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아앙-


크나큰 총성과 함께 에밀리의 미간이 꿰뚫렸다.

한 줄기의 피를 흘리며 분홍 머리의 소녀가 쓰러진다.

동료의 죽음.


"에밀리!"


한 여장이 저격총을 들고 전선으로 뛰쳐나갔다.


-대장 안 됩니다!

-대장!!


"에밀리를 구해야 한다!"


무전기에서 온갖 고함이 쏟아진다.

전체를 살피던 지휘관이 전장을 이탈하는 순간, 전쟁은 패배한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다.

전장에서 아군을 지휘하고 위험에 빠진 아군을 대물저격총으로 구하던 여장, 로열 아스널.


-대장 함정입니다! 지금 대장이 거기로 가버리면...!


비스트 헌터의 외침은 그녀에게 닿지 않았다.

이어폰을 끼고 있어도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들리는 건 자신의 박동뿐이었고,

보이는 건 쓰러진 소녀뿐이었다.


탕-


울려 퍼진 총성과 함께 두꺼운 총알이 그녀의 관자놀이를 꿰뚫었다.


캐노니어의 큰 별이 졌다.






"큰 실수를 저질렀어, 아스널. 너 정도 되는 인물이 정에 휘둘리다니."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아스널은 병상에 앉아 있었다.

오른쪽 시야가 보이지 않는다.

그녀의 세상이 절반으로 축소됐다.


"게다가 하필 오른쪽 눈을 잃었다니. 앞으로 저격총은 쏠 수 없겠군."

"......"

"마음이 꺾였으니 다시 전장에 설 수도 없을 테고."


아스널은 침묵했다.


"하나만 말하게. 왜 그랬나?"

"에밀리는....."


아스널은 쓰게 웃었다.


"에밀리만은 죽지 않았으면 했습니다."

"....에밀리를 버팀목으로 삼았던 건가, 아스널 소장."

"면목 없습니다."


처음에는 인류를 지키겠다는 사명감이 더 컸다.

스러나 언제부터였을까.

하나씩 쓰러져가는 동료들을 보며 아스널은 두려워졌다.

제발, 옆에 있는 이 소녀만큼은 쓰러지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었다.

솔직히 인류보다는 에밀리를 더...


전쟁은 인간을 피폐하게 만든다.

아니.

감정 있는 모든 것을 피폐하게 만든다.

바이오로이드라 할지라도 마찬가지였다.


"에밀리를 지키는 것이 저의 임무이자, 사명이었습니다."

"네가 정한 사명이지."

"에밀리의 죽음은 곧 저의 죽음. 장군. 저는 더 이상 전선에 설 수 없습니다. 처분해주십시오."


아스널은 죽음을 바랐다.


"......난 너희를 단순한 기계라고만 생각했었지. 인간의 모습을 한 기계라고."


장군이 말한다.


"너희가 투입된 이후 나타나는 수치는 인간이 할 수 없는 것이었어. 기계나 가능한 일이었지. 그러나 그것도 어느 순간부터 무너지더군."


장군이 담배에 불을 붙인다. 매케한 연기가 피어오르며 천장으로 날아올랐다.


"전체적인 숫자는 커졌지만, 그래프의 양산은 결국 인간과 같아졌다. 그에 따라 내 생각도 조금씩 변하게 됐지. 내가 두 눈으로 본 것들은 단순한 그래프 양상이 아니었으니까."

"장군...."


아스널은 눈을 크게 떴다.

장군의 입에서 저런 말이 나올 줄은 몰랐다.

저런 말을 할 사람이 아니었다.


"너희 부대에는 특히 신세 진 게 많았지."


장군이 편지를 내려놓는다.


"이건 내 마지막 호의다."

"내용을 확인하겠습니다."


아스널은 편지를 뜯어서 본다.

첫 문장은 아래와 같았다.


[로열 아스널. 현 시간부로, 당신은 저의 소유입니다.]


"자네는 오늘 밤 죽었네. 사방으로 흩어진 잔해 속에서 간신히 찾아낸 모듈들은 내가 직접 인수받고 파괴한 것일세."

"......"


현재 아스널의 머리에는 전투모듈과 지휘모듈, 그리고 기밀을 저장했던 메모리들이 사라져 있었다.


"잘 지내게. 아스널 소장. 아니. AA캐노니어의 유령이여."


장군이 떠난다.


"참."


그가 등을 보인 채로 말한다.


"나가기 전, 서랍을 보시게."

"....?"


아스널은 병상 옆의 작은 서랍을 연다.


그녀가 쓰던 총알이 하나 넣어져 있었다.





"대장......"

"......"


한 무덤 앞에 세 명의 여자가 서 있다.

긴 침묵만이 맴돌았다.


"한꺼번에 둘이나 떠나다니."


눈물이 메말랐던 병사들이 눈물을 흘린다.

아스널에게 에밀리가 마지막 보루였던 것처럼.

아스널은 그녀들에게 마지막까지 자리를 지키던 댐이었다.

마지막 남은 저 눈물이 쏟아지면, 이제 영영 말라서 아무것도 흐르지 않게 되겠지.


'직접 만나고 싶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그녀는 이미 유령이 되어 있으니까.


아스널은 총알을 던졌다.

핑그르르 회전하며 날아간 총알이 묘비를 툭 치고 떨어졌다.


"어떤 놈이야!"


파니가 이쪽을 보며 버럭 외쳤다.

아스널은 당장이라도 후드를 벗고 얼굴을 보이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하지만 꾹 참았다.

그녀는 등을 돌리고 도망쳤다.


"당장 이리 오지 못해! 이 나쁜...! 죽은 사람 묘비에 뭐 하는 짓이야!!"

"그만, 파니. 그만하세요."

"흑....."


비스트 헌터가 묘비를 쳤던 총알을 주었다.


"비헌, 그건....?"


레이븐이 물었다.

총알이 달빛을 반사했을 때. 어느덧, 그녀들의 눈물은 멈춰 있었다.


".....유령이 남긴 유산입니다."






[오늘 밤, 군부대 옆쪽 샛길을 통해 빠져나오세요.]


편지는 유령이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 세세하게 지시하고 있었다.

아스널은 편지를 다 외워버린 후 구긴 다음 삼켰다.

편지에 쓰여져 있는 장소의 철조망이 찢겨 있었다. 곰이 찢은 것 같은 흔적이었다.

그러나 약간이지만 인위적인 흔적이 섞여 있었다.


"......"


로열 아스널은 찢긴 철조망 사이로 몸을 넣어 기지를 빠져나갔다.

내리막길을 한참 내려가자, 시동이 켜져 있는 차 한 대가 보였다.


그녀가 다가가자 복면을 쓴 누군가가 총을 겨눴다.

헐렁한 군복도 그녀의 풍만한 가슴은 숨길 수 없었다.


"탕수육."

"처먹파."


희안한 암호였다.

이건 군에서 쓰는 것이 아닌, 편지에 적힌 내용이었다.


"....로열 아스널 전 소장. 맞으신가요?"


앳된 목소리.

여군이었고.

아마도 바이오로이드였다.


"그렇다."

"잠시. 거기서 대기하세요."


여군이 더 가까이 다가오지 마라고 수신호했다.

이어서 뒷좌석으로 가 창문을 두들겼다.

창문이 1센티미터가량 내려갔다.


"물건이 왔습니다."


'물건이라....'


큰 의미를 두지는 않았다.

운송하는 대상을 짐으로 암호화하는 건 흔한 일이다.


"....."


안쪽에서 누군가 뭐라고 했다.

여군이 대신 말한다.


"편지는?"

"삼켰다."

"....무기는?"

"소지하지 않았다."


굳이 그걸 물어볼 필요가 있나 싶었다.

검사를 하면 될 것을.


"마음의 준비는 되셨나요?"

"...별 이상한 걸 다 묻는군. 난 팔렸다. 명령이라면 무엇이든 따를 준비가 되었다."

".....그러면 반대쪽 뒷좌석에 탑승해주세요."


여군은 그렇게 말하고는 조수석에 탑승했다.


"....."


절차가 상당히 생략되어 있었다.

어설프다고 느껴질 정도로.

아무튼, 아스널은 반대쪽으로 가 뒷좌석 문을 열었다.

그리고 얼어붙었다.


-마음의 준비는 되셨나요?


"아......"


그녀를 소유한 남자는 아무 말도 않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런 그의 옆. 그리니까 뒷좌석 중간 자리에.

소녀가 앉아 있었다.

그 소녀는 마치 세상을 잃어버린 듯, 공허한 눈빛으로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에...밀리....."


이름을 부르자 소녀가 이쪽을 본다.

왼쪽 눈에 안대를 하고 있다.

눈을 잃은 탓이다.


소녀가 그녀를 빤히 바라보다가 입을 달싹였다.


"넌... 누구....?"

".......!!"


소녀는 한쪽 남은 눈으로 그녀를 응시했다.

눈빛은 흐릿했다. 그녀를 보고도 반가워하거나, 미소 짓지 않았다.

누군지 관심도 없는 듯 초연한 눈빛이었다.


"하, 하하....."


아스널의 웃음이 떨렸다.

마음이 뒤흔들리자 그에 따라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기억을 잃었나.'


에밀리의 부상은 즉사했어도 이상할 게 없었다.

목숨을 부지한 대신 한쪽 눈과 기억을 잃은 것이다.


"괜찮다..."


그녀는 차 안으로 몸을 넣으며 손을 내밀었다.

차가운 손이 따스한 뺨에 닿는다.

온기가 닿자, 싸늘하게 식었던 마음이 조금이나마 따뜻해지는 듯했다.


"살아 있으면, 그것으로 된 거야."


안대 아래에서 눈물이 흘렀다.

유령의 눈에도.

소녀의 눈에도.


"눈물.....?"


소녀가 고개를 갸웃했다.

아스널은 소녀의 눈물을 닦아주고 그 옆자리에 앉았다.


"나는 아스널이다."

"......?"


침묵이 흐른다.

에밀리는 아스널이 뭘 말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이름을 묻는 거예요."


조수석이 탔던 여군이 복면을 벗고 말했다.

아스널도 본 적 있는 얼굴이었다.

후방을 지키던 저 병사는 진지 폭격에 휘말려 죽은 것으로 되어 있엇다.


"이름."

"그래. 네 이름이 뭐지?"


아스널은 차분히 물었다.


"...에밀리...래."


마치 남의 이름을 말해주는 투.

자기 이름조차 몰라서 남이 알려준 것이다.


"알겠다. 앞으로 잘 부탁하지."


아스널은 대답을 들은 것으로 만족했다.


".....아저씨. 출발해주세요."

"예, 도련님."


차가 부드러운 소음을 흘리며 앞으로 나아간다.

아스널은 살짝 고개를 틀어 도련님이라 불린 남자를 보았다.


'많아봤자 20대 초중반으로 보이는군.'


본 적 없는 얼굴이었다.

대체 누굴까.

모듈을 다 제거했다고 해도 군용 바이오로이드를, 그것도 지휘관 개체를 빼돌릴 만한 사람은 몇 없다.

하지만 짐작가는 사람들 중에 저런 얼굴은 없었다.


'대체 정체가... 아니, 지금은 됐다.'


정체를 고민하기 전에 먼저 해야 할 말이 있었다.


"고맙다."

"....별말씀을요."


남자가 부드럽게 말했다.

목소리는 건조했지만 듣기 나쁜 목소리는 아니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아스널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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