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모음집 : https://arca.live/b/lastorigin/1507448



 
제 주인님은 착하신 분이십니다. 또한 돈이 많은 부자시지요. 삼안에서 만들어진 비싼 저를 사실 정도니까요. 주인님이 어떻게 그렇게 많은 돈을 버셨는지는 잘 모릅니다. 주식이라고 하던가요. 여튼 여러가지 어려운 용어를 섞어서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이 어떻게 부자가 되었는가를 설명하시지만 옆에있는 저는 언제나 그 말을 잘 알아듣기가 어렵습니다.

주인님은 집에 많은 것들이 있습니다. 저와 같은 바이오로이드들도 많고 외제차들도 셀수 없이 많습니다. 명품 시계와 옷들은 방을 여러 개를 가득 채울 정도로 많죠. 주인님이 사시는 곳은 고급 펜트 하우스입니다. 다른 바이오로이드의 말에 따르면 그 건물 전체가 주인님의 것이라고 하더군요.

저는 그런 주인님이 언제나 저를 아껴주시는 것에 감사합니다. 하지만 주인님은 걱정이 많으십니다. 누군가가 자꾸 자신의 목숨을 노린다고 하시며 창문가에 가는 것마저 꺼리시던 분이셨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편집증이 아니었습니다. 주인님의 정신은 그 누구보다도 정상적인 분이십니다. 실제로 주인님의 목숨을 노리는 악당들이 있던 것입니다. 그들이 왜 주인님을 노리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언젠가 한번 물어본 적이 있었지만 주인님께서는 뭔가 어려운 말로 대답을 하셔서 저는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었죠.

주인님의 집의 거실의 가운데에는 유리창이 하나 놓여있습니다. 창틀에 연결되지 않은 그 유리창은 창문의 역할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대신 그 유리창에는 구멍이 하나 나있습니다. 주인님께서는 그 구멍이 총알이 지나간 자국이라 하셨습니다.

누군가가 주인님을 노리고 집안에 있던 주인님을 총으로 쏜 것이었죠. 다행히 주인님께서는 목숨을 건지셨지만 당시의 충격으로 다시는 창가로 가지 못하게 되셨고 그 두려움을 잊지 않기 위해 깨진 유리창을 거실에 진열한 것이었지요.

주인님께서 저를 사신 것은 그런 이유에서였습니다. 저는 주인님을 지키는 종복입니다. 컴패니언 시리즈, CS 페로. 저는 그런 이름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주인님을 지키는 것, 그것이 제 사명이자 제조 이유이자 존재 이유입니다. 유사시에는 제 목숨을 바칠 각오가 되어있는 것, 그것이 컴패니언 시리즈였습니다.

당신의 가장 가까운 동료. 저는 언제나 주인님과 함께했습니다. 주인님의 침대부터 주인님의 직장, 주인님의 욕실까지도. 아침부터 밤, 아니, 주인님께서 주무시는 새벽까지 저는 주인님의 곁에 있었습니다.

저를 구매하신 주인님에게서는 불안감이 사라졌습니다. 제가 주인님과 만나게 된 지 얼마되지 않았을 때의 일입니다. 주인님의 목숨을 노린 한 남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호텔을 나와 차에 올라타려는 주인님을 노리고 총을 들고 달려왔습니다.

주인님 혼자였다면 그 괴한을 막지 못했을 겁니다. 인간분 경호원들이라면 남자를 막았지만 주인님의 목숨은 보장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때 주인님께는 제가 있었습니다. 손에는 단분자 커터 장갑을 끼고 있던 제가 옆에서 주인님을 경호하고 있었던 것이죠.

저는 망설이지 않았습니다. 주인님을 노리던 괴한이 든 총을 팔째로 베어낸 것이었죠. 길거리에 피가 튀었습니다. 하지만 주인님의 피가 아니라면 아무 상관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주인님의 피가 아닌 것이 다행인 것이었지요.

순식간의 일이었습니다. 주인님도, 괴한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없었을 겁니다. 엄청난 일이 아닙니다. 제게는 아무것도 아닌 일이었습니다. 괴한을 제압하는 것쯤은 숨 한 번 쉬지 않고 할 수 있는 일이었죠. 주인님께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게 된 것은 그 괴한이 잘려나간 팔을 붙잡고 울부짖은 다음이었습니다.

그 사건이 있은 후로 주인님은 제게 무한한 신뢰를 하게 되셨습니다. 주인님께서는 창가에 가는 것도 두려워하던 분이셨지만 제가 함께라면 그 어떤 곳도 가셨죠. 심지어는 사람이 많은 번화가를 저와 함께 걷기까지 하셨습니다.

그렇다고 주인님이 항상 안전하다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저는 주인님께 위협이 있을 때마다 제 힘을 발휘해 그 누구도 주인님을 해칠 수 없게 했습니다. 제가 주인님을 살린 횟수는 아마도 양손으로 꼽기 힘들 정도로 많겠지요.

주인님은 한가할 때면 언제나 제 머리를 쓰다듬어주십니다. 가끔씩 매와 채찍을 들 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주인님은 제 머리를 쓰다듬어주시곤 합니다. 저는 잘 알지 못하지만 제 머리를 쓰다듬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모양입니다. 아니, 머리뿐만이 아니라 제게 손을 대실 때마다 주인님께서는 기분이 좋아지시는 모양입니다.

주인님은 쇼핑하는 것도 좋아하십니다. 예전에는 목숨의 위협 때문에 밖으로 나가지 못해 인터넷으로만 사셨지만 이제는 백화점에 저와 함께 다니며 물건을 고르시곤 합니다. 주인님께서는 어마어마한 부자시기 때문에 백화점에 가면 수많은 직원들이 주인님을 반깁니다. VIP라고 하더군요. 아니, VVIP? RVIP? 앞에 좀 더 붙는 알파벳이 있는데 기억은 잘 안납니다.

주인님께서는 언제나 수많은 물건을 사십니다. 언젠가는 그렇게 말하셨습니다. 당신이 오늘 산 물건의 양이면 이 자리에 있는 직원들 전부를 1년간 먹여살릴 것이라고요. 그렇게 많이 사시다보니 물건을 드는 것은 언제나 제 몫이었습니다. 제 양손에는 언제나 쇼핑백들이 주렁주렁 달려있었죠.

그럼에도 제가 실수한 적은 단 한번도 없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도 언제나 주인님을 지키는 것이 컴패니언의 존재이유였으니까요. 양손에 든 물건을 지키면서 주인님의 목숨을 지키는 것, 주인님은 언제나 그것을 강조하셨습니다.

그래서였을까요. 제가 난생 처음 실수를 저질렀을 때 주인님은 저를 혼내셨습니다. 제가 양손에 낀 단분자 커터가 쇼핑백 줄을 끊어 쇼핑백 하나가 바닥에 떨어진 것이었습니다. 그 쇼핑백에는 지갑이 들어있었습니다. 정확히는 지갑이 들어있는 포장박스가 들어있었죠. 제가 놓친 쇼핑백이 땅에 떨어지자 쇼핑백은 쓰러졌고 그 안에 들어있던 지갑이 든 포장박스는 바닥을 굴러갔습니다.

그곳은 백화점의 앞이었습니다. 바로 차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잠시 길가를 걷고 싶다는 주인님의 변덕 때문이었습니다. 봄의 길거리에는 수많은 차들이 오갔습니다. 인도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갔습니다. 저는 그들을 모두 보았지만 그들에게서는 위협의 기색이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시간은 저녁이 되어가며 가로등에 불빛이 들어올 시간이었습니다. 아직 해는 서편에서 지고 있었고 달은 일찌감히 하늘에 떠 해가 사라져 자신이 빛날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죠. 바람은 살랑사랑 불며 몸에 땀이 날 여지도 주지 않았습니다.

주인님은 뒤를 돌아보셨습니다.

‘죄송합니다, 주인님.’

저는 그렇게 말하며 땅에 떨어진 지갑 상자를 주우려 했습니다.

‘페로, 지금 뭘 한 거야.’

주인님은 그렇게 말하셨습니다.

바이오로이드는 고통을 덜 느끼는가. 그것에 대해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있을까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한가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저는 고통에 대한 공포감이 없습니다. 자신의 몸을 희생하는데 두려움을 가지지 않게 만들어졌기 때문일까요. 저는 얼얼한 뺨을 만지면서도 아프다라는 느낌은 들었지만 그것이 싫은 것이라는 느낌은 받지 못했습니다.

‘너 같은 것들은 언제나 그런 표정이야.’

주인님께서는 그렇게 말하셨습니다. 어떤 표정을 지어야 했던 걸까요. 저는 웃었습니다. 주인님은 제가 웃는 표정이 좋다고 하셨습니다. 주인님을 기분좋게 하려면 그렇게 웃어야죠.

‘기분나빠.’

그런 주인님의 말을 들은 저는 뒤로 고꾸라졌습니다. 얼얼한 배를 만질 겨를도 없었습니다. 저는 주인님의 발을 막지 않았습니다. 저는 얼굴을 가릴 수 없었습니다. 누군가가 주인님의 목숨을 노리고 있다면. 저는 주인님을 지켜야 했습니다. 제가 지켜야 할 것은 제 자신이 아니라 주인님입니다.

사람들이 몰려들었습니다. 아, 안됩니다. 사람들이 많아지면 그만큼 경호하기도 힘들어집니다. 저는 주인님께 말했습니다.

‘돌아가서 마저 해주세요. 지금은 경호에 위험한 조건입니다.’

제 말을 들은 주인님은 말하셨습니다.

‘너는 반성도 모르는 거냐.’

죄송합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저는 그렇게 말하며 주인님에게 무릎을 꿇었습니다. 주인님은 제가 잘못하면 그렇게 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반성하는 기색이 보이지 않아’

주인님은 그렇게 말하시며 저를 벌하는 것을 멈추지 않으셨습니다. 땅바닥에 피가 튀었습니다. 주인님의 피가 아니었습니다. 다행입니다. 저는 안도합니다. 저것은 제 피입니다. 저 때문에 주인님이 다치는 일은 일어나서는 안됩니다. 피를 흘리는 것은 저로 족합니다.

‘너 지금 뭐하는 거야.’

한 경관이 다가옵니다. 신고를 받고 온 걸까요. 하지만 주인님은 잘못한 것이 없는걸요. 잘못한 건 페로입니다.

‘그 여자아이에게서 물러나.’

경관이 말합니다.

‘여자아이라니, 이건 바이오로이드야.’

주인님께서는 말하십니다. 맞습니다. 저는 바이오로이드입니다. 컴패니언 시리즈 CS 페로입니다.

‘내 소유인 바이오로이드를 어떻게 하건 내 마음 아니야.’

주인님이 하시는 말이 맞습니다. 저는 주인님의 것이고 주인님이 원하는 것이라면 제 몸이라도 바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웅성댑니다. 저는 경계합니다. 저들중 누구라도 주인님을 노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시야가 피에 젖어 잘 보이지 않습니다. 한쪽눈은 흐릿하게 보이기까지 합니다. 이래서 주인님을 지킬 수 있을까요.

‘키리시마 법 듣지 못했어? 바이오로이드는 인간이 아니다. 경찰이 그것도 몰라?’

맞습니다. 저는 인간이 아닙니다. 저를 어떻게 하건 경찰이 뭐라할 것이 아닙니다.

‘뭐? 키리시마? 됐고 지금 당장 경찰서로 연행할 거니 따라와.”

경관이 주인님을 잡아가려 수갑을 꺼냈습니다. 그래서는 안됩니다. 저는 주인님을 지켜야 합니다. 저는 경관의 발목을 잡았습니다.

‘경찰님, 주인님은 아무 잘못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제가 잘못한 것을 벌을 주실 뿐입니다. 주인님은 잘못하지 않으셨습니다.’

저는 그렇게 말합니다. 경관을 따라온 다른 경관이 먼저온 경관을 말립니다.

‘선배, 니세잖아요. 엮여봐야 우리만 피곤해져요. 무슨 죄로 잡아간다고요.’

맞습니다. 주인님은 죄가 없습니다.

‘들었어? 나는 아무 죄가 없어. 내 물건을 길거리에서 부수는게 뭐가 잘못인데? 잡아가려면 잡아가봐. 무고한 시민을 잡아간 죄를 치루게 해줄 테니까.’

경관들은 가만히 서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천천히 주인님의 벌을 받았습니다. 점점 시야가 희미해져갔습니다. 하지만 다 제가 잘못한 탓이겠죠.

제 주인님은 착하신 분입니다. 또한 돈이 많으신 분이지요. 저 같은 바이오로이드는 얼마든지 살 수 있으신 분입니다. 저 같은 잘못한 바이오로이드는 데리고 있을 필요가 없으신 거겠죠. 조금 더 주인님을 지켜드릴 수 있었는데 유감이게 되었습니다.
부디 제 뒤를 이을 동생은 주인님을 잘 지켰으면 좋겠…



-어제 저녁, 롯폰기에서 한 남성이 자신의 소유의 바이오로이드를 파괴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시민의 신고를 받은 경찰이 출동했지만 남성에게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없었기 때문에 경찰은 사건이 일어나는 것을 방관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에 일각에서는 키리시마법의 폐혜라고 하는 한편 다른 쪽에서는 자신의 소유물을 어떻게 하건 자신의 마음이라고 하는 등, 의견이 엇갈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