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회차 감상용)


함께 잠자리를 가진 그날 이후, 나와 리앤은 더 이상 관계를 숨기지 않고 오르카 내에서도 늘 붙어 다녔다.


옆에서 그녀와 나란히 걷고 있다가 이따금씩 내 어깨에 기댈 때면 너무나도 사랑스럽다고 느껴져 (대원들이 다 보는 앞에서) 그대로 키스했고, 이따금 그게 지나쳐 성군기 위반, 풍기문란 등등의 이유로 “문란합니다! 금지에요!” 라는 말과 함께 경고를 받았다,


그렇게 주의를 받는 통에 리앤도 “자꾸 밖에서 그러면 안돼!” 라며 볼멘소리를 했지만, 난 “리앤이 너무 사랑스러워서 키스 안 할 수가 없는걸.” 이라며 싱긋 웃어 주었다.


어쨌든 나도 나름 지각이라는 게 있었기 때문에 가급적 외부에서의 애정 표현은 자제하며 단 둘만이 있을 때만 정열적인 사랑의 말을 속삭이고, 끝이 보일 것 같지 않다고 생각한 휴가를 함께 보낼 사람이 옆에 있으니 생각보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함께 공원을 거닐며 커피를 마시고, 워터파크에서 물놀이를 하고, 밤에는 모닥불 앞에서의 담소까지.


또 한번은 어린 시절부터 쭉 취미생활이 없었다고 말하자 리앤은 나와 함께 기타 연주나 영화 감상 등 여러 가지를 함께 해주었다.


마음을 나눌 사람들이 옆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간의 스트레스는 충분히 해소되었다.


이제껏 멈추어 있던 나의 시계는 그녀를 만나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시간은 흘러 여름이 다 끝나갈때쯤 나와 리앤의 휴가도 끝났고, 다시 업무에 복귀하는 날 아침에 나는 참으로 꼴사납게도 침대에서 그녀의 허리를 꽉 껴안고 응석을 부렸다.


“일하러 가지 마.. 나랑 있자..”


“안돼요 부사령관님~ 이거 놓으세요!”


“제발..”


“정시에 퇴근하고 만나러 올게, 그러니까 좀 참아?”


‘귀여워..’


내가 떼를 쓰는 모습이 신선했던 것인지, 리앤은 내 헝클어진 금발을 마구 쓰다듬어 주었다.


나중에 보자는 말과 함께 그녀는 방을 나갔고, 나도 꿈틀꿈틀 일어나 출근할 준비를 시작했다.


거진 1달 넘게 쉬었으니 이 이상 쉬는 것도 폐가 되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샤워를 마치고 PDA를 들여다 보니 웬 메일 하나가 도착해 있었는데, [발신자 불명] 이라는 문구가 처음으로 눈에 들어왔다.


“뭐지..?”


오르카 내부의 인물이 보낸 것이라면 발신인이 명확히 표기되어 있을 터, 나는 머릿속에 수백 개의 물음표를 띄우며 메일을 열었다.


그 안에는 이러한 내용이 적혀 있었다.



**********************************************

오르카 호 부사령관, 미하일 보르비예프에게.


당신이 감마에 이어 델타를 제압한 용맹한 모습을 늘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이제 오메가와 회장만이 남았지만, 세력이 가장 큰 레모네이드인만큼 저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사려되어 이런 전갈을 보냅니다.


오르카 호와 지속적인 연락을 취할 것이니, 부디 이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주십시오.


저는 언제나, 당신을 지켜보고 있겠습니다.

**********************************************


그리고 맨 마지막의 발신 란에는 ‘메이터’라는 이름이 폰트가 아닌 수려한 필체로 휘갈겨져 있었다.


“메이터라.. 대체 누구지..?”


이 메일에 관해서는 회의에서 논의해야겠다고 생각하며 나는 서둘러 회의실로 달려나갔다.





사실상 한 달 넘게 쭉 쉬었기 때문에 역시 일이 쉽게 손에 잡히지는 않았다.


내가 휴식을 취하는 사이에 이미 수뇌부에서는 오메가를 사로잡기 위해 여러 가지 전략을 세워 둔 상태였고, 그 막대한 정보량은 하루 안에 전부 읽기에는 버거울 정도였다.


“작은 주인님, 쉬고 오셨더니 머리가 둔탱이 밤탱이가 되신 겁니까? 제대로 귀 뚫고 들으세요.”


덕분에 바닐라에게 한껏 잔소리를 들었다.


“너무 그러면 안돼, 오늘 막 복귀하신 거니까.”


“요약해서 보여드릴 테니까, 자료랑 대조해 보세요.”


화면에 띄워진 자료엔 현재 오메가의 거취가 시각화되어 보여지고 있었다.


우선 오메가는 델타의 패배 소식을 접한 직후 자신의 근거지가 있는 뉴욕, 특히 맨해튼 일대로 저 멀리 우주에 있는 엡실론의 도움을 받아 포스필드를 전개해 둔 상태였다.


물자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개미 한 마리라도 외부로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외곽의 경비를 강화한 상태였고, 오르카의 선전으로 인한 병력 이탈을 방지하기 위해 자신의 케스토스 히마스와 오메가 빌딩 내부를 제외하곤 거의 모든 외부와의 통신을 끊어 버렸다고 했다.


물자가 오고가는 통로를 이용해 뉴욕 내부로 잠입하는 것이 가능하냐고 묻자 칸 대장님으로부터 AGS를 제외한 바이오로이드를 인식하는 스캐너가 달려 있어 들어가는 즉시 경보음을 울린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지금 뉴욕은 철옹성과 다름없네. 오비탈 와쳐 팀도 엡실론이 포스필드에 도움을 준다는 걸 알고 우주로 나가 봤지만, 그녀가 있는 달 기지도 경계가 삼엄해진 상태였고.”


오메가의 밑작업이군요, 라고 나는 나지막히 말하였다. 


나태함을 베이스로 한 엡실론의 성격상 누가 들어오건 말건 경비 따위 세우지 않았을 테니..


“혹시 몰라서 밖에서도 공격을 퍼부어 봤는데 전혀 뚫리질 않더라.”


“맞아, 아무리 위력이 강한 탄두를 떨궈도 옴짝달싹하질 않고..”


공중전에 이골이 난 두 사람의 말에 더 머리가 아파왔다.


그렇게 오전 내내 회의를 이어가며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을 고안해 냈지만, 무엇 하나 뾰족한 수는 나오지 않았다.


"야단났네.."


이대로 가면 거진 10년은 넘게 오메가와 줄다리기해야 한다는 뜻 아닌가.


거기에 철충과 별의 아이까지? 말을 말자.


결국 오후에 이어서 하는 걸로 사령관님은 잠시 휴정을 선언했고, 난 복잡해진 머리를 감싸쥔 채 자리를 떴다.





"하.."


오늘의 점심은 꽤나 특식이라고 할 수 있는 메뉴였지만, 지금 상태로는 식사가 넘어갈 리 만무했다.


오메가의 강화된 경계 태세에 메이터라는 수수께끼의 인물까지. 이 두 가지 문제는 내 머릿속을 아수라장으로 만들어 놓았다.


그렇게 한참을 머리를 감싸 쥔 채 고민하던 중, 등 뒤에 부드러운 감촉과 양 어깨를 감싸는 두 팔이 느껴졌다.


"모리아티~ 일 많이 힘들어?"


왔구나, 내 마약.


리앤의 부드러운 목소리를 들으니 두통이 조금 가셨다.


역시 그녀는 나의 활력소임에 틀림없었다.


"조금..아니 많이 힘들어.."


나는 그녀에게 회의에서 들은 내용, 그리고 메이터의 메일에 대해서 상세히 설명해 주었다.


"그 메이터라는 사람이 누구인지는 모르는 거야?"


"응, 혹시 오메가의 부관으로 있다던 유미 아니야?"


이전에 오메가를 보좌하는 비서 유미가 오르카 호에게 정보를 전달해 주고 있다는 것을 들은 적이 있었다.


"그건 아니야, 그 유미는 왓슨에게 직통으로 연락을 취하고 있으니까."


"그럼 대체 누구지.."


내 아둔한 머리로는 적일지도 모르는 이 수수께끼의 협력자의 정체를 도무지 파악할 수가 없었다.


"일단 그 사람이 누구인지는 차차 밝혀내면 되고, 일단은 힘내서 일에 집중해봐. 저녁에 맛있는 거 하고 기다릴게."


"정말..?"


"응!"


리앤은 늘 그랬듯이 방긋 웃어 주며 내 볼을 꼬집었다. 이것만으로도 꽤나 위로가 된 점심이었다.





다시 열린 오후 회의.


시작하기에 앞서 수수께끼의 협력자가 보낸 메일에 대해 전하자 회의실의 모두는 복잡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유미 외의 새로운 협력자라.."


"엡실론이 보냈을 가능성은 있을까?"


"그럴 일은 없을걸, 빨래 하나도 대충 던져 놓고 게으름 부리는 녀석이 설마 이런 메일 쓸 정도로 정성을 다할 리는 없으니까."


나는 농담으로 애써 분위기를 환기해 보려고 애썼지만 그다지 효과는 없어 보였다.


"펙스와 깊게 관련된 누군가임에는 틀림없는데, 그게 누구인지 통 감이 안 잡히는군."


"혹시 겨우 살아남은 또 다른 인간이라던가?"


"그라믄 에이다가 진즉에 신호를 포착했을낀데, 지금 인간이라고는 두 오빠야들밖에 읎다 아이가."


이어서 후사르는 '인간일리는 만무하고, 바이오로이드 아니면 AGS일 것이다' 라는 가설을 내세웠다. 그리고 그녀는 필체도 지적했다.


"필체에 무슨 문제라도 있어?"


"저짝에 이름 쓴 거 좀 보래이, AGS가 아무리 고성능이라 캐도 특유의 필체는 재현 몬한다."


"M자 부분에 미세하게 흔들린 거 보이제? AGS가 쓴 손글씨는 전부 자로 그은 것맹키로 정확한디 그라믄 바이오로이드밖에 읎데이."


그렇다면 메이터의 정체에 대한 단서는 '펙스와 깊은 연결고리를 가진 바이오로이드' 로 좁혀지게 된다.


하지만 이것이 오메가의 교란 작전일 수도 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것이 수뇌부의 주장이었고, 나도 이에 동의했다.


가명으로 우리에게 거짓 정보를 흘려 사령관님 아니면 날 붙잡아 회장을 부활시킬 계획에 착수했을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이 정체불명의 조력자의 정체를 밝혀내기보다는 오메가 빌딩으로 진입하는 것이 최우선이었기에 오후 시간 내내 작전을 고안하는 데에 골몰할 수밖에 없었다.


나 또한 마지막 싸움을 준비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머리를 회전시켜 아이디어를 짜냈고, 그렇게 시계가 오후 5시를 향해 갈 무렵 갑자기 사령관님이 소리를 지르며 벌떡 일어났다.


"버려진 지하철을 이용하는 거 어때?"


뉴욕의 지하철 노선은 마치 미로처럼 얼기설기 꼬여 있다. 한 번 잘못 갈아타면 그날은 목적지에 가려고 몇 시간을 소비해야 할 정도로.


그리고 오메가라면 자신의 근거지로 직행하는 노선 외에는 사실상 버려두었을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에 충분히 걸어 볼 만한 패였지만, 버려진 노선들이 어디에 있는지 파악이 안 된 상태이기도 해서 양날의 검이었다.


하지만 최적의 방법임은 이견이 없었기 때문에 멸망 전에 만들어진 뉴욕 지하철 선로도를 펼쳐들고 어디부터 공략할지를 정하려 하던 그때..


갑자기 화면에 노이즈가 끼어 지지직거리기 시작했다.


"무..무슨?"


"으아악! 사이버 사이코다!"


모두가 우왕좌왕하고 있는 사이, 누군가의 형상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은발을 가죽 코트 아래로 길게 늘어뜨린 어느 여성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변조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안녕하십니까, 오르카의 저항군 여러분. 저는 메이터라고 합니다."



**********************************************

정체불명의 협력자 등장!


이런 이미지를 떠올리면 될 거 같음


그리고 급전개해서 미아내 군대 가기 전까지는 끝내고 싶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