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모음집 : https://arca.live/b/lastorigin/1507448 





 일본 도쿄 남쪽 400km 지점 공해상.

원래 봄에는 태풍이 생기지 않는 시기였다. 북태평양 저기압과 시베리아 고기압등등 여러가지 용어들을 통한 설명으로 왜 그러는지는 설명할 수 있었지만 배에 타고 있는 타케다 겐에게는 아무 상관도 없는 일이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이 태풍이 왜 하필이면 자신이 있는 공해상을 지나는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아래서는 파도가 끝없이 몰아쳤고 하늘에서는 빗물이 끝없이 쏟아졌다. 슬슬 배가 바다위에 떠있는 것이 아니라 바다속을 헤엄치는 것인가 의심이 들 정도였으니 말이다.

“대체 언제까지 이 빗속에서 기다리란 겁니까!”

타케다는 그 분노를 전화기에 대고 소리쳤다. 그의 말을 들은 아마미야는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걱정마세요. 곧 일본의 정세는 바뀔 거에요. 그때까지만 공해상에서 기다리면 됩니다. 이제 조금만, 아주 조금만 더 기다리면 우리의 세상이 될 거에요. 후우.

아마미야의 담배냄새는 전화기 너머의 타케다까지 전해질 것 같을 정도였다.

“최소한 도쿄항에서 기다리면 되는 것 아닌가요? 만일 이 배가 침몰이라도 하면…”

-어머. 설마 덴세츠 사이언스가 만든 배를 의심하시는 건가요? 자위대 납품용으로 만든 상륙용 함선이에요. 그정도 태풍이야 이겨내겠죠.

하레카제. 그런 이름이었다. 맑은 날의 바람이라는 뜻과는 다르게 배에는 비바람이 몰아치고 있었다. 전장 30m 정도 되는 배의 중앙에는 4열종대로 늘어선 여성형 바이오로이드들이 있었다. 공장에서 만들어진지 얼마되지 않는 그들의 손에는 자위대에 납품 예정인 최신예 소총이 들려있었다.

“배야 버틴다 치더라도, 저 바이오로이드들은요. 저는 비작전 손실은 원하지 않습니다.”

-그건 누구나 마찬가지에요. 귀중한 아이들을 수송중에 잃을 수는 없죠. 가격이 얼만데요. 빗속에 날리기에는 비싼 돈이죠.

아마미야는 분명 나라시에서 내리는 눈을 보며 느긋하게 담배를 피우고 있을 것이었다. 수미터나 되는 전면유리로 된 방에서 정원을 내려다보며 말이다. 언제나 고생을 해야 하는 것은 그의 몫이었다. 애초에 고생을 하기 위해 고용된 것이긴 했지만.

“아마미야 총괄, 대체 뭘 기다리는 겁니까? 본토에서의 일은 들었습니다만, 그럴수록 우리가 먼저 움직여야 하는 거잖아요.”

-조금만 더 기다리세요. 우리가 기다리는 건 일본 자위대의 정세가 아니라 ‘높으신 의원님’들의 결단이니까요.

전화 너머에서는 아마미야의 웃음소리가 전해졌다. 타케다는 불만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이런 표정을 지어도 아마미야는 볼 리가 없겠지.

-아, 그리고 오늘 결국 최종 결정을 했어요.

“뭐 말이죠? 상륙위치 말인가요?”

-아뇨. 그 아이들의 이름이요. 히나에요! 해라는 의미를 가지고도 있고 귀엽지 않나요?

귀엽다라. 타케다는 배 아래에서 비를 맞으며 서있는 바이오로이드들을 바라보았다. 언제라도 명령을 내리면 사람들을 죽일 수 있는 아이들이었다. 완전무장을 한 그들은 전혀 귀여워보이지 않았다. 저들을 상대하는 사람들 입장에서 저 아름다운 얼굴은 공포 그 자체일 것이었다.

그들을 그렇게 만든 것은 타케다였다. 전쟁이란 귀여움따윈 필요없었다. 그저 효율적이고 고성능이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히나라고 붙여진 저 바이오로이드들은 그에 충실하게 만들어졌고 훈련되었다.

“해나 보고 싶네요.”

타케다는 검은 비구름을 바라보며 말했다. 해는 며칠동안 보지 못할 것 같았다.

-걱정마세요. 오래 걸리지 않아 해를 볼 수 있을 거에요. 조금만 더 기다리세요.

아마미야는 그렇게 말했지만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할까. 전화를 끊은 타케다는 입에 액상담배를 물었다. 비에 젖은 탓이었을까 담배에서는 짠맛이 났다.


“총괄이사님, 국회에서 그 법이 통과할까요?”

이름없는 바이오로이드는 전화가 끝난 아마미야에게 다가오며 물었다.

“그게 중요한 거야?”

아마미야는 방석에 앉아 정원에 내리는 눈을 보며 말했다. 흰 모래가 깔린 정원에는 흰 눈이 쌓이고 있었다. 정원 한켠에서 핀 매화꽃에도 눈이 내려 쉽게 볼 수 없는 장관이 펼쳐지고 있었다.

“만일 법이 통과되지 않는다면 히나를 개발한 이유가 없어지는 것 아닌가요?”

“쉿.”

아마미야는 담배파이프로 조용하라는 신호를 하며 말했다. 정원으로 한 바이오로이드가 나아왔다. 덩치 큰 남자였다. 전국시대 다이묘의 복장을 한 그는 정원으로 천천히 걸어나왔다.

“난 말야, 그렇게 쿠노이치들은 잘 팔렸던 반면, 저 오우치는 전혀 팔리지 않았다는 것이 너무 안타까워. 왜 그랬을까. 작중에서 큰 매력을 주지 못한 악역이었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오우치의 역할을 오우치에게 맡기기보다는 자기 자신이 오우치가 되고 싶어했던 고객들이 많았기 때문이었을까?”

바이오로이드 오우치. 덴세츠 사이언스의 대히트작인 대전란에 나오는 악역의 이름이었다.

“난 저 오우치라는 캐릭터가 너무 마음에 들었어. 당대 최고의 다이묘이면서도 그 권력으로 인해 무너지는 연출이 좋았거든. 그리고 이 마지막 장면 말야. 그렇게 쿠노이치들을 몰아갔던 자가 그저 아무것도 아니라 생각했던 부하로 인해 모든 것을 잃고 실의에 빠지는 것을 보며 항상 난 다짐해. 나는 저런 자가 되어서는 안된다고 말야.”

오우치는 한켠에 찬 칼을 내려놓고 무릎을 꿇고 앉았다. 상의를 벗은 그는 내려놓은 칼중 짧은 와키자시를 뽑았다.

“그리고 그가 할복을 하는 장면 말이지. 누구 생각이었을까? 실제 역사상은 가을이지만 억지로라도 눈을 내리게 만든 거 말야. 흰 눈에 뿌려지는 핏자국만큼 아름다운 건 없지.”

오우치는 칼을 그대로 자신의 배에 꽂았다. 그리고 천천히 자신의 배를 갈라나갔다. 그의 벌려진 상처에서는 찢어진 창자가 흘러나왔다. 오우치는 전혀 고통을 표현하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배를 잘랐다.

흐르는 피는 천천히 바닥의 흰 모래와 흰 눈을 적셔갔다. 그 바이오로이드를 아마미야는 보며 담배를 빨아들였다.

“얼마전 PECS의 수장중 하나를 만났던 걸 기억해? 그가 그러더군. 만일 우리가 한 국가의 국방력의 대부분을 차지한다면 그 국가에게 납품할 필요가 있냐고 말야. 그 국가에서 주는 돈을 받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 국가를 가지는 것이 더 낫지 않겠냐고.”

“그 말인즉슨?”

이름없는 바이오로이드는 불안한 눈빛을 하며 아마미야에게 물었다. 아마미야는 웃으며 담배연기를 내뱉었다.

“이 나라의 해자대를 일시에 제압할 바이오로이드를 우리는 가지고 있어. 그런 우리가 이 나라의 국회의 결정에 따를 필요가 있을까? 그들이 히나를 거부한다면 우리는 그들이 울면서 할복하게 만들어야지.”

그렇게 말하는 아마미야는 음흉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아마미야를 유리 너머로 바라보며 오우치는 고개를 숙였다.


“친애하는 일본국 중의원 여러분! 조금전 덴세츠 사이언스에서 보고가 들어왔습니다. 현재 덴세츠 사이언스는 육전형 바이오로이드를 500기를 생산해 얼마든지 납품할 준비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바이오로이드를 실은 함선은 공해상에서 우리의 결정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키리시마의 말에 몇몇 의원들은 야유를 보냈다.

“알고 있습니다! 만일 바이오로이드가 사람이라 한다면 육전용 바이오로이드는 전투용병을 고용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만일 그들이 인간이라면 말입니다. 바이오로이드의 권리에 대한 기본법! 이 법안이 통과되면 우리는 얼마든지 바이오로이드를 사올 수 있습니다. 우리를 지키기위한 자위권을 바이오로이드를 통해 해낼 수 있습니다!”

몇몇의원들은 외쳤다. 아니다. 말도 안된다. 그들은 테이블을 거세게 내리쳤다. 그에 대해 찬성파 의원들은 옳소! 라고 외치기 시작했다.

“의원 여러분! 저 해상자위대는 이 일본국의 방위를 무너트리고, 이제는 국가마저 무너트리려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자리에 모인 것은 왜입니까! 그것을 막고자 하는 것 아닙니까! 저는 여러분께 그 방법을 가져왔습니다! 이것은 덴세츠 사이언스를 위한 것도 아니고 제 자신을 위한 것도 아닙니다! 이 모든 것은 일본국의 미래를 위한 것입니다!”

의원들의 반응은 조금 전과 같았다.

“의원 여러분, 오늘부터 중의원 임시 소집을 가질 것입니다! 목적은 바이오로이드의 권리에 대한 기본법의 통과를 위함입니다! 언제까지 자위대에게 이 나라의 방위를 맡길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이 사태는 비단 해자의 문제만이 아닙니다. 이를 막지 못한 육자, 해자, 또한 이 사태가 악화되는 것을 방치하지 않았습니까! 그들에게도 이 사태에 대한 책임이 있습니다! 자위대와 함께라면 우리는 PAX JAPONICA를 이룰 수 없습니다! 구제국에 대한 추억으로 만들어진 조직이 아닌, 진짜 우리나라를 지켜줄 수 있는 집단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자위대는 못믿고 덴세츠는 믿겠다는 거냐!”

한 의원의 외침이었다.

“덴세츠를 믿자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는 덴세츠가 그런 기업이 되지 않도록 지속적인 감시를 하면 되는 일입니다. 아니면 다른 기업을 덴세츠에 대한 대항마로 키울 수도 있는 것이고요. 하지만 지금 당장은 우리에게 선택지가 없다는 것은 모두 동의하지 않으십니까!”

“옳소!”

의원들이 소리쳤다. 키리시마에게 반대하는 의원의 목소리는 작아지고 있었다.

“단 한시간입니다. 단 한시간! 덴세츠 사이언스는 현재 해자를 제압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그정도 밖에 되지 않을 것이라 하고 있습니다! 모든 나라가 군사를 바이오로이드로 전환하고 있습니다. 우리라고 그러지 말아야 한다는 법이 있습니까? 오히려 이것은 우리의 방위를 저해하는 행위입니다. 적국들이 바이오로이드를 앞세워 침공하는데 우리는 약한 인간 자위대원들로 막는다면 그것을 막을 수 있겠습니까!”

“옳소!”

“의원 여러분! 우리는 이 법을 반드시 통과시켜야 합니다! 이는 누군가 개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전일본 국민들을 위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키리시마 의원! 그것은 한 개인을 위한 것 아니오! 국방을 한 회사에게 맞긴다니! 덴세츠의 요시미츠에게 이 나라의 국방을 전부 맡기겠다는 거요! 다시 정경유착이라도 하겠다는 거요?”

요시미츠. 덴세츠 사이언스의 대표였다.

“하나야마 의원! 어디서 그런 말을 하시오! 이 자리는 이 나라의 국방을 위한 것이오! 한 회사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오!”

키리시마가 대답을 준비하는 사이, 한 의원이 일어나 외치기 시작했다. 그것을 시작으로 수많은 의원들이 일어나 자신의 말을 하기 시작했다. 의회는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되었다.

그 모습을 보며 키리시마는 한숨을 쉬었다. 그녀의 의도와는 다르게 상황은 편하게 흘러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