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가 전한 깜짝소식에, 회의실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해버렸다.

흥분한 지휘관들은 닥터한테 대답할 틈도 주지 않고, 어마무시한 질문공세를 펼쳤다.


-----------------------(오르카 호 지휘관 회의실)


"아... 각하... 무사하셨군요... 이 누나는 결코 희망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 바보는 어디에 있는데? 당장 가서 잽싸게 데려오자고!!"


"어서 말해보시오, 그이가 어떤 내용을 전했는지!"



-----------------------(북극기지 지휘관 회의실)


"세상에... 흑...! 달링... 살아 있었구나..."


"그대여... 나는 그대가 살아있다는 소식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오른다네..."


"사령관은 좀 어때 보였나? 모진 고문이라도 당한 건 아니겠지?"


"세상에... 주인님... 살아계셨군요..."


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가관인 사람은 따로 있었다.


"낭군님의 옥체는 온전하십니까?! 설마 끼니도 제대로 못챙기셔서 피골이 상접하지는 않으셨는지요? 지금이라도 당장 원군을 보내서 낭군님을 구출해야 하옵니다! 소첩도 바로 분골쇄신하여 특제 도시락을 준비할 터이니, 어서 나갈 채비를 마쳐주시지요! 곧 있으면 섣달 동짓날이니, 팥으로 죽을 쒀서 모자란 양기를 보충시켜드려야 하옵니다! 그외에도 소첩이 대하랑 명태, 장어, 소갈비도 같이 싸드리겠지만, 마른 공복상태에서 갑자기 양질의 진미가 들어가면, 필히 급체를 하실 게 분명하오니, 반드시 미음-죽-국 순으로 드려서, 먼저 위장에 기별을 줘야...(이하 생략)"


결국 닥터는 대답하기를 포기하고, 그녀들의 입이 전부 닫힐 때까지 기다렸다.


(30분 후...)


"이제 진정 좀 됐어 언니들?"


"크흠, 우리가 주접이 너무 심했나보오."


"미안하군 닥터, 우리는 그저 각하가 살아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너무 감격스러워서..."


"그래, 나도 언니들 마음은 다 알아. 나도 같은 심정이었으니까. 하지만, 일단은 오빠가 보낸 메시지를 열어보는 게 우선이야."


화면 속에 닥터는 크게 심호흡을 하고,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휴... 지금부터 오빠가 직접 나오는 영상 메시지를 틀건데, 다들 정숙하지 않으면 바로 꺼버릴거야 알겠지?"


근엄한 표정을 짓는 닥터의 모습에, 모든 지휘관들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이제 튼다~ 시끄럽게 굴면, 나 혼자만 볼거야 진짜로..."


팟-


이윽고 화면 안에서 닥터의 모습이 사라지고, 모두가 그토록 그리워하던 남자의 모습이 나타났다.


(세상에...)


(진짜로, 달링이잖아?)


(그대여... 오랜만에 봐도, 역시 그대는 너무 꼴리게 생겼군...)


(낭군... 비록 영상 뿐이지만, 소첩은...)


화면 속 사령관은, 어두운 방 안에서 혼자 침대 위에 앉아 있었다.


"좋아, 화면은 잘 나오는 거 같고... 크흠-! 그러면... 시작할게."


그는 먼저 옆에 놓인 물을 한모금 마시고, 말을 이어나갔다.


"나도 하고 싶은 말은 정말 많은데... 주어진 시간이 3분도 채 안되니까, 중요한 사항만 전달할게."


"일단, 다들 보다시피 난 완전 멀쩡해. 고문이나 심문같은 건 전혀 없었으니까, 내 신변은 따로 걱정할 필요없어."


(어째, 전보다도 더 먹음직스러워진 것 같군?)


"현재 내가 있는 이 시설의 위치는, 북극에서도 최북단 쪽에 자리잡고 있어. 정확한 좌표는 메시지 안에 같이 넣어뒀으니까, 꼭 확인해 봐."


(여태까지 우리의 노력이 마냥 헛수고는 아니었던 것 같소...)


"만약에 우리 대원들이 이미 북극에 도착한 상태라면, 절대 눈에 띄게 행동하지마. 델타한테 발각이라도 된다면, 그녀가 나를 다른 곳으로 이송할지도 몰라."


(역시 델타... 그년 짓이었군)


(더러운 씨발년이... 소첩이 직접 그 가증스러운 살가죽을 도려낼 것이옵니다...)


"그리고 혹시 전면전을 생각해둔 사람이 있다면, 그 생각은 고히 접어두길 바래. 여기에 주둔한 병력들만 해도, 우리 저항군의 수십 배는 되고도 남으니까."


(용과 마리가 동시에 메이를 쳐다본다)


"사실은... 애초에 이 곳으로 진입하는 거부터가 불가능해. 시설에서 반경 100km 지점은 전부 은폐장으로 둘러쌓여 있거든... 그 강도만 해도, 핵폭탄 수십 개는 거뜬히 막고도 남는대."


(용이 메이를 엄한 표정으로 째려본다)


(안해! 나도 안할거라고!!)


(어쩐지 아무리 수색을 해도, 보이지 않더라니...)


"내가 이 시설의 시스템을 무력화 할 방법을 찾아볼테니까, 그 전까진 우선 대기만 해."


"아, 그리고 이건 너희들이 들으면 아마 충격을 먹을 거 같긴 한데... 델타가 나한테 펙스의 회장직을 제안했고, 난 그걸 수락했어."


(미친놈이...?)


"아, 오해는 하지마. 당연히 델타의 의심을 피하고, 이 시설의 제어권을 획득하기 위해서니까."


(회장들을 소생시키는 일은 실패한 모양이군. 그래서, 사령관을 납치한거고...)


"그리고, 그 성과는 확실히 엄청나. 요즘 들어서, 주둔지 주변에 철충들의 신호가 전부 사라진 거 못느꼈어?"


(확실히... 요즘은 개미새끼 한마리도 안보이긴 하지...)


"그건 내가 이 곳에 있는 AGS들을 지휘해서 토벌작전을 수행하고 있는거니까, 각 부대는 당분간 훈련에만 집중해줘."


(역시... 내 사랑스러운 각하... 이렇게나 기특한 일을 해주시다니... 이 누나가 돌아오면 뽀뽀 500번으로 보답하겠습니다...///)


"아... 빌어먹을...! 이젠 시간이 정말 없으니까, 하고싶은 말 몇 마디만 더 하고 끌게."


(오랜만에 달링의 모습을 좀 더...)


"정말로... 다들 너무 보고싶어. 내가 우리 식구들을 포기하는 일은 절대 없을테니까, 너무 걱정하지마."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반드시 너희들의 품 안으로 돌아갈게. 애기들한테도 안부 꼭 전해주고..."


"이 채널은 곧 감청될거야. 닥터가 바로 차단해주고, 조만간 또 연락할 수 있으면 좋겠어. 다들 사랑해..."


치직-!


애틋한 표정으로 사령관이 웹캠을 끄는 것을 마지막으로, 영상 메시지는 종료되었다.

쥐 죽은 듯이 조용해진 회의실은 곧, 엄청난 환호성과 기쁨의 탄성으로 가득 찼다.


"들었나? 이젠 사령관이 우리 코 앞에 있다!"


"맞아! 이제 달링을 찾는 건 시간문제야!"


"그대여... 내 이부자리는 미리 데워놓도록 하지...///"


"자~ 소완 주방장님, 이만 일어나셔요. 오늘은 무척 기쁜 날이잖아요?"


"흑흑...! 전 낭군님을 어쩌면 다시는 보지 못할 거라는 생각에... 흐윽...! 소첩, 이 기쁨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사옵니다..."


"다 좋은데, 이 소식을 다른 대원들한테도 전해야 될진 모르겠군. 자칫하면 큰 소동이 벌어질..."


마리가 고민하고 있는 찰나, 회의실 문 밖으로부터 이미 엄청난 환호성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소리지?"


"이 메시지는 핫라인에만 전달 된 거 아니었소?"


"무슨 일이 벌어진거야?!"


오르카 호 내부가 엄청난 희소식으로 난리법석이 된 사이에, 북극 주둔지에서도 크게 한바탕 소동이 일어났다.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벌써 밖에서부터 다른 사람들이 환호성 치는 소리가 들려오잖아!"


"닥터,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설마 메시지를 공개채널로 전환시켰나?"


"아냐! 난 절대로 그런 적 없거든!!"


"하..."


모두가 예상치 못한 소란에 당황하고 있는 사이에, 칸이 괴롭다는 듯이 이마를 부여잡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래도, 이 소동의 범인은 내가 누군지 알 수 있을 것 같군. 잠시, 실례하겠다."


쾅-!!!


칸이 거칠게 문을 닫고 나가자, 이윽고 밖에서 그녀가 고함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탈론페더!! 어디에 있나!!!"


"지휘관 핫라인을 몰래 녹화한 것도 모자라서, 그걸 탈론허브에 공개하다니!! 제정신인가?!!!"


다른 지휘관들은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며 미리 그녀의 무운을 빌어주었다.


"칸이 저렇게까지 크게 화내는 건 정말 오랜만이네~♪"


"그녀의 피지컬이라면... 하늘로 도망친다 해도, 달아나진 못할텐데..."


"곧, 사이트에 누군가의 척추가 반으로 접히는 영상이 하나 올라오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