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부터 나를 찾다니 별일이군 사령관."


아스널이 위풍당당하게 망토를 펄럭이며 방안으로 들어섰다


"바쁠텐데 불러서 미안해."


"전혀, 걱정하지 말아라. 우리 캐노니어는 포병 진지 하나만 정리하면 철수준비가 완료되니까. 다른 부대들보단 훨씬 사정이 널널하지."


나에게 성큼성큼 다가오는 아스널

그녀의 얼굴이 나 바로 코앞에 바짝 다가오고나서야 그녀의 발걸음이 멈췄다


"아...아스널? 좀 너무 가까이 온것같지않아?"


"군사적인 조언을 찾는다면 보통 마리대장을 먼저 호출할테고, 고민상담같은거라면 라비아타 통령이나 메이드들을 우선적으로 찾았겠지. 따라서 이런 아침부터 나를 찾았다는건 내 몸이 그리워서가 아니겠는가? 이 호색한."


"으-으음? 하하...나름 논리적인 추리긴하네. 하지만 아냐."


착 달라붙은 채 오묘한 미소를 지으며 내 가슴을 쓰다듬는 아스널의 손을 붙잡아 멈추고 나는 그녀의 눈을 똑바로 보며 진지한 어조로 말했다


"최근 레이븐한테서 이상행동을 느낀적 없었어?"


"레이븐한테서?"


아스널은 잠시 고개를 갸웃하면서 곰곰히 생각에 잠겼다


"...아니 특별한 이상행동은 없었다. 최근들어 매일마다 주변 정찰을 자청하고 나가긴했지만, 그 녀석이 정찰을 핑계로 종종 자신만의 시간을 가지는거야 사령관도 이미 알고있을거라 생각했다만?"


"말이 나와서 말인데, 그 부분에 대해서 아스널은 크게 개의지 않는구나?"


"뭐 굳이 따지자면 탈영행위에 해당된다만, 그 와중에도 본인 일에는 아주 충실하니까 말이다. 거기에 마침 휴가철 막바지이기도 하니 어느정도 묵인해주는거지."


그 말을 마친 아스널은 팔짱을 낀채 나를 빤히보고는 씨익 웃었다


"해서, 이번에 관심가는 아가씨는 우리 레이븐인가? 캐노니어의 대장으로서 미리 말하지만 우리 애들과의 동침은 전부 만만치 않을거다."


"아니, 아니 왜 이야기의 방향이 죄다 그런 쪽으로 흘러가는지는 모르겠는데"


'역시 아스널과의 대화는 만만치 않구나. 시도때도없이 대화의 분위기를 위험하게 만들어...!'

이런 느낌의 대화도 재밌을진 모르겠지만 슬슬 본론으로 넘어갈때다


"어젯밤에 에밀리가 찾아왔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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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에밀리? 좀 진정이 되니?"


에밀리는 내가 쥐여준 티슈를 꼭 쥔채 고개를 끄덕였다


"미안해 사령관. 밤 늦게 다른 사람의 방에 찾아가서 우는건 민폐라고 헌터언니한테 들었는데..."


"아니 뭐...괜찮으니까 신경쓰지않아도 돼. 그것보단...무슨 일이 있었어?"


걱정스레 물었지만 한편으로는 어느정도 무슨 일일지 짐작이 들긴했다

감정표현과 일상상식이 아직 미숙한 에밀리가 이렇게까지 울상이 되는건 십중팔구 스스로가 아닌 남과의 트러블일 가능성이 높으니까 

필시 자신이 생각해도 엄청난 잘못을 저질렀거나 해서 누군가와 트러블이 생긴것이 분명하다


"요즘 레이븐 언니가 날 피하는것 같아..."


"레이븐이?"


그 갈등상대가 꽤 의외의 인물이긴 했다

보통 캐노니어의 대원들은 에밀리를 마치 막내동생처럼 지극히 아끼는 모습을 보여줬었으니까

특히나 레이븐과 파니가 에밀리를 대하는 모습은 그야말로 동생바보 팔불출 그 자체였기에 그런 그녀가 에밀리하고 갈등이 생겼다는건 정말로 의외였다


"어떤 일이 있었는지 자세히 말해주겠어?"


"응...삼일 전에 레이븐 언니가 새벽중에 나가려는걸 우연히 본적이 있었어"


에밀리는 호흡을 가다듬고 훌쩍임이 말에 방해가 되지 않게끔 천천히 한마디씩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나를 본 레이븐 언니는 주머니에서 사탕을 꺼내주면서 '헌터언니에게는 비밀이야? 아니면 아침 일찍부터 주변지역 정찰명령을 받았단걸로 해줘' 라고 말하곤 나갔어. 그래서 나도 헌터언니에게 레이븐언니가 말한 그대로 전해줬어"


아차차...분명히 에밀리는 그 말 뿐만 아니라 앞뒤 전후 상황까지 낳낳히 전해줘버렸을것이다

대략적인 전말이 파악되자 왠지 그 귀여운 모습에 피식 하고 웃음이 새어나올뻔했다


"근데 그 뒤로 레이븐 언니가 나하고 얘기를 잘 안해줘. 원래라면 나갔다 돌아올때 봤던 신기한거나 재밌는것들을 잔뜩잔뜩 이야기 해줬었는데...요즘은 그저 웃기만하고 별 말없이 금방 방으로 들어가버려."


이런, 거기까지 말한 에밀리는 다시 울먹이기 시작했다


"내가 뭔가 잘못한게있는걸까 사령관..."


"글쎄 뭐어...분명 뭔가 서로 오해가 있는거일거야."


"오해...?"


"그래 오해. 그러니까 내가 내일 이것저것 알아본뒤 직접 레이븐과 시간을 내서 얘기해볼게. 분명 이 사령관이 해결할수있는 문제일거야."


"정말? 해결할수있어?"


"물론이지 나는 사령관인걸. 에밀리가 힘들어하는건 뭐든지 해결해낼수있어."


"...고마워 사령관."


그제서야 에밀리는 울상이된 얼굴에서 살그머니 미소를 지어주었다

제 삼자의 눈에는 별거 아닌것만 같아도, 분명 당사자인 이 소녀한테는 진심으로 힘들었을 일일터였을것이다

나는 나름대로 며칠동안 마음고생했을 에밀리의 작은 몸을 꼭 끌어안아 등을 토닥여주었고 에밀리는 그런 내 가슴팍에 부스스 머릴 비비며 눈물을 닦아낸뒤 얼마안가 고른 숨소리를 내며 잠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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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그런 일이 있었군."


아스널은 '내 자리'에 걸터앉아 턱을괴고 다릴 꼰채로 내 얘기를 쭉 듣고 있었다

그녀의 표정에서 무언가 침울함이 드리워진걸 눈치챌수있었다


"내 부하들 사이의 그런 갈등을 미리 캐치해내지도 못하다니. 이 무슨 통탄스러운 실책인가."


"아니 뭐, 에밀리는 세심하게 보지않으면 알아채기 힘들정도로 워낙 표현을 잘 안하니까...요 며칠간 오르카 전체가 바쁘기도 했잖아?"


"그렇다하더라도 말이다...흐으음..."


한 십초정도 정적이 흘렀을까

별안간 아스널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만약 다른 부하들이 알고있었다면 나에게 넌지시 상황을 전달했겠지만...이에 관련해선 헌터나 파니에게도 아무런 언질이 없었다. 특히 파니만큼은 레이븐과 가깝게 지내는 순간이 많으니, 다른 사람은 몰라도 그런 갈등이 벌어지면 제일 먼저 털어놓았을터."


"그런 파니마저도 아무 말 없었다는건 사실상 두 사람 다 아무한테도 얘기 안했다고 보는게 맞겠군..."


둘의 문제를 괜히 주변사람들까지 알게되는건 꺼리는 마음이 서로 통한것일터이다

잠깐, 그렇다면 에밀리는 많고많은 주변 사람들중에 나에게 이걸 제일 먼저 털어놓았다는것이 되는건가?

어쩌면 난 그 애에게 엄청 신뢰받고있구나... 


"그렇다면 되도록이면 우리 둘을 포함해 최소한의 지원을 받아서 해결하는게 두사람한테도 부담이 적겠지. 레이븐은 지금 어디에 있지?"


"레이븐은 오늘 아침에도 일찍 나갔다. 주변 정찰 지원이라고 하면서."


"어디로 갔는지는 알고있어?"


"아마 마지막으로 남은 진지의 부근이겠지만, 정확히 어느 방향으로 갔을지는 모르겠군. 보통은 몇 시간정도 정찰후에 그녀가 사진과 좌표정보를 보내오는식이니까말이다."


"그냥 지금 바로 호출하면 되는것 아니야?"


"레이븐은 평시에 단순한 지역정찰중에는 종종 무전기를 놓고가는 버릇이 있다."


"...뭣...어엉? 그거 그래도 괜찮은거야?"


"본인말로는 그러는 편이 마음이 안정되고 좋다고 하는군."


"...그으래애...그럼 우선 그 포병 진지로 가서 그녀가 좌표를 보내올때까지 대기하도록 하자. 분명 그 좌표에 도착하면 멀지않은곳에서 그녀를 찾을수 있을테니까"


"아니면 사령관은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라. 내가 그녀를 직접 찾아서 데려올테니-"


"아니, 아니야. 되도록이면 만나는 자리에서 바로 이야기해서 사정을 듣고싶어. 레이븐이 대장의 손에 붙잡혀서 내 사무실로 오는 모습을 누가 보기라도하면 괜히 오해가 생길수도 있을테니까."


"...좋아 그럼 그렇게 하도록하지. 내가 직접 앞장설테니, 사령관은 최소한의 호위인원을 데리고 날 따라와라"


마침 한동안 잠수함 속 사무실에 틀어박혀서 서류더미에 파묻혀있던 신세다

오래간만에 산림욕이라도 하러간다는 가벼운 기분으로 다녀오도록할까

문득, 어젯밤에 받은 데이터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지만 깊은 숲으로 들어가는것도아니고 본진 부근 진지로 가는것일 뿐인데 별일이 있겠어?

필시 괜찮을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