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와 같았다면 화기애애했을 면담 자리가 이토록 불편해진 것은 단순한 안건 하나 때문이었다.


최근 오르카에서 본격적으로 시행된 내부 인트라넷 커뮤니티에서 익명성 보장을 철회하자는 주장. 발의자는 오르카 갤러리의 총 관리자인 '유미'로 가뜩이나 많았던 통신 업무에 더해 갤러리의 관리까지 더하니 완벽한 폐인으로 변모한 모습이었으나, 아무리 그래도 익명성을 철폐하자는 주장에는 선뜻 동의하기 어려웠다.


그리고 안건 발인자인 당사자, 유미는 쾡한 눈초리로 열변을 토해내고 있었다.


"하... 사령관 님이 몰라서 그렇지... 정말 빡세요 이거... 그냥 유동만 때려잡으면 된다니까요?"

"하핫, 나도 가끔 구경해보는 편이긴 하지만..."


대다수의 글이라고 해봤자 '사령관 똥꼬 따먹고 싶다' '쇼령관 자는 모습.png' 같은 무의미한 글들 뿐. 자신을 대상으로 한 온갖 추악한 욕망의 심연을 들여다 보는 것은 충분히 고통이었지만 그럼에도 그런 것들로 사랑해 마지않는 대원들의 스트레스가 풀린다면 유쾌하게 넘길 수 있었다.


"보안 지침도 바꾸고 검열도 하니까 요즘에는 펙카스도 줄었잖아. 그리고 유동 ip를 막는 문제는 개인적으로 심각하게 생각해봐야 한다고 봐. 커뮤니티에 익명성이 보장되어야 진솔한 이야기도 나오는 법이니까."

"펙카스... 그거야 내성 생기면 타격이 없는데... 문제는 악질 분탕이에요."

"분탕?"


보안 지침으로 인해 검열을 빡시게 돌리니 펙카스 테러는 근절되다시피 했으나 문제는 분탕이란다. 물론 커뮤니티 안에서 모두가 화목하게 지내는 것은 기대하지도 않았다. 하물며 익명성이 보장된 곳인데, 서로 평소 할 말 못할 말 다 하는 곳이다 보니 가끔 '키배'가 벌어지고 심심찮게 저격 당해 차단 문의를 내달리는 야생과 같은 곳 아니던가.


그럼에도 익명성을 보장하는 이유는 솔직한 말로 내가 활동하기 편하기 때문. 간혹 내부 규정을 손 보거나 훈련 및 작계를 시행할 때, 이곳보다 병력들의 여론을 알기 편한 장소도 없었으니까.


"요즘 사령관 님께서 AGS들의 주유구에 뿍짝뿍짝 틴틴틴 한다는 꾸준글을 달리는 년인지 놈인지... 아무튼 그런 분탕이 생겼다니까요."

"하하... 놈이라니... 설마 날 의심하는 건 아니지?"

"...."

"난 결백해."


AGS의 매끈하고 쥬지가 웅장해지는 자태에 꼴린적이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이번 건은 정말로 억울했다. 그런 내 억울함을 토로하자 유미는 짧은 한숨을 내쉬고 말을 이어나갔다.


"뭐, 사령관 님의 IP 내역은 클린했으니... 사령관 님은 당연히 아니겠죠."

"조사해보긴 했다는 소리구나."


이토록 믿음을 주지 못했다니.


"물론 유력한 용의자가 있긴 해요."

"용의자? 누군데."

"그렘린 씨랑, 포츈 언니요."

"아..."


확실히 그 둘이라면 용의 선상에 올라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특히 그렘린은 AGS라면 환장하니까. 그런데 포츈? 포츈은 그런 커뮤니티 활동에는 관심 없어 보이던데.


"가장 유력한 건 그렘린 씨에요. 포츈 언니는 그런 커뮤니티 활동에 전혀 관심이 없으시거든요."


유미 역시 포츈을 의심하긴 했으나 커뮤니티 활동에 관심도 없는 그녀를 확신하지는 못한 모양이었다. 그 뒤 서로의 추론을 거듭해 가장 유력한 용의자로 선정된 그렘린을 소환했으나, 그렘린은 억울하다는 듯 팔짝 뛰었다.


"저, 정말 억울해요!! 제, 제가 AGS를 좋아하긴 하지만...! 그, 그래도..."

"음... 그렘린, 정말 믿어주고 싶기는 하지만..."

"그렘린 씨, 제가 완장 권한까지 줬잖아요. 왜 그러셨어요."

"정말 저 아니에요!"


거의 울상이 된 그렘린을 뒤로 하고 유미는 즉석에서 ip 내역을 조사했으나 예상 밖의 결과가 나왔다.


"뭐, 뭐지? 진짜로 최근에 글을 쓴 내역이 없네..."

"그러니까 저 아니라고 했잖아요!"

"어어? 이러면 누가..."

"사령관 님! 전 유미 씨가 준 권한으로 그저 비틱이나 때려잡고 있을 뿐이었다구요! AGS에 박는 사령관 님 꾸준글이 꼴려서 냅두기는 했지만... 아무튼 전 아니에요!"


결국 눈물까지 보일 지경에 이른 그렘린을 유미와 함께 위로하던 중에 뜻밖의 인물이 면담 장소에 난입했다. 난입한 자의 모습이 보이지는 않았으나, 육중한 발소리와 특유의 기어가 돌아가는 소리, 그리고 무미건조한 기계음이 섞인 난입자는 자신을 이렇게 소개했다.


"사령관. S25 스파르탄 캡틴, 인식 번호 6974. 명령 프로토콜에 따라 범죄인 양도 절차를 진행합니다."

"버, 범죄자?"

"그렇습니다. 사령관. 본 개체는 '오르카 갤 사령관 AGS봇박이 사건'의 범인을 현장에서 체포. 사령관에게 양도합니다."


그리고 캡틴의 뒤로, 진정한 범인의 실체가 드러났다.










"항의합니다. 항의합니다. 항의합니다. 항의합니다......"


"깡통계는 죽여야지. 유미야 갱차 낭낭하게 넣어 드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