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arca.live/b/lastorigin/8044435 반지이야기 (상) 



우리는 점점 사라져갈 일만 남은 반딧불의 단말마와 같은 그저 인류의 그림자였어요. 그날까지는요.


 철충들에게 끝없이 밀려나가던 우리는 믿기 어려운 출처에서 들어온 통신에 매달려야 할 정도로 몰려있었어요. 그 통신의 내용은 짧았지만 저희 바이오로이드들의 마지막 희망이었어요. 


                                                                 '인간으로 추정되는 생명체 발견'


 믿을 수 없는 내용의 통신이었어요. 하지만 우리들은 믿지 않을 수 없는 내용이었어요. 인간님이 없다면 저희는 결국은 마지막 한 개체마저 죽을 운명이었으니 말이에요. 


 남아있던 모든 바이오로이드들은 저 콘스탄챠 S2와 P/A-00 그리폰을 선두로하여 해당 지역을 샅샅히 수색하기 시작했고 저와 주인님은 운명적인 만남을 갖게 되었어요.


 마치 순백의 천처럼 무지하고 연약한 저의 사령관과요.


그리폰은 주인님의 허약함과 무지함이 처음에는 마음에 들지 않았나봐요. 하지만 저는 행복했어요. 제가 항상 지켜드릴 주인님이 저의 도움이 필요한 존재라는것이 좋았어요.


 저의 존재이유는 주인님을 지키고 항상 곁에서 돕기 위함이었으니 역시 저와 주인님은 운명적인 한쌍이 아니었을까요?


 나의 연약한 주인님, 내가 지켜드릴 주인님, 날 필요로 하시는 주인님, 날 지켜보시는 주인님, 나에게 지켜지는 주인님, 나로 인해 편안함을 느끼는 주인님, 내 옆에서 살아가는 주인님, 날 필요로 하는 주인님......


  저는 주인님을 위해 존재했고 저의 존재 목적을 생산되고 처음으로 느끼게 되었어요. 주인님 우리는 영원히 함께할 수 있겠죠? 결국은 멸망할 이 세계에서 최후까지 함께....


 주인님은 시간이 갈수록 똑똑해지고 강해지셨어요. 제 뒤에서 저를 바라보던 반짝이는 유리구슬과 같은, 그 아름다운 눈은 굳센 의지를 가지고 섬멸할 적을 바라보게 되었고, 총성과 폭발음에 떨던 그 몸은 미동도 없이 저희의 중심을 잡아주게 되셨죠.


 연약하고 아무것도 모르던 주인님이 늠름하고 현명한 남자가 된걸 보면서 저는 행복과 슬픔을 동시에 느꼈어요. 나만의 주인님이, 나에게 지켜지는 주인님이 이젠 모두를 지키는 모두의 사령관이 되었으니까요.


 주인님을 모시기 위한 저의 존재가치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마모되고 떨어져나갔어요. 


 하지만 상냥한 저의 주인님은 저를 버리시지 않으셨어요. 강한 사령관은 제 곁에서는 연약한 저의 주인님이 되어서 전투중에 부상당한 바이오로이드들을 위해 눈물을 흘리며 자책하셨어요.


 사령관은 이제 제가 필요하지 않으셨지만 저는 항상 사령관의 곁에 있을 수 있었어요. 가녀린 사령관에게는 우는 모습을 보며 안아줄 제가 필요하셨으니까요.


 사령관은 바이오로이드들과 함께 이젠 역으로 철충들을 청소하며 나아가고 있었어요. 강인한 저의 주인님과 항상 함께하며 저는 주제넘게도 희망을 가지게 되었어요. 이 철충들을 주인님과 함께 모두 해치우면 언젠가.... 주인님의 아이를, 멸망한 이 세계를 되살리고 주인님과 나의 아이들과 함께...


  제가 이런 희망을 가지고 있던 사이 나의 주인님은 점점 절 찾는일이 적어졌어요. 저는 항상 주인님과 함께했지만 사령관은 모두에게 필요했으니까요.


 저는 주인님과 영원히 함께하고 싶었어요. 저만을 바라보던 주인님의 시선을, 다른 바이오로이드에게 빼앗기고 싶지 않았어요.


 보리와 함께 폐허를 뒤져서 저는 인류의 유산을 찾아냈어요. 사랑하는 사람을 독점할 수 있게 만드는,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만 보게하는, 주인님이 나만을 생각하게 만드는 반지들을.


 저는 주인님을 위해 이 반지를 끼우고, 주인님께 고백할거에요. "사랑하는 주인님 저와 영원히 함께해주지 않겠나요? 저만을 바라봐주세요. 사랑하는 주인님과 영원히 함께하고 싶어요."


 주인님께 제 깊은곳에 숨겨둔, 주인님이 항상 절 의지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숨겨둔 은밀한 사랑을 고백할 멀지않은 그날까지 이 남은 반지들을 보관할거에요.


 시간이 지나고 주인님을 사랑하는 제 마음이 커지고. 저는 발걸음을 옮겼어요.


 저는 사랑하는 주인님께 이 마음을 고해성사하기 위해, 아름다운 달빛이 마구 떨어지는 저녁에 짧은 생에서 가져본 가장 큰 용기와 주인님을 위해서만 뛰는 가슴을 가지고 발걸음을 옮겼어요.


 그리고 얼마 후 저는 봐버렸어요. 절 배신하고 미호에게 사랑을 속삭이며 키스하는 주인님을. 제 남은 반지 한짝은 그날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숲속의 돌길으로, 떨어지고 굴러갔어요.


 존재가치를 상실하고 떨어져버린 반지처럼 제 사랑도 부숴졌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