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음집



"어? 회장님! 감마님! 멀지 않은 곳에서 한 바이오로이드 무리의 구조 신호를 포착했습니다."


"구조 신호? 연결 해봐."




" 치직─ 치직... 메이데이... 메이데이... 여기는... 프레스터 요안나... 혹시 이 구조 신호가 들린다면... 누구라도 좋으니... 우리를 구해주길 바란다... 혹시나 다른 바이오로이드 생존자들이 있다면... 우리를 꼭...─"




멀지 않은 곳임에도 지직대는 통신 연결을 감안해봤을때 통신을 보내는 쪽의 상황이 그다지 좋지 않다는걸 알 수 있었다. 장비가 불량하다던가, 혹은 배터리가 얼마 없다던가. 이유야 어찌 됐든 회장을 비롯한 포세이돈의 수뇌부들에겐 긴급한 구조 신호로 인식될 수 있었다.




"프레스터 요안나...? 잠깐만... 설마?"


"레오나? 왜 그래?"


"메이! 혹시 이 요안나... 오르카 저항... 아니. 반란군 초창기에 방출당했던 그 요안나 아닐까?"


"초창기에 방출당했다니. 그게 무슨 말이지?"


"설마... 그 요안나가 맞단 말이야?"


"이봐. 너희 둘만 알고 있는 것 같은데 나와 회장한테도 좀 말해주면 안 될까?"


"혹시 이 통신을 보낸 자에 대해 자세히 말해봐."


"간단하게 말하면... 그 사령관은 오르카 초창기때부터 자기 맘에 안 드는 바이오로이드들은 주저없이 방출시켰어. 지금은 지가 꼴리는대로 자기 말만 따르게 만들지만..."


"콘스탄챠 416 그 년은 일찌감치 그걸 파악해서 사령관의 말이라면 무조건적으로 따랐고... 그래서 지금까지 남아있었던거야. 라비아타 통령까지 사망했으니... 아예 비서실장 자리까지 쳐먹었지..."


"물론 지금 오르카의 상황을 생각해보면... 차라리 초창기에 방출된게 조금이라도 나았을지도..."


"간단히 말해서 오르카 호에서 버려진 녀석들이라는 말이지? 명령을 내려라 회장."


"녀석의 손아귀에 있었던 이들이야. 무조건 구출하러 간다. 멀린. 출항 명령을 내리겠다. 통신지의 좌표를 따라 이동하도록 한다."


"요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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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군들... 이제 마지막이다..."


"통신기의 배터리가 완전히 꺼졌슴다... 이 통신이 유일한 희망이지 말입니다..."


"요안나 씨... 전 아직도 이해가 가지 않아요. 원래 이렇게 만들어진 성격인데 이런게 쫒겨날 이유까지 될수 있나요?"


"바닐라 양... 심정은 이해한다만... 좀 처럼 주군의 생각을 알 수가 없으니..."


"이제 그 주군이라는 호칭도 그만해 요안나...! 니가 말 했잖아!! 우린 버림 받은것 같다고! 그리고 진짜 버림 받은거 맞잖아!! 그럼 더 이상 우리 상관도 아닌데 왜 자꾸 주군이라 불러!!!"


"그리폰..."




그리폰은 성격상 진작에 오르카의 사령관을 마음에서 내친지 오래지만 요안나는 긍지 높은 기사도 정신으로 무장한 특성상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주군을 쉽게 떨쳐낼수 없었다. 그녀에게 있어선 주군이 죽으라고 하면 죽는 것 마저도 명예 그 자체였기에... 하지만 오히려 그런 정신이야말로 그녀의 심신과 육체를 더욱이 갉아먹어 점점 피폐하게 변해가고 있었다.





"야. 브라우니 2056... 너 정말 이거 어떻게 못 만져? 너네 부대에 이런거 있었을꺼 아냐...?"


"그리폰 소위님...! 전... 통신병이 아니었지 말입니다... 그냥 알보병이었습니다... 솔직히... 진짜로 모르겠습니다... 대체 저희... 어떻게 해야하는 겁니까..."


"우리 정말... 정말로 살 수 있는거야...? 이런 아무것도 없는 섬에서... 이렇게 죽긴 싫단 말이야..."





초창기. 대륙과 멀지는 않지만 건너갈 수는 없는 애매한 위치의 어느 무인도에 방출되버린 인원들. 처음부터 엇나갔었지만 지금보단 그나마 덜 엇나갔던 오르카의 사령관에게 버림받은 이들이 마지막 통신기 배터리를 사용하여 구조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물론 그리폰이었다면 연료가 다 떨어질때쯤 가까스로 대륙에 도달할 수 있었겠지만, 혼자 탈출한다고 해도 철충들이 득실대는 대륙에서 혼자서 할 수 있는건 없었기에 그저 무인도에서 함께 할 뿐이었다. 이렇다 할 자원도 얼마 없던 이 곳에서의 생활은 초기엔 자급자족이 가능했지만 금세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고, 이제는 이미 지옥으로 변해버린지 오래였다.
결국 이 곳으로 버림받은 이들은 하나 둘 쓰러져가기 시작했고, 이미 처음부터 일개 소대급도 안 되던 인원들은 더더욱 줄어들어 어느 새 살아남은 인원은 현 시점에서 마지막 구조 신호를 보낸 프레스터 요안나, 바닐라 A1, P/A-00 그리폰, 그리고 T-2 브라우니 2056. 4명 뿐이었다. 이 구조 신호마저 그 누구에게도 닿지가 않았다면... 이제 남은 4명을 기다리는 것은 새하얀 백사장과 에메랄드 빛 바다, 그리고 푸르른 하늘에게 안겨진 죽음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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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아아아!!!" "하아악!!" "히야압!!!"



'퍼퍼퍽!! 파아악!! 퍽! 팍!!'



"매니저...? 이러다 샌드백 찢어지겠어. 너무 무리는 하지 마."




한 편. 오르카 호. 어딘가에 있는 피트니스 센터에선 사령관이 권투글러브를 끼고 정신없이 샌드백을 마구 치고 있었고, 그런 사령관의 샌드백을 향한 구타를 레나 더 챔피언이 봐주고 있었다.




"후우... 후우..."


"대체 왜 그러는건가. 설마 며칠 전의 그 일들 때문인가."


"...!! 이 개년아!! 그 때 일 한번만 더 니 입에 올려봐!!"



'퍼억!!'



"크윽...!! ㅁ... 미안하다..."




아무래도 그때의 일을 타인이 직접적으로 언급하는건 그에게 크나 큰 역린이 되버렸는지 레나가 그때의 일은 언급하자 사령관은 레나의 복부를 주먹으로 가격하였다. 아무런 무술도 할줄 모르는 그였지만 오리진 더스트로 인해 강화된 육체까진 무시 못 했는지 레나는 그대로 주저앉아 배를 움켜쥐었다.




"시발... 어떻게든... 뭐라도 해야해...!!"




그리고는 다시 샌드백을 주먹으로 사정없이 두들겨댔지만, 아무리 봐도 그 모습은 절도있는 무술이 아닌 때리고 싶은대로 지 멋대로 마구잡이로 주먹질을 해대는 양아치같은 모습으로 비춰질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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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시각, 그때의 일로 착잡한 감정을 숨길 수 없는건 사령관 뿐만 아니었다. 바로 컴패니언 시리즈. 물론 오르카의 컴패니언이라곤 애초에 세명 뿐이었고, 이제는 페로와 하치코 둘 뿐이었지만.




"... 리리스 언니..."


"하치코... 이제 그만해요... 이제 더 얘기하면 100번째라구요..."


"하지만... 그렇게 빨리 가실 줄은..."


"리리스 언니도 엄연한 군인이에요. 그러니 전장에서 싸우다 전사한건 당연한거에요..."


"그래도... 언니의 유해라도 찾고싶었는데..."


"하치코..."




아직 어리고 맹한 하치코였지만 그렇다고 언제나 천진난만하고 귀여운 모습만을 보여주지는 않았다. 원래 컴패니언 시리즈의 바이오로이드들은 그 개체 수가 적은 편은 아니었지만 오르카의 컴패니언에는 스노우 페더, 포이, 펜리르, 예전 천향의 히루메가 합류하지 않은 반쪽 짜리보다 못 했으니 더더욱 한 개체 한 개체의 의미가 컸을 터. 그런 와중에 한 명이, 심지어 지휘관이 사라져버렸으니 점차 가면 갈수록 이들이 가지고 있던 오르카에 향한 충성심이 옅어져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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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AA캐노니어의 생활관. 아직 미성숙하고 어리숙한 에밀리는 지금까지의 일을 제대로 이해를 하지 못 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녀의 상관 로열 아스널이 왜 저렇게 화를 내고 있는건지, 사령관은 조바심을 내고 있는지. 그녀로서는 도저히 이해를 할수 없는 영역이었다. 사실 이는 아스널 혼자서 화내고 있을 뿐, 에밀리 뿐만 아니라 다른 캐노니어의 인원들도 왜 자신들의 대장이 저렇게까지 분해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아스널 대장님... 왜 저러는거야?"


"대장... 대체 이러시는 이유가 뭡니까. 그 인간님한테 대체 뭐가 그렇게 화가 나신겁니까."




비스트헌터가 아스널에게 계속 물어봤지만, 도저히 자신들이 납득할만한 이유는 나오지 않았다.




"야 비스트헌터. 너도 알잖아! 내가 남자를 유혹할 수 있는 기술은 모두 섭렵했던거 말이야. 근데 그 놈은... 그 놈은 나한테 넘어오지 않았다. 와꾸는 사령관보단 나았는데 말이야..."


"설마... 공적인 일이 아니라 그런 사적인 일로 그렇게까지 앙심을 품었던거에요?"


"사적인 일!? 사령관 녀석이 나한테 내린 명령인데 당연히 공적인 일 아냐? 그리고 나의 유혹을 그렇게 간단히 뿌리치다니... 이건 내 자존심이 절대 용서하지 않는다... 그 새끼... 꼭 우리들의 포격으로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말테야!!"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그때 회의실에서 직접 보셨잖아요. 그 인간이 얼마나 강한 존재인지 말이에요! 증오심이 자신을 잡아먹게 두지 마시란 말입니다!!"


"아스널 대장... 화났어?"


"에밀리. 네 제녹스 레일건은 언제나 항상 정비 해둬. 언젠가 네가 활약해야 할 날이 올꺼다."


"잠깐.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굳이 그런 이유가 있다면 대장이 직접 처리하세요. 이런 일에 에밀리를 휘말리게 하지 마시라구요!"


"야! 비스트헌터! 진짜 아까부터 보자보자하니까... 너 캐노니어 아니냐? 목숨이 두개야? 내 부관이면 내 명령에 누구보다도 충성적이어야 하는게 정상 아니냐? 이 시발년이 어디서 항명을 쳐 해!!"



'퍼어억!!!'



"아악...!!!"




비스트헌터의 나름의 간언이었지만 이는 로열 아스널의 화만 돋구었는지 아스널은 비스트헌터의 배에다 주먹을 갈겼고, 한순간에 배빵을 맞은 비스트헌터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씨발... 그 새끼들 걸리기만 해봐... 캐노니어 전체를 동원해서라도 전부 때려부숴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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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포세이돈의 전함. 회장이 감마에게 안내를 받은 자신의 집무실을 둘러보던 중, 누군가 노크를 하였다.




"사령관? 들어가도 될까?"


"응. 들어와."




레오나가 회장의 집무실로 들어와서, 그에게 조심스레 물어보았다.




"한 가지 물어볼게 있어. 괜찮을까?"


"어떤 거지?"


"분명 우리는 오르카 반란군과 싸우게 될꺼야. 그렇지?"


"그렇지. 이 세계에 남아있는 인간이 나와 그 놈 뿐이라면... 그 놈이 더 이상 씨앗을 뿌리는 꼴을 볼 수는 없어."


"그럼 만약에, 저들이 그 놈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투항을 한다면... 혹은 우리가 데려오는게 가능하다면... 그땐 어떻게 할꺼야?"


"... 그건... 조금 복잡한 문제야..."


"복잡하다니? 뭐가?"


"네가 그랬지? 오르카에 남아있는 유일한 시스터즈 오브 발할라. 그 안드바리라는 아이에 대해서. 그 아이가 신경쓰여서 이 질문을 한거지?"


"역시 사령관과는 대화가 정말 빨라서 마음에 들어..."


"단시간 내에 한 생명체의 자의적인 의지가 완전히 바뀌었다는건 분명 외부에서 인위적으로 바꾼거로 밖에 설명이 안 돼. 근데 이게 어떤 방법으로 바꾼건지를 알아야지. 우리 포세이돈의 모든 바이오로이드들은 메이에게 있던 거부권을 복제하여 장착했듯이 말이야."
"그럼 어디. 레오나. 식당에서 차 한잔 지금 당장 가져와."


"... 여기서 타 마시면 되잖아. 있어봐."


"응. 바로 이런 식으로. 물론 나야 뭐 뇌파라는게 없는 이상 너희들에겐 계급에 의한 명령체계로 명령을 하는거지만. 혹시 그 놈이 인위적으로 신체 내부에 무언가를 심어놨다거나 하는거면... 좀 어려울지도 몰라."


"... 여기 있어."




레오나가 집무실 한켠에 있는 커피포트에서 차 두 잔을 타서 한 잔은 그에게 넘겨주었다.




"음. 고마워. 하지만 만약에 약물을 이용해서 세뇌를 시킨거라면, 약물 치료를 이용해서 다시 우리에게로 포섭할 수 있을지도 몰라."


"우리 안드바리... 제발 무사했으면 좋겠는데..."


"근데 최소한 내가 거기 있을 적에 만나봤던 바이오로이드들 중엔 아예 그 어떤 것도 행하지 않은 녀석들이 더 많은것 같았어. 분명 그건 명령권을 넘어서 아예 자의적으로 그 녀석에게 충성하는 년들이겠지."


"로열 아스널... 콘스탄챠... 정말 가증스러운 년들이야..."


"그 두 개체 다 자신의 부대의 지휘관이었지? 그럼 지휘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그 밑에 것들의 처분 과정도 달라지겠지. 지휘관의 2차적 명령을 어쩔수 없이 따른다면 몰라도, 그 나물의 그 밥이라면..."


"그런건 망설일 필요도 없어. 그 놈을 자의적으로 따르는거면 말이야... 하지만..."


"하지만?"


"사령관... 솔직히 말해. 오르카의 모든 이와는 싸우기 싫은거지? 그냥 그 쪽의 사령관 그 놈이 싫은거잖아?"


"... 부정은 하지 않겠다. 하지만 그 놈에게 다가가는 우리들의 앞길을 막는다면... 주저하는 순간 우린 끝이야."




전투광의 면모는 가지고 있지 않은 그였기에 되도록이면 불필요한 살생은 하고 싶지 않아했다. 애초에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군인이였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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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이사 준비하고 있어서 드디어 다음 편 써왔네... 진짜 순문학 장편 연재 하는 사람들 보면 존경스럽다... 다음 편도 좀 늦을 수 있으니 미리 미안해...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