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론 따라잡히겠슴돠! 힘 좀 내시지 말입니다, 연대장님~!”


“크흡..! 브라우니.. 넌 돌아가면.. 죽을줄..!”


“잘못들었슴다~? 어?! 우측에서도 두 마리 붙었습니다~!”


또 다른 산비탈. 레드후드는 현재 일평생 맛보지 못할 굴욕감에 몸을 떨어 가며, 자랑인 채리엇을 인력거꾼마냥 직접 운전중이다.


그리고 그런 채리엇에서 당당히 자신에게 명령하는 이가 있었으니.


“하하핫! 죽어라 괴물놈들아~! 평소의 내가 아니라고~!”


뒤쫓아오는 놈들에게 사방으로 총알을 갈겨대는 브라우니. 채리엇에 장착된 4연장 기관포가 어지간히 맘에 들었는지 자신의 돌격 소총은 등에 매달려 이리저리 휘날리고만 있다.


“연대장님! 속도가 줄었지 말임다~! 다음 훈련 땐 연대장님도 저희랑 같이 뛰는게 어떻겠슴까~?”


“VICTORY!!! ISSS!!! OUURRSSSSSS!!!”


가슴에 새긴 긍지를 소리치며 뜀박질하는 레드후드. 훗날, 지금의 상황은 그녀에게 평생의 흑역사로 남는 계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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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맡기라며! 맡기라며! 맡기라며! 왜 우리랑 같이 뛰는 건데, 넌?!”


“장난해?! 저딴 걸 내가 어떻게 하냐고!! ..그리고 난 맡기라고 한 적 없어!”


언제나 축 처져 느릿느릿하던 유미는 현재, 자신의 발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전력질주를 하고 있다. 그런 그녀의 곁으로 똑같이 쉬지 않고 달리는 다크엘븐이 따라붙어 투닥거린다.


“너희들~ 그렇게 떠들다간 괴물에게 잡혀버리거든~?”


“정비관님은..! 또 왜 저렇게 빠른거야..! 헥.. 헥..”


포츈의 자세는 그야말로 완벽한 정석 그 자체. 교차하며 내달리는 팔과 다리는 정확히 직각을 유지한 채, 그 모습이 절대 흐트러지지 않는다.


“여러분~? 긴장감이 없는 건 좋지만, 저도 이제 슬슬 한계라구요~?”


이리저리 날아다니며 괴물의 시선을 끄는 탈론페더. 평소 도촬이나 실없는 얘기만 하는 것 치곤, 묘하게 그 움직임이 재빠르다. 과연, 저래봬도 앵거 오브 호드 소속이라 이건가.


그렇다해도 좋은 상황은 절대 아니다. 이대로 가다간.. 엥?


자신들을 쫓아오던 토미워커. 아니, 토미워커를 닮은 괴물은 갑작스레 그 징그러운 다리들이 터져나가며 폭발하고 만다. 새하얀 연기까지 나며 불꽃을 뿜어내는 그것은 마치 고무를 태우는 듯한 고약한 냄새까지 풍겨오고 있다.


“뭐야 저게..? 페더~ 니가 한 거야?”


“아뇨아뇨~ 전 저런 고위력의 화기는 휴대하지 않아요~”


부인하는 탈론페더의 뒤로 수풀이 흔들린다. 설마 저런 놈들이 더 있는 건 아니겠지? 불길한 생각을 하며 무기를 꼬나쥔 다크엘븐은 들려오는 익숙한 소리에 고개를 가로젓는다.


“여러분~ 무사하십니까~? 여러분의 친구이자 구세주! 브라우니가 등장했습니다~~!!”


어째선지 채리엇 위에서 호쾌하게 인사하는 브라우니. 그런 그녀의 앞에선 밧줄로 동여맨 손잡이를 어깨에 매고, 귀신의 형상을 한 레드후드가 한쪽 무릎을 꿇은 채 거친 숨을 헐떡이고 있다.


“브라우니는 많으니까... 한명쯤 사라져도... 아무도 모를거야...”


무언가 위험한 말을 중얼대는 레드후드를 애써 무시하며 다크엘븐은 상황을 정리한다. 듣기론 본대마저 공격당해 모두가 뿔뿔이 흩어진 상황. 한발 먼저 빠져나간 사령관 일행들 역시 위험한 건 매한가지. 그렇다면..


“유미! 네 안테나! 지금 작동할 수 있지?”


“에엥? 가.. 갑자기 왜...?”


바닥에 뻗어있던 유미는 간신히 얼굴만 든 채 불만을 표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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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겨진 통로에선 보통 보물상자가 나와야 정상아냐? 갑자기 라스트보스라니 최악이야!”


워울프는 투덜대면서도 연신 사격을 쉬지 않는다. 하지만 이게 과연 먹히기나 할까?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느낌이 정확히 지금의 상황이리라.


갑작스레 사령관의 피를 갈구하며 날뛰는 레드의 발밑에 쌓여있는 AGS들의 잔해, 그것들은 한데 묶여 일행들을 격렬히 추격한다. 앞쪽의 선두가 넘어지면 뒤이어 다른 녀석의 발이, 또다시 녀석이 박살나면 중간을 헤집고 튀어나오는 다른 녀석의 몸체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


마치 파도가 치듯, 몰려오는 AGS의 잔해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왔던 길을 되돌아 달리는 사령관 일행. 마침내 터널의 끝이 보이지만 여전히 만만치 않은 높이다.


“누구든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 있으신 분 없나요? 이대로는 주인님까지 위험해요!”


소리치는 블랙 리리스는 답지않게 식은땀을 잔뜩 흘리고 있다. 하지만 그건 모두가 마찬가지. 칸 역시 뾰족한 수가 생각나지 않는 듯, 연신 표정이 좋지 못하다.


“다시 태어나는 겁니다! 바닥을 기는 삶을 끝낼 수 있어요! 바이오로이드인 여러분도 보다 인간적인! 아니, 인간의 생활을 누릴 수가 있어요!”


“아니! 넌 그저 저 철충들에 감염된 것에 불과해! 그딴 말도 안되는 소릴 지껄이는 것도 다 저 벌레놈들의 계략이라고!”


퀵 카멜은 자신 나름대로의 생각을 피력하며 시간을 끌어보지만 이내 터널의 끝. 더 이상 도망칠 공간이 없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뭐?”


“당신들이 이곳에 온 이유. 아마 대량의 철충들이 한데 모여 군대를 형성한다거나 뭐 그런 이유겠죠?”


추격을 멈춘 레드는 허탈해하며 얘기한다. 그것까지 알고 있다고? 그럼..


“거래를 했습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축복받은 생명체들과요. 맞아요, 그들은 저희에게 자유로이 생각할 수 있는 뇌를, 동료들과 떠들 수 있는 입을, 아름다운 것들을 볼 수 있는 눈을, 사랑하는 이와 맺어질 수 있는 생식기관까지 내려줬어요.”


“또한 저희들의 삶의 목표까지도요! 아.. 어쩜 이리 자비로울까. 마치 신의 강림을 보는 듯 했죠. 그런 그들이 저희에게 바란 건 아쉽게도 딱 하나밖에 없었답니다?”


모두가 귀 기울여 레드의 다음 말을 기다린다. 그녀의 말은 청중을 끌어당기는 강한 카리스마와 상대방을 휘어잡는 애처러움마저 느껴지고 있었다.


“새로운 종의 탄생. 단지 그것 뿐이었죠.”


새로운 종? 인간 이외의 것을 말하는 건가? 아니다. 저 녀석은 방금 인간을 부활시키겠다고, 자신이 인간 그 자체가 되겠다고 했다. 머릿속이 복잡해 생각이 정리되지 않는다.


“후후후. 이해가 되지 않나 보군요. 확실히 기존의 인간님들을 다시 되살리겠단 말이 아닙니다. 되살리되, 이번엔 저희와의 위치가 완벽히 뒤바뀐다는 의미이기도 하죠.”


“뒤바뀐다니? ..설마! 너희들은 인간을 되살려 자신들 밑에..!”


“인간님들은 저희를 창조하셨죠. 새로운 세상을 보여줬어요. 새로운 관계까지도요...”


내뱉는 그녀의 말은 어딘지 모를 분노와 후회, 슬픔마저 느껴진다.


“저희에게 충분히 그 권리를 행사하셨어요. 과분할 정도로. 그러니.. 이젠 충분하지 않습니까? 이제부턴 저희가 하겠습니다. 저희가 인도하겠습니다. 저희가 교육하겠습니다. 저희가.. 이끌어 드리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폐기된 AGS들의 무리. 방법이 없나...



“어이~~ 사령관님을 여기서 뵐 줄은 몰랐지 말입니다~~?”


어둠이 내려앉으려는 그 순간, 브라우니의 목소리가 어두운 터널에 울려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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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카 호 내부의 복도 어딘가.


철과 철이 맞닿아 내는 마찰음이 쉴 새 없이 복도를 울린다. 서로의 무기를 주고받길 몇 분. 마리아의 몸 곳곳엔 주방에서 쓰이는 부엌칼이 종류별로 꽂혀있었다.


반면, 소완의 모습은 청렴 그 자체. 언제나와 같은 정갈한 복장으로 상대를 가늠한다.


“숫돌로는 제격이십니다. 이참에 정식으로 주방에서 일해보시는 건?”


여유롭게 웃어보지만 도저히 눈앞의 상대를 쓰러뜨릴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아까부터 얼마나 베고 찔러댔던가. 슬슬 뒤에서 무기를 보충해주는 아우로라의 식기구들도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다.


‘슬슬 끝을 내야겠죠. 다른 곳은 모두 손을 봤습니다만 유독 저곳만...’


소완의 생각대로 마리아의 몸 여기저기는 베이고 찢겨나갔지만 그녀의 가슴 한 가운데, 인간으로 치면 심장이 위치한 자리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필사적으로 보호하려 한다.


결정을 내린 소완은 마주오는 검신을 자세를 낮춰 피한 후, 반동으로 뛰어올라 마리아의 가슴께에 서슬퍼런 식칼을 내려꽂는다. 됐습니다, 멈췄어요! 이걸로..?!


승리를 확신한 그녀의 양 팔목을 돌연 마리아의 우악스런 손이 잡아챈다. 얼마나 세게 쥐었는지 이제까지 무표정을 유지하던 소완의 얼굴이 자연스레 인상을 찌푸리고 만다.


“도망가야 했습니다. 당신의 공격은 통하지 않으며.. 우려하던 인질의 목숨까지 구해냈어요. 이 이상은 주방장인 당신에겐 과도한 일. 고려할 가치도 없어요.”


높낮이 없는 음성으로 타이르듯 얘기하는 마리아. 그런 그녀에게서 벗어나고자 소완은 무릎과 발을 이용해 타격을 가해보지만, 마치 강철로 된 기둥마냥 꿈쩍도 하지 않는다.


“아.. 안돼! 주방장님!”


기겁하는 아우로라에게 접근하지 말라며 소리치는 소완. 그러곤 결심한 듯 외친다.


“아우로라! 그걸 던져요! 빨리!”


“하.. 하지만.. 그건..”


“어서!!”


무언가 준비한 모양새. 그런 둘을 흥미롭다는 듯 쳐다보며 마리아는 미소짓는다.


“더 할게 남았나요? 재주가 많군요. 사령관이란 분이 좋아하겠어요.”


“그렇습니다. 소첩, 주인을 위해서라면 아무리 맛없는 수프라도, 썩은내가 나는 미트파이라도, ..어린아이의 손때가 묻은 도끼라도 당당히 맛볼 수 있죠!”


고개를 숙이는 소완의 뒤로 날아오는 붉은색의 도끼. 언뜻 그 손잡이엔 삐뚤빼뚤한 글씨체로 ‘DRAGON SLAYER’라고 쓰여져 있는 듯 하다.


놀라는 마리아의 미간에 횡으로 박히는 도끼날. 소완은 놓치지않고 박힌 도끼자루를 강하게 물어 힘껏 베어낸다. 동시에 다시 한번 복부를 향해 발길질.


충격으로 인해 소완의 손목을 쥔 양손마저 같이 뽑혀버린 마리아. 밀려난 곳은 바깥쪽 갑판으로 향하는 입구. 문과 함께 떨어져나간 마리아의 눈에 들어온 건 언제나와 같은 밤하늘.


“항복하시죠.”


뛰쳐나와 자세를 잡는 소완. 그런 그녀의 주변으로 다수의 램파트가 자리잡는다. 동시에 오르카 호의 모든 전원이 들어오며 꺼져있던 전력과 통신이 다시금 작동하기 시작한다.


“실패.. 네요.”


체념한 듯 고개를 숙이는 마리아. 허나, 떨어져나간 팔의 절단면에선 갖가지 전선들이 촉수처럼 삐져나와 그녀의 몸을 감싸고 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시간을 끌어보죠. 레드에게도 시간은 필요할 터.”


“그럴 필요 없다.”


다시금 전투태세를 취하는 마리아의 뒤로 들려온 청량한 목소리.


돌아본 곳엔 밤하늘과도 같은 푸른 머리칼과 함께 휘날리는 새하얀 망토를 두른 여인이, 허릿춤에 위치한 네 자루의 검에 손을 올리곤 올곧은 눈으로 이쪽을 응시한다.


뱃머리의 끝엔 언젠가 보았던.. 미나라고 했던가? 아무래도 저 녀석을 직접 타고 온 것 같네요. 제법이에요. 그녀는 비전투원이란 보고를 받았는데..


“투항해라. 두 번은 없다.”


냉정하게 울리는 목소리는 마리아에게 선택을 강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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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생각한건 10화까지 였는데.. 자꾸 의도치 않게 내용이 길어지네요.. ㅡㅡ;;;


긴 글 읽어주셔서 정말정말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