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걱정은 단순한 기우였을 뿐이었다

지휘관들에게 즉흥 파티를 공지한지 몇 시간만에 생각 이상으로 많은 인원들과 물품을 지원받을수 있었다

아마 다들 철수준비에 질려있던 참에 새로운 일로 탈출할수있는 기회가 생긴걸 놓치고 싶지 않았던걸까?

사령관의 자리에 있으면서 다들 이 정도로 지쳐있던 사실을 미리 눈치채지못한 책임을 절절히 통감하게된다


여하튼, 덕분에 레이븐의 잡화점은 그녀가 원래 기획했던 규모보다 훨씬 크고 견고하게 완성되었다

조잡한 장식은 더 다양하고 그럴싸해졌으며 여기저기 칠이 벗겨진 벽들도 거의 말끔해졌다

가게 주변의 폐기물들도 대거 정리하면서 중간에 대형 모닥불을 설치할수 있을정도로 큼직한 마당이 생긴건 덤이다


파티준비에 참여하지 못하는 대원들도 하나하나 남는 옷, 남는 책, 남는 전투식량 등을 내놓으며 간접적으로 준비를 도와줬다

거기에 마침 오르카보다 비교적 가까운곳에 있던 요정마을의 주민들의 도움들도 매우 컸었다

그들중 대부분은 우리를 따라 오르카호에 합류할 예정이었던지라 여러모로 처리해야할 개인 물품들이 많았었고, 앞으로는 거의 쓰이지않을 그들만의 화폐체계가 있었다

이런 점들이 갑작스레 준비되서 미흡할수도 있던 파티의 완성도를 크게 올리는데 정말 많은 도움이 되었다


이렇게 한 여동생을 위해 기획되었던 깜짝이벤트가 순식간에 오르카 전체가 즐기는 큰 축제로 완성되었다

즉흥적인 결정치고는 꽤 성공적인 준비과정이었다


일을 마쳤을 무렵엔 어느새 해가 슬슬 저물려는 무렵이었다

지금 출발해서 오르카로 돌아오면 딱 저녁식사 시간대겠지

브라우니들이 내일 있을 파티에 대한 기대를 한껏 품고선 재잘거리며 돌아가는 광경을 쳐다보며 나도 슬슬 돌아갈까 하던차에 누군가 목뒤에서 차가운 음료수병을 내밀었다

레이븐이었다


"고생많았어 사령관."


"아 고마워. 마침 목이 좀 타던참이었는데."


별거 아니라는듯 싱긋 웃어보이는 레이븐은 가게앞 계단턱에 걸터앉았다

나 역시 잠깐이나마 어울려주자는 생각으로 그 옆에 걸터앉았다


"레이븐도 저녁식사해야하지않아?"


"아니, 나는 남아서 마지막으로 가게를 점검할 생각이야. 이 모든것의 시작은 나였으니까 끝까지 책임져야지."


"허어, 전혀 레이븐 누나답지가 않네. 늘 철없는줄만 알았더니."


"누나한테 그렇게 철없다고 리면 안된다고했지?"


장난스레 팔꿈치로 가격하는 레이븐

덕분에 들고있던 음료수를 바지에 흘렸지만 아랑곧않고 깔깔하며 쾌활하게 웃는 그녀를 따라 나도 따라 웃었다


"뭔가...일이 커져버렸네 그치?"


"처음에 이 집앞에 서서 어디부터 시작해야할지 고민할때는 이렇게 되리라곤 생각도 못했는데말야."


"깜짝이벤트하고는 거리가 좀 멀어진거같아서 아쉽다는 생각도 드는데."


"후후...이 관대한 누나는 마음이 커서 사소한것따위 신경안써. 우리 에밀리가 즐거운 시간을 보낼수만 있다면 그런건 아무래도 좋아."


"보통 마음이 '넓다'라고 표현하지않아?"


"사령관은 센스가 없네. 중의적표현이란거잖아."


가슴을 손바닥으로 팍팍치며 자랑스레 웃어보이는 레이븐

그런 그녀에게 꼭 해줘야 할거같은 말이 떠올랐다

작은 립서비스에 불과할테지만, 이거야말로 그녀가 정말로 걱정하고 한편으론 기대하고 있을 점이라고 생각했다


"에밀리가 많이 좋아할거야. 장담하건데 정말로 즐거운 경험이었다고 기억할거야." 


"...그야 물론이지! 누가 처음 기획한 파티인데."


"적절한 틈이오면 이 모든 파티가 누구 머리에서 나온건지 알려주자. 분명 깜짝 놀랄걸."


"아하-그건 좀 부끄러울지도 모르겠는데에..."


"'이 모든건 에밀리를 아주아주 사랑하는 언니가 오직 에밀리가 즐거워하길 바라며 준비한거란다' 하고 말해줘야겠어."


"이야아...하하- 직접 귀로 들어보니까 왠지 더 부끄러워졌어. 역시 사령관은 잠자코 있는게 좋지않겠어? 아하하하하"


레이븐은 부끄러운듯 팔짱을 감싸고 몸을 반대쪽으로 돌렸지만 입으로는 쾌할하게 폭소하며 웃었다

이걸로 조금이나마 걱정이 덜어졌으면 좋겠는데말이야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내일보자 레이븐."


"응, 사령관도 저녁 맛있게 먹어. 내일 에밀리 사진 많이 찍어줘야한다?"


"우후후후- 아무렴 당연하지. 잔뜩 찍어서 귀여운것들만 골라서 독점할 생각이라고."


"우와- 그거 완전 욕심쟁이네 사령관! 그럴바엔 내가 직접 찍고다니고 말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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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실없는 농담을 주고받으며 레이븐과 작별한 나는 아스널의 포병기지를 거쳐 오르카호로 복귀했다

오늘은 나를 포함해 꽤 많은 인원이 육체노동으로 녹초가 되었으니, 소완이 특히나 신경써서 만든 보양식이 나오진않을까

그렇게 기대감을 품고 식당을 향하던 와중에, 갑작스레 주머니의 통신기가 울렸다

콘스탄챠였다.


"주인님?! 지금 어디 계시나요? 아직 숲속에 계시나요?!"


"아냐 이제 막 오르카로 복귀했어. 조금 늦었지? 미안해. 지금 식당으로 향하는 길이야."


"아...휴우...다행이에요 주인님. 전 설마 아직도 그곳에 계실까봐..."


"목소리가 다급해보이는데...무슨 일 있는거야?"


통신기 너머의 콘스탄챠의 목소리는 그야말로 200m를 쉬지않고 뛰어온듯한 사람처럼 호흡이 불안정하고 떨리고있었다

...이것을 한번 자각하자 순간적으로 단순한 일이 벌어진게 아니라는 예감이 척수를 관통하며 불안한 감정이 올라왔다


"이틀 전 밤에 제가 전달해 드렸던 연구소의 데이터 기억하시나요?"


당연히 기억한다

타이런트 한기를 포함한 일부 AGS의 수량이 데이터와 실제가 일치하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파티준비를 하면서 틈틈히 받고있었던 수색대의 보고상으로는 그들의 소재는 커녕 흔적조차 찾지 못했었다고 전달받았기에 단순한 데이터의 착오일뿐 실질적인 위협이 되진 않을거라고 생각하며 저 생각의 구석 저편으로 치워두고있던 참이었다


"혹시 그들을 찾은거야?"


"아뇨 그건 아니지만...금방 추가 검수결과의 정보가 들어왔어요."


"추가 검수결과라고?"


"네, 그게...로버트가 AGS 격납시설을 관리하면서 내렸던 명령코드의 해독본인데...그 내용이..."


"뭔데, 무슨 내용인데."


"...로버트 본인의 AI의 작동중지가 실시된지 일정 시간이 지나면, 해당 예비 AGS들을 가동시켜서 AI를 훼손했을 습격자들을 소탕 및 실험소의 정보를 은폐시킬것이라는 명령이 내려져있었어요."


...잠시나마 심장이 쿵-하고 멎는것만 같았다

로버트의 AI가 정지되면 가동되는 적대 AGS라고...?

'그' 타이런트가 저 숲 어딘가에서 숨죽여서는 타이머가 다되는 순간을 기다리고있다고?


...비록 이제 며칠이면 우린 이 섬을 떠날테지만, 아직 저기엔 철수 준비를 못마친 부대들이 다수 존재한다

운이 나쁘면 떠나기 직전에 그들이 가동되어 땅 위로 올라와 그녀들을 무참하게 학살해버릴수도 있는 경우였다

거기에다 섬에 남을 인원들도 존재한다는것을 생각하면 이건 절대로 대강 넘겨서는 안될 대형사태다


"...이거 파티를 준비할 시간이 전혀 아니였구만..."


"...주인님..."


"일단은 요정마을을 포함한 전방에 있는 모든 부대들에게 긴급 귀환 명령을 내리고, 소규모 공중 수색대를 편성해 주기적인 순찰을 돌게해야겠어. 소소한 장비들은 그냥 버려두고 중요 물품만 챙겨서 빨리 그곳에서 벗어나라고 전달해줘."


"알겠습니다 주인님. 다른 명령은 없으신가요?"


"비록 비상상황이긴 하지만, 아직 실질적인 위협이 나타난 단계는 아니야. 침착하게 대처하면 분명 무사히 해결할수있는 방안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다른 통신신호가 도착하면서 요란한 착신음을 울리기 시작했다


"오빠! 비상이야! 완전 큰일났어!"


"방금 콘스탄챠에게 보고받았어. 닥터 침착하게 실험실에 가있는 우리 기술자들을 전부 철수시ㅋ..."


"그게 아니야 오빠! 나타났어! 갑자기 나타났다고!"


"...아니야...나타났다니 뭐가."


"AGS반응! 그것도 초 거대AGS의 반응이 방금 막 실험소에서 600m떨어진 숲속에서 발견됬어!"


아까는 멎을것만 같던 심장이 이번엔 주체할바를 모르고 폭주하듯이 쿵쿵쿵 뛰기 시작했다

이렇게 갑자기? 지금? 

저 숲에는 아직 많은 부대원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그들 모두가 위험하다


"거기에...어떡해 오빠아...! 그 반응들이 지금 오르카호를 향해 가고있어!"


그리고 나와 오르카 역시도...남말할 처지가 아닌것같다


"콘스탄챠! 아직 듣고있다면 전방에 배치된 부대원들에게 모두 대피명령 전달해! 서둘러야해!"


"네 주인님!"


"그리고 항구 내에 주둔하고있는 부대들 전부 오르카안으로 귀환시키고 지휘관들을 소집해줘! 긴급회의야!! 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