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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르카가 오메가의 거점을 점령하고 가장 처음 한 일은 선전 방송이었다.

 

 오메가의 폭정에 도망쳐 난민이 되어버린 바이오로이드, 그리고 중소규모의 공동체를 이룬 바이오로이드가 방송을 듣고 오르카에 합류하게 되었다.

 

 안 그래도 오메가의 세력을 흡수하느라 잠수정 시절에서 몸집이 어마어마하게 커졌는데, 난민들까지 몰려오니 기존의 행정인력으로는 답이 나오질 않았다.

 

 출산 휴가를 마친 부사령관은 오랜만에 제복을 입고 업무에 복귀했지만, 그 어마어마한 업무량에 그냥 육아휴직을 쓸까 진지하게 고민했었다.

 

 그나마 부사령관이 부재중일 때 대신 업무를 본 아르망과 시라유리, 오메가의 부관이었던 유미와 이번에 새로 합류하게 된 레모네이드 알파랑 그녀의 부관인 오렌지에이드라도 없었으면 끝이 보이지──.

 

 “──도저히 끝이 보이질 않아요! 저 그냥 다시 외근으로 복귀할래요!”

 “자리에 앉으세요, 오렌지에이드. 부사령관님 앞에서 무슨 무례인가요.”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줄어들지 않는 업무량에 오렌지에이드가 빼액 소리 지르며 자리에서 박찼다. 알파가 눈짓을 주었지만, 오렌지에이드는 그런 건 보이지 않는지 재잘재잘 투정부렸다.

 

 “부사령관님, 부사령관님. 조금만 쉬면 안 될까요? 우리 너무 많이 일한 것 같은데 조금만 쉬어요. 휴식 없이 너무 일만 해도 일률이 늘어나지 않는대요! 그러니까 우리 조금만 쉬어요, 네? 네?”

 

 오르카에서 총 지휘를 하고 있을 사령관을 대신해 부사령관은 전권을 위임받은 상태였다. 그녀의 허락만 떨어지면 아무리 알파가 뭐라 해도 이 지긋지긋한 업무에서 잠깐이나마 빠져나올 수 있었다.

 

 농땡이 치려는 게 아니다. 시간도 벌써 3시로 멸망 전 직장에서도 커피를 마시거나 담배 타임을 가졌을 시간이었다. 거기다 부사령관이 업무에 복귀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그녀 또한 쉬고 싶을 거라 오렌지에이드는 생각했다.

 

 “쉬고 싶어?”

 “네네네네네!”

 “그럼 좀 쉬고 와.”

 “우와! 감사합니다, 부사령관님!!!”

 

 부사령관의 허락에 오렌지에이드는 쾌재를 불렀고, 알파는 이마를 붙잡으며 한숨을 쉬었다. 당장 싱글벙글 나갈 채비를 하던 오렌지에이드는 여전히 서류에서 눈을 때지 않는 부사령관을 향해 물었다.

 

 “부사령관님은 안 쉬나요?”

 “오렌지에이드랑 쉬고 싶은 사람은 가서 쉬고 와. 난 아직 처리할 게 많아서.”

 

 눈조차 마주치지 않고 부사령관은 자신의 할 일만 하였다.

 

 쉬고 싶은 사람은 쉬라고 했지만, 퀭한 눈으로 업무에 집중 중인 시라유리나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는 아르망, 눈치를 보다가 다시 업무에 들어간 유미나 오렌지에이드를 못마땅하게 보는 알파까지.

 

 최종권한자인 부사령관이 움직이지 않는 한 꿈쩍도 하지 않을 그녀들의 모습에 오렌지에이드는 절망하였다. 아무리 오렌지에이드라도 이런 상황 속에서 혼자만 쏙 빠질 정도로 눈치 없는 편은 아니었다.

 

 결국, 울며 겨자 먹기로 오렌지에이드는 다시 자리에 착석했다.

 

 “쉬고 싶다고 하지 않았어? 왜 다시 자리에 앉아?”

 “히잉 아니에요, 부사령관님. 다시 생각하니 전 역시 일하는 게 좋아요…….”

 “그, 그래? 그럼 조금만 더 부탁할게, 오렌지에이드.”

 

 일하는 게 좋다는 오렌지에이드의 별난 대답에 부사령관은 얼떨떨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야 그동안의 공백기도 길었고, 갑작스레 오메가의 세력을 흡수한 탓에 감마와 델타와의 국지전에 사령관이 고생하고 있기도 해서 그의 부담을 최대한 줄여주기 위해 힘내고 있었다.

 

 원작을 통해 감마와 델타의 과격함을 알았기에 부사령관은 오메가를 붙잡자마자 알파를 통해 서둘러 오메가의 세력을 장악했다. 오메가의 공백을 깨닫고, 감마나 델타가 그대로 오메가의 세력을 장악했다면 오르카는 원작보다 더욱 암울한 전망을 보내야만 했을 거다.

 

 신속히 오메가의 세력을 장악한 오르카는 유리한 고점에서 감마와 델타를 상대할 수 있었고, 다행히 큰 피해 없이 대치 상태에 놓일 수 있었다.

 

 훗날 오메가의 세력을 완전히 소화해내고, 전비를 갖춰 대대적으로 펙스를 소탕해 나머지 세력까지 흡수하기 위해서라도 부사령관은 열심히 정리하고 있었다.

 

 그동안 오메가가 멸망 전 인간들처럼 바이오로이드를 갈아 넣고, 효율 중시로 굴리다 보니 이에 대한 환경개선은 물론이고, 계속해서 꾸역꾸역 합류 중인 난민 중 첩자는 없는지 선별하는 등 대부분 오메가가 싼 똥을 치우는 중이었다.

 

 기존에 오메가의 밑에서 일하던 유미가 없었다면 인수인계도 없이 오메가의 세력을 관리하는데 더 큰 시간을 보내야만 했을 거다.

 

 “그래도 너무 무리하지는 말자. 쉬고 싶으면 쉬는 거지. 내가 언제 못 쉬게 한다고…….”

 

 부사령관의 말에 오렌지에이드는 입술을 삐죽 내밀었지만, 업무에 집중하느라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후우, 그러고 보니 그날 이후로 리리스한테 신경을 써주질 못했네.’

 

 할아버지와 마리아의 재혼으로 리오보로스의 성을 얻게 되었다는 사실에 리리스는 크게 격분했었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악역무도한 테러리스트와 재혼해서 부사령관에게 그 가증스런 ‘리오보로스’의 성을 붙여준 거냐며.

 

 부사령관도 그때는 많이 혼란스러웠지만, 할아버지가 적은 원작의 다이어리를 떠올리고는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었다.

 

 마리아 리오보로스는 죽는 순간까지 앙헬을 죽이라며 바르그가 속한 엠프레시스 하운드에 명령하였고, 그녀들은 사령관을 만나기 전까지 마리아의 무의미한 명령만을 수행하며 100년이란 시간을 보냈다.

 

 특히 장화는 몽구스팀, 정확히는 홍련을 증오하며 그녀들을 죽여왔는데 할아버지가 마리아를 구원하면서 그럴 일은 사라졌다.

 

 아마 할아버지는 장화와 바르그, 엠프레시스 하운드의 바이오로이드들이 가여워서 마리아를 도왔을 것 같았다. 거기다 그 또한 앙헬에게 원한을 가지고 있었기에 마리아와 안면을 가졌던 만큼 그녀에게 정이 들었을지도 모른다.

 

 그랬을 것이라고 부사령관은 생각해야만 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자신에게 ‘리오보로스’를 붙일 리 없을 테니까.

 

 ‘할아버지, 정말 마리아 리오보로스랑 무슨 생각으로 결혼하신 건가요.’

 

 부사령관 본인도 확신하지 못하는데 리리스에게 어떻게 설명해주겠는가.

 

 “하아, 머리 아파 죽겠네…….”

 “부사령관님?”

 “응?”

 

 무심코 뱉은 부사령관의 말에 유미가 당황한 얼굴로 보고 있었다. 다른 이들 또한 하던 일을 멈추고, 부사령관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유난히 오렌지에이드가 눈을 빛내고 있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신경 쓰지 말고 하던 일 마저 해.”

 

 뒤늦게 부사령관은 무안한 얼굴로 손을 흔들었다. 업무에 집중하랴 리리스 걱정하랴 정신없었다.

 

 “폐하, 이번에 합류한 난민 중 폐하께서 봐주셔야 할 분이 계십니다.”

 “내가?”

 

 난데없이 아르망이 부사령관에게 신상이 적힌 서류를 건네주었다. 그동안 난민에 대한 신상 조사나 첩자 확인 같은 건 아르망이나 시라유리 선에서 처리되었는데 굳이 부사령관에게 의아할 뿐이었다.

 

 그래도 아르망이 주는 것이기에 부사령관은 서류를 꼼꼼히 확인해보고는 눈동자가 흔들렸다.

 

 “페레그리누스랑 글라시아스, 그리고…… 금란 S7?”

 “그분께서는 폐하와 안면이 있으시다고 하시던데,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서류에 적힌 난민 목록에는 AGS 두 기와 바이오로이드 한 명이 일행으로 등록되어 있었다.

 

 앞의 두 AGS는 만나본 적 없지만, 최근 바르그에게 들은 얘기와 자신과 안면이 있는 금란. 그들을 조합해보자 부사령관의 머릿속에 띵-하고 떠올렸다.

 

 “……잠깐 나갔다 올게.”

 

 정말로 자신이 알고 있는 그들이 온 건지 확인하기 위해 부사령관은 하던 일도 멈추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미 예상했는지 부사령관이 자리에서 박차고 일어나도 아르망은 별다른 표정 변화 없었다. 그녀가 자리를 비우자마자 기지개를 쭉 피더니 오렌지에이드를 향해 싱긋 웃어주었다.

 

 “폐하가 오시기 전까지 조금 쉬도록 할까요?”

 “꺄아! 아르망 씨 최고!”

 

*

 

 “아가씨!”

 “금란? 진짜 금란이야?!”

 

 난민 캠프에서 금란을 보자마자 부사령관은 자신이 알던 그 금란을 바로 떠올릴 수 있었다.

 

 오르카에도 같은 개체가 있지만, 함께 살았던 그녀였기에 알 수 있었다. 눈앞에 있는 금란은 100년 전 아니, 부사령관이 태어나기도 전부터 할아버지를 모셔 온 그 금란이 맞았다.

 

 “세상에, 정말 아가씨야. 주인어른의 말씀이 맞았어.”

 

 금란은 떨리는 손으로 부사령관의 손을 붙잡아서 몇 번이고 눈에 담았다. 너무 감격스럽고, 감격스러워서 이미 두 눈은 눈물로 가득했다. 그리고 그건 부사령관도 마찬가지로, 누가 보든 말든 그녀 또한 눈물을 글썽이면서 금란을 끌어안았다.

 

 “응, 나야. 나 여기 있으니까 울지 마, 금란.”

 “흑, 아가씨! 건강히 지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연신 감사함을 외치며 금란은 부사령관을 꼬옥 끌어안았다.

 

 “이봐, 아가씨. 감동적인 재회도 좋지만, 주변도 좀 볼 수 없을까?”

 “……아.”

 

 부사령관은 그제야 금란과 함께 온 이들도 볼 수 있었다.

 

 자신에게 말을 건 거대한 독수리의 형상을 한 AGS 페레그리누스, 그리고 그 옆에 얼음 용 글라시아스가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 외에 갑작스런 인간의 등장으로 소란스러워진 난민 캠프를 보고서 부사령관은 머쓱해서 머리를 긁적였다.

 

 “그 일단 자리 좀 옮기자. 보는 눈이 너무 많긴 하네.”

 

 오르카 안에서라면 모를까. 지금 부사령관은 오르카 안이 아닌 밖이고, 그녀를 오늘 처음 만난 이들로 가득했다. 이곳 거점의 총독이란 자리도 있는 만큼 너무 엄격하지는 않아도 나름대로 체통을 보이기는 했다.

 

 자리를 옮기자는 부사령관의 말에 그들은 수락하였고, 금란만이 아니라 AGS도 함께였기에 페로의 안내로 대화를 나누기 좋은 정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고 보니 인사가 늦었네. 바르그한테 들었어. 페레그리누스랑 빙ㄹ……글라시아스였지? 만나서 반가워.”

 “푸하핫! 손녀 아가씨, 분명 누님한테 빙룡이라고 부르려고 했지?”

 “아, 아니야! 물론 빙룡이 더 정감 가긴 하지만, 그래도 초면인데 어떻게 그래!”

 “얼마 만에 들어보는 누님의 별명이냐! 배는 없지만 웃겨서 배가 아프네!”

 

 경박하게 웃는 페레그리누스를 글라시아스가 날개로 후려쳐 침묵시키고, 부사령관의 얼굴을 골똘히 바라보며 자신의 감상을 말했다.

 

 “……정말 그이의 손녀로구나. 진짜로 살아있을 거라 생각하지 못했단다.”

 “아하하……운이 좋아서 이렇게 됐어.”

 

 멸망 전 자신을 알던 바이오로이드와 재회할 때마다 다들 글라시아스와 비슷한 반응이었다.

 

 아무리 그녀의 할아버지가 손녀가 살아있고, 언젠가 나타날 거라고 장담했어도 인류가 멸망한 지 거의 100년이란 시간이 흘렀는데 인간이 멀쩡히 살아있을 리가 없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이렇게 부사령관을 만날 때마다 감격하거나 놀래서 이제는 익숙해진 참이었다.

 

 “그나저나 금란.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

 

 짧게 두 AGS와 인사를 마친 뒤 부사령관은 금란에 그동안의 근황을 물었다. 바르그에게 들었기로는 마지막까지 할아버지를 모시고, 지켰다는데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했다.

 

 “네, 아가씨. 그러고 보니 방금 바르그한테 페레그리누스와 글라시아스의 얘기를 들으셨다고 하셨는데, 그분과 만나셨나 보군요.”

 “당연히 만났지. 나를 보자마자 새로운 여제님이라고 했는데, 호칭이 좀 부담스럽다고 하니 주인님이라고 부른 거 있지?”

 “후후, 그러시군요. 그럼 혹시 아가씨가 리오보로스의 성을 얻게 된 일도 들으셨습니까?”

 “아, 그거…….”

 

 얼마 전 들은 할아버지와 마리아의 재혼했었다는 얘기가 떠올라 부사령관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응. 할아버지가 재혼하셨다며. 정말 충격적이긴 했지.”

 “아가씨…….”

 

 여전히 두 사람의 재혼에 혼란스러웠던 부사령관은 의기소침해졌다. 그런 부사령관을 금란은 안쓰러운 눈으로 바라보며 자신의 이야기를 꺼냈다.

 

 “……그날, 마리아 님이 눈을 감으신 뒤, 주인어른께선 크게 장례를 치러주셨습니다. 인류가 멸망한 뒤 마지막이 될 장례식이라면서 말이죠.”

 

 그때의 일을 회상하자 금란은 눈을 감았다.

 

 “장례를 마치신 뒤, 주인어른께서는 여생을 보낸다는 이유로 여행을 떠나시기로 하셨죠. 밖은 철충이 가득하고, 휩노스 병에 걸릴지 모를 상황이었음에도 주인어른의 고집은 아가씨도 아시겠죠?”

 “할아버지 고집이 한 소고집하긴 했지.”

 “후후, 아가씨 말대로 주인어른께서는 기어코 스발바르 제도까지 가셨었죠.”

 “……그렇게 멀리 갈 동안 아무 일 없었어?”

 

 오르카를 탄 것도 아니고, 당시 멸망한 인프라로 그 먼 곳까지 간 할아버지의 행동력에 부사령관은 질린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금란도 거기에 동의하는지 어색하게 웃었다.

 

 “저는 주인어른을 끝까지 모셨고, 마지막 남은 인간을 지켜주시겠다고 페레그리누스와 글라시아스도 함께해주셨죠. 아, 지금은 없지만, 주인어른께서 서거하시기 전까지는 장화 양이랑 천아 양도 함께 지냈었습니다.”

 “할아버지가 장화랑 친했었다고 했었지.”

 

 천아는 장화를 놀리기 좋아한 건지 원작에서도 종종 둘이 연락을 주고 받았다고 했었다. 할아버지가 원작을 틀어버렸지만, 그래도 둘이 친분이 있긴 했는지 같이 다녔나 보다.

 

 “네, 덕분에 든든했었죠. 물론 그것 말고도 대부분 배를 타고 다녀서 철충의 위협에선 안전했지만, 휩노스 병은 정말 놀랍게도 천수를 누리실 때까지 걸리시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주무신 것처럼 너무 평화롭게 가셨습니다.”

 “그렇구나…….”

 

 휩노스 병에 걸리면 고통스럽게 죽는다. 하지만 부사령관은 할아버지가 휩노스 병에 걸리지 않고 아주 편안히 눈을 감았단 사실에 안심하였다.

 

 “다행이네. 평생 고생만 하셨었는데, 마지막엔 편안히 여생을 보내셔서.”

 “므네모시네 님이 편의를 봐준 덕분이었죠. 아, 므네모시네님은 스발바르 제도에 있는 기억의 방주의 시설을 관리하는 바이오로이드입니다.”

 

 이미 원작을 통해 알고 있지만 부사령관은 마치 처음 들었다는 듯이 패널로 정보를 검색했다.

 

 “뭔가 감정 없는 로봇처럼 무기질 해보이네.”

 “처음 뵈었을 땐 저도 그렇게 생각했지만, 그분은 감정에 서투르셨을 뿐입니다. 오래 지내다 보니 여러 가지를 알게 되었는데 아가씨도 만나신다면 마음에 드실 겁니다.”

 

 원작에서는 아메리카를 하도 들쑤셔서 성난 오메가를 피해 임시거점으로 스발바르 제도로 갔었지만, 오메가를 제압하고 아메리카에 자리를 잡은 이상 반드시 갈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그곳에는 아직 오르카에서 얻지 못한 바이오로이드 유전자와 인류가 가지고 있었던 막대한 정보가 담겨있었다. 나중에 여유가 생긴다면 방주를 확보하러 가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므네모시네 님의 배려로 편히 남은 시간을 보내시는 동안 주인어른께선 자신이 살아온 인생을, 그리고 마리아 님을 생각하셨습니다.”

 “……할아버지는 마리아를 사랑하셨어?”

 “예. 그렇기에 마지막엔 아가씨께 미안해하셨습니다.”

 

 곁에 있었던 금란이었기에 할아버지의 마음을 알 수 있었다. 마리아의 업보와 리오보로스의 악명으로 어쩌면 부사령관에게 오점을 남길 수도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할아버지는 마리아의 부탁을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으로 보게 될지 모를 인간이었고, 함께 겪은 추억이며, 뒤늦게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기에 그녀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자신의 선택으로 손녀에게 상처를 주게 될 것이기에 미안했었다.

 

 모든 얘기를 듣고 부사령관은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할아버지는 결국 마리아를 사랑하셔서 결혼하였다. 그리고 자신의 선택으로 부사령관이 겪게 될 일을 생각해 마음 편치 않으셨다. 그래서 돌아가시기 전까지 죄책감에 미안해하셨다고 한다.

 

 비록 직접 만나서 들을 수는 없어도, 금란을 통해 할아버지의 일을 정리해보니 적어도 생각 없이 마리아와 결혼한 건 아니란 결론이 들었다.

 

 “……그나마 펙스 일가랑 맺지 않아서 다행이네.”

 “그러셨다면 저도 주인어른께 한 말씀 올렸을 겁니다.”

 “푸읍!”

 

 매섭게 눈을 부릅뜨며 일장 연설할 금란과 벌벌 떨고 있을 할아버지의 모습을 생각하다 부사령관은 웃음이 나왔다.

 

 “조금은 풀리셨습니까, 아가씨.”

 “후우, 덕분에 머리가 개운해졌어. 고마워, 금란.”

 

 부사령관은 할아버지와 마리아의 재혼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평생 가족을 지키려고 발버둥 치신 끝에 손녀를 지켜내셨다. 그리고 홀로 남아 여생을 보내시는데 재혼 정도야 하실 수 있으니까.

 

 비록 새 할머니인 마리아 리오보로스가 테러를 일삼은 악당이고 리오보로스라는 가문도 문제가 많기야 하다. 안 그래도 가끔 부사령관은 멸망 전부터 생존한 바이오로이드한테 멸망 전의 인간이란 이유로 색안경 끼는 경우도 있었는데 리오보로스까지 붙는다면 어떻게 될지.

 

 ‘이건 라비아타나 무용하고 논의해봐야겠다.’

 

 복잡한 건 미래의 자신에게 넘기기로 하였다.

 

 “이 정도면 리리스도 그럭저럭 납득해주려나.”

 “그러고 보니 리리스 양이 보이지 않는군요. 아가씨 곁에 꼭 붙어있을 줄 알았는데.”

 “아하하, 그게 이런저런 일이 있었는데…….”

 

 리리스를 찾는 금란에게 부사령관은 어떻게 설명해줘야 할지 난감하였다.

 

 “주, 주인님!”

 

 그런데 부사령관이 설명하려던 중, 페로가 급박한 얼굴로 부사령관을 불렀다.

 

 평소 얌전한 모습과 다른 모습에 심상치 않음을 느낀 부사령관은 긴장한 채 그녀의 말을 기다렸다.

 

 “리리스 언니가 바르그 양과 싸우고 계십니다!”

 

 부사령관은 다시 머리가 아파왔다.



언제 한번 사고칠줄 알았습니다, 리리스는. 다음 편은 화난 부사령관을 만날 수 있겠습니다!


월요일 예비군 다녀온 뒤로 감기 걸려서 쓸 기운 없다가 막상 나았는데 감 잃어서 이제서야 올리네요.


역시 군복을 입으면 디버프에 걸리는 게 확실한가 봅니다.


다음 편은 최대한 일찍 올리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