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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아아! 정말! 닥터는 못 당하겠네!"


 탈론페더는 한숨을 내쉬면서 모든 영상, 음성 기기가 망가진 걸 보았다. 닥터가 마지막에 카메라를 보면서 찡긋 웃어보였던 건 결코 탈론페더의 착각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탈론페더는 기계가 망가진 것보다도 사령관의 변한 행동이 더 신경쓰였다. 그녀가 알고 있던 그는 결코 닥터가 저렇게 서슴없이 다가가는 걸 허락하던 인간이 아니었다. 그녀는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했다. 모두에게 사랑받던 닥터가 사령관에게 친근하게 다가가려하자마자 뺨을 얻어맞고 바닥을 나뒹굴던 장면을.


 닥터는 영문을 몰라 울먹거렸고, 사령관은 말했다. 도구 주제에 인간과 대등하게 굴려하지 말라고. 최고급 중의 최고급이라고 할 수 있는 닥터에게조차 이 지경이라면 우리는 희망이 없다고 탈론페더는 판단했다. 그리고 그 날, 탈론페더는 자매들을 위해 사령관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일을 자처했다. 알려지지 않으면 사령관도 제재하지 못하니 차라리 음지에서 조용히 활동하기로 한 것이다. 다행히도 사령관은 세세한 일에는 관심이 없었고 자신의 원초적이고 말초적인 욕망을 채우기만 한다면 아랫것들이 무슨 일을 하든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렇게 다른 세계에서 야한 일을 좋아하고, 관음증 환자라고까지 불리던 탈론페더는 온갖 끔찍한 것들을 보아야 했다. 할 수만 있다면 자신의 눈을 후벼파고 싶은 충동을 느낄 정도였지만 그녀는 사명감 하나로 여기까지 버텼다.


 "빙의라..."


 탈론페더는 그 단어의 뜻을 알고 있었다. 어디까지나 사전적인 의미로만 알고 있었으나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요컨대 지금 사령관의 몸에는 다른 자가 들어섰다는 뜻이 아닌가? 그것이 철충일 수도 있고, 바이오로이드일수도 있고, AI의 파편일 수도 있으며, 정말로 인간의 영혼같은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탈론페더는 이 사실을 선뜻 알아보기가 두려웠다. 그래, 정말 사령관이 다른 사람으로 바뀌어졌다고 치자. 그래서 네, 알겠습니다. 하고 순순히 받아들일 자매가 과연 몇이나 될 것인가?


 인류에 대한 강박적인 충성과 애정으로 가득찬 바이오로이드에게 이 사실을 알린다면 행동 패턴은 둘 중 하나다. 이해하지 못하고 방치하던가, 아니면 인류를 해쳤다고 판단하고 공격하던가. 아무리 그것이 증오해 마땅한 인류라 하여도 인류에 대한 보호 관념은 지울 수 없는 강력한 충동이다. 아마 그 충동에 저항할 수 있는 것은 이해력이 매우 뛰어난 개체, 예를 들면 닥터나 아르망같은 고지능 개체이거나 혹은 자율성이 매우 높아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할 수 있는 라비아타, 메이, 무적의 용 정도일 것이다.


 그것도 아니면 탈론페더처럼 정신이 망가질 대로 망가져 고장난 개체거나.


 "지휘관 회의를 개최하면 당장 칼부터 들이밀 분들이...어디보자..."


 칸, 레오나, 마리, 로열 아스널. 이 넷이 위험군이다. 적과 아군이라는 칼같은 선 위에서 움직이는 이들은 적아가 판명되기 전까지 사령관을 아군이라 보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진실이라고 판단되는 정보를 들을 때까지 무저갱에서 올라온 듯한 고문을 행할 것이 뻔할 뻔자. 홍련은 테러리스트들을 대하던 경험이 많은 지라 상황을 좀 더 알아보거나 혹은 대화를 통한 세련된 심문을 행해 정보를 뽑을 것이다. 이 쪽도 정상적으로 대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저 '사령관'의 정신이 망가져버릴 확률은 낮은 편이었다. 리리스의 경우는 확언하기 어려웠다. 탈론페더의 기억 상으로 벌써 3번이나 갈아치워진 리리스는 그 전대의 기억은 없어도 기록은 열람한 상태다. 이로 인해 전 사령관에 대해 정나미가 떨어질 때로 떨어진 지 오래라, 사령관을 내버려둘 확률도 있었다.


 그렇기에 조금은 정보와 시간이 더 필요했다. 게다가 지금 사령관의 행보에 조금 기대감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점점 수위를 높여가며 진행되던 바이오로이드 능욕이 뚝 끊기지 않았던가. 처음에는 만만한 브라우니 정도를 손대던 사령관은 고급 바이오로이드로 그 단계를 높여가더니, 마침내 그조차 질려버린 듯 어린 바이오로이드의 사지를 찢어놓고 성처리 도구로 써먹는 지경에 이르렀다. 웃긴 건, 그건 그나마 익숙해지면 버티기라도 할 만했다는 거다.


 점점 반응이 둔해지는 바이오로이드들을 보고서 사령관은 갑자기 능욕을 그만두었다. 처음에는 질려버렸나, 싶어서 안도감을 느꼈던 그들은 곧 잘못된 판단이란 것을 깨달았다. 사령관은 바이오로이드들을 산채로 악기로 만들기 시작했다. 트럼펫, 바이올린, 피아노...어린 바이오로이드 수십 체를 사용해 살아있는 거대 오르간을 만들었을 때는 칸조차 안색이 새하얗게 변해 구토를 할 지경이었다. 그걸 보고 쾌활하게 웃던 사령관은 탈론페더가 보기에 인간이 아니라 악마나 다름없었다. 그나마 질척거리고 시끄럽다는 이유로 금방 그만둬서 다행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사후는 평온하지 못했다. 그렇게 사용하고 난 바이오로이드의 유골은 적당히 모아서 식기로 만들거나 장식품으로 만들고, 가죽은 벗겨서 제품으로 만들어 차고 다녔으니 그 악행은 치가 떨릴 지경이었다. 지금의 사령관은 그 유품들의 정체를 알아차리고선 대경실색해서 철저하게 분류해 창고에다가 박아넣었지만 말이다. 망자의 신원을 확인해 분류한 것을 보면 장례라도 치뤄줄 모양이었다. 그것만으로도 탈론 페더는 저게 설령 철충이라 하더라도 용인할 마음이 들었다. 이미 죽어버린 자매들에게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어차피 멸망 전에도 자매들은 죽어나가기 일쑤였으니까.


 "...하, 나도 참 미쳤나봐. 시발, 이제와서 인간이 다시 좋아지려 하다니."


 탈론페더는 사령관의 창고에서 훔쳐온 술병을 이빨로 까버리고 꿀꺽꿀꺽 들이켰다. 깊은 어둠속에서 따스한 온기와 빛을 느낀 자는 결코 다시 헤어나올 수 없다. 그들에게 있어 빛은 구원이 아니라 맹독 중의 맹독이다. 어디의 소설책에서 읽었던 말이던가? 아니면 고아한 문학? 영화? 기억나지 않았지만 탈론페더는 그 말이 참으로 맞다고 생각했다. 이제와서 기대하게 만들다니, 참으로 못된 사령관이 아니던가.


 "시발, 시발....제발 인간이어줘요, 사령관. 딸꾹. 응? 죽는 꼴 보기 싫으니까...나, 이 지옥에서 더 살아갈 자신 없으니까..."


 탈론페더는 미친 년처럼 히히 웃으면서 술병을 또 깠다. 유미가 왜 혼자 마셨냐며 지랄하는 꼴이 눈에 선했으나 그녀는 아무래도 좋았다. 지금은 그저 취하고 싶은 기분이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자신의 말을 누군가가 듣고 있다는 것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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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데없는 여담 : 수위가 너무 높아서 깎았다.


내일은 진짜 쉰다.

그리고 군만두 좋아하는 레후.

줄 수 있으면 줘봐라! 다음 편을 모두 미래에 두고 왔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