까. 원래라면 나는 휴대폰 액정을 통해서 자기를 봤어야 하는데, 이렇게 마주보고 곧 함께 결혼식에 입장할 거라니. 진짜 사람 일은 아무도 모르나봐.  


금란: 정말이지 한치 앞도 모르는 나날이었죠. 


나: 기왕이면 라오 서약식처럼 어디 잠수함 하나 빌려서 할 걸 그랬나? 하다못해 선상웨딩 같은걸로? 


금란: 왜요. 어디 엘리베이터 타고 등장하게요? 후훗


나: 고증에 충실하면 좋잖어 ㅎㅎ


금란: 오르카만큼 큰 잠수함을 구할려면 우리재산으로는 어림도 없을 텐데요~


나: 그렇겠지? 인류가 멸망하지 않는 이상 우리는 이런 소박한 곳에서 하는게 가장 좋은 그림이겠지.


금란: 쓰읍! 또 이상한 소리 한다. 결혼식까지 와서 또 또.


나: 웃자고 하는 얘기지 진짜 그러겠어? ㅎㅎ 


금란: 이제부턴 행복한 대화만 하자구요. 그것만으로도 우리 인생을 짧으니까.


나: 약속할께. 


금란: 그럼... 이제 오늘부턴... 여보...라고 불러야 되나요?


나: 여보? 음... 어우.... 여보라고 하니까 왜이렇게 부끄럽냐...ㅎㅎ


금란: 여보~


나: 헉! 으... 그만해줘 난 아직 어색하단말야~


금란: 으응으응~ 싫어요~ 당신도 여보라고 불러줘요~


나: 크흠....! 음.... 으..... 여....여보...


금란: 네 여보~ 히힛 좋다. 여보라니~


나: 으... 정작 견딜 수 없는 쪽은 나였구나. 허허허허...




우리가 그렇게 결혼식 입장 전 약간의 긴장을 풀어주는 담소를 나누고 있을 때 예식장 직원이 다가와서 말했다.




직원: 신랑신부 께선 이쪽에 서주시겠어요. 촬영 들어갈께요~



찰칵찰칵 하는 소리와 함께 아름다운 배경을 뒤로 하고 사랑스런 포즈를 한 우리 두사람의 모습이 카메라에 실리기 시작했다.

이 촬영이 끝나면 우리는 하객들이 모여있는 식장에 입장하게 된다. 

우리의 표정은 촬영을 위해 미소짓고 있지만 서로가 말 하지 않아도 이미 긴장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렇게 시간은 다왔다.











사회자: 이제 이 결혼식의 주인공인 신랑 이세환 군과, 신부 최금란 양이 입장하도록 하겠습니다.



문 안쪽에서 들려오는 사회자의 목소리. 이제 이 문이 열리면 우리 두사람은 모두의 축하를 받으며 걸어가기만 하면 된다.



나: 준비됐어?


금란: 네. 준비됐어요.


나: 순식간에 지나갈꺼야. 긴장하지마.


금란: 후...너무 긴장하면 아기가 힘들어할텐데...


나: 아기한테 조금만 봐달라고 부탁해볼까?


금란: 우리 아가는 착해서 이해해줄꺼에요. 아니, 오히려 좋아할지도?


나: 후훗. 



사회자: 신랑신부 입장.



이윽고 눈 앞에 문이 점점 열리자 우리의 시야에는 많은 하객들이 뒤돌아보며 우리를 축하해주는 모습과 저 멀리 단상까지 펼쳐진 고급스러운 카페트가 있었다.




나: 가자.


금란: 네.







나는 마지막으로 금란의 손을 꼭 잡아주다 자연스럽게 나의 팔짱으로 옮겨주었다.

금란도 입장하는 타이밍에 맞춰 내 팔 안에 자신의 손을 걸어주고 조금씩 드레스를 앞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주례: 신랑 이세환 군은 신부 최금란 양을 남편으로서 평생 함께할 것을 맹세합니까?


나: 네. 맹세합니다.


주례: 신부 최금란 양은 신랑 이세환 군을 아내로서 평생 함께할 것을 맹세합니까?


금란: 네. 맹세합니다.


주례: 두 사람의 혼인 맹세가 저와 이곳을 찾아와주신 하객분들이 증인이 되어 선언되었습니다. 이시간부터 두 사람은 부부로서 평생을 함께 할 것이고 부부로서 서로를 의지하고, 서로를 보듬으며, 어떠한 역경이 닥쳐도 함께 이겨내는 관계가 된 것임을 선언했습니다. 이제 곧 태어날 태중의 아이 또한 사랑으로 기르면서 행복한 부부의 길을 걸어갈 것을 기원합니다.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사회자: 마지막으로 신랑이 직접 신부에게 들려줄 손편지를 낭독하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참고로 이 손편지는 신랑이 결혼식 몇 일 전 '극비'로 아무도 모르게, 신부도 모르게 쓴 것이라고 합니다.




사회자의 발언에 금란은 눈이 휘둥그래지면서 나를 바라봤다.



금란: 뭐...뭐에요... 편지라니.


나: 여보야를 위한 작은 이벤트...서툴러도 좀 봐줘. 후훗.




그러곤 나는 안쪽 주머니에서 편지 한장을 꺼내고 작게 심호흡을 한번 한 뒤 천천히 읽기 시작했다.







사랑하는 금란.


이 편지를 쓰던 날, 나는 우리가 결혼식을 며칠 앞두고 있다는 것을 거의 믿을 수 없었고 곧 우리가 공식적으로 부부로서의 여행을 시작할 것이라는 것이 실감이 안 났어.


나는 우리가 함께 나누었던 아름다운 순간들을 떠올렸어.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부터, 나는 당신에게 특별한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알았지. 당신의 사려심, 당신의 지성, 당신의 아름다움이 모두 내 마음을 사로잡았고 나는 내가 평생을 함께 하고 싶은 사람을 찾았다고 생각했어.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의 사랑은 내가 상상도 못했던 방식으로 성장하고 깊어졌지. 당신은 나의 변함없는 버팀목이었고 어려울 때의 나의 반석이었으며 끝없는 기쁨과 행복의 원천이었어. 우리가 함께 보낸 모든 순간이 축복이었고 우리가 주고 받는 사랑에 너무나 감사하고 있어.


나는 당신이 나에게 있어서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지 알아줬으면 좋겠어. 당신은 내 인생의 큰 부분이고 나는 내 남은 삶을 당신 곁에서 살고 싶어. 당신이 내 곁에 있으면 우리는 그 어떤 것도 마주할 수 있다고 확신해.


내 인생의 파트너이자 친구이자 소울메이트가 되어줘서 고마워. 나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당신을 사랑하고 내 남은 인생을 당신을 사랑하고 행복하게 만드는데 쓰고 싶어.


당신이 바로 내가 태어나고 지금까지 살아온 이유야.


사랑해. 진심으로.



  


나는 덤덤하지만 진심을 다해서 편지를 읽어내렸고 마지막 한 줄까지 모두 읽는 것에 성공했다. 서툰 작문력을 억지로 쥐어짜내며 지웠다 고쳤다를 반복한 편지였지만 금란에게 제대로 전달되었을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편지낭독을 다 들은 금란은 이미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있었고 이미 한방울은 볼을 타고 떨어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표정은 행복함에 젖어 웃고 있는 것이다.




사회자: 자, 신부께서 지금 감동의 눈물을 흘리시는거 같은데 신랑이 열심히 낭독한 편지에 대한 답을 주셔야지요? 신부? 편지에 대한 답은요?



사회자의 금란을 향한 말에도 금란은 한동안 울기만 할 뿐.



사회자: 아... 신부께서 감성이 충만하신 분이신것 같습니다. 하객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이런 뜻깊은 곳에서 신랑이 저런 감동이벤트를 하면 안 울 신부가 어딨겠습니다.




사회자는 금란이 진정될때까지 시간을 벌기 위해 갖은 멘트를 하며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었다. 하객들도 저 눈물의 의미를 알기에 그저 흐믓한 미소로 금란이 진정되길 기다렸다.



이윽고 금란은 조금 진정되었는지 신부측 도우미가 건내준 마이크를 잡았다.

하객들도 기대에 찬 눈빛으로 금란이 무슨 말을 할지 지켜봤다.



마침내 금란은 나에게 자신의 답을 말해줬다.





금란: 함께해요. 이 세상의 마지막까지.  





라스트오리진의 대표격인 대사를 답으로 대신한 금란.


나는 그것의 의미를 잘 알기에 똑같이 기쁨의 미소로 화답했다. 






나: 고마워. 정말 사랑...읍?!



하객들: 어머나~어머어머~!



눈 깜짝할 세에 키스를 시전한 금란. 

금란이 이렇게 결정적인 순간에 저돌적인 여자인 것을 또다시 깨닫는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사회자: 어이구! 행동으로 보이시는 저 대담함......어이고! 신랑께서도 만만치 않군요!




사회자의 말대로 나 또한 금란을 사랑스럽게 껴안으며 그녀의 입술을 받아들였다.


본래 결혼식에서 키스는 여러 사정으로 인해 촬영용으로 가볍에 하는게 일반적인데 지금 우리가 하는 키스는 촬영용도 아니고 결코 가벼운 키스도 아니었다. 그래. 짧지만 딥한 키스였다. 아, 촬영은 되었겠네. 모두의 휴대폰으로.




어쨌건간에 우리는 모두에게 우리가 부부임을 알렸다. 이제 우리는 거리낌이 없다. 


그리고 이것이 나의 아내 이야기이다. 정확히는 나의 아내가 된 이야기겠지. 


물론 앞으로의 이야기는 우리 두 사람이 살아가면서 만들어갈 것이다.


이제는 아내 이야기가 아니라 가족 이야기로 바뀌는 것만 빼면.


그래서 행복하냐고? 그걸 말이라고? 


허허허 하는 웃음과 미소를 답을 대신해본다. 


그럼 지금 현재는 내 아내 뭐하냐고?


내 옆에서 글 쓰는거 보고 있지. 좀 더 불러온 배를 쓰다듬으면서. 


그냥 행복하다고. ㅎㅎ



=======================================================================================



 

이빨 썩는다는 원성이 자자해서 달달한 글은 여기까지.


미숙한 글 좋게 읽어줘서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