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잠든 늦은 밤, 사령관은 결투장에 적힌 으슥한 지하실 창고로 향했다. 아무도 없는 텅 빈 복도에서는 사령관의 발걸음만 울려퍼졌다. 오르카호와도 이제 작별이구나, 하며 도살장에 끌려가는 마음으로 무거운 발걸음은 어느새 창고 앞까지 이르렀다.


노크를 하려던 손은 허공에 멈추었다. 어차피 상대가 결투를 신청했다면 기선제압이라도 해야할 거 같아서 대친 거칠게 문을 열어재꼈다.


"후훗..딱 맞춰서 왔군."

"숙녀를 기다리게 했으면 화냈을텐데."


레오나와 메이가 일어나서 사령관을 맞이했다. 평소와 다른 점이라면 긴 가운을 걸치고 있었고 묘하게 상기된 표정이었다.

먼저 레오나가 야릇한 표정을 지으면서 가운 매듭을 천천히 풀었다. 스르륵 하고 가운이 흘러내리자, 레오나의 매끈한 나신을 흐릿하게 비추는 분홍색 네글리제가 드러났다. 풍만한 가슴선 아래로 떨어져서 아슬아슬하게 아래를 가리고 그 끝이 다다라는 허벅지에는 하얀색 프릴이 달린 가터를 민트색 끈이 꽈악 옥죄고 있었다.


"야! 같이 하기로 했는데 치사하게 그러기야!"


메이도 질 수 없다는 듯 거칠게 가운을 벗어던졌다. 작은 키 때문에 더 부각되는 풍만한 가슴은 더치걸 손바닥보다도 작은 천으로 유륜만 간신히 가렸고, 그 아래로 이어지는 끈의 끝자락에는 은밀한 곳을 가까스로 감춘 천이 달려있었다.


"크윽..."


갑작스런 두 여인의 노출에 사령관은 당황한 기색을 내비쳤고, 레오나가 사령관의 한쪽 어깨를 잡고 부드러운 가슴을 기댔다.


"후훗..이제 내 마음이 뭔지 알겠어?"


"막고라 전 의식같은거지?"


인간이 멸망하기 전 검투사들의 대결에서 노출이 많을 수록 더 관객을 열광하는 자료를 봤다고 사령관이 덧붙였다.


"그리고 내가 얼마나 만만했으면 보호장비 없이도 나 따위는 그냥 싸워서 이긴다는 거 아냐?"


아아 이 둔탱이 사령관은 어디까지 멍청한걸까, 메이는 이마를 짚었다. 늦은 밤, 아무도 찾지 않는 으슥한 장소에서 남녀 둘이 만난다는걸 어떻게 해석해야 결투로 받아들이는 걸까.


"아니 애초에 내가 너랑 왜 싸워야 하는건데!"


결국 참다 못한 메이가 소리를 빽 질렀다.


"그야 나같이 무능한 사람이 상사니까 싫어하는거 누가 모를 줄 알아! 맨날 시비걸고 비웃고 다른 부관들 앞에서 면박주고..나도 싫어!"


사령관도 지지 않고 맞받아치자 레오나와 메이는 움찔했다. 그저 자존심 때문에 고압적으로 나온 태도에 알게 모르게 사령관이 상처받아왔던 것이다.


"사령관...사실 사령관이 특별한 사람이 되길 바라서 그랬던거야. 사령관이 싫어서가 아니야 미..미ㅇ.."


레오나가 어른스럽게 가슴으로 사령관을 감싸며, 머리를 살살 쓰다듬으면서 진심을 말하려는 차에,


"우씨..사령관 사실 좋아해! 그동안 미안해!"


레오나에게 질 수 없다는 위기 의식 때문인지 결국 메이는 마지막 자존심까지 던져버리고 와락 사령관에게 안겼다. 머리 위에는 레오나의 가슴이, 가슴팍 아래에는 메이의 가슴이, 풍만한 두 가슴이 위 아래로 둘러싸였다. 부드러운 가슴 때문일까, 사령관의 마음도 조금 풀어지는 거 같았다.


"뭐야..그럼 날 싫어하는게 아니었어?...그러면 왜..아니, 안 싫어하면 그걸로 된거야."


"후후..사령관, 오늘은 특별히 30cm 이내..아니, 내 안으로 오는 걸 허락할게"


레오나가 끈적한 손길로 사령관의 셔츠 단추 하나 하나를 풀기 시작했다.


"야! 너 자꾸 새치기 할래!"


메이도 질 수 없다는 듯 사령관의 옷을 잡고 거칠게 열어재끼자 단추가 투툭 떨어져나가며 사령관의 적당히 근육이 잡힌 마른 몸이 훤히 드러났다.


"어머 키만 작은 줄 알았는데 행동거지도 어린 애였군요 메이. 분위기도 망쳐버리다니."

"너같은 암여우한테 뺏길거 같아? 너 옛날에 칸한테 졌다면서? 그 폐급인 워울프 퀵카멜 애들을 데리고 있는 칸한테 질 정도면 얼마나 형편 없는 지휘관인거야? 이 몸이 너같은 폐급한테 질 거 같아?"

"후후후.."

"악!"


거친 도발이 오고갔고, 둘의 말싸움은 레오나가 갑자기 메이의 팬티와 이어진 비키니끈을 쭉 잡아올리는 것으로 종말을 고했다. 메이가 아래를 움켜쥐며 부들부들 떠는 동안 레오나는 무방비 상태의 반쯤 벗겨진 사령관에게 향했다.


"꺄악!"


하지만 튼튼한 바이오로이드의 신체와 질 수 없다는 자존심으로 똘똘 뭉친 메이는 바로 일어나서 레오나의 머리채를 뒤에서 거칠게 낚아챔과 동시에 니킥을 척추에 꽂아넣었다.


"다들 그만해!"


서로 옷이 찢겨지고 머리를 잡고 몸싸움이 심해지자 보다못한 사령관이 소리쳤다.


"날 싫어하지 않는다는건 알겠어. 하지만 그거랑 이거랑은 다른 문제야. 난 누군가를 안게 된다면 좋아하는 사람하고 하고싶어!"


그녀들을 말리느라 무의식적으로 본심이 튀어나오자 사령관은 아차싶었지만 이미 늦었다.


"후후 그러니까 사령관은 마음에 담아둔 사람이 있어서 나는 눈에 안 들어온다?"

"그 건방진 년이 누구인지 들어보고 싶은데?"


헝클어진 머리카락 사이로 눈을 날카롭게 빛내는 두 여인의 기백에 질려서 사령관은 무심코 입을 열었다.


"그야 당연히 콘스탄챠랑 소완이지.."


콘스탄챠는 언제나 자신을 잘 챙겨줬고, 소완은 매번 정성스럽게 식사를 챙겨줘서 고맙다..는 말이 채 끝내기도 전에 쿠당탕 하는 소리와 깨갱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햇츙!! 하는 소리와 함께 창고 문을 뚫고 거대한 가위가 들어왔다.


사령관이 늦은 밤에 퇴실 기록은 있지만 오래도록 입실 기록이 입력되지 않아 걱정이던 콘스탄챠가 실례를 무릅쓰고 사령관실로 들어갔더니 책상에는 그 '결투장'과 사령관의 유서가 있었다. 유서를 보고 소스라치게 놀란 콘스탄챠는 메이드 몇 과 소완을 깨워서 창고 앞까지 한 달음에 달려갔고, 문을 열려는 차에 뜻밖의 사령관의 고백을 들어버렸던 것이다. 순간 손에 힘이 풀려 놓친 총 개머리판에 보리가 세게 맞아 깨갱 울부짖었고, 이성이 툭 끊어진 리제는 이를 계기로 가위를 꺼내 길길이 날뛰다가 블랙 리리스에게 제지되었다. 소완도 얼굴이 붉게 물든 채 잠시 굳어있었다.


***

레오나와 메이는 하극상, 성군기 위반으로 군사재판에 회부되었다. 감히 사령관을 따먹으려 한 죄로 다수의 지휘관은 물론 메이드들까지 이례적으로 합세해서 사형을 목소리 높였으나 사령관이 필사적으로 변호해준 덕분에 다른 형벌로 대체되었다.


"후후..내 기록을 깬 바이오로이들이 나올 줄은..그것도 한 번에 둘이서나 나올줄이야."


라비아타는 죄수 메이와 레오나를 독방에 안내하면서 종이 뭉치를 내밀었다.


"<스마트 조이의 창립 이념>, <2115~2119년 스마트조이 재무제표 및 감사보고서>..뭐야 이 지루한 문서는?"


메이가 서류를 주르르 넘기면서 라비아타를 바라보았다.


"각 문서를 하루에 200번씩, 2주간 베껴쓰는게 판결이에요. 후후 미리 말하자면 펜 여러개 묶어서 쓰면 다시 써야합니다?"


"그거 혹시 경험담?"


"노코멘트 할게요"


라비아타는 육중한 몸을 이끌고 떠났다. 과거 사령관에게 칼을 겨누었다는 이유로, 콘스탄챠가  아무리 언니라지만 사령관을 위협한건 용서할 수 없다며 날뛰어서 깜지 3일형을 받았다. 그 후 본인 기록을 갱신한 후배들이 둘이나 나올 줄은 라비아타도 예상은 못 했다.


사이좋게 독방에 갇혀 월클병 가득한 창립 이념을 따라 깨작깨작 깜지를 쓰다보니 어느덧 식사 시간이 되었다. 나이트 앤젤과 발키리가 식사를 들고 왔고 그 뒤에 살기를 풍기며 소완이 따라왔다.


식사는 삶은 옥수수, 삶은 고구마 그리고 삶은 감자. 참으로 성의 없는 식단이었다.


"뭐야 이건..그냥 물에 넣고 삶은 거잖아?"

"아무리 우리가 죄수 신세라지만 너무한 거 아냐?"


"암퇘지들에게 걸맞는 식단인데 뭐가 문제인것입니까?"


우아한 소완의 목소리에는 분노가 어려있었다. 감히 주인님을 노린 건방진 암퇘지들에게는 짬밥도 아깝지만, 주인님의 자비 덕분에 이런 식사라도 받는 걸 감사히 여기라 하며 한마디 더 덧붙였다.


"주제도 모르는 암퇘지들 먹이에게는 어울리는 돼지발정제를 잔뜩 넣고 싶은게 소첩의 본심이옵니다만..주인님의 명령 때문에 참았다는 걸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한 번만 더 이런 불미스러운 일이 생기면... 그 때는 암퇘지를 도축해버릴 수밖에요."


소완이 매서운 눈으로 흘겨보고 떠나자 나이트 앤젤은 한숨을 쉬며 품안에서 찌라시 하나를 꺼냈다.


"언제 찍었는지 스프리건이 팔고 있어요.. "


'충격-사령관의 이상성욕 공개! 밥 안 주는 여자들은 알몸으로 덤벼도 전혀 꼴리지 않아, 논란'

'우리 오르카 꼴림 3위가 누군지 아느냐, 1위는 처음 밥을 주던 콘스탄챠, 2위는 주방장 소완, 3위는 늘 밥을 해주던 리제'


자극적인 기사와 진실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허위 사실로 점철된 찌라시에는 옷이 벗겨진 사령관의 사진이 큼지막하게 박혀있었다.


"이..이런 품격 낮은 황색 언론이 오르카 내에 돌아다닌다고..?"

"이 개소리는 뭐야 대체! 다른 지휘관은 이런걸 방치하는거야?"


발키리의 설명에 의하면 사령관의 귀에 안 들어가는 선에서 막으려 하고 있다고 했다. 그 후 나이트 앤젤이 덧붙였다.


"사실 사령관의 사진을 탐내서 지휘관들도 묵인한다는 얘기가 있지만요.. 뭐 어쨌든 다들 생각이라는게 있으면 일이 커지지 않는 선에서 마무리 되겠죠."


그렇게 이번 일도 지나가는 듯 했다.




"음...왠지는 모르겠지만..."


사령관은 요즘 들어 마주치는 바이오로이드들이 먹을 걸 쥐어주는 바람에 책상에 잔뜩 쌓인 스팸, 참치캔, 사탕, 건빵, 기타 간식거리 등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미호나 알비스같이 초콜릿을 주는 경우는 있었지만 이렇게 식량 수준까지 퍼주는 적은 없었다.


"왜 다들 날 보면 먹을 걸 주려고 하지?"













작가가 츤데레를 안좋아한다고함