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표정보가 전달된건 약 오후2시경이었다


"저기...보통 정찰 보고올릴때 셀카도 같이 보내나?"


"뭐어- 생존신고 겸 겸사겸사 아니겠는가?"


아스널은 허허하고 너털웃음을 지으며 눈앞에 삐죽 튀어나온 나뭇가지를 움켜쥐곤 부러뜨렸다

레이븐이 보내온 좌표는 캐노니어 포병진지에서 조금 떨어진 동쪽 숲을 가리키고 있었기에 우리는 직접 앞장서서 나아가는 아스널의 뒤를 쫓아 숲속을 걸어다녔다

호위인원은 이그니스와 다크 엘븐으로 선정했다

이그니스는 입이 무거운편인만큼 일을 조용히 해결하는데 도움이 되리라고 판단했고, 다크 엘븐은 입이 무거운지는 잘 모르겠지만 산림 관리인이라는 보직인 이상 적어도 숲속을 돌아다니는데에 아주 익숙할테니 혹여나 길을 잘못들었어도 무난히 대처해줄거란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두 사람 다 바쁠텐데 이렇게 시간 내줘서 고마워."


"아닙니다 사령관. 오랫동안 소각장에 있었다보니 마침 맑은 공기가 그리워지던 참이었습니다."


"나...나도 괜찮아! 딱히 그렇게 바쁜것도 아니었고..."


"음? 그래? 늘 같이 다니던 엘븐은 요즘 뭔가 계속 수첩을 들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던게 되게 바빠보여서 다크엘븐도 같이 바쁠줄 알았는데."


"엘븐 그 바보녀석이 바쁜건 순 자업자득이니까 당신은 걱정 안해도 괜찮아."


"자업자득?"


"...그런게 있어. 그보다 아직 도착하려면 멀은거야?"


"이제 곧 도착할것같군. 자."


아스널은 좌표탐색기와 레이븐의 좌표를 보여줬다

확실히 이제 얼마 안남은것같네

이 정도 차이면 아마 앞으로 한 10...9...


"도착했다"


아스널이 발이멈춰서자 따라오던 우리들도 덩달아 발이 멈췄다

나는 한바탕 빙 돌며 주변을 돌아봤다

하지만 보이는것이라곤 울창하게 자란 나무들과 그 나무틈새로 새어 나오는 햇빛뿐

막상 레이븐을 찾을만한 흔적은 아무것도 보이질 않았다


"이래서야 찾아내기는 글렀는걸"


"그렇네...좌표를 받자마자 바로 출발했는데도 못따라잡다니"


"그럼 이제 어떻게하죠? 오르카로 복귀해서 레이븐님이 복귀할때까지 기다리시는건..."


"글쎄...레이븐이 복귀하는 시간은 일정치가 않은편이다. 그러고보면 최근에는 조금 늦는편이었군. 만약 오늘도 늦는다면 아마 한...10시넘어서 도착하겠군."


"아니이- 잠깐, 그건 좀 너무 방관하는거 아닌가...너희 군부대잖아?"


"부대원들의 사기와 효율성을 증진시킬수있다면 작전외 시간에는 최대한의 자유를 얼마든지 보장한다. 그것이 캐노니어의 방식이라는 것이다."


아스널은 당차게 가슴을 팍팍 치며 웃어보였지만 역시 스틸라인이나 발할라의 군기잡힌 모습에 익숙해져있는 나에겐 이해가 잘 가지 않는다

그럼에도 평소에 봤을때 딱히 상명하복관계가 크게 흐트러진 모습은 보지 못했었고, 대장에 대한 충성도 높은 편이었으니 굳이 내가 걱정안해도 그녀의 방식이 잘 먹히고있다는 반증이겠지

과연...이것이 캐노니어의 방식인가


"뭐 어쨋든 여기서는 더 할수있는게 없겠어.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되도록 늦게까지 기다려볼테니까 레이븐이 도착하면 나에게-"


"어, 잠깐 저기 쟤 아니야?"


다크엘븐이 나무 틈새로 손가락을 가리키자 모두의 시선이 그 쪽으로 향했다

무성하게 자란 나뭇잎사이 무언가의 그림자가 스윽 지나가는걸 금방 찾아낼수있었다

레이븐...인가?

그림자가 향하는 방향쪽 멀지않은곳에 나뭇잎의 틈새가 크게 벌어진곳이 있었다


작지만 아까보단 더 선명하게 들리는 특유의 모터소리

형광빛 청록색줄이 그어진 검은 유니폼

그리고 엉덩이!


"앗, 레이븐이다!"

"음, 레이븐이군!"


드디어!

나는 레이븐을 찾아낸 다크엘븐을 꽉 끌어안아 들어올리며 칭찬해줬고, 갑작스레 껴안아진 다크엘븐은 잔뜩 당황한채 내 어깨를 팍팍 때리며 다릴 버둥거렸다


"그러는 사이에 놓치겠다 사령관. 만약 시간이 필요하다면 이그니스와 내가 먼저 가도록하지"


"아아 그렇지 그렇지 미안. 놓치기전에 어서 쫓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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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서어...두 분께서 나한테 무슨 볼일이...?"


레이븐은 잔-뜩 긴장한채 정좌하고있었다

그야 그럴테지

갑자기 사령관과 자신의 대장이 동시에 자신을 찾아와선 붙잡아두고있으니까

그녀의 양 옆에 다크엘븐과 이그니스가 우뚝 서있고 앞에는 나와 아스널이 근엄하게 앉아있는것으로 숲속 한가운데의 취조실이 완성되었다


"몰라서 묻는건가 레이븐"


"나 딱히 잘못한것은 없던거로 기억하는데에...일단은 말이야."


"정말로 잘못한게 없다고 생각하는가?"


옆에서 불쑥 아스널이 무미건조한 말을 던지자 그녀의 몸이 움찔했다


"호...혹시...내가 요즘 너무 늦게 돌아오는것에 관한 거일까나아...아하하..."


"흐음..."


"그으게...나도 신경은 쓰고 있었지만 말이야? 뭐 이것저것 하다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시간이 생각보다 훅 가버린다고 할까아..."


"흐으음..."


"그, 그치만 딱히 대장이 지적하지않길래 어느정도 괜찮겠구나 싶어서...!"


"흐으음...?"


"그렇더라도 요즘 너무 늦게 돌아왔던 감이 있지? 미안-아니 죄송해요 대장!"


별 다른 말도없이 오직 기세만으로 레이븐을 압도하는 아스널

과연...이것이 지휘관의 관록인것인가...


"어느정도 자각하고있었다니 다행이군. 하지만 난 그런 이유로 널 찾은게 아니다."


"...엉?"


멍청한 소리를 내며 얼빠진 표정을 짓는 레이븐

충분히 골려줬다고 생각하는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은 아스널이 슬쩍 나에게 눈치를 보냈다


"최근에 혹시 에밀리하고 갈등이있었어?"


"에밀리? 갈등? 내가?"


전혀 생각지도 않은 얘기를 들은듯한 어리둥절한 반응


"무슨...어디서 들은 이야기야? 내가 언니로써 에밀리를 얼마나 아끼고 있는데?"


"그럼 따로 마음에 두고있진 않았지만 갈등이 생길수도 있을만한 일도 없었어?"


"전혀, 그럴만한 일은 기억에 없어. 자고로 좋은 언니는 동생과 생긴 트러블같은건 마음에 담아두지 않는거라고."


"허어- 그거 아주 훌륭한 언니구나."


레이븐은 아무것도 모르는 눈치였다

역시 둘 사이에 대화가 적어지자 에밀리측에서 멋대로 오해한것일 뿐이구나

나는 어젯 밤 에밀리가 나를 찾아와서 했던 이야기를 그대로 레이븐에게 전해주었다


"그런...난 정말로 그럴 의도는..."


레이븐 역시 어처구니없는 오해를 사고있었다는것에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레이븐이 직접 만나서 얘기해주도록 해. 그런 의도가 아니었었다고 말이야. 덧붙여, 앞으로는 너무 오랫동안 멋대로 밖에 돌아다니지 말고 말이야."


이 정도면 충분한 훈계가 되었을까

하지만 대답이 돌아오진않았다

슬쩍 살펴본 레이븐의 표정은 뭔가 미묘한 느낌이었다

무언가 대답을 망설이는것만 같은 그런 느낌


"레이븐? 사령관의 말에는 대답을 해야하지않겠나"


아스널이 약간 엄한 어조를 담아 말하자 그제서야 레이븐은 나의 눈을 잠시 보더니 한숨을 푹 쉬었다


"저기...대장? 사령관? 내가 왜 요즘 늦게 돌아왔는지 알고싶지않아?"


"늦게 돌아온 이유?"


단순히 숲속을 돌아다니며 놀다와서가 아니었단 말인가?

레이븐은 주섬주섬 자리에서 일어나 다리와 엉덩이에 붙은 흙 부스러기를 털어냈다

그리곤 다시 평소같은 장난기있는 웃음을 씨익 지은채 말했다


"만약 사령관이 알고싶다면, 알려줄게. 내가 요즘 하고있었던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