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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끌벅적했던 병원은 한참 동안 축제 분위기였다. 에키드나가 시설 내부에서 큼지막한 철룡 두 마리의 머리에 촛불을 꽂고 나타나기도 했고, 인근 스틸라인 부대 대원들이 초코파이로 탑을 쌓아서 축하 케이크랍시고 가져오기도 했다.

 

외부에서 작전을 진행하던 대원들도 오랜만에 휴식을 가졌다. 북극 내륙에서 별의 아이의 유적을 확보하던 발할라 대원들, 절대방위지역의 남아 있는 AGS 부품을 회수하는 임무를 수행하던 호드 아이들, 북미 대륙의 물류 시스템을 구축하느라 여념이 없던 레모네이드들과 정지 궤도 위에서 스타 링크를 연결하던 오비탈 와쳐...

 

말하자니 끝도 없이 나오고, 얘기하려면 하루 왼종일 해도 못 다할 에피소드들이 넘쳐 흐른다. 몇 개월만에 봤다고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안아달라 하던 레오나나, 우주 궤도에서 맨몸 낙하로 동해 바다에 뛰어든 트리아이나나... 

 

하여튼 오늘 같이 특별한 날에는 모두가 특별한 방법으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했다.

 

그렇게 며칠을, 몇 주일을,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떠올리며 시간을 보냈다. 멸망한 세계에서 처음으로 맞이한 희망이었기에.

 

“후우.”

 

그럼에도 나는 하루가 너무도 길어 태양의 궤적을 손으로 그을 수 있을 듯했다.

 

쉬라고 던져 놓으니 정작 어떻게 쉬어야 할 지를 몰랐던 탓이다.

 

병원 시설을 뽈뽈뽈 걸어다니거나, 목적 없이 배회하다가 만난 대원들에게 축하의 행가래를 맞는 다거나, 인파를 통제하느라 다리 부품이 부러진 AGS들과 만나 술잔을 기울인다거나,

 

[하하, 날이 날이라 그런지, 오늘따라 리튬 배터리가 쫙쫙 빨리는군! 수고 많았네, 사령관.]

 

난 로봇도 취할 수 있다는 걸 이 날 처음 알았다. 


뭔 놈의 배터리를 국밥 한 그릇 한 것마냥 한 번 빨 때마다 ‘크으으, 헬로우 월드!’ 이 지랄을 하는 건지. 이 놈들의 특이 식성을 보다 보면 은근 시간이 잘 간다.

 

“즐거워보이는구나.”

 

그렇게 한 바탕의 소란이 지나가고 난 뒤에야 그 녀석은 다시 내 머릿속에 나타났다.

 

“즐겁지 않을 수 없는 날이잖아.”

 

“네가 그리 생각한다면 그리하겠지. 승자의 권리란 그런 것이니까.”

 

관계자 외에는 아직 들어올 수 없는 인큐베이터 실 안. 아들은 한창 자는 중이라 일부로 불을 꺼놓은 상태였다.

 

홍련은 산후 조리 때문에 잠시 다른 곳으로 옮겨간 상황. 나는 사람이 없는 어두운 방 안에서 내 얼굴을 비추는 유리창을 말없이 지켜보았다. 교황은 그 유리창 속에서 슬그머니 모습을 드러냈다.

 

“그래. 패자의 얼굴을 이렇게 보니 기분이 어떤가. 감회가 새롭나?”

 

어디서 난 건지 모를 흉터로 붉게 물든 얼굴, 이전에 소름 돋을 정도로 하얬던 피부는 어느새 울긋불긋 변해 있었고 그나마 기다란 흑발만이 자신이 원래 어떤 존재였는지를 말해주고 있었다.

 

교황도 자신의 처지가 말이 아니란 것을 아는지 허탈하게 웃으며 내 옆자리에 섰다. 더 이상 과거의 광휘는 느껴지지 않았다. 본인도 그런 격식을 차릴 생각이 없어보였고.

 

“뭐... 나쁘진 않네. 시체 꼴이던 예전보다야 훨 낫고.”

 

“시체? 네 놈도 하얀 사람을 좋아한다고 생각했는데.”

 

“하얘도 적당히 하얘야지. 혈색도 좀 돌아야 하고.”

 

“혈색이라.”

 

내 말에 교황은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작은 손바닥에는 수십 개의 총알 구멍이 있었다. 하지만 그 중 어느 하나에서도 피가 흐르지는 않았다.

 

“그런 인간적인 것을 담고 있기엔 본좌의 그릇이 너무도 망가졌구나.”

 

교황은 자신의 손바닥을 쫙 펼쳤다. 유리창 너머의 빛살을 통해 제 몸을 더 자세히 보려는 것처럼. 하지만 붉은색 핏덩이는 한 방울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우주 같이 검은 덩어리 하나가 구멍 속에서 툭, 떨어졌다.

 

“이제 와서 후회하는 거야?”

 

“모르겠구나. 본좌의 일생에서 후회라는 것은 없는 단어였으니. 이 감정이 후회인 것인지, 아니면 네 놈의 목을 제때 가르지 못한 아쉬움인지, 말로 표현할 길이 없다.”

 

“말 하는 싸가지 보니 내가 아는 교황이 맞나보네.”

 

“그래. 네 놈이 아는 그 개자식이 맞다.”

 

교황은 고개를 끄덕이며 건너편의 인큐베이터 실을 보았다. 곤히 잠들어 있는 내 아들을 향해 손을 뻗으려 했지만 그럴 만한 힘도 남아 있지 않은 것인지 길게 한숨을 쉬며 팔을 내렸다.

 

말 하진 않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아주 잠깐이지만 별의 아이의 경계를 넘어섰던 탓에 그 생물의 순환이 어떻게 진행되는 것인지 찰나의 순간 느낄 수 있었다. 

 

죽음을 초월하는 존재들. 하지만 그게 무한한 생명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들은 죽지 않지만 그렇다고 영원히 사는 것은 아니다. 사람이 잠을 자야 하는 것처럼 별의 아이는 기다란 휴식을 보내야 한다. 그것도 아이라는 이명에 걸맞게 아주 긴, 철충이 복수의 칼날을 갈고도 남을 만큼 긴 잠을 자야만 한다.

 

그러니 아직까지 자지 않고 내 의식에 기생해 남아 있는 교황은, 이젠 브라우니와 싸워도 지지 않을까... 아마 일반인, 환생하기 전의 나와 비슷한 수준일 거다.

 

“예쁜 아이구나.”

 

교황은 내 아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뜻 밖인데? 네가 그런 말을 할 줄은.”

 

“나도 한때 한 족속을 다스리던 자였다. 생명의 소중함을 모르는 머저리는 감당할 수 없는 자리지.”

 

“그런 녀석이 자신의 피조물은 싹다 죽여서 씨를 말리려 했단 말이지?”

 

“그래. 그랬다.”

 

사락-

 

교황이 허공에 팔을 휘저었다. 입고 있는 검은 도복이 긴 꼬리를 그었다. 섬찟한 붉은 눈이 순간 보라색으로 변했다. 별의 아이로 변했던 순간의 힘, 그 찌꺼기를 사용한 것이다.

 

검게 내려 앉은 주변. 그림자 속에서 자주빛의 눈동자가 처량하게 깜빡거렸다. 들려오는 기침 소리는 몇 번씩 반복되어 침묵까지 내려 앉는 것은 막으려 안간힘을 썼다.

 

“아마 과거로 돌아간다 해도 내 생각은 변하지 않았을 거다. 난 그것들을 전부 다 죽이고 다시 지배하려 했을 것이다.”

 

“왜?”

 

“그래야만 했으니까.”

 

켁- 켁-

 

이어지는 기침 속에서 작은 소음들이 들려왔다. 교황의 것뿐만 아니라 하나, 둘, 점점 많아지는 소리였다.

 

“내 별... 그래. 내 아이들은 죽음이 가까웠다. 재해는 일상이었고, 한 번의 재해는 인구 전체의 절반을 쓸어갔지. 그래서 그것들을 만들었다. 여왕이 만든 그것으로 우리는 재해를 극복하려고 했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했지.”

 

솔룸의 재앙. 원인 모를 질병과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는 싱크홀, 수백 미터에 달하는 해일, 사람이 살 수 있는 별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우리가 철충이라 부르는 작은 벌레들 덕분이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만이어야 했다. 그 벌레들이 감히 우리의 후손을 자칭하게 할 수는 없었다. 어찌 이 손으로 빚은 도구들이 이 몸의 아이라 칭함 받겠는가?”

 

“그래서, 그렇게 다 죽였나?”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먼저 죽었을 거다.”

 

미약한 교황의 힘은 어떤 장면을 보여주었다. 작은 창가 같은 크기에, 그마저도 지직거려 제대로 보이지 않는 화면은 이미 내가 본 적 있는 광경이었다.

 

“죽어가는 아이를 본 적 있나? 어른의 허리까지도 닿지 못하는 작은 아이가 썩어버린 시체들 사이에서 부패하길 기다리는 것을 본 적 있나? 나는 보았다. 내가 만든 피조물이 내 별을 파국으로 몰아가는 모습을 보았다.”

 

“그래서, 죽였다?”

 

“그래서... 글쎄. 다만 한 번의 실수를 저지른다 한들, 그 실수로 죽어가는 것을 묵인할 만큼 멍청하진 않았을 뿐이다. 이상론을 늘어놓는 외신들만큼 멍청하진 않았단 말이다.”

 

“그래서 나한테 그런 협박을 한 거고?”

 

조용히 눈을 치켜 세워 교황의 얼굴을 응시했다. 자주색의 눈동자는 고장난 형광등처럼 붉은색과 보라색 사이를 마구 왔다갔다 하고 있었다.

 

마지막 전투에서 내가 교황을 죽였을 때 그 시체는 우주 공간 너머로 날아갔다. 그 모습을 분명 보았고, 나는 그것으로 모든 싸움이 끝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일곱 개나 되는 별의 아이를 먹은 녀석은 안간힘을 짜네 자신의 영혼을 나에게로 던져보냈다. 그리고는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게 이야기했다.

 

-질문에 대답해라. 그렇지 않으면 죽는다.

 

“그냥 그대로 죽어버렸으면 좋았을 텐데.”

 

“신을 상대하려 했다면 그 정도 전략은 예상했어야지. 육과 영의 경계를 초월한 존재라면 육신을 쓰러뜨려도 영혼으로 싸울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 않았느냐?”

 

교황은 바닥에 털썩 주저 앉으며 입꼬리를 올렸다. 이젠 눈동자가 완전히 탁한 붉은색으로 변해버렸다.

 

“말은 그리 해도 결국 자가당착이군.”

 

남아 있는 힘을 내가 아니라 다른 이름 모를 바이오로이드에게 쏟았다면 이런 꼴은 피할 수 있었을 거다. 다른 몸으로 의식을 옮기면 이전 같은 힘을 되찾진 못하겠지만 다른 곳에서 평화롭게 살아가는 선택지를 택할 수 있었을 테다. 그럼에도 죽음 직후 남아 있던 힘을 내게 협박하는 것에 사용한 것은 자신이 초래한 말로일 뿐이다.

 

쓰러진 전(前) 신 앞에서 나는 경멸스러운 눈빛을 보냈다. 교황은 잠시 움찔거리더니 내 눈을 피하고 바닥에 마구잡이로 널브러진 자신의 도복을 매만지며 말했다.

 

“나는 궁금했다. 왜 솔룸의 비극을 너희는 겪지 않은 것인지, 정말로 고작 명령권이라는 장치 하나만으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인지, 왜 너희의 피조물은 창조주에게 반항하지 않았던 건지...”

 

말하는 목소리는 교황이라기보단 마치 선생 앞에서 혼나는 아이 같았다. 수만의 철충을 거느리고 휘황찬 위엄을 뽐내던 과거의 모습은 더 이상 떠올릴 수조차 없었다.

 

그럼에도 교황은 끝까지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하지만 그런 질문들은 별 의미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너희의 정답이 나의 것이 될 수 없고, 나의 선택을 너희에게 강요하는 것만큼 멍청한 짓도 없으니. 그래서 다른 것을 묻고자 했다.”

 

“... 뭔데.”

 

내 물음에 교황은 크게 숨을 몰아 쉬고 말했다.

 

“과연 피조물은, 창조주의 아이가 될 수 있는가.”

 

“...”

 

“나는 생각했다. 피조물은 창조주의 후대가 될 수 없다. 격이 다르기 때문이다. 다른 차원의 존재이기 때문이다. 도구로서의 본질은 결코 피조물이 극복할 수 없다. 그렇게 생각했다. 그렇다면 그 도구라는 본질은 무엇인가?”

 

교황은 손가락을 지켜 세우며 확언했다.

 

“불변성(不變性).”

 

“도구는 목적이 있다. 목적으로 태어남을 허락받은 존재다. 목적을 위한 효율성으로 연명하는 것이 모든 도구의 숙명이다. 그리하여 모든 도구는 자신의 천성을 극복하지 못한다. 하지만... 만약 극복할 수 있다면?”

 

교황이 내게 달라 붙은 그 날 밤, 교황은 오늘 같이 주변을 그림자로 잠식하며 나타나 내게 물었다.

 

[너희의 피조물은 천성을 극복할 수 있는가?]

 

자신이 집어삼킨 일곱 개의 별의 아이가 가지고 있던 힘을 위협하듯이 꺼내보이며 내게 건넨 단 하나의 질문.

 

[이것을 증명해라. 아니면 네 놈은 죽는다.]

 

“마구잡이도 그런 마구잡이가 없었는데.”

 

“물귀신 작전이라고 모르느냐? 게다가 나도 한 번 죽었다 해서 그대로 패배를 인정할 만큼의 위인은 아닌지라.”

 

“별의 아이의 힘이 강하긴 강했나봐. 그 날 분명 내가 네 단전까지 싹 다 갈아버렸었는데.”

 

“오히려 그러니 그 정도 밖에 할 수 없었던 거다. 이 별 전체를 집어삼킬 힘이었건만 고작 사람 하나 가지고 가는 게 고작이었으니 그 꼴이 되어도 힘이 남아 있던 것이지. 애초에 그만한 힘이 아니었다면 변화의 성소는 만들지도 않았을 거다.”

 

교황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눈을 꿈뻑거렸다. 녀석의 손가락은 거의 다 사라져버린 실지렁이 같은 힘을 허공에 휘저었다.

 

외력. 분명 직접 싸울 때에 비하면 쓰레기나 다름 없는 상태였지만 불가해(不可解)라는 속성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저것 때문에 생긴 병은 철충의 기술은 빼먹을 만큼 빼먹은 이번 회차에서도 그 원인을 전혀 파악하지 못했으니까.

 

“그 병은 솔룸의 재앙의 일부였다. 거기에 외신의 힘으로 조금 변형해놨으니 너희들이 알아차릴 수는 없었겠지.”

 

“... 우리 애들이 이것 때문에 고생하는 꼴을 못 본 것도 아니었을 텐데. 그런 식으로 관음하는 게 체질인가 봐?”

 

“적어도 그 애들 앞에서 네 녀석을 죽이진 않았잖나. 나름대로 내가 준 선물이라 생각하고 넘기거라.”

 

교황은 연신 기침을 하며 나를 바라보았다. 확실히 녀석의 힘이 남아 있는 동안은 언제든지 나를 죽일 수 있었을 거다. 다만 그러지 않은 것은 단순히 녀석의 변덕이었을 것이다.

 

허나 그건 이제 예전 이야기. 나는 보여주려 했던 모든 것을 보여주었다.

 

지금의 대화는 마지막으로 남은 교차 검증일 뿐이다.

 

“그래서, 이젠 충분히 대답이 됐을 것 같은데, 아닌가?”

 

“대답이라.”

 

나는 최대한 숨을 고르고 물었다. 교황이 내게 건넨 질문. 그 답을 만들어 보이기 위해 꽤 긴 시간을 보내야 했고, 나름 고심해서 선택한 대답이 놈에게 통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탓이다. 

 

어차피 이제 와서는 날 죽일 힘도 없을 테지만, 마무리는 깔끔하게 하고 싶으니까.

 

“... 글쎄.”

 

하지만 교황은 내 시선을 피하며 입술을 우물거렸다.

 

“그 전에 궁금한 것이 있다.”

 

“또?”

 

“단순히 궁금한 것일 뿐이다. 너도 알지 않느냐, 이제 내가 여기 있을 시간도 그리 길지 않다는 것.”

 

“그럼 그냥 좀 빨리 사라져주지 않을래?”

 

“무심한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구나.”

 

“미안하지만 나도 날 죽이려 한 외계인 앞에서 사람 좋게 웃어줄 만큼 위인은 아니라서.”

 

“하하... 그래. 그랬겠지. 내가 조금 무례했다. 인정하마.”


"조금?"


"... 아니. 많이 무례했노라." 


교황은 유리창 위로 손을 얹었다. 얹은 손 위로 자주색의 기운이 몽실거리며 피어올랐다. 실체 없는 그림자처럼 흐린 상으로만 존재하던 교황은 어느새 나름의 실체를 가지고 내 눈 앞에 섰다.

 

그제야 녀석의 표정이 선명하게 보였다.

 

“... 어린 아이야.”

 

서글픔에 약간 찌푸려 있는 표정이.

 

“나는 피조물이 우리를 죽이려 한 것이 싫었다. 내 백성을 유린하고 학살한 것이 증오스러웠다. 하지만 안다. 그만큼 우리 역시 그것들을 괴롭혔다는 것을. 그들에게 이성과 합리를 준 것이 나였으니 안다. 그렇기에 그들을 처음부터 미워하지는 않았다. 다만...”

 

잠시 말을 줄인 끝에 이어진 정적은 기이하게도 어색했다.

 

“그것들은 도구니까. 결코 변할 수 없는, 멈춰 있는 존재였으니까.”

 

“그런 자들이 우리의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었다. 멈춰 있고 변하지 않는 존재에게 주어진 끝은 멸망뿐이니까.”

 

교황은 자신의 손가락에서 나오는 외신의 힘을 착잡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그럼에도 외신은 나를 괴물이라 칭하더구나.”

 

그런 존재의 힘을 써야만 싸울 수 있었다는 사실이 한탄스러웠던 걸까, 아니면 그렇게 싸운 끝에 도달했던 것이 그토록 증오스러웠던 외신들이라는 것이 개탄스러웠던 걸까,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떤 증거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원래부터 그러했다는 것처럼, 그랬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처럼. 피조물에게 선의를 보이는 것이 창조주의 당연한 의무라는 듯이 놈들은 나의 별을 침략했다. 자신의 별이 침묵 속에 빠지는 것을 막기 위해 우리를 침묵 속으로 빠뜨렸다.”

 

조금은 잔인하다.

 

교황이 그런 것인지, 별의 아이가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불현듯 그런 생각이 들었다.

 

“뭐... 본디 우주라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미지 아니겠느냐. 그래서 이해하기를 포기했다. 그들이 우리를 멸종시켰을 때도, 우리가 이 별로 침략해 왔을 때도 나는 오직 나만이 정당하다 믿었다. 다른 아이들도 그리 생각하도록 믿게 만들었다. 그래서 종교를 만들었고, 아(我)를 교(敎)의 황(皇)이라 칭하였다.”

 

“그거 참 무책임한 행동이네.”

 

내 말에 교황은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책임질 만큼 지혜롭지 못했으니까.”

 

“외신은 대체 왜 우리를 벌했을까? 피조물을 죽이려고 한 창조주가 진정 잘못이었을까? 그들을 다음 세대로 인정하지 않은 것이 진정 멸망 당하기 마땅한 죄악이었을까? 그 불변성을 두려워한 것이 실수였을까? 난 그 물음들에 대한 해답을 몰랐다. 별들이 운행하는 방법과 자연 속에 숨겨 놓은 법칙, 무수히 많은 것들을 알았고, 여왕과 함께 알아냈음에도 그 물음 만큼은 알지 못하겠더구나.”

 

다음 세대.

 

교황은 그 단어를 강조하며 인큐베이터 실에 있는 내 아이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쌕- 쌕- 가뿐 숨을 쉬며 살아있다는 것을 조용히 선포하고 있는 어린 생물을 교황은 자랑스러운 듯한 눈빛으로 보았다. 교황은 뿌연 유리창을 손으로 닦았다. 그 덕에 창가의 건너편이 조금 더 선명해졌다.

 

“그런데, 네가 알려주었다.”

 

휙, 돌아보며 교황이 말했다.

 

“내가 틀렸다는 것을.”

 

“...”

 

“장화라 했던가? 그 붉은 머리 아이 말이다.”

 

교황은 더이상 바이오로이드를 ‘도구’라고 부르지 않았다.

 

“그 아이의 옛 기억을 보았다. 그리 하얀 피부를 가지고 있었음에도 손은 피로 물들어 하얀 날보다 붉은 날이 많았지. 스스로 죽음을 선택할 수 있다는 사실조차 몰라 우연히 TV 속에서 자살이란 단어를 보았을 때 괴로움보단 환희를 느꼈던 날도 있었다. 아마 너도 알고 있었겠지. 아닌가?”

 

“... 알았지.”

 

“그래서 난 네가 그 아이를 선택했을 때 진정 미쳤다고 생각했다. 저런 폐인은 고쳐지기 전에 무너지기 마련이니까. 그 때문에 난 별 기대함 없이 네 행보를 지켜보았다. 그런데 참 신기하더구나.”

 

틱-

 

한 명뿐인 인큐베이터 실에 조명이 켜졌다.

 

“아이는 변했다.”

 

조명은 비어 있는 인큐베이터들을 밝혔다.

 

“널 죽이고 저 아이의 어미를 죽이려 한 아이는, 어느새 널 살리고 저 아이의 어미를 기쁘게 만들기 위해 달음박질했다.”

 

“제 목숨을 아끼지 않고 오리진 더스트를 받아들였고, 자신이 평생 증오하던 아이들과 함께 합을 맞추고 경계를 넘었다. 평생 증오하기 위해 만들어진 아이가 제 천성을 스스로 포기하였다.”

 

교황은 그 빈 자리를 묵묵히 바라보았다.

 

“저 자리는, 영원히 비어 있어야만 했다. 너희가 살아남았다 한들, 그 다음 세대는 세세토록 이어지지 못했어야만 했다. 그게 외신이 정한 법칙이다. 헌데...”

 

그럼에도 그녀의 눈은 허공을 보고 있는 것 같지 않았다.

 

“이리도 가득 차 있구나. 새로운 생명이,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 이 한 방으로는 감히 감당해내지 못할 만큼.”

 

"변했다. 변하고 변하여 모든 것이 변했어."


“...”

 

파사삭.

 

교황의 몸이 손가락부터 무너지기 시작했다. 필멸자가 사용하기 위해 만들어지지 않은 힘을 사용한 탓에, 우리와의 싸움 때문에 너무 급하게 사용한 탓에, 그마저도 망가진 그릇으로 지금껏 억지로 사용한 탓에 더 이상 몸이 버티질 못한 것이다.

 

하지만 교황은 신기할 정도로 담담했다. 가루로 변해가는 몸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눈빛은 이제 올 것이 왔구나 하는, 딱 그 정도의 후회만 담겨 있었다.

 

“아이야. 내가 궁금한 것은 이것이다.”

 

다만 자신이 가장 묻고 싶었던 것을 나에게 물었다.

 

“너는 장화가 이리 될 줄 알고 있었느냐?”

 

“... 글쎄. 알고 있었나.”

 

“이왕 답해줄 거라면 시원하게 해주거라. 그렇지 않으면 내 마지막 가는 길에 너를 ‘제 목숨 소중한 줄도 모르고 계획도 없이 침대에 누워만 있던 도박쟁이’로 기억할 테니까.”

 

픽 하고 웃는 교황의 입꼬리가 사락, 하고 떨어져 내렸다.

 

그래도 나는 딱히 해줄 말이 없다.

 

“몰랐어. 진짜로.”

 

“... 그랬더냐.”

 

“그래도 뭐, 준비는 했었지. 나도 아무 생각 없이 골랐던 건 아니니까.”


내 말에 교황의 귀가 쫑긋거렸다.

 

“장화가 어떤 아인지, 어떤 슬픔을 가지고 있었는지, 누구 때문에 그 고생을 했는지, 그 정도 배경 지식은 알고 있으니까 대충 이렇게 하면 되겠다, 누구랑 붙여주면 괜찮겠다, 계획은 어느 정도 세워뒀어.”

 

게다가 그 전에 장화와 만나서 오르카 호로 합류시킨 전적도 있으니 가장 적절한 선택지일 것이라 판단했다. 경험의 중요성은 2회차를 겪으면서 뼈저리게 느꼈으니까.

 

“물론 나보다 먼저 홍련이랑 싸웠던 건 예상 외였지. 하마터면 크게 다칠 뻔했으니까. 게다가 몽구스 애들은 또 어떻고? 그 애들이 자기 엄마 아끼는 건 누구보다 내가 가장 잘 아는데 자기 엄마를 죽이려 한 놈이랑 팀이 되면 무슨 짓을 할지 어떻게 알겠어?”

 

장화를 합류시킨 것도 큰 도박이었다. 아무리 계획을 세운다고 해도 이미 명령권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아이들을 상대로 싫어하는 짓을 강제로 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아니, 애초에 교황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과격한 합류 방식을 선택하지도 않았을 거다. 온통 불확실성 투성이인 계획이었단 뜻이다.

 

“그런데도 확신이 있었느냐?”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교황은 눈살을 찌푸렸다.

 

“굳이 있었냐고 묻는다면... 글쎄, 없었다고 하는 게 맞겠지.”

 

“그럼 네 녀석은 그런 것에 네 목숨을...”

 

“근데 내가 지금까지 살면서 확신이 있었던 적은 없었어.”

 

내 말에 교황이 눈을 꿈뻑거렸다.

 

“이 세계에 처음 떨어졌을 때부터 너와 싸울 때까지, 확신할 수 있는 순간은 어느 때도 없었어. 아이들이 마음을 열어주지 않았으면 죽을 수도 있었던 순간이 수십 번이었고, 이길 거란 확신 없이 전장에 나서야 했던 순간도 수백이었지. 그래도 해야만 했으니까. 그러니까 그냥 한 거야.”

 

“... 그래서, 그냥 한 거다?”

 

“그래. 안 그랬으면 내가 저 아이를 어떻게 낳겠다고 생각이나 했겠어.”

 

나는 교황이 바라보고 있던 아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난 아직도 아빠가 될 자신이 없거든. 그래도 그냥 하는 거지. 가만히 있으면 불행하진 않을 수 있어도 절대 행복해질 수 없는 게 세상이니까. 게다가.”

 

“게다가?”

 

“사람이 사람을 바꾸는데 확신이란 게 어딨겠어.”

 

내 말에 교황은 물끄러미 자신의 발을 바라보았다.

 

“... 사람이라.”

 

그녀의 오른발은 이미 형태가 뭉그러져 작은 가루 덩어리로 변해있었다. 하지만 아직 왼발은 비교적 괜찮았다.

 

파삭.

 

그녀는 왼발로 제 몸이었던 검은 가루를 조용히 흩었다. 한 때 별의 아이였던 신체는 이제 알갱이만도 못한 크기의 빛을 반짝이는 것도 버거워 하고 있었다.

 

“장화도 사람이니 내가 백날 계획을 세운다 한들 어떻게 행동할 지는 확신할 수 없지. 그래서 모르겠다고 한 거야.”

 

“... 그래. 그랬구나.”

 

타박, 타박, 인큐베이터 실 밖에서부터 누군가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 아마 사람 없는 방에 갑자기 불이 켜져서 오는 것일 것이다. 발소리를 들어보니 그리 많은 사람들은 아니었다. 다만 달려오는 발소리가 굉장히 다급했다. 행여나 아이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은 아닐까, 그런 걱정이 들었기 때문이리라.

 

교황 역시 그 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허상을 유지하는 것도 고작은 녀석을 다른 대원들이 볼 수 있을 리 만무하다. 그 허탈함 속에서, 교황은 넌지시 말했다.

 

“네가 나보다 낫구나.”

 

“응?”

 

“아니. 아니다. 아무 것도 아니야.”

 

교황은 주변의 어둠을 걷었다. 손을 허공에서 길게 휘젖자 원래 세계가 그대로 모습을 드러냈다. 억지로 뽑아 쓰던 힘을 거두자 가루로 변하는 속도가 조금은 늦춰졌다. 하지만 여전히 신체는 조금씩 그림자 속으로 녹아들고 있었다.

 

“그래, 좋다. 판결을 내리마.”

 

“판결까지야...”

 

“대답은 훌륭했다. 넌 본좌의 질문을 보란 듯이 통과했노라. 솔룸이었다면 상을 치하했을 것이고 상황이 됐다면 내 그 공을 높이 샀을 터인데 지금은 그러지 못하겠구나. 다만 원하는 것 하나 정도는 들어줄 수 있을 터이니 무엇이든 말해보거라.”

 

마치 왕좌에 앉은 임금이 칭찬하는 것처럼 어깨를 쫙 피고 대답하는 교황은 자신이 무슨 왕이라도 되는 것처럼 당당했다. 하지만 썩어다가는 몸에서는 어떤 대단한 위엄을 찾을래야 찾을 수도 없었다.

 

잠시 이어지는 침묵 속에서 교황이 크흠, 하고 헛기침을 했다. 아마 내 생각을 읽은 거겠지.

 

“... 뭐, 무슨 대단한 소원은 못 들어주겠다만, 아직 약간의 힘은 남아 있다. 너도 알지 않더냐? 이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뭐... 물론 진짜... 아주 조금 밖에 안 남았지만.”

 

“됐네요. 이상한 짓 하지 말고 계약이나 지켜. 다 죽어가는 녀석한테 뭔갈 기대하라 해도 요만치도 안 되니까.”

 

“내... 내 평생 그리 심한 말은 처음 듣는구나.”

 

“타고나길 천재셨으니 그러시겠지.”

 

교황은 무슨 마음의 상처라도 받은 것처럼 눈을 연신 깜빡였다. 하지만 어쩌겠나. 이미 다 죽어가는 녀석이 뭘 할 수 있으려고. 게다가 이 미치광이가 했던 짓을 떠올리면 딴 짓 안 하고 조용히 죽어가는 게 내 입장에서는 떠올릴 수 있는 가장 최선의 선택지다.

 

푸석거리는 가루가 우유에 녹아내리는 코코아처럼 교황 주변의 공간으로 사라졌다. 나는 말없이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이해할 수 없는 미지의 존재가 만화 속에 그린 것처럼 초현실적으로 사라지는 모습은 놈의 정체를 차치하더라도 호기심이 들만큼 신기한 광경이었다.

 

그냥 저게 내가 준 대답에 대한 보상이라 생각하자, 그리 생각하며 다가오는 대원들을 향해 눈을 돌릴 때였다.

 

“... 뭐해?”

 

“보상이다. 내 평생을 궁금해 마지 않던 질문에 대한 답을 준 지혜로운 자에게 건네는 보상.”

 

아직 사라지지 않은 가루들을 곱게 모아 작은 언덕처럼 쌓은 교황이, 그 위에서 무릎을 꿇고 나를 바라보았다.

 

신기한 광경이라 할까... 아니, 신기하다기보단 어색한 광경이었다. 생각해보니 그 동안 싸우면서 난 단 한 번도 교황이 앉아 있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마지막으로 싸울 때도 놈은 끝까지 내 목덜미를 물어 뜯으려고 할 만큼 저돌적이었으니까.

 

“여왕에게 이미 들었겠지만, 본인는 기인(伎人)으로 태어났다. 타고나길 성정이 괴팍하였으나 본인의 기이한 재주가 뭇 사람의 존경을 불러 일으켰다고 했다. 다만 존경은 경외로, 경외는 두려움이 되어 어느새 사람들은 나를 괴물로 보듯이 떠받들었지.”

 

“외신... 별의 아이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아무 설명도 해주지 않았다. 그들과 싸우며 최후의 생존자가 될 때까지 난 그들에게 하늘의 별과 같이 많은 질문을 했지만 그들 중 누구도 대답해주지 않았다. 아마 수천, 수만, 수억의 피조물을 죽인 학살자에게 건넬 말은 없었기 때문이었겠지.”

 

헌데 지금의 교황은, 내가 보았던 모습과 전혀 달랐다. 사향, 데우스, 그런 숫제 괴물들을 제 손으로 만들고 키운 장본인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고아한 태도였다.

 

“아랫 사람에게는 물을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윗 사람에게는 물어도 대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내 평생이 그러한 삶이었기에 네게 질문을 건넬 때에도 아무런 기대를 하지 못했다. 헌데 너는 이리도 훌륭해 해주었더구나.”

 

그토록 우아한 손놀림과 몸짓으로, 교황은 천천히 자신의 고개를 숙였다.

 

“고맙다... 아니.”

 

“고맙습니다.”

 

망가져버린 자신의 몸 위로 스러지는 그녀는 마치 절을 하는 듯 숙이며, 나에게 말했다.

 

“이 감사 인사가, 내가 줄 수 있는 이 유일한 인사가, 그대에게 충분한 보답이 되길 바랍니다.”

 

마치 자신에게 기대하지 않은 나에게 한 방 먹이려는 듯, 평생 들어보리라 생각하지 못한 대답을 들은 나를 보며 그녀는 한결 편안한 눈빛으로 인사를 건넸다. 그런 다음 조용히 눈을 감았다.

 

사락.

 

그 말이 끝이었다.

 

주변을 감싸던 그림자는 완전히 사라지고 내 몸은 인큐베이터 실로 완전히 돌아왔다. 주변에서 다가오는 사람들의 발걸음 소리, 두런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때 마침 도착한 다프네와 리제, 다른 아이들이 말끔해진 유리창 너머에서 나를 보았다.

 

“주인님? 주인님? 여기 계셨군요?”

 

“다, 다행이에요. 잠시 쉬는 시간이라 저희는 밖에 있었는데 갑자기 불이 켜져서...”

 

“근데 좀 이상하네요. 저희가 불침번을 서는 한이 있더라도 여기에 인원이 비는 때는 없게 만들었는데...”

 

다프네는 리제에게 네 차례 아니었느냐고 묻고, 리제는 도리어 자기는 누군가 자기 차례를 대신 서겠다고 말했다며 도리질을 쳤다. 그러면서 평소 어린 주인님이라며 아이 구경 하기를 손 꼽아 기다리던 리제도 자신이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고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주인님? 여기서 뭐 하고 계셨어요?”

 

리제가 죄송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보며 물었다.

 

나는, 조금 당황스러운 말투로 말했다.

 

“... 얘기.”

 

“네?”

 

교황이 있던 자리를 보았다.

 

가루도, 무엇도 없이 사라져버린 허공을.

 

“그냥 좀, 옛날 얘기를 했어.”

 

 

 

*

 



풀어야 할 복선을 다 풀었으니 여한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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