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이라고 하기 뭐한 지금으로부터 먼 미래이지만 먼 미래에서 조금만 되돌아간,

그런 어느 시대의 어느 바이오로이드의 이야기. 

시작해볼게. 재밌게 들어줘?



"커미션 주세요~ 커미션 빠르고 고객님들 생각대로 그려드려요~."


하루종일 길에서 자신의 화구를 들고다니며 커미션을 구걸하는 바이오로이드.

그의 이름은 메리. 

비스마르크의 디자이너이자 일러스트레이터. 

덕분에 비스마르크에서 눈코뜰새없이 바쁘게 굴려야하지만 그녀는 비스마르크에서 버려졌습니다..


버려진 이유는 너무나도 강한 바깥에 대한 호기심과 동경, 

그리고 작업실력이 인간에 비해 월등히 뛰어나지 못했기때문에,

덴세츠를 견제하기에 바빴던 비스마르크 입장에서는 실패작이나 다름없는 메리를 굳이 가지고 가서 

실패작을 만들었다는 소문을 떠안느니 아예 '제조 하지 않은것' 으로 쳐버리는게 나을거 같다는 판단하에

제조 마크를 지워버리고 분쇄실로 데려갔다. 가장 깔끔한 방법이었으니까 그랬을터였습니다..


하지만 한 인간이 비스마르크의 실패작에 동정심을 한방울 떨어뜨렸습니다..


분쇄기에는 자신이 가겠다고 메리를 끌고가 낡은 창고에 숨기고 이미 의식이 없이 껍데기만 버려진,

전쟁터에서 주워온 브라우니의 시체를 던져넣었습니다.

이미 시체가 되어버린, 아니 고기인형이나 다름없는 브라우니기에 메리에 비해 적은양의 자원만이 

회수되었지만 비스마르크는 그런것따위 확인하지 않았죠.

오로지 자신의 치부가 사라졌다는 후련한 마음만이 있었을뿐.



"......왜 저를 살리신거에요? 비스마르크의 높은분이 알면 당신을 가만두지 않을거에요."


"하? 이 어린노무 쉐끼가 말하는거 보소? 기껏 살려줬더니 눈은 죽은 눈깔을 해갖고는?"


"...난 어차피 만들어진 부모한테 버려진거나 다름없어. 이대로 죽을 운명이었지...

그걸 멋대로 살려냈잖아.. 왜 살려낸거야? 우리같은 바이오로이드는 쓸모없으면 버려지는게 당신들 인간님들의 뜻 아니었어?"


"뭐 내가 만들었냐? 나도 기껏해봐야 일러스트레이터인데?"


"......미안해..."


그 남자는 어처구니 없다는듯이 바라보다가 담배를 꼬나물고 불을 붙이며 말을 이어갔습니다.


"허이구, 태어난지 며칠 되도 않은게 배려심만 갖고태어났구만,

그걸 우리 인간들 사이에서 뭐라는지는 아냐?"


"...뭐라고 하는데?"


"쓸데없는 오지랖, 니 간수나 잘하면서 살아도 모자를판에 남걱정 하지 말란 뜻이지."


메리는 구석에 쭈구려 앉아 고개를 숙이며 살짝 웃어버렸습니다.

정말로 자신의 앞날에 대해서 걱정을 해야했으니까.

여기서 나간다 치더라도 메리라는 이름을 쓸수는 없겠죠.

어디에도 등록되지 않았고, 미확인 바이오로이드는 테러의 위험때문에 시티가드에 의해서 체포되고 말테니까.


"여튼 일러스트 뽑다말고 나와서 오래 널 봐주진 못해, 저기 분리수거장 뒤로가면 개구멍 하나 있을거야. 

그리로 나가면 네가 쓰던 화구들 담긴 가방이 있으니까 그거 챙겨서 적어도 이 비스마르크에선 멀리 떨어진데서 살라고."


그렇게 말한 일러스트레이터는 담배를 비벼 끄곤 다시 사라졌습니다.

메리는 죽은눈으로 그 일러스트가 간곳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쓰레기통에서 주운 천을 뒤집어쓰고 조심조심히 분리수거장의

개구멍을 통해 밖으로 나갔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머지 않은곳에 메리의 화구가방이 놓여져있었습니다..

누군가 들고 갈수도 있었겠지만 아무런 마크가 찍혀있지 않아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으리라 짐작한 메리는 자신의 화구가방을 

펼쳐보았죠.

아마도 자신의 기억이 맞는다면 거의 다 말라붙고 바닥난 물감과 잉크들, 그리고 짧아서 버려야하는 연필등

제대로 쓰기 힘든것들만 담겨있겠지만...


"이건...?"


과거부터 명품으로 유명한 물감들과 붓을 비롯해서 최신식으로 가득차있는 화구가방.

그리고 보니 이 가방... 바이오로이드에게 주지 않고 회사에 있는 일러스트 인간님들에게만 주어진다던 그 가방일텐데...

뭐.. 준건 고마우니까 그 인간이 있는 방향으로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합니다.

아마도 그 인간님은 못봤으리라 생각하지만, 조금이라도 마음이 편해지는거 같습니다.


다시 가방을 접고 천천히 이끌고 발걸음을 떠나봅니다. 

비스마르크의 작업실에 있을때는 그렇게나 바깥을 보고 싶었는데 

막상 나오니 무엇을 해야할지 모르겠습니다. 

작업실에 있을땐 누가 가르쳐주면 그것을 그리면 됬었으니까요. 하지만 지금은 도대체 뭘 그려야할지 몰랐습니다.

그렇게 하루를 걸었습니다.

아직도 인간님들의 도시는 끝이 나질 않습니다. 워낙에 넓고 사각형의 건물들만이 높게 서있을뿐이었죠.


화구가방에 조금 들어있던 돈과 식량도 슬슬 바닥을 보여갈때쯤 도시를 벗어났습니다.

그리고 너무나도 다른 세계가 펼쳐졌습니다.

아스팔트는 선을 그은듯이 끝나있고, 그 선을 넘어오자 보이는것은 초록빛이 가득한 초원, 그리고 산.

나무들이 울창하게 서있었습니다.

너무나도 다른 환경에 잠시 인지부조화가 왔지만 메리는 왜인지 모르게 모르던 감정을 하나 배웠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깨달았습니다.

감격스러움, 그리고 가슴이 벅차오르는 기쁨을 동시에 느꼈습니다.

자신이 작업실을 나온 이유, 그것은 이것을 보기 위함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니어도 좋았습니다.

지금 이 기쁨은 자신이 태어나고 처음느끼는 감정이지만 이것을 가진 메리는 너무나도 기뻤습니다.

그리고 눈에 보이는것을 자신이 기억하는 재주가 아니라, 인간님들에게 심어진 재주가 아니라 자신의 손을 이용해 그려보고자 

마음먹게 되었습니다.


"이걸 꼭 그려보고 싶어. 누군가도 이걸 보고 나와 같은 감정을 느껴줬으면 좋겠어."


그렇게 생각한 메리는 화구에 담긴 종이에 자신의 열과 성을 다해서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림은 곧 그려졌습니다. 누가 보더라도 그 종이에 그려진 그림은 메리의 시각과도 같을정도로 완벽했습니다.

하지만...


"이게 아니야..."


메리는 똑같은 풍경 그림을 보고도 몇번이나 아니라고 외치며 그림을 구겨버렸습니다.

1장, 5장, 10장.. 스케치북의 절반을 넘게 똑같은 그림을 그렸지만 계속해서 메리의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그 그림을 보더라도 아무런 감정이 들지 않았습니다. 

메리의 손에는 물집이 잡히고 피가 베어 나왔습니다.

메리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렀습니다.

그리고 결국은 주저앉아 펑펑 울었습니다. 자신의 존재의 이유를 부정당한거 같았습니다.



...-자박 자박-


(바스락)


"...멋진 그림이구나."


얼마나 울며 지쳐있었길래 사람이 오는것도 몰랐습니다.

메리는 지친듯이 일어나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그곳에는 휠체어에 앉은채 메리가 구겨버린 그림을 주워서 보고있는 늙은 인간남성이 있었습니다.


"...실패작이에요."


늙은 남자는 메리를 부드럽게 보며 말했습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니?"


메리의 눈에 다시금 눈물이 맺히며 입을 열었습니다.


"제가 봤던 감정을 담을수가 없었어요...

너무나 기쁘고 벅차올랐던 감정을 담을수가 없어요.

역시 회사에서도 실패작이라고 처분하려 했던 제가 이런건 당연할지도요..."


늙은 남자는 난감하다는듯이 웃으며 휠체어를 몰아 메리에게 가까이 다가와 

머리를 쓰다듬으며 입을 열었습니다.


"네 그림을 나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으로 다시 한번만 그려줄수 있겠니?"


메리는 잠시 노인을 바라보다가 다시 바닥을 바라보며 주저했습니다.


"제가 그린 그림은 그냥 사진과 다를게 없어요..

아무런 감정이 없어요."


"네가 나를 위해서 그림을 그려준다면 매우 기쁠거란다. 노인의 억지라고 생각하고 한장 그려주겠니?

그림을 그릴곳이 없다면 우리집에 와도 좋단다."


메리는 그렇게까지 자신에게 부탁하는 노인에게 거절하기도 뭐해서 그의 휠체어를 밀며 도시 끝자락에 있는 

작은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나무로 된 노인의 집은 약간 오래된거 같았지만 따뜻한 햇살이 들어오고 있었고 

포근한 기분이 드는 좋은 집이었습니다.


"그림을 부탁하기전에 식사라도 어떻겠니?"


노인은 휠체어에 앉은채로 야채와 여러가지로 끓인 수프를 건네주었습니다.

메리는 이러한 친절에 당황했지만 그것을 받아들여 먹었을때는 누구보다 기뻤습니다.


도시에서는 AGS들이 기계적으로 만든 음식을 내어줄뿐이었으니까 먹으면서도 기쁨을 느낄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 노인에게 받은 음식은 너무나도 기뻤습니다.


"...잘먹었습니다."


"맛있게 먹어줘서 고맙구나."


노인은 메리에게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화로에 불을 넣어 집을 따뜻하게 해주셨습니다.

메리는 기쁘게 화구에서 스케치북을 꺼내고 물감과 붓을 꺼내며 말했습니다.


"무엇을 그려드릴까요?"


노인은 아무말없이 미소를 지으며 메리를 바라보았습니다.


"네가 그리고 싶은것을 그려주렴."


메리는 그게 뭐냐고 말하려고 했지만 그래선 안될거 같았습니다.

대신 자신이 선물받은 따뜻함.

이 집에서 느낀 따뜻함을 그려보고자 마음먹었습니다.


하지만 따뜻함을 그리는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습니다.

예전 그림들을 보면 예시야 얼마든지 있었지만 지금 자신의 감정에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으니까요.


"천천히 그려도 괜찮단다. 밤이 슬슬 깊어지니 저쪽에 있는 방에서 자거라."


그리고 노인은 방으로 들어가 얼마지나지 않아 고른 숨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벌써 잠들었나봅니다. 

작업실에 있을때는 아직도 한참을 그려야할 시간이었는데...

메리는 노인이 안내해준 방으로 들어가 침대에서 잠들었습니다.


...


코를 간지럽히는 아침의 싱그러운 풀향기, 그리고 스프의 향기가 코를 간지럽힙니다.

일어나서 나가니 이미 노인이 아침을 차려놓았습니다.


"벌써 일어났니? 식사를 하자꾸나."


일어나서 식탁에 앉자 노인은 익숙한듯 아침을 대접해주셨습니다.

식사를 하고 메리는 보답이라도 하려는듯 열심히 그림을 그리려고 했지만 

선 하나 긋는것도 힘들어졌습니다.


미안한 마음에 노인을 슬그머니 바라보지만 언제나처럼 인자한 표정으로 메리를 보며 웃어줄 뿐이었습니다.

그렇게 하루, 이틀, 일주일정도가 지났을때 이변은 찾아왔습니다.


언제나처럼 아침에 일어나 식사를 준비해주시던 노인이 방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조금 늦나 생각한 메리는 10분, 20분, 30분,.. 1시간이 다 되어가자 노인의 방을 노크를 하다가 반응이 없자

문을 열고 들어갔습니다. 그곳에는 잠자듯이 조용한 노인이었던것만 남아있었습니다.


그리고 메리는 엄청난 두려움에 휩싸였습니다. 

기껏 마음을 열고 자신을 챙겨주던 인간님이었는데 이제 그 대상을 잃어버린다는 두려움.

그렇게 펑펑 울려던 찰나 침대옆 탁자에 편지가 하나 놓여있는것을 발견했습니다.


메리는 얼굴에 눈물이 터져나올것같은걸 참으며 자신의 이름이 적힌 편지를 열어보았습니다.


ㅡ 메리에게 ㅡ

이렇게 글로 남겨서 미안하구나.

내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걸 너에게 숨겨서 우선 미안하구나.

아마 이 편지를 봤다는건 이젠 내가 일어나지 못한다는 뜻이겠지.


(알면 이런걸 쓰지 말아야지..)


네가 그림을 그리지 못한다는건 아니란다. 나 역시도 붓을 잡았던 사람이니까 

네 그림을 봤을때 알 수 있었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없고, 마음이 공허하다는것을.

그리고 네가 내 인생의 마지막 과업이 되리라 느꼈단다.


(나를 거두기보다 자신에게 더 시간을 쓰지...)


그리고 너는 내게로 와주어서 천천히 밝아졌지.

그리고 그림그릴때 네 표정은 천천히 기뻐하는듯 보였단다.

네 표정이 하루하루 밝아지는걸 볼때마다 내 마음은 크게 기뻐서 요동쳤단다.


(...바보야 정말...)


네 그림은 누군가에게 보여져야만 한단다. 

그 누구도 자신만을 위한 그림에서 마음이 담기지 않는단다.

다른 사람을 위해서 그림을 그려보거라. 

네가 원하는것을 반드시 얻을수 있을거란다.


(정말로 그러면 원하는걸 얻을수 있을까...?)


....

그렇게 편지는 끝났습니다. 죽어가는 와중에도 내 걱정만 하고 갔습니다.

노인이었던 인간님은... 아니... 할아버지는 그렇게 가셨습니다.

그리고 거실 한구석에 방치되었던 화구는 먼지하나없이 깨끗하게 닦여져있습니다.

...정말이지 가는길에도 제 걱정만 해주셨습니다..


일단 집을 나서기전에 도시에 장례 AGS들에게 연락을 넣고 제 화구를 챙겨서 다시 도시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할아버지가 다른이들을 위해서 그림을 그려보라고 하셨으니까요.

아참. 할아버지의 집에 두고가야 하는걸 하나 잊었네요.


"고맙습니다. 할아버지... 고마워요. 사랑해요..."


할아버지의 침대위에 스케치북에서 한장 뜯어서 고이 올려두었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할아버지."


그리고 문밖으로 달려가 도시로 향해 길에 보이는 사람들에게 외쳤습니다.


"커미션 주세요~ 커미션 빠르고 고객님들 생각대로 그려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